"판타스틱!"이란 말이 절로 나왔다. 6개월 만에 9kg 감량, 체지방량 2.1kg 달성으로 피트니스 대회 머슬퀸에 도전한 그녀의 나이, 올해 50이었다.
배우 황석정은 2001년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로 스크린에 데뷔해 드라마 <미생> <그녀는 예뻤다>, 영화 <황해> <곡성>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며 감초 같은 조연 연기로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서울대학교 국악과를 졸업하고 연기를 하기 위해 다시 한국종합예술원(한예종) 연극원에 입학한 흔치 않은 케이스이기도 하다.
'신스틸러'로 개성 강한 연기를 보여주던 그녀는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를 통해 의외의 예능감을 발산했고 친숙한 배우로 자리 잡았다.
그런 그녀가 최근 '머슬퀸'이라는
수식어를 하나 더 얻게 됐다. 건강을 위해 시작한 운동으로 스포츠 채널 SPOTV가 주최한 피트니스 대회 '예스킨 스포핏'에 출전했고 아쉽게 입상에는 실패했지만 많은 사람에게 큰 감동을 선사한 것이다. "몸도
마음도 정신도 더 건강해졌으니 더 많은 창작 에너지가 나올 것 같아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녀. 어느 50대 여배우의 길목은 이토록 실하고 강건하고 또 근사했다.
화보 촬영은 어땠나요? 스스로가
정말 많이 달라졌다는 걸 느꼈어요. 제가 원래 남들 앞에서 노출을 극히 꺼리는 편이거든요. 콤플렉스가 많아 가리고 겁내고 두려워했죠. 운동을 하고 나서 그런 불안함에서 많이 해방된 것 같아 뿌듯해요. 무엇보다
두려움을 극복했다는 생각에 기쁘고요.
정말 환상적인 몸매입니다. 사실 지금이 가장 좋은 몸의 컨디션은 아니에요. 대회가 끝나고 먹고 싶었던 과자를 실컷 먹으면서 저 자신에게 보상을 줬거든요. 대회 때
몸의 컨디션을 계속 유지하는 건 어려워요. 출전하기 위해 극도로 수분을 빼고 건강보다는 대회용 몸을 만든 것이니까요. 하지만 앞으로도 운동은 꾸준히 하려고요. 운동은 제게 친구 같은 존재예요. 늦은 나이에 만난
좋은 친구랄까요? 진짜 날 위해주는 친구를 만났으니 오래오래 함께 잘 지내봐야죠.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40대 중반이 넘어가니까 몸의 변화가 오더라고요. 이유 없이 아프고 힘이 없고
또 쉽게 지치고요. 지천명이라고 해서 뭔가 다 깨달았을 것 같고 확신이 확 설 것 같은 나이였지만 정작 그 나이가 된 저는 그렇지 않았어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회오리바람처럼 몰아치는 세상이니까 정신을 차릴
틈도 없었죠.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 서 있는지, 뭘 위해 살고 있는지, 나라는 인간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살 것인지에 대한 생각이 복잡하게 들었어요. 아주 어릴 때 외에는 할 여유조차 없었던 그런 질문들이오.
그렇게 50살이 딱 넘으니 전 마치 버려진 사람이라는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초라하게 느껴지고, 인생을 잘못 산 것 같고, 내 손에 쥐어진 건 아무것도 없고, 머릿속은 텅 비고, 가슴은 뻥 뚫려 있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운동을 시작하게 됐어요. 몸과 마음은 따로가 아니니까 몸을 건강하게 단련하면 마음도 단련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계획한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저 주어진 길을 용기 내서 걸은 게
다예요.
아쉽게 수상에는 실패했어요. 입상에 대한 기대보다는 주변에서 인사치레로 "상 타!" "꼭 타!" "1등 해!"라는 말을 많이 하니까 저들의 성원에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이 컸어요. 많은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면 작게라도 하나 받아야 하나 생각이 들었고요. 수상보다 전 충분히 많은 걸 깨닫고 얻었으니 미련이나 후회는 없어요. 다만 사람이다 보니 아쉬움은 좀 있죠.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에 두고 몇 달을
준비해야 할 일인데 전 한 달 반 동안 모든 걸 준비하려다 보니 부족함이 많았어요. 불안한 마음에 유튜브를 한 1,000개는 찾아본 것 같아요. 최은주 트레이너뿐만 아니라 유튜브가 진정한 제
스승이에요.
이번 도전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나요? 전 항상 의문을 가져왔어요. '여성의 아름다움이란 도대체 뭘까? 사회가 만들어놓은 예쁘고 가녀리고 약한 이미지가 과연 여성미의 정의라고
할 수 있을까?' 하고요. 사실 여성은 강인하잖아요. 노동도 많이 하고 누군가의 엄마이기도 하고요. 열심히 사는 여성은 다 주류고, 주체고,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제가 시장을 자주 가는데 그곳에서 만나는 여성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워요. 열심히 일하고 땀 흘리고 그로 인해 거칠어지고 주름진 얼굴이, 손가락이 전 너무 아름답게 느껴져요. 여성에 대한 평가의 기준과 잣대가 더 다양해졌으면 좋겠어요. 50대란 나이에 몸
만들기에 도전하는 제 모습도 '아름다운 여성미'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요.
운동할 때 가장 힘들었던 부위가 있다면요? 유전적으로 엉덩이가 없는 편이에요. 아무리 근육으로 키우려고 해도 무리가
있더라고요. 다른 근육은 운동을 하면 느낌이 오는데 엉덩이는 끄떡도 안 했어요. 근데 그 느낌이 대회가 끝나니까 슬슬 오더라고요. 늦게 저와 교감이 된 거죠. 그래도 태생적으로 엉덩이가 발달된 사람처럼 확 커지진
않아 쏟아부은 시간 대비 효과가 가장 적었던 부위였어요.
힘들 때 가장 힘이 됐던 건 뭔가요? 믹스커피요. 원래 먹으면 안 되는데 완전하게 끊을 수가 없었어요. 솔직히 고백하자면 한 모금도 안 마신
날은 단 하루도 없을 거예요. 원래는 제가 하루에 믹스커피를 4잔씩 마시거든요. 처음에 그 양을 두 잔으로 줄일 때 너무 고통스러웠는데 나중에는 아예 입에도 대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너무 힘든 일이었어요. 그래서
운동이 끝나고 집에 가면 보상 차원에서 저 자신에게 한 모금씩 선물하곤 했어요. 평소에도 믹스커피를 마시는 시간은 제게 너무 소중해요. 하루를 정리하면서 반려견이랑 앉아 도란도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은 그
어떤 시간보다 행복한 시간이에요.
50살이 넘으니 전 마치 버려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운동을 시작하게 됐어요. 계획한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저 주어진 길을 용기 내서 걸은 게 다예요.
남자 친구는 없나요? 없어 보이지 않아요? 저는 거짓말 안 해요. 방송에서 여러 번 말했던 마지막 남자 친구 이후 연애를 전혀 안 하고 있어요. 전 일단 연애를 하기에 적합한
유형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연애를 하기에는 너무 열정적이고 뜨거운 사람이죠. 사랑을 못 받고 자라 그런지 사랑을 주는 것도, 받는 것도 다 서툴러요. 왜 보통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이 줄 줄도 안다고
하잖아요. 전 그런 면에서 그저 올인하고 쏟아붓는 방식으로 서툴게 사랑을 하는 것 같아요. 제 열정은 이성을 만나 달콤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거친 파도에 뛰어들어 물고기도 잡고 미역도 따야 하는
스타일인 거죠.
결혼에 대한 생각은요? 글쎄요. 사람 일은 모른다지만 지금은 전혀 생각이 없어요. 전 연애라는 게 정신적으로 제 정신이 아닌 상태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렇게 낭만적이고
감상적으로 뭔가에 젖어 있는 게 싫어요. 지극히 현실적이고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걸 선호하죠. 조용하고 냉정하게 스스로를 바라보고 흔들림 없이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는 게 좋아요. 누군가가 있기 때문에 내가 가치
있게 느껴지는 순간은 재미없다고 생각해요. 누군가의 말에 현혹되고, 누군가의 약속을 믿고, 누군가를 의지하면서, 누군가를 위해 날 속이는 순간은 원하지 않아요.
정말 좋은 사람이 나타날 수도 있잖아요. 그런 사람이 있을까요? 사실 크게 기대하지 않아요. 그리고 안 나타났음 좋겠어요. 좋은 분은 제가 아니라 좋은 분을 기다리고, 의지할 누군가가 필요한 사람에게 갔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저 지금이
좋아요. 제겐 오래된 친구들이 있고, 사랑하는 반려견이 있고, 책임져야 할 가족들이 있으니까요.
주변에 '사람'이 참 많은 것 같아요. 관계에서 트러블이 별로 없는 편이에요. 전 갈등이 생기면 그
자리에서 풀어요. 사과도 잘하고요. 반면 부당하거나 의롭지 못한 상황에서는 돌아버리죠. 그래서 경찰서도 자주 가요.(웃음) 예민한 성격이지만 예민을 떨진 않아요. 예민하게 굴어서 다른 사람을 괴롭히긴 싫거든요.
나를 위한 예민함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면 너무 창피하고 부끄럽고 미안해져요.
악플에 대해서도 의연한가요? 억울한 일을 당하면 잠도 안 올 만큼 속상하죠. 제가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하거나
제 뜻과 다른 오해가 생겼을 때는 너무너무 억울하지만 일단 그냥 기다려요. 남들의 평가보다 제가 저 자신에게 떳떳한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서요. 아무 반응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데 그게 생각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게 제 생각인 거예요. 전 세상이 노트라고 생각해요. 이 공기가 모든 걸 다 듣고 있어요. 시간과 공간과 신이 있다면 모든 건 다 기록되고 있는 거죠.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하늘은 다 알고 있다는 생각이
제게 위안을 주는 것 같아요. 악플을 다는 사람들 역시 나쁘게만 생각하고 싶진 않아요. 이유 없이 보기만 해도 싫은 사람, 저도 있거든요. 그저 그들은 나쁜 사람들이니까 그들의 의견은 무시해야겠다가 아니라 나로
인해 또 하나의 이야깃거리가 생겼으니까 서로서로 토론하고 이야기하면서 다양함에 대해 수긍할 수 있는 문화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바랄 뿐이죠.
가장 힘이 되는 존재가 있나요? 오랜 시간 제 곁에서
함께해준 매니저요. 처음부터 손발이 척척 잘 맞진 않았지만 이제 제가 무슨 이야길 해도 그 의미와 감정을 너무나 잘 알아주는 사람이에요. 이 친구에게 의지를 한다기보다 그저 존재만으로도 큰 힘이 되고 있죠. 또
전 작년에 죽은 반려견 대박이에게 이야길 많이 하는 편이에요. 지금은 제 곁에 없지만 어디선가 절 지켜보고 응원해주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하루를 정리하면서 엄마가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내일은 또 뭘 하고 싶은지 소소하게 털어놓곤 해요.
연애라는 건 '제 정신'이 아닌 상태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렇게 낭만적이고 감상적으로 뭔가에 젖어 있는 게 싫어요. 현실적이고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걸 선호하죠.
지난 50년을 되돌아보면 어떤가요? 문을 열고 나왔더니 제가 저라는 존재로 세상에 태어난 거예요. 빛이 하나도 없는 깜깜한 길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더듬더듬 의지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야 했죠. 그렇게 천천히 걸으며 제 손에 잡혔던 것들이 배우라는 직업이고, 내 사람들이고,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처음보다는 절반쯤 지난 지금부터 제 인생을 훨씬 즐겁게 느끼지 않을까요? 운동도
100개 남았을 때랑 50개 남았을 때랑 기분이 완전 다르잖아요. 어떻게든 여기까지 왔으니 이젠 같은 일도 가벼운 마음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이젠 어느 정도 어둠에 적응도 하고 제가 의지할 여러 존재가
있으니 훨씬 더 지혜롭고 안정감 있게 걸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스스로 나이를 실감하나요? 액면가로는 훨씬 더 많아 보이죠.(웃음) 나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것 같진 않아요. 몸과 정신만 건강하다면
정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거니까요. 사실 저는 50대가 돼서 너무 좋아요. 그동안 멋모르고 실수하면서 남을 괴롭히며 살았다면 이제 그 길은 피해갈 수 있잖아요. 젊은 후배들이 제 이야길 귀담아듣는 것도 좋아요.
진실로 누군가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나이가 된 것 같아서요.
다시 태어나도 배우가 될 것 같아요. 아마도요. 그러고 싶다기보다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배우라는 직업은 제 인생에서 절 가장
힘들게 한 존재고 제 한계를 가장 많이 느끼게 한 존재예요. 그만큼 가장 위대한 스승이고요.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해 이 길을 또 선택해야 할 것 같아요.
꿈이 있다면요? 전 50년을 살고도 부족함이
굉장히 많은 사람이에요. 의지도 약하고 용기를 낼 수 없는 나약한 존재죠. 하지만 운동이라는 미션을 통해 그러한 모자람을 조금씩 극복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번 도전을 시작으로 죽을 때까지 변화를 시도하고,
성숙하기 위해 과감한 도전을 멈추지 않으려고요. 그래서 이런 제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힘을 내고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어요. '꿈'이라는 거창한 단어가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힘든 이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제 꿈이에요. 이러한 분위기와 에너지가 사람들 사이에서 막 퍼졌으면 좋겠어요. 선한 기운이라고 하나요? 사람은 누구나 그런 기운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도 모두 품고 산다
생각하고요. 그래서 서로서로 그런 존재가 돼주고 스스로 더욱 강하고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문화가 하나의 운동처럼 퍼져나갔으면 좋겠어요. 나이 든 저도 하는데, 못생긴 저도 하는데, 혼자인 저도 하는데
다들 못 할 거 없잖아요.
참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저는 무엇보다 세상이 심어준 잣대나 시대가 요구하는 기준에서 벗어나 많은 여성이 자유로워졌으면 좋겠어요. 비교의 틀에 자기를 맞추거나 깎아내리지
말고, 정형화된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으면 좋겠고요. 이런 마음과 기운들을 사람들이 나눠 가진다면 우리의 삶은 훨씬 행복해지고 힘이 생기지 않을까요? 서로가 서로를 아름답다
느끼고, 나 자신이 누군가에게 행복이 돼주는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분명 지금보다 훨씬 멋진 인생이 우리 앞에 펼쳐질 거예요. 제 사소한 용기가 단 한 명에게라도 또 다른 용기를 심어줄 수 있었다면, 저처럼 못생기고
나이 든 여자도 아름답다고 느낀 한 사람이 있었다면 저는 그걸로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