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애의 초등학교 6학년 시절. 평소 엄마의 관심이 형에게만 가 있다고 볼멘소리로 항의하던 작은애가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전국적으로 소문난 모 국제중학교의 원서를 구해 왔다. 반드시 그 학교에 진학하고 싶다는 아이의 애원으로 일단 시험은 보게 했는데 덜컥 필기시험을 통과하고 최종 면접까지 치르게 됐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면접장에 도착했는데 우리 동네에서 수학 잘하기로 소문난 아이의 친구도 눈에 띄었다.
어쨌든 제 노력으로 필기까지 통과했으니 대견한 마음으로 아이를 면접장에 들여보내고 나니 학교까지 태워주셨던 택시 기사의 말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여기 시험 보러 오셨나 봐요? 아이고, 여기 아이들 주말마다 강남까지 나가 공부해요. 엄마가 태워다주면 몰라도 매주 택시 타고 나가려면 차비도 엄청 들어요. 돈이 많이 들겠어요!” 소문난 국제중학교이니 공부에 대한 부담과 커리큘럼이 결코 가볍지는 않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발표도 나기 전인데 걱정부터 밀려왔다. 부산에 있는 엄마가 매주 올라갈 수도 없고, 주말마다 택시비에 학원비만 해도 얼마인가? 수업료도 부담되는 학교인데 이런저런 비용까지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돈 때문에 못 보낸다고 말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그런데 부모 체면 구기지 않도록 아이가 알아서 면접을 망쳐주었다. 면접이 끝나고 상기된 표정으로 나온 아이가 말했다. “수학 좋아하느냐고 묻기에 싫어한다고 자신 있게 말했어. 나 진짜 수학 싫거든요!” 대한민국 입시에서 수학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오죽하면 중학교 내내 영어 공부를 포기하고 수학만 하라는 사교육 전문가도 있다. 상급 학교 입시를 잘 준비하는 소문난 중학교들은 수학 수업에 체계적인 공을 들인다. 어쨌든 결과는 다행스럽게(?) 나의 예상대로였다.
그런데 그 뒤 중학생이 된 작은애의 특징을 헤아리니 가까운 중학교에 진학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욕심 많고 경쟁심 강한 만 13세의 초등생 티를 제대로 벗지 못한 작은애는 누구보다 부모의 관심이 더 필요한 아이였다. 부모에게 인정받고 용기와 위로를 받으며 더 단단해져야 할 아이였던 것이다. 이제 막 사춘기를 맞은 그 아이를 멀리 타지에 3년 동안 떼어놓았다면 아이는 아마 일찌감치 열등감에 사로잡혔을지도 모를 일이다. 면접장에서 만난 아이의 동네 친구는 발군의 수학 실력으로 최종 합격했는데 결국 그 먼 거리를 견디지 못하고 1년 만에 일반 중학교로 전학을 왔다.
중학교도 ‘특목중(특수 목적 중학교)’이 있다. 국제중학교는 외국어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예술중학교는 예술 분야의 인재를 조기 육성하자는 목적으로 실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외에도 체험 위주의 대안 중학교도 있다. 아이의 재능에 맞춰 진학하도록 여러 부류의 중학교가 존재한다.
여름방학이 되면 중학교 진학을 고민하는 엄마들을 자주 만난다. 특목중을 보낼까, 일반 중학교를 보낼까? 엄마들의 질문에 나는 이렇게 조언한다. “아이의 개성과 재능에 따라 특목중 진학도 소중한 의미가 있지만, 가까운 곳이라면 적극 찬성해도 너무 멀리 떨어진 곳으로 보내야 한다면 한 번쯤 깊이 고려해보라”고 말이다.
중학생은 아직 어리다. 자신의 생각이 여물도록 도와주고 응원해줄 일이 의외로 많다. 가족의 힘이 아직은 필요한 나이다. 아무리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해도 그 시기에 지지해주는 가족에게서 얻는 안정감을 잃는다면 고민해볼 만한 문제다.
부모와의 소통에 아직 타협의 여지가 남아 있는 시기가 중학교 시절이다. 지나고 보니 아이와의 원활한 소통은 그 시기에 완성된다. 어떤 중학교를 선택하든 부모가 안심할 수 있는 거리에 아이를 두는 일. 그 평범한 진리가 새삼 더 소중했다는 생각이 든다.
글쓴이 유정임(교육 칼럼니스트)
MBC FM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작가 출신으로 현재 부산·경남 뉴스1 대표로 근무 중. 두 아들을 카이스트와 서울대에 진학시킨 워킹맘으로 <상위 1프로 워킹맘>의 저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