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대중은 '부캐' 맛에 흠뻑 빠졌다. 부캐는 부 캐릭터(원래 캐릭터가 아닌 또 다른 캐릭터)의 줄인 말로 본캐(한 인물의 원래 캐릭터)를 넘어서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부캐는 지금 가장 각광받는 놀이 문화인데 스타, 제작자, 대중이 함께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한데 그 인격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사뭇 진지하다. 뭐랄까, 무언의 약속 같은 것인데 그 약속이 지켜질 때 부캐는 힘을 발휘한다.
비 내리는 날에 태어난 사연 있는 이모
그리고 지금, 가장 핫한 부캐는 단연 개그우먼 김신영의 '둘째이모 김다비'다. 김다비의 탄생은 지난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JTBC 예능에 출연해 밥집 이모 성대모사를 하며 만들어진 캐릭터인데, 3년의 시간이 흐른 뒤 최근 '주라주라'를 부르는 신인 가수로 재등장한 것이다. 당시 김신영은 스스로를 "빠른 45년생 김다비. 많을 다, 비 비"라고 소개했다.
사실 김신영은 일찍이 '아줌마 인물 모사'에 독보적인 재능을 보인 개그우먼이다. 2010년부터 4년간 방송된 장수 예능 MBC every1 <무한걸스>에서 머리에 함지박을 이고 나와 "제일 바쁜 저녁 6시에 불백 하나, 소고기 하나, 짬뽕, 계란말이 주문한 녀석이 누구야!"라며 호통을 쳤던 밥집 아주머니가 그 전설의 시작이다. 이후 그 아주머니는 목욕탕 세신사와 주부 노래교실 스타 강사, 오리백숙 파는 식당 아줌마 등 전국 팔도의 수많은 아줌마로 찰떡같이 변신했고, 김신영은 자신의 '주 종목'으로 현재 제2의 전성기를 뜨겁게 맞이하는 중이다.
다시 돌아온 김다비는 추가적으로 자신의 이력을 공개했다. '1945년생, 계곡 산장에서 오리백숙집을 운영. 특기는 킬 힐 신고 약초 캐기, 취미는 새벽 수영-정오 에어로빅-심야 테니스. 슬하에는 아들 셋, 조카로 개그우먼 김신영.' '주라주라' 뮤직비디오가 이미 2백만 뷰를 넘긴 지 오래다. "물개 박수 한 번만 주세요, 함 더 줘요, 난 둘째니까!" 구성진 말솜씨는 좌중을 압도한다. 어디 그뿐인가. 골프는 못 치지만 정성스럽게 챙겨 입은 '빨간 골프웨어'에 복대를 연상시키는 검정 힙색을 두르고, 업스타일 헤어엔 큐빅 머리핀을 주렁주렁 달았다. 여기서 진한 '루주'를 앞니에 묻힌 채 물색없이 환하게 웃는 미소가 포인트다. 한데 낯설지가 않다. 동네에서 한 번쯤 본 듯한 미용실 원장님, 문화센터 스타 강사 아주머니 같다. 그 모든 게 어쩜 그리 찰떡같은지 기가 막혀 웃음이 나온다.
현재 김다비 이모는 '트로트계 괴물 신인'으로 불리며 예능은 물론 음악 방송까지 섭렵 중이다. <놀면 뭐하니?> '닭터유' 편부터 TV조선 <뽕숭아학당>, 올리브 <밥블레스유2>까지 김신영을 대신해 '열일' 중이다.
얼마 전엔 <아침마당>에 출연해 "(조카) 신영이는 신영이고 나는 둘째이모 김다비다. 나는 비가 많이 내리는 날에 태어난 사연 있는 둘째이모"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해 웃음을 이끌어냈다. 여기서 화룡점정은 <아침마당> 진행자와 다른 출연진 모두 김다비를 김신영의 둘째 이모이자 신인 가수로 자연스럽게 대했다는 것이다. 모르는 척 속아 넘어가는 게 부캐 놀이의 핵심인데, 그 약속을 찰떡같이 지켜주며 모두 한배를 탄 듯 환상의 쿵짝을 자랑했다. 이른바 공중파에서도, 그것도 <아침마당>이라는 장수 프로그램에서도 B급 문화를 즐기는 모습이 신선하다.
<밥블레스유2>에서는 시청자들의 고민을 속전속결로 해결해주는 '인생 이모'로 나서 웃음을 안겼다. '쇄골뼈 부러진 딸 병시중 들어주느라 지친 칠순 엄마와 몸보신 할 음식을 추천해달라'는 사연에 "엄마랑 뭐 먹을지 고민하지 말고 친구랑 둘이 밥 먹고 엄마한테 시간을 줘"라며 엄마의 입장을 대변해 스태프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이어 "자유가 참 테라피고 참맛이다"라는 명언을 남기는 등 재치 있는 입담으로 분위기를 쥐락펴락했다.
이날 방송에서 김다비는 방송 최초로 남편과의 러브 스토리부터 해외에 살고 있는 아들들의 이야기까지 자신의 인생사를 털어놓아 웃음을 안겼는데, 끝을 모르고 펼쳐지는 '김다비 유니버스'에 장도연은 "이모님, 허언증 아니죠?"라 물었고 김다비는 "그건 무슨 증이야? 나 면허증은 있어"라고 받아치며 남다른 '티키타카'를 선보였다.
물론 여전히 어리둥절해하는 대중도 있다. 그들에게 김다비 이모님은 "조카! 어서 캐릭터를 받아들여!"라며 대놓고 주입시킨다. 현재 김신영의 포털 사이트 프로필에는 '김신영(둘째이모 김다비)'이라고 당당히 업로드돼 있다. 이 또한 유니크하다.
부캐도 바쁘지만 본캐도 바쁘다. 본캐 김신영은 7월 1일 MBC 라디오를 10년 이상 진행한 DJ에게 수여하는 'MBC 브론즈 마우스'를 수상할 예정이다. 한결같이 MBC 라디오와 함께해온 진행자에게 주는 '최고의 헌정'다.
김신영은 지난 2007년 MBC 표준FM <신동, 김신영의 심심타파>로 MBC 라디오와 인연을 시작했다. 지난 2012년부터 현재까지 MBC FM 4U <정오의 희망곡 김신영입니다>를 진행하며 특유의 재치와 따뜻한 힐링 멘트로 MBC 간판 DJ로 당당하게 자리매김했다.
'브론즈 마우스' 수상을 앞두고 김신영은 "인생책 한 권을 10년에 걸쳐 읽은 기분이다. 그리고 앞으로 또 한 권의 책을 다시 읽고자 한다. 청취자들이 쓰신 책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읽을 생각에 설렘 가득한 마음이고,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다"라고 고마움과 진심을 담은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