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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인은 #살아있다

우리가 아는 유아인은 세고, 강렬하다. 자기만의 세계가 있고 그 벽이 높다. 한데 그가, 소년처럼 웃고 있다. 유아인은 어떤 사람일까?

On July 0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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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자리에 나온 그는 화이트 반발 티셔츠에 헐렁한 복고 데님 팬츠를 입고 있었다. 수줍은 듯 보이기도 하고, 경계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언어로 조곤조곤 말하지만 행간 사이사이 긴장감이 스며 있다. 미세한 떨림도 느껴진다. 코로나19로 마스크를 착용한 채 진행된 인터뷰였다. 그의 눈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인다. 맑다. 유아인은 어떤 사람일까?

그가 3년 만에 컴백했다. 영화 <베테랑> <사도> <국가부도의 날>까지 매 작품 남다른 존재감을 선보이며 대체 불가한 배우로 자리매김한 유아인이 이번엔 평범한 청년으로 돌아왔다. 영화 <#살아있다>(조일형 감독)에서 세상과 단절돼 혼자 남겨진 20대 청년 '준우'를 연기한다. <#살아있다>는 원인 불명의 증세를 겪는 사람들이 공격을 시작하며 통제 불능에 빠진 가운데 데이터, 와이파이, 문자, 전화 모든 것이 끊긴 채 홀로 아파트에 고립된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생존 스릴러 영화다. 단편영화 <진>(2011)을 연출한 조일형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으로 유아인, 박신혜가 주연을 맡았다.

영화의 초반 50분을 혼자 끌고 가요. 원맨쇼를 보는 느낌이랄까요. 사실은 그것 때문에 도전했고, 그것 때문에 힘들었어요. 하지만 도전은 늘 자극이 돼죠. 현장 편집본을 유난스러울 정도로 보면서 초반에 호흡을 잡아나갔어요. 상대 배우가 없고, 블루 스크린을 배경으로 연기하는 장면이 많아 부담도 됐지만 그게 이 영화의 숙제였고, 그게 잘 만들어졌을 때 성공하는 영화였거든요. 동시에 혼자 편하게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어요. 상대 배우와의 호흡에 기대지 않고 내 느낌대로 그림을 그려가는 재미랄까요.

장르물 도전은 처음입니다. 조금 의외이기도 하고요. 선입견이 많이 없어졌어요. 동시에 장르물을 시도해볼 만큼 여유도 생긴 것 같기도 하고요. 배우가 장르 안에 들어가는, 소모되는 영화가 아니어서 좋았어요. 장르물이지만 배우의 감정과 에너지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영화라 도전해볼 만한 작품이었죠. 솔직히 역할이 크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다가왔어요. 그것도 배우의 자존감이니까요. 배우가 쓸데없이 쓰여지는 작품은 선호하지 않아요.

'캐릭터'에 대한 생각도 궁금해요. 영화 <베테랑>이나 <사도>, 또 드라마에서 역시 성숙하거나 센 이미지를 많이 해왔어요. 어느새 20대의 풋풋한 청년보다는 '어른' 유아인의 느낌이 우리에게 친숙한데, 갑자기 노란 머리의 '준우', 그러니까 다시 청년으로 되돌아온 느낌이에요. 의도된 바인가요?
다시 내 옷을 입은 느낌이에요. 사실 <베테랑>의 캐릭터는 그 당시 제게 '번외편' 같은 것이었어요. 한데 그게 내 대표 이미지가 돼서 겪어야 했던 혼란들이 있었지요. 개인적으로 옆집 청년 같은, 영화 <완득이>의 캐릭터처럼 비범함도 없고 그저 흘러가는 인물을 선호합니다. 그 흘러가는 느낌보다 강렬한 느낌을 보여줘야 할 순간이 배우에겐 오는데, 그때 <베테랑>을 선택했어요. 결과적으로 배우는 입체적인 롤을 만들어가는 게 숙제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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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산다> 출연, 내 고민 털어내는 시간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 고립에 대한 공포예요. 극 중의 상황처럼은 아니지만 살면서 '고립' '외로움'을 경험해본 적이 있나요? 최근에는 코로나19로 모든 분이 혼자 있는 시간을 많이 보내셨을 거예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안 하던 휴대폰 게임도 하고, 내 작품을 잘 안 보는데 드라마 <밀회>(2014)를 몰아 보기도 했어요. 그때는 제가 배우인 게 좋더라고요. 제가 했던 작업을 답습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빨리 흐르더군요. 사실 제가 성향상 휴대전화와 별로 안 친해요. 한데 휴대전화로 지인들과 자주 소통하게 되고, 엄마와도 더 많이 연락하게 되더군요. 최근에 애플워치를 사서 좀 더 사회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웃음) 아, 배달 음식도 많이 시켜 먹었어요. 저도 남들과 똑같이 살아요. 덧붙이자면, 10대 때 배우를 준비하던 시절엔 서울로 상경해 친구도 잘 만나지 않고 외롭게 살았던 것 같아요.

다시 <밀회>를 본 소감은 어땠나요? 사실 김희애 선배님이 출연한 <부부의 세계>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봤어요. 김희애 선배님이 연기한 걸 보고 싶은 마음에 본방 사수를 다 했지요. <부부의 세계> 이후 <밀회>를 다시 봤다는 분이 많았는데, 저도 그랬어요. 다시 보니 아주 좋더라고요.

수년 전에 유아인에게서 제임스 딘의 모습이 보인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스스로도 제임스 딘처럼 동시대의 청춘을 대변할 수 있는 얼굴이 되고 싶다는 말을 했고요. 지금의 생각은 어떤가요? 당시에는 로맨스물이나 진지한 청춘물에 많이 참여했어요. '청춘의 얼굴' 이라는 수식어에 대한 감사함도 컸고, 내 노력을 알아주십사 하는 기대도 컸죠. 물론 그러한 수식어 때문에 책임감도 생겼어요. 실제로 살면서 허튼짓을 하지 못했으니까요. 그 과정에서 배우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도 가지게 됐어요. 배우가 뭐지? 배우의 역할이 뭐지? 과거엔 시대를 대변하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는데 이제는 아니에요. 저런 놈도 있고, 이런 놈도 있고, 이런 정도의 인간 면면을 표현하는 배우도 있고, 다른 방향으로 표현하는 배우도 있고…. 뭐 그런 게 배우가 아닐까 싶어요.

상대 배우인 박신혜가 "촬영 전에 (유아인과) 연기 스타일이 달라서 걱정했다"는 말을 했어요. 실제 현장은 어땠나요? 내가 워낙 즉흥적인 성향이 강하다 보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다 싶어요. 사실 그동안 즉흥적인 걸 요구하는 현장을 많이 겪었어요. "연습하지 마" "제발 준비해 오지 마" "그럴수록 딱딱해져" 그런 것에 익숙해진 내 모습이 불편하게 보일 수도 있었을 거예요. 한데 내가 만난 박신혜는 끌려가는 배우가 아니에요. 내가 하는 연기를 평가하고 제안하는 적극적인 배우예요. 소통이 잘됐어요. 겉보기엔 평범하지만 살얼음판 같은 현장도 있고, 치열해 보이지만 소통이 잘되는 현장이 있어요. 우리는 후자였어요. 그 느낌이 반갑고 좋더라고요.

극 중에서 라면을 맛있게 먹는 장면이 인상적이에요. 음식을 먹는 장면이 어색하면 그 인물은 이른바 '망했다'고 생각해요. 먹는 순간만큼은 솔직하고 인간적이어야 하죠. 배가 고파 죽겠는데 예쁘게, 깨작깨작 밥을 먹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극 중 노랑머리의 스포츠 헤어도 파격적이었죠. 사실 눈을 가리는 정도의 앞머리가 애초에 설정한 거였어요. 그 가발을 쓰고 한 회 차 촬영을 했는데 새로운 의견이 나와서 바꾸게 됐죠. 결국 '안재홍 코스프레'가 되긴 했지만.(웃음) 처음엔 아주 신선하고 아무도 안 해본 도전이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오래전에 유지태 선배가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보여줬던 도전 정도?(웃음) 요즘 친구들은 못 봤을 시도라고 생각했는데, 최근 안재홍이 영화 <사냥의 시간>에서 그 머리를 하고 나오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옆집 청년처럼 친숙하고 편안한 연기를 하는 내 또래 배우가 누가 있을까, 생각해보면 안재홍이 떠올라요. 그 느낌을 관객들이 '준우'를 보고도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리얼 예능 <나 혼자 산다>에 먼저 출연 제안을 했다고 들었어요. 단순히 '영화팔이'를 하는 게 아니라 제 일상을 보여주면서 재미있게 풀어나가고 싶었어요. 명분이 있었죠. 더 솔직하게 말하면, 삶에서 느껴지는 갑갑함 같은 것들이 있었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기준과 원칙들을 무너뜨리고 싶었죠. 스스로 편해지고 싶었고, 또 대중이 저를 편하게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물론 '어디까지 솔직해질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도 있었죠. 어쨌든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나의 일상은 아주 평범하지는 않으니까요. 나의 지난 삶, 성취한 것들, 목표, 고민, 숙제들을 시원하게 털어내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어요.

창작 집단 '스튜디오 콘크리트'를 운영 중이에요. 연기와 병행하는 게 부담은 없나요? 5년째예요. 시간이 쌓이다 보니 그 안에서 변화도 일어나고 또 개인적으로 하는 프로젝트도 생기고…. 조금은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에요. 또 다른 동력이 필요하고, 처음 가졌던 순수한 것들이 퇴색되기도 하죠. 어떤 일을 10년 이상 이어가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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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에디터
하은정
사진
UAA 제공
2020년 07월호
2020년 07월호
에디터
하은정
사진
UAA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