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희 옆에 있던 '예쁜 애'를 기억하는가? 고보결은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하이바이, 마마!>에서 김태희에게 뒤지지 않는 존재감을 선보였다. 외모뿐만 아니라 연기도 그랬다. 고보결은 '오민정' 역을 맡아 남편의 전처를 향한 복잡 미묘한 마음, 의붓딸을 대하는 절절한 모성애를 탐구하고 연기했다. 고요하고 감정적 동요가 크지 않은 인물이라 표현의 어려움이 뒤따랐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하이바이, 마마!>의 의외의 복병으로 떠오른 고보결은 시청자들 사이에서 '재발견'이라는 호평까지 얻었다. 물론 이런 성과는 하루아침에 얻어진 게 아니다. 지금의 고보결을 만들기까지 꼬박 10년이 걸렸다. 2011년 단편영화 <거북이들>로 데뷔한 고보결은 2014년, 스물일곱이 되던 해에 안방극장으로 무대를 옮겼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시작했지만 그렇다고 섣불리 조급해하지 않았다. 고보결은 때때로 숨을 고르며 10년 동안 자신만의 페이스를 유지했다. <프로듀사> <도깨비> <마더> <아스달 연대기> 등 굵직한 드라마들을 거쳤고 <하이바이, 마마!>를 통해 마침내 터닝 포인트를 찍었다. 누가 뭐라고 하든, 혼자서 묵묵히 쌓아나간 '느긋함의 미덕'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인생은 속도보다는 방향이다. 내가 나침반을 어디에 두고 가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던 그녀의 인생철학과도 일맥상통했다.
고보결 특유의 느긋함은 <우먼센스> 카메라 앞에서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바쁜 촬영장 안에서 쉬이 서두르지 않는 모습이 오히려 시선을 끌었다. 그녀를 보고 누군가는 동시대의 여러 여배우의 얼굴이 겹쳐 보인다고 했고 누군가는 마냥 앳된 소녀 같은 이미지라고 재단했다. 실제로 본 고보결은 묵직한 내공의 소유자였다. 상냥하면서도 강단이 있었고, 좋은 의미의 고집도 느껴졌다. 10년간 자신의 길을 걸어온 사람에게서만 느껴지는 깊이가 있었다. 카메라 밖에서 더 다채로운 느낌을 선사하는 그녀. 고보결의 새로운 얼굴을 더 탐구해보고 싶은 순간이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요?
<하이바이, 마마!>가 끝난 뒤 다시 일상으로 복귀 중이에요. 이렇게 종종 인터뷰에 나서고 일이 없을 때는 넷플릭스를 보거나 운동을 하거나 친구들을 만나요.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면 근황 토크로만 반나절을 쓰게 되더라고요.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여행 가기도 어려우니까, 다른 방안으로 휴식을 취하는 중이에요.
데뷔 후 첫 장편 드라마 주연이었죠?
저에게 <하이바이 마마!>가 더 특별하고 애틋한 이유예요. 소재도 따뜻하고 여운이 남아서 촬영 끝나고도 마음에 오래 간직되더라고요. '오민정'도 매력적인 캐릭터라 저로서는 너무 신나고 재미있게 촬영했어요. 감사하게도 드라마 끝나고도 좋은 얘기들을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재발견이었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이전에 보여드리지 않았던 모습을 보고 그런 칭찬을 해주신 것 같아서 뿌듯하고 기뻐요.
의붓딸 설정이었지만, 엄마 연기를 해야 했어요.
처음엔 부담스러웠어요. 모성애는 아직 제가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 으니까요. 저희 엄마에게도 물어보고 제 생각을 일기로 정리해보기도 했어요. 그럼에도 진짜 엄마들 눈에는 제 연기가 가짜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한참 걱정을 하고 있을 때, 감독님이 그러셨어요. 저나, '오민정'이나 아이를 낳아 키워본 적이 없는 건 똑같지 않냐고요. 맞는 말이었어요. '오민정'은 아이를 기르면서 엄마가 되고자 했던 인물이고, 저는 이 배역을 위해 엄마 공부를 했으니까요. 굉장히 주눅 들어 있었는데 감독님의 말을 듣고 바로 자신감을 찾았죠.
곁에서 본 선배 김태희는 어떤가요?
나랑은 정말 다르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웃음) 일단 연기적으로 귀감이 돼주셨어요. 만나 뵙기 전까지는 떨리고 긴장도 됐어요. 톱스타시니까 같이 연기할 때 누가 될까봐 걱정도 됐는데 정말 따뜻하게 감싸주셨어요. 특히 (김태희) 언니는 진짜 엄마니까, 아이를 안아 올리거나 눈을 마주치는 게 정말 자연스럽더라고요. 저는 처음에 아이 손을 잡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했거든요. 혼란스러워할 때 어떤 부분에서 더 힘을 빼고, 줘야 하는지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셨어요. 역시 경험자의 조언이 최고더라고요.
드라마에선 차분한 매력이 있었죠. 실제로는 어때요?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에요. 처음 만난 사람들 앞에서는 긴장하는데 알고 보면 '허당기' 넘친답니다.(웃음) 푼수 같고 밝은 모습도 많아요. 친구들이나 편안한 사람들 앞에서는 망가지기도 하고요. 다들 제가 똑 부러질 것 같고 야무질 것 같다고 하는데 사실 전혀 그런 스타일이 아니에요. 물건 잃어버리고 까먹는 건 일상이고요. 실수가 많아 손이 많이 가는 스타일이이에요.
의외로 액티비티를 좋아한다면서요?
레저 스포츠를 좋아하는데, 요새는 어디 나갈 수가 없으니 아쉬워요. 사실 몇 년 전에는 낚시에 푹 빠졌었거든요. 너무 재미있어 야간 낚시까지 다녔는데 문득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몸을 쓸 수 있는 일을 하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낚시는 나이 들어서도 즐길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서핑이나 클라이밍 같은 걸 배워봤는데 또 재밌더라고요. 원래 움직이는 걸 좀 좋아하는 편이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댄스 학원에도 오래 다녔어요. 재즈댄스, 발레를 했고 고등학생 때는 부전공으로 현대무용을 했어요. 운동도 필라테스, 헬스, 요가 등 다양한 분야를 파고들어요. 단, 기간은 길지 않답니다.
동안 외모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요?
예전에는 "어려 보여서 안 되겠다"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동안이라는 게 장점도, 단점도 될 수 있으니 이왕이면 좋게 생각하려고 해요. 제 외모에서 마음에 드는 점을 꼽자면 어떤 스타일링을 하느냐에 따라 이미지가 크게 달라진다는 거예요. <하이바이, 마마!>의 '오민정'도 이전에 맡았던 캐릭터들보다 나이대가 있는 설정이었거든요. 걱정했는데 의외로 다들 좋아해주시더라고요. 저 또한 이 장점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역할을 맡고 싶어요. 변화무쌍한 캐릭터를 보여드릴 수 있지 않을까요?
변신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나 봐요?
한 캐릭터를 잘 소화했다고 비슷한 결로만 가는 건 선호하지 않아요. 보여주지 못한 다양한 모습을 새롭게 선보이는 게 제 연기 스타일이에요. 그런 배우들이 제 눈에 더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배우는 다양한 색깔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능한 한 그 세계를 넓혀가고 싶고, 깊게 파고들고 싶어요. 큰 그릇을 지닌 사람이 되고 싶어요.
"속도보다는 방향성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조급함을 버리고 저에게 필요한 시간을 가졌더니 마음이 변해가는 게 느껴졌어요. '생각하는 대로 살아야 한다. 살아지는 대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말처럼 내가 나침반을 어디에 두고 가느냐에 따라 내 삶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예명이 참 잘 어울려요.
작명소에서 지었는데 '많을 보' '깨끗할 결'을 써서 '보결'이에요(고보결의 본명은 고우리다). 깨끗함을 머금은 배우가 되고 싶거든요. 투명한 프리즘에 빛을 비추면 그 안에 다채로운 색깔을 드러내잖아요. 저 또한 다양한 색깔을 낼 수 있고 어떤 색을 조명하느냐에 따라 거기에 알맞은 캐릭터로 보일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이름 덕은 보고 있나요?
일단은 제가 원하는 방향대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이름처럼 한결같이 깨끗한 배우가 되도록 노력해볼게요.(웃음)
꽤 늦게 자리를 잡은 케이스예요.
같이 배우를 꿈꾸던 친구들은 이미 고등학생 때 기획사에 들어가거나 대학생 때 치열하게 준비했어요. 반면에 저는 느긋한 편이었죠. 평범한 학생으로서 학교 생활에 충실했고 졸업 후에는 연극을 했어요. 독립영화에 출연하다가, 매체 연기에 재미를 붙여 방송 오디션을 보게 된 케이스예요. 거쳐온 단계가 많다 보니 본격적인 활동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죠. 제가 스스로 떳떳하게 준비가 다 됐을 때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생각을 고친 계기가 있나요?
물론 생각이 바뀌기까지 쉽진 않았어요. 방송 초반에는 공백기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저보다 배우 대선배들이 잠깐 나오는 신에서도 굉장히 생동감 있는 연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때 깨달았죠. 자주 나오고, 많이 나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한 장면 안에서 내가 얼마나 입체적으로 살아 있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요. 저는 속도보다는 방향성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조급함을 버리고 저에게 필요한 시간을 가졌더니 마음이 변해가는 게 느껴졌어요. '생각하는 대로 살아야 한다. 살아지는 대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말처럼 내가 나침반을 어디에 두고 가느냐에 따라 내 삶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연기가 더 좋아졌고 어느덧 꾸준히 연기를 하고 있네요. 저에겐 최고로 행복한 나날들이죠.
롤 모델이 있나요?
김혜자 선생님이 제 롤 모델 1순위이세요. 예전에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를 함께 촬영한 적이 있거든요. 곁에서 본 김혜자 선생님은 그토록 오랜 세월 연기해오셨음에도, 촬영을 앞두고 항상 성실하게 연구하시는 분이었어요. 초심을 잃지 않았고 지치지도 않으셨죠. 연기를 한결같이 사랑하는 저 마음을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함께 연기해보고 싶은 배우는요?
송강호 선배님, 이병헌 선배님을 꼭 만나고 싶어요. 팬심으로 가득한 배우들입니다.(웃음) 곁에서 어떻게 연기에 임하시는지 배우고 싶어요. 제가 운이 좋아서 그동안 좋은 선배들을 참 많이 만났거든요. 그 분들과 함께한 경험들이 저에게는 너무 소중해요. 돈 주고도 못 사는 경험이잖아요. 그러니까 기회가 된다면 두 분을 가까이에서 꼭 뵙고 싶네요.
연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져요. 스스로에겐 엄격한 편인가요?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가면서 주는 스타일이에요. 스스로를 너무 기죽이지 않으려고 해요. 채찍질만 하면 저도 힘들고 지치잖아요. 이렇게 순간순간을 즐기면서 행복하게 사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예전엔 조급했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바쁘면 바쁜 대로, 한가하면 한가한 대로 좋아요.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휴식기에는 푹 쉬면서 재충전할 수 있잖아요.
재충전엔 연애가 최고 아닌가요?
너무 우울한 질문을 하시는데요?(웃음) 짚신도 짝이 있다고 하잖아요. 언젠가 제 인연이 찾아올 거라 믿어요.
다음엔 어떤 모습을 보여줄 건가요?
저는 뭐든 도전하는 걸 좋아해요. 이번에 진중한 역할을 해봤으니 재미있는 역할도 맡아 보고 싶네요. 가볍게 망가져보는 것도 좋고, 허당인 제 성격을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역할도 해보고 싶어요. 그러려면 좋은 시나리오를 만나는 게 가장 중요하겠죠? 캐릭터는 제가 하기 나름이지만 시나리오는 제가 쓸 수 없는 거니까요. 분량이 적더라도 좋은 시나리오라면 저는 그걸 더 선호해요.
도전하는 고보결에게 몇 점을 주고 싶나요?
음, 50점? 적절하게 당근과 채찍을 준다는 의미로요. 잘하기도 했지만 앞으로 더 잘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함께 담을래요. 데뷔 후 10년 가까이 지나오다 보니, 역할의 크기와 상관없이 모든 작품이 저에게는 소중하게 간직되더라고요. 함께 했던 선배들, 감독님, 작가님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어요. 배우로서의 시야도 넓어졌고요. 남은 50점을 채우기 위해 계속 노력할 거예요.
향후 계획은요?
차기작이 정해져 어서 다시 시청자들을 만나고 싶어요. 요즘 제일 큰 고민이면서 또 가장 설레는 부분이에요. 그동안 받았던 시청자 피드백 중에 가장 좋았던 것이, 제가 울 때 같이 우셨다는 거예요. 많이 위안이 되더라고요. 앞으로도 시청자들의 공감을 잘 이끌어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물론 이 모든 건 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함께해주시는 분들이 이끌어주고 가르쳐주신 덕분이었어요. 앞으로도 좋은 캐릭터를 만나 좋은 이야기 안에 담기고 싶고요. 연기 공부도 더 열심히 해서 성장하는 배우로 다가가고 싶어요. 앞으로의 제 목표는 '믿보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