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라는 예술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꼼짝없이 ‘집콕’ 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는 TV와 더 친해졌다. 예전에도 친했지만 더 친해졌다. 트로트가 이토록 매력적인 장르였는지 처음 알았고, 드라마 속 불륜이 내 일인 양 조바심 내며 TV 앞에 앉아 있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미스터트롯’ 7인은 범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고, <부부의 세계>의 불륜남은 ‘국민 쓰레기’가 되는 데 고작 한 회차면 충분했다. 이토록 대동단결된 적이 있었던가. 이렇듯 우리는 코로나19와 함께 닥쳐온 경제 위기 속에서도 TV라는 초근접 매체로 잠시 그 시름을 잊을 수 있었다.
<부부의 세계>는 끝났지만 많은 부부에게 결혼과 이혼, 외도와 사랑에 대해 큰 여운을 남겼다. 김희애는 ‘역시 김희애’라는 찬사를 받으며 극 중 착용한 스카프부터 실크 잠옷까지 줄줄이 ‘솔드 아웃’을 시켰다. 남자 주인공 박해준 역시 ‘섹시한 중년’으로 전에 없는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55살의 김희애와 45살의 박해준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섹시한 남녀로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그 사이에 낀 ‘어리고 예쁜’ 한소희 역시 <부부의 세계>로 현재 패션 신에서 가장 주목받는 스타가 됐다. 몰려드는 화보 촬영과 광고 촬영으로 전에 없던 인기를 만끽하는 중이다. 이것이 바로 TV 매체의 힘이다.
세상이 각박해서일까. 그저 아름답기만 한 스토리, <슬기로운 의사생활>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드라마로는 파격적으로 ‘일주일에 1회 방송’이라는 편성에도 연일 화제를 모았다. 제작진은 드라마 구석구석 감동과 유머, 그리고 OST로 ‘추억 소환’까지 첨가해 유튜브 ‘짤’과 음원까지 섭렵했다. 기라성 같은 가수들의 신곡을 물리치고 조정석이 극 중 노래방에서 부른 ‘쿨’의 ‘아로하’ 가 음원 1위를 차지한 것 역시 TV의 힘이다. 드라마에 빠진 여심은 급기야 “(조성적과 결혼한) 거미가 부럽다”며 연일 조정석 부부의 사진을 인터넷으로 검색하기에 이르렀는데, 결혼한 지 3년이 지난 지금 연출된 해프닝이다. 이 드라마는 드라마를 예술의 한 장르로 승격시키는 데 일조한 신원호 감독과 이유정 작가의 작품이다.
그사이 ‘믿고 본다’는, 아니 ‘묻고 따지지도 않고 봐야 한다’는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도 공개됐다. 제목부터 거창하다. <더 킹: 영원한 군주>. ‘킹’ 역할은 킹에 최적화된 이민호가, 상대역은 소녀스러움을 덜어내고 털털함으로 무장한 김고은이 맡았다. 공개되자 반응도 제각각이다. 상황과 대사가 “손발이 오그라든다” “김은숙 작가가 자기 복제에 빠졌다” 내지는 “너무 갔다” “올드하다” 등등의 혹평에도 시청률은 애초부터 10%를 넘겼다. 손발이 오그라들어도 굳이 채널을 돌릴 이유가 없게 만드는 게 또 김은숙 작가의 힘이다.
40대의 어른 연애 <화양연화>도 기존 드라마와는 ‘다른 맛’으로 사랑받고 있다. 주연배우인 유지태와 이보영의 호흡만으로도 묵직하게 다가온다. 유지태는 영화 <동감> <봄날은 간다> 등에서 “라면 먹고 갈래?”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는 명대사를 남긴 원조 멜로 장인이 아닌가. 상대 배우 이보영 역시 영화 속 유지태의 모습을 만나고 싶어 드라마 캐스팅에 응했다고 말할 정도니 그 ‘감성’, 더 말해 뭐 하겠는가. 많은 미디어가 1990년대를 이야기해왔지만, 이 드라마는 우리가 지나온 또 다른 90년대를 그린다. 그 안에는 마지막 운동권 사람들의 치기와 절망이 있고 기다림과 엇갈림이 일상화된 아날로그식 사랑이 있다. 중간중간 보이는 장면들이 90년대 키드들에게 그야말로 ‘추억은 방울방울’이다. 강력하고 자극적인 사랑만이 사랑 같은 요즘 시대에 잔잔한 어른 로맨스는 격이 다르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