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보호구역(이하 ‘스쿨존’)에서 아동을 상대로 교통사고를 낼 경우 처벌을 강화하는 일명 ‘민식이법’이 지난 3월 25일 본격 시행됐다. ‘민식이법’은 2019년 9월 충남 아산의 한 스쿨존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고 김민식 군의 이름을 딴 법으로, 발의 22일 만인 2019년 12월 10일 국회를 통과해 논란이 일었다.
사고 발생 2개월 뒤인 지난해 11월 MBC 생방송 <국민이 묻는다, 2019 국민과의 대화>에 민식 군의 부모가 출연해 조속한 법안 통과를 문재인 대통령에게 호소했고, 이후 스쿨존 사고에 대한 동조 여론이 높아지면서 국회가 이례적으로 조속히 법안을 처리한 것이다. 이후 국민들 사이에서는 민식이법이 “여론에 떠밀려 졸속으로 처리됐다”는 불만이 쏟아졌다. 스쿨존 내 신호등과 과속 단속 카메라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은 동의하지만 운전자를 가중처벌 한다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형벌 비례성 원칙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민식이법에 따르면 운전자가 스쿨존에서 시속 30km 이상으로 운전하거나 ‘안전 운전 의무’를 위반해 교통사고를 내 13세 미만 어린이를 사망하게 한 경우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으로 처벌하고, 상해를 입히면 500만원 이상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이 때문에 음주 또는 약물을 하고 운전해 사망 사고를 냈을 경우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을 선고받는 것을 근거로 순수 과실 범죄가 중대한 고의성 범죄와 같은 선상에서 취급되는 것이 아니냐는 여론이 거세다.
일각에서는 운전자에게만 모든 책임을 부여해 운전자를 잠재적 가해자로 치부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법안인지에 대한 논란도 제기됐다. 아이들의 돌발 행동을 운전자가 예측하고 예방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며 법안의 허점과 부작용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입법권 남용과 여론 몰이가 탄생시킨 ‘엉터리 법안’이라는 것이다.
내비게이션 ‘스쿨존 회피 기능’ 인기
실제로 민식이법이 시행되자 스쿨존 회피 기능을 탑재한 내비게이션의 이용자 수가 폭증했다. 이러한 현상은 운전자들의 스쿨존 주행과 가중처벌에 대한 불안한 심리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맵퍼스가 운영하는 내비게이션 ‘아틀란’은 민식이법이 시행된 날부터 ‘스쿨존 회피 경로 탐색’ 기능을 추가해 화제를 모았다. 아틀란 앱 일일 다운로드 수는 민식이법이 시행되기 전과 비교해 5배 넘게 증가했고 일간 사용자 수도 약 17% 이상 늘어났다.
앱에서 ‘스쿨존 회피 경로 탐색’ 기능을 설정하면 운전자는 스쿨존을 최대한 회피하는 길을 안내받을 수 있다.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스쿨존에 접근 자체를 차단함으로서 스스로를 보호하겠다는 의미다. 이러한 움직임은 앞으로도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T맵’을 운영하는 SK텔레콤(SKT), ‘카카오내비’의 카카오모빌리티, ‘원내비’의 KT 등 국내 3대 모빌리티사 역시 현재 스쿨존 우회 기능 도입을 준비 중이거나 도입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개정 요구 청원, 33만 명 돌파
민식이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법 개정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잇달아 게재됐다. ‘민식이법 개정을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청원 글을 작성한 청원인은 “어린이보호구역 내에서의 어린이 사고를 막기 위한 취지로 과속 단속 카메라 설치, 횡단보도 신호기 설치, 불법 주차 금지를 의무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찬성한다”고 운을 뗀 뒤 “특정범죄가중처벌법 개정안은 극구 반대하며 조속히 개정하기를 청원한다”고 밝혔다. 그는 법 개정을 호소하며 “과실이 있으면 그 과실만큼, 고의가 있다면 그 고의만큼 형벌을 집행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임에도 불구하고 민식이법은 ‘형벌 비례성 원칙’에 어긋난다. 모든 책임을 운전자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부당하며, 민식이법은 운전자에게 극심한 긴장감과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악법 중의 악법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청원 글은 게재된 직후 운전자들의 강한 지지를 받으며 현재 33만 명 이상이 청원에 동의한 상태다. 한편 각종 커뮤니티를 통해 고 김민식 군의 교통사고에 대한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당시 9살 민식이는 막냇동생 손을 잡고 엄마가 일하는 치킨집을 향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한 네티즌의 주장에 따르면 길 맞은편에서 엄마가 아이의 걸음을 재촉했고, 가해 차량은 규정 속도인 시속 30km보다 6.4km 느린 시속 23.6km로 주행 중인 상황이었으므로 억울한 피해자이기도 하다는 것. 심지어 블랙박스 영상을 보면 주변에 주정차된 다른 차량들로 인해 운전자의 시야가 극히 제한된 상태였다는 점에서 이러한 주장에 무게를 실었다.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피할 수 없는 사고를 발생시켰다면 단지 피해자가 13세 미만 어린이라는 이유로 운전자가 가중처벌을 받아야 하는지 여러 커뮤니티에서도 찬반 논란이 팽팽하게 맞섰다.
운전자보험, 적절한 대안 될까?
보험업계는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운전자보험의 보장을 통해 혹시 모를 민식이법에 대비하려는 운전자들의 문의가 늘었기 때문이다. 운전자보험은 자동차보험에서 보장하지 않는 사고의 형사적 책임과 법률 행정 비용을 보장해준다. 교통사고 가해자가 됐을 경우 벌금은 물론 형사합의금과 변호사 선임비까지 보장받을 수 있어 가중처벌에 불안감을 느낀 운전자들에게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보험료를 낮추고 보장 범위를 확대하는 등 새로운 고객 잡기에 나선 보험업계 역시 분주해진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보험 가입률 증가나 스쿨존 우회 기능을 탑재한 내비게이션의 등장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법을 지키지 않으려는 운전자와 업체의 꼼수이자 어린이 보호라는 ‘입법 취지’보다 단지 가중한 처벌을 회피하려는 노력만이 우선시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민식이법’ 시행 이후 다양한 논란이 거듭되자 민갑룡 경찰청장은 “법률 전문가와 관련 분야 전문가들과 많은 논의를 하고 사회적으로 공감된 기준과 법을 적용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민식이법, 어떻게 생각하세요?
4월 2일부터 10일까지 <우먼센스> 독자 238명이 응답했다.
Q1 민식이법에 찬성하나요?
YES 33.8% NO 66.2%
Q2 (YES의 경우) 이유는?
어린이보호구역 내의 절대적인 안전 강화가 필요하다. 66%
엄중한 처벌을 통해 운전자들의 각성이 필요하다. 22%
스쿨존 내 인명 사고를 줄일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다. 6%
약자 보호를 위한 적절한 처벌과 형량을 갖췄다. 2%
기타(규정 속도만 잘 지킨다면 불편함이 없다). 4%
Q3 (NO의 경우) 이유는?
법의 취지와 달리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 36.9%
모든 책임을 운전자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부당하다. 30.6%
입법권 남용과 여론 몰이가 불러온 비현실적인 대안이다. 20.4%
형벌 비례성 원칙을 훼손한 법안이다. 6.1%
운전자들에게 극심한 긴장감과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4%
기타(‘사고에 비해 지나치게 처벌이 과중하다’ 등) 2%
Q4 민식이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필요하다. 82.4%
필요없다. 17.6%
Q5 (‘필요하다’의 경우) 민식이법은 어떻게 개정돼야 할까요?
운전자뿐만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책임도 물을 수 있어야 한다. 44.2%
처벌과 형량이 아닌 교통 시스템(신호등, 횡단보도, 정지선 등)을 활용한 제재가 필요하다. 21.3%
아이들에게도 의무적인 교통 교육이 동반되어야 한다. 21.3%
과중한 처벌이 완화돼야 한다. 8.2%
기타(‘법안의 전반적인 개정이 필요하다’ 등) 5%
Q6 민식이법 시행 후 운전 패턴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스쿨존을 지날 때 더욱 주의를 기울인다. 48.2%
스쿨존을 우회해 최대한 회피하고 있다. 41.1%
달라진 점이 없다. 6.9%
기타(‘운전을 하지 않게 됐다’ 등). 3.8%
Q7 스쿨존 교통사고에 대한 적정 처벌 수위는?
보행자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어린이 혹은 보호자에게 가중처벌을 내려야 한다. 44.6%
일반 도로교통법과 똑같이 취급해야 한다. 29.7%
피해자가 어린이일 경우 운전자에게 좀 더 가중한 처벌을 내리는 것이 적절하다. 17.6%
스쿨존 내에서는 운전자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5.4%
기타(‘기준 속도 초과 시에만 가중처벌을 해야 한다’ 등) 2.7%
Q8 민식이법으로 인한 스쿨존 교통사고 예방에 대한 기대는?
효과적일 것이다. 40.5%
잘 모르겠다. 21.6%
효과가 없을 것이다. 3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