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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단 불꽃' 본격 인터뷰 - 'n번방'을 세상에 알리기까지

텔레그램 n번방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이들은 대학생으로 구성된 ‘추적단 불꽃’이었다. 경찰도, 시민단체 활동가도, 현직 기자도 아닌 이들은 뉴스통신진흥회에서 공모한 탐사기획물에 응모하며 본격적인 n번방 취재를 시작했다. ‘텔레그램 성범죄 사건에 불을 붙이는 불씨가 되자, 한번 확 타버리고 꺼지는 게 아니라 계속 활활 타오르게 하는 불꽃이 되자’는 뜻을 담은 이름처럼 세상을 향해 거대한 불씨를 지핀 이들에게 n번방 추적 과정에 대해 물었다.

On May 1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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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n번방을 주목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2019년 상반기, 탐사보도 공모전이 열린다는 소식에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기사를 쓰고자 준비 중이었습니다. 당시 이른바 '정준영 단톡방 사건'과 '언론인 단톡방 사건' '교사 단톡방 사건' 등 디지털 성범죄가 연이어 터진 터라 우리 사회의 곪아 있던 디지털 성 착취 문화를 제대로 고발하고 싶었죠. 불법 촬영물을 공유하던 불법 웹사이트들을 전전하다 우연히 '와치맨'이 운영하던 구글 블로그 'AV-스눕'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그 블로그에서 '와치맨'이 정리해둔 글을 보고 텔레그램 n번방의 존재를 알게 됐고, 정확한 보도를 위해 잠입 취재를 결심했습니다. 이후 피해 사실을 파악한 후 사건이 심각하다고 판단돼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추적단을 결성하기까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가해자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컸습니다. 텔레그램 대화방을 모니터링하다 보면 불법 촬영물과 디지털 성 착취물의 교류가 많은 대화방이 수시로 사라지고 생기거든요. 가해자들의 대화를 채증하려면 긴장을 놓지않고 추적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추적단의 잠입 활동 방법과 내용이 궁금합니다.
2019년 7월. 하루에 4~5시간 대화방에 잠입해 그들의 대화를 지켜봤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한 대화방에만 2만~3만 개의 대화가 쌓여 있었기 때문에 그걸 하나하나 모니터링하며 취재를 이어갔습니다.

위기의 순간은 없었나요?
정체가 탄로 날 뻔한 위기는 없었습니다. 그곳의 실태를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집요하게 추적했지만 사실 심적으로는 굉장히 괴로웠어요. 정신이 피폐해져 일상생활이 힘들어진 것이 가장 위기라면 위기였죠. 충격적인 영상을 접하면 짧게는 하루, 길게는 일주일 정도 잔상이 남아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심리 상담의 도움을 받기도 했어요.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시작한 일인데 한동안 괴로움에 시달려 인터뷰를 중단하기도 할 만큼요.

n번방 속 가장 충격적이었던 행위를 꼽자면요?
흉기로 몸에 상처를 내거나 가학적인 성 착취 행위 모두 충격적이었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불편했던 것은 가해자가 '노예'라고 불리는 피해자에게 성명불상의 남성과 오프라인에서 성행위를 주문한 것입니다. 버젓이 일어나는 성폭력과 이를 관전하는 참가자들의 모습이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 n번방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지난해 11월 <한겨레>에 자료를 제공했습니다. 이후 SBS <그것이 알고싶다>와 MBC <실화탐사대>에 제보했고 인터뷰에도 적극 참여했어요. <국민일보>와도 취재 협조를 해 n번방 잠입 취재 4부작을 보도했습니다. 현재는 KBS와 디지털 성 착취 보도를 기획하고 있어요. 자체적으로는 '추적단 불꽃'이라는 유튜브와 SNS를 운영 중이고요.

공론화하는 과정 중 한계가 있었나요?
첫 보도 이후 사회적 반향을 기대했으나 3개월간 언론은 잠잠했습니다. 허탈했고, 언론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어요. 한국 사회의 성 인지 감수성이 이 정도인가 싶었습니다. 그 기간에도 텔레그램 대화방의 범죄는 사라질 기미가 안 보였고, 대대적인 보도와 수사가 없으니 가해자들은 바퀴벌레보다 빠르게 수를 불렸어요. 그때 큰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대학생 기자의 한계에 부딪힌 순간이었죠.

흔히 '방장'이라 불리는 '갓갓', '와치맨', '박사'는 어떤 인물인가요?
n번방의 시초라 불리는 '갓갓'은 돈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그야말로 여성들을 '노예'로 생각하며 자신의 일탈과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여성들의 성을 착취했어요. '와치맨'은 '갓갓'이 만든 영상들을 공유하는 데 큰 일조를 했고 사이트와 함께 n번방으로 통하는 '고담방'을 운영하며 많은 가해자를 양산해낸 주범입니다. '박사'는 오로지 돈을 목적으로 여성들의 성을 착취했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조주빈의 신상이 공개된 날, 그가 사회 고위층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본인이 성을 착취한 여성들한테는 그 어떤 사과도 하지 않았고요. 그에게 여성은 그저 돈을 버는 '수단'에 불과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는 걸 보여주는 모습이 아닐까요? 이 세 주범의 공통점은 여성을 인격으로 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이라 더 놀라웠습니다.
우리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했듯, 처음에는 저희도 일부 '찌질한' 사람들의 행동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추적 중, 지인도 이 방에 들어온 것을 발견했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어요. 우리 주변의 누구도 이 방의 가해자일 수 있다고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채팅 참여자들도 그들과 같은 공범이라고 생각하나요?
당연합니다. 그들은 "우리는 직접 성 착취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성 착취 영상을 보며 그저 '놀이'로 치부한 공범들인데 말이죠. 불법을 저지르는 것 뿐만 아니라 방관하고 부추긴 자들도 죗값을 받아야 합니다.

도대체 왜 피해자들에게 고결함을 요구하는 겁니까?

'노예'로 불리는 여성들에게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도 적지 않습니다.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피해자들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며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퍼져 있어요.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자들에게 묻고 싶어요. "도대체 왜 피해자들에게 고결함을 요구하는 겁니까?"

텔레그램 속 성범죄는 현재진행형인가요?
'박사'가 잡힌 이후 좀 잠잠해지긴 했습니다. 그러나 사회의 관심이 줄어들자 또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어요. 텔레그램뿐 아니라 다른 플랫폼을 통해서도 성 착취 영상들이 공유되고 있고요. 여전히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며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정부는 이 문제를 사회적 재난으로 봐야 합니다. 코로나19 뉴스처럼 n번방 사건도 계속해서 특집으로 보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의 관심이 떨어지면 가해자들은 다시 활동을 시작할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문제의 불꽃을 키워나가야만 합니다.

'추적단 불꽃'의 추적은 언제까지 계속될까요?
국회의원, 언론인 등 많은 사람이 우리가 하던 일을 넘겨받아 해결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텔레그램을 비롯한 다른 플랫폼에는 계속해서 성 착취 영상이 공유되고 있고, 이 외에도 수많은 성범죄가 벌어지고 있어요. 정부가, 언론이, 국회가, 사법부가 이 일을 해결해낼 때까지 저희의 추적은 멈출 수가 없습니다.

이번 사건과 일련의 과정을 통해 느낀 점이 있다면 뭘까요?
수많은 여성이 이전부터 성범죄 문제에 대해 큰소리를 내왔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2020년 3월이 돼서야 '문제'로 인식이 됐다는 점이 분통하고 억울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제라도 불꽃이 지펴진 게 다행스럽기도 합니다. 이렇게 불씨가 있을 때 반드시 이 문제가 뿌리 뽑혔으면 좋겠습니다.

제2의 n번방 '디스코드'

텔레그램이 주목받자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유통 시장은 '디스코드(Discord)'로 터를 옮겼다. 디스코드는 게이밍에 특화된 음성 채팅 프로그램으로 게임 이용자들이 실시간 소통을 주고받는 메신저다. 롤이나 배틀그라운드 등 팀 플레이 게임을 할 경우 메시지 대신 음성으로 대화가 가능해 출시 4년 만에 전 세계 가입자 2억 5,000만 명을 넘어섰다. 디스코드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간편함을 갖춘 만큼 불법 음란물에 대한 접근도 쉬운 것이 특징이다. 연령 제한 채널에 들어갈 때 '18세 이상'이어야 한다는 경고 메시지가 뜨긴 하지만 특별한 인증 없이 손쉽게 다음 단계로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불법 음란물이 무차별적으로 배포되는 커뮤니티의 링크도 각종 게임 커뮤니티를 통해 손쉽게 구할 수 있다. 현재 텔레그램이 잠잠해진 틈을 타 국내에서는 디스코드를 통한 불법 음란물 유통이 성행하고 있다. 특히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미성년자인 경우가 많아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경찰이 검거한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유포자들 역시 대부분 미성년자로 확인됐으며 직접 채널을 운영한 이들 중에는 만 12세의 촉법소년도 포함돼 있어 충격을 더했다. 이들은 영상 1개당 1만~3만원의 대가를 받고 판매했으며 금전 거래는 계좌이체나 문화상품권을 이용해 수익을 챙긴 것으로 보인다. 베일에 쌓인 텔레그램과 달리 미국에 본사를 둔 디스코드는 국제 공조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전해 국내 수사 속도도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CREDIT INFO
에디터
김두리
사진
시사저널, 일요신문, 게티이미지뱅크, KBS, SBS, YTN 뉴스
2020년 05월호
2020년 05월호
에디터
김두리
사진
시사저널, 일요신문, 게티이미지뱅크, KBS, SBS, YTN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