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확산되는 가운데, 확진자 수가 네 자릿수를 넘어가면서 동선 공개의 범위에 대해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3월 8일 강릉시청 트위터 계정에는 한 확진자의 기본 인적 사항은 물론 성과 나이, 구체적인 직업까지 공개돼 논란을 빚었다. 확진자를 특정할 수 있을 법한 실제적이고 개인적인 정보에 네티즌들은 바이러스 감염도 문제지만 샅샅이 공개되는 ‘동선 공개’가 더 문제라며 개인 정보 침해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현재 질병관리본부(이하 ‘질본’)는 코로나19 확진자의 정보를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이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감염병예방법) 속 ‘감염병의 방역·예방 조치에 관한 사무’로 확진자 현황과 상세한 동선, 나이, 국적, 우한 방문 여부, 확진일 등을 게재하는 것이다. 개인정보보호법에서도 이러한 전염병 사태에는 예외 조항을 두고 있다. 제58조에 따르면 ‘공중위생 등 공공의 안전과 안녕을 위해 긴급히 필요한 경우로서 일시적으로 처리되는 개인정보’는 공개가 가능하다는 것.
하지만 지자체별로 정해진 가이드라인 없이 서로 다른 기준을 적용해 확진자 동선을 지나치게 자세히 공개하면서 ‘사생활 침해’와 ‘국민 생명권 우선’이라는 찬반 논쟁이 팽팽하게 맞서는 중이다. 논란이 가중되면서 최영애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 위원장은 성명을 통해 “정부와 지자체가 코로나19 확진자의 이동 경로를 알리는 과정에서 사생활 정보가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노출되는 사례가 발생하는 데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환자 개인을 특정하지 않고, 시간대별로 방문 장소만을 공개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며 “상세한 이동 경로를 공개하면 오히려 의심 증상자가 사생활 노출을 꺼려 자진 신고를 망설이거나 검사를 기피할 우려가 있다”는 것.
실제로 지난 2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A씨는 식당에 들른 동선과 시간이 공개되면서 함께 식사를 한 사람이 ‘처제’라는 사실까지 공개되며 ‘불륜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 아내와 자녀는 음성 판정을 받았는데, 처제만 양성 판정을 받으며 이러한 루머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2차 감염 피해를 줄이기 위한 동선 공개인데 ‘식사를 함께한 상대’와 ‘확진자의 관계’까지 공개하는 것은 취지에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닌지 의심되는 대목이다.
우울증을 앓고 있어 매주 심리 상담소에 방문하던 B씨는 신천지가 아니냐는 의혹으로 곤욕을 치렀다. 신천지가 심리 상담을 빌미로 포교를 하고 있는 터라 특정 맘카페에는 B씨로 추정되는 이의 개인정보와 ‘신천지로 추정되니 조심하라’는 허위 사실이 유포됐다. B씨는 구청의 지나치고 모호한 동선 공개에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결국 가이드라인 배포
이러한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지난 3월 14일 보건 당국은 ‘코로나19 감염병 환자 이동경로 정보공개 가이드라인’을 전국에 배포했다. 공익적 목적과 사생활 보호를 함께 고려해 필수 정보 위주로 국민에게 전달하겠다는 방침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환자를 특정할 수 있는 개인적인 정보와 세부 동선은 공개하지 않게 됐다. 증상 발생 하루 전부터 격리일까지의 동선만 공개하도록 기간을 정했으며 건물, 상호명 등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장소와 시간이 공개될 예정이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은 가이드라인을 배포하면서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는 제외하고, 거주지 세부 주소나 직장명 등은 일절 공개하지 않는다”며 “다만, 직장에서 불특정 다수 전파 양상이 확인되는 등 대중에게 꼭 알릴 필요가 있는 경우 공간적·시간적 정보를 특정해 공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질본 역시 이러한 방침의 필요성에 무게를 실었다. 정은경 본부장은 “질본의 기본 원칙은 (확진자 발생 사실과) 발생 지역을 알려 국민들에게 감염 예방을 당부하거나 접촉자의 조기 발견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그런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라면서 “동선을 시간대별로 다 공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가이드라인 배포 이후 국민의 의견은 더욱 분분해졌다. 동선을 정확하고 세밀하게 밝혀야 피해를 줄일 수 있고, 경각심을 줄 수 있다는 의견과 이미 수백 명의 정보가 공개된 마당에 개인정보의 중요성을 너무 늦게 인지한 것 아니냐는 질책이 쏟아진 것이다.
모텔, 유흥업소…딜레마에 빠진 ‘동선 공개’
보건 당국의 가이드라인대로 동선 공개가 축소되고 필요한 정보만 제공하더라도 두 가지 딜레마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첫째, 구체적인 정보가 누락돼 국민이 스스로 밀접 접촉자인지 정확히 인지할 수 없다는 것. 가이드라인이 배포되기 전 지나치게 세세한 정보가 공개돼 사생활 침해 논란이 일어나는 와중에도 분 단위로 공개된 확진자의 동선 덕분에 ‘방역’에는 꽤 긍정적인 효과를 얻었다. 해당 시간 같은 장소에 머물렀던 접촉자들이 자진해 검사를 받고 증상이 없더라도 자가 격리에 들어가는 등 경각심을 일깨웠다. 초기 방역 단계에 있어 확진자의 동선을 상세히 공개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는 주장이다. 또한 확진자가 다녀간 곳과 시간대를 면밀하게 공개해 사람들의 접근을 막고, 감염 우려가 있는 사람들을 조기에 찾고 격리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 최소한의 동선 공개는 이러한 효과에 역행할 우려가 발생한다.
둘째, ‘최소화’하고 ‘축소’한 정보 공개로 더욱 다양한 억측이 난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노래방을 수차례 방문한 동선이 공개된 확진자는 ‘노래방 도우미’가 아니냐는, 감염과는 전혀 무관한 억측으로 조롱과 혐오의 대상이 됐다. 모텔과 유흥업소 등 확진자의 특정 업종 방문이 공개될 때마다 근거 없는 추측이 잇따른 것이다. 가이드라인이 배포되기 전까지는 확진자를 추측할 수 있는 개인정보까지 더해져 심각한 인권 침해가 발생했다. 이 딜레마는 자세한 동선 공개의 경우에도 피할 수 없는 문제로 보인다.
한편 인권위는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이 발표한 설문 조사 결과를 근거로 과도한 동선 공개가 오히려 감염자의 소극적인 자세를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감염되는 것보다도 확진자가 되어 주변으로부터 비난을 받는 것을 더욱 두려워한다”며 “상세한 이동 경로를 공개하면 오히려 의심 증상자가 사생활 노출을 꺼려 자진 신고를 망설이거나 검사를 기피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위해 동선을 최대한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과 사생활 침해를 우려해 동선을 최소한으로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은 코로나19가 종식될 때까지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확진자 두 번 죽이는 ‘코로나 낙인’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에 따라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코로나19와 우울을 뜻하는 ‘블루’를 합쳐 만든 합성어다. 실제로 국립정신건강센터에는 지난 한 달 동안 상담 의뢰 건수가 2만 6,000여 건에 달했다. 그중 확진자와 확진자 가족이 ‘코로나 낙인’으로 고통을 호소한 사례가 적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관계자는 “확진자나 완치 후 퇴원한 이들은 자신이 주변에 피해가 된다고 여겨 죄책감, 외출에 대한 불안감, 자가 격리에 따른 정신적 고통 등을 호소한다"고 전했다. 한 번 확진자로 낙인찍히면 완치하더라도 편견을 씻어내기엔 역부족이다. 정상적인 사회 생활은커녕 일상생활과 인간관계 모두 타격을 받아 정신 건강 회복이 어렵다는 것. 이에 정부는 ‘심리적 방역’을 위해 다양한 조치를 시행할 예정이다. 이미 부산시, 광명시, 예천군 등은 확진자, 가족, 격리자 등을 대상으로 상담을 진행하고 심리 지원 창구를 운영하고 있다. 정신건강복지센터 관계자는 “현재 힘든 감정을 경험하고 있는 이들은 혼자 감내하기보다 가족이나 동료와 지속적인 소통이 필요하다”며 “힘든 감정이 지속되면 정신 건강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길 권장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