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배우' 김남길을 만났다. 드라마 <열혈사제>로 '2019 S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그는 지금 가장 핫한 배우이고 가장 굵직한 배우다. 축하 인사가 지금까지 이어지지만 정작 그는 "대상을 받으면 뭐가 달라져야 하나?"라며 멋쩍은 듯 웃는다.
그가 올해 첫 작품으로 영화 <클로젯>(감독 김광빈)을 선택했다. <기묘한 가족> 이후 1년 만에 내놓는 영화다. <클로젯>은 이사한 새집에서 딸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 딸을 찾아 나선 아빠에게 사건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의문의 남자가 찾아오며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이야기다. 김남길은 극 중 '의문의 남자'인 퇴마사 '경훈' 역을 맡았다. 그러고 보면 김남길은 <클로젯>을 통해 처음 시도한 게 많다. 초자연적인 현상을 다룬 미스터리 오컬트 장르에 첫 도전이고, 친한 선배 하정우와도 처음 호흡을 맞췄다. 퇴마사 역할도 처음이다.
늦었지만 축하해요. 대상 배우예요.(웃음)
대상 트로피를 받는 순간, 그 자리에서 두려움이 몰려오더라고요. 관심을 받는 게 배우라는 직업의 특성이지만 대중 앞에 서려면 점점 더 큰 용기가 필요한 것 같기도 해요. 그렇다고 대상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아요. 감사한 일인데 우리 직업이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니까요. 제가 하는 걸 누가 봐줘야 하고, 같이 하는 사람들의 합이 잘 맞고 운도 따라줘야 해요. 함께 촬영했던 배우, 스태프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커요. 그들이 용기를 줘서 한 발짝 나갈 수 있었어요.
이후 행보에 부담을 느끼나요?
대상 받았다고 사람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제 매력이 싼티, 촌티라….(웃음) 유난스럽고 허세스러운 걸 좋아하지 않아요. 그냥 제 직업이 연기하는 직업일 뿐이죠. 특별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부담도 그다지 크지 않아요. 하던 대로 하려고요.
2009년 MBC <선덕여왕>의 '비담'으로 신드롬을 만들어낸 뒤 10년 만에 <열혈사제>로 대상을 받았어요. 감회가 남다를 것 같아요.
이전부터 똑같이 해오다 잘된 것뿐이에요. 특별히 달라진 건 없어요. 예전에 어떤 선배님이 그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10년 정도 기다리면 한 번씩 기회가 온다"고요. 진짜 그렇게 되더라고요. 10년 동안 쌓다 보면 이전의 것이 응집돼 잘되는 것 같아요.
오컬트 영화로 돌아왔어요. 어려운 영화에 출연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어느 날 제작자인 윤종빈 감독님이 "우리가 잘 만들면 한국 영화 오컬트 장르의 소재도 더 다양해지지 않겠느냐"는 입바른 소리를 하더라고요.(웃음) 개인적으로, "네가 아니면 안 된다"는, 그런 말을 들으면 혹하는 성격이에요. 그래서 '혹'했어요.(웃음) 사실 <클로젯>은 상업적으로 확장성을 갖기 힘든 장르일 수도 있거든요. 관객이 많이 드는 것을 보장할 수 없는데 김광빈 감독이 입봉작으로 선택했고, 자기가 잘하고 좋아하는 장르로 영화를 만든 게 대단하게 느껴졌죠. 저는 좀 간단하게 생각했어요. 하정우 형이나 윤종빈 감독님은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지만, 같이 작품을 한 적은 없었어요. 그들과 이번 '대의'를 함께하고 싶었지요.
조금 만화적인 자신의 캐릭터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요?
사실 개인적으로 만화를 좋아해서 인물 캐릭터를 잡을 때 만화에서 착안하는 경우가 많아요. 더 만화스럽게 하고 싶은 부분도 있었어요. '사람들한테 편안하게 숨 쉴 수 있는 시간을 주는 캐릭터가 어떨까' 라는 생각을 했어요.
평소 오컬트 장르에 관심이 있었나요?
전혀. 아주 예전에 <토요명화> 같은 프로그램에서 <오맨> 같은 공포 영화를 본 게 전부예요. 영화 속 공포스러운 장면이 지금도 생생해요. 엘리베이터 한가운데 서 있다가 위에서 내려온 끈 때문에 죽는데 그 장면이 너무 강렬해 지금도 엘리베이터 한가운데 못 서 있어요.(웃음) 공포 영화를 잘 못 봐요. 문이 열리면 큰일 나는데 꼭 문이 열리잖아요. 그때 음향 효과가 또 예사롭지 않고요. 그럼에도 이 영화에 참여한 것은 국내 영화의 다양성이 줄어드는 상황에 문제의식을 느껴서예요. 힘이 된다면 동참하고 싶었어요. 될 영화만 투자하고, 또 하는 배우들만 하게 되니 한정된 느낌이 들었죠. 소재가 신선해서 참여한 부분이 커요.
역할이 역할인 만큼 영화 속에서 주문을 많이 외워요. 다 외웠나요?(웃음)
적당한 주문을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적으로 믹스했어요.(웃음) 혹시 문제가 될 수도 있으니 어사무사하게 주문을 외웠어요. 솔직히 말하면 다 못 외웠어요. 엄청 길기도 길거든요. 또박또박 말하기보다는 중얼중얼 혼잣말을 많이 하는 방법으로 요령을 썼지요. 그걸 보고 귀신 같은 스태프들이 "주문한 거 맞지? 맞아?" 라고 묻더라고요. "안 들렸어? 속삭이다 보니 잘 안 들렸나 보네" 하고 넘겼답니다.(웃음) 근데 오히려 어사무사한 발음의 느낌이 나쁘지 않았어요. 더 진짜 같았어요.
연기를 할 때 가장 힘쓰는 것은 뭔가요?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멋있게'라는 거예요. 멋있고 예쁘게 찍는 것이 가장 어리석고 위험한 일이죠. 정서나 감정이 관객에게 잘 전달되는 게 우선이에요. 연기를 잘하면 자연스럽게 멋있고 예쁘게 보일 수밖에 없어요.
윤종빈 감독과 하정우가 절친이라고 들었어요. 현장에서 소외감은 안 들었나요?(웃음)
아무래도 대학을 같이 다닌 두 사람이라 시간이 주는 관계의 깊이가 있더라고요. 우스갯소리지만 "중앙대 안 나온 사람 서러워서 살겠나"라고 잔소리도 했지요. 농담이고, 사실 작품을 할 땐 소외감 같은 거 느끼지 않아요. 즐겁게 촬영했어요. 그런 생각은 들었어요. 선후배가 서로의 꿈을 지지하며 밀고 당겨주는 게 좋아 보이더라고요. 그러고 보면 역시 우리나라는 결국 학연, 지연인가 싶고….(웃음)
친한 형(하정우)과 작업하는 느낌은 어땠나요?
밖에서 친한 배우들도 현장에선 새로운 모습을 보이기도 해요. 그래서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 친한 친구와 여행을 가서 싸우는 경우와 같은 거죠. 한데 정우 형은 밖에서 알고 지낸 모습과 같았어요. 작업하는 스타일이 대체적으로 심플해요. 모든 게 간결했어요. 전체를 보는 스타일이라 뭐든 과하지 않았는데, 그게 연륜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합도 잘 맞았고, 어색하거나 무게감이 드는 게 없었어요. 이 작품을 하면서 관계가 더 깊어진 것 같아요.
대상을 받는다고 사람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제 매력이 촌티라 유난스럽거나 허세스러운 걸 안 좋아해요. 그저 하던 대로 쭉 할 겁니다. 무엇보다 대상에 큰 의미를 두진 않는 건, 이 일은 결코 혼자 잘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죠.
술자리를 많이 했을 텐데 술을 못한다고 들었어요.
한 잔 마시면 얼굴이 빨개지고 상태가 안 좋아져요. 그래서 소주잔에 물을 따라 마셔요. 분위기는 내야 하니까요. 그걸 보고 정우 형은 "마시는 거야? 적당히 마셔" 하며 놀리기도 하죠. 술자리에서 우유도 간혹 마십니다. 제가 술자리 스킬이 좀 있어요. 저는 술자리에서 영화 하는 사람들과 이런저런 영화 얘기를 하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술은 못하지만 술자리에 가는 걸 꺼리지도 않고요.
업계에서 밝고 유쾌한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어요.
그렇다고 평소 일부러 연락하거나 약속 잡아 만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정우 형과도 평소 알고 지냈지만 연락은 거의 안 하는 사이였어요. 일부러 애쓰면서 인간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편이 아니에요. 흘러가는 대로 솔직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이선균과 함께 여행 예능 <시베리아 선발대>에 출연한 것은 의외였어요.
선균이 형 때문이죠.(웃음) 뜬금없이 "여행 갈래?" 하기에 가자고 했어요. 언제 가는지 연락을 달라고 했는데, 어느 날 방송국에서 연락이 와서 알려주는 거예요. 낚인 거죠. 한데 긴 열차 여행이 제 로망 중 하나이기도 했어요. 왠지 거기 가면 <은하철도999>의 '메텔'이 있을 것만 같은 설렘이 있었죠. 편한 사람들과 가서 좋았고, 사방팔방에 카메라가 있으면 결국 나를 내려놓게 되잖아요. 그 모든 게 걱정도 됐지만 좋기도 했어요. 역시 여행은 누구랑 함께 가는지가 중요하죠. 여행 후 멤버들과 더 돈독해졌어요.
자신의 리얼한 모습을 화면으로 보는 느낌은 어땠나요?
그냥 나더라고요. (웃음) 어릴 때는 방송이나 매체에 나오는 제 모습이 어색해 못 봤는데 요즘은 작품 속 제 모습도 편안하게 봐요. 어릴 때는 제 얼굴 보느라 정신이 없었죠.(웃음)
김남길표 멜로를 기다리는 팬이 많아요.
저도 하고 싶은데 요즘 멜로다운 멜로 시나리오를 받아보기가 어려워요. 어릴 때는 흉내를 냈던 거라면 나이 들어 하는 멜로는 또 다르지 않을까 스스로 기대도 되죠. 감정적인 표현을 유연하게 소통할 수 있는 여배우라면 상대가 누구라도 좋아요. 굳이 꼽자면 전도연 선배와 해보고 싶어요.
<무뢰한>(2015) 때 두 사람의 멜로 호흡이 기가 막히기도 했어요.
연기의 재미를 알게 해준 선배예요. 귀신같은 사람이라 현장에서 제 의도와 마음을 명확하게 알고 있어요. 연기를 할 때 그렇게 깊이 고민하고 진중하게 대하는 배우를 본 적이 없어요. 그런 자세가 참 멋있더라고요. 언젠가 누나한테 "영화 하실 때 남자 배우 필요하면 연락주세요" 라고 말했죠. 분명 "그래, 남길아" 하고 대답도 해줬는데 아직 연락이 없네요. 나만 좋았나 봅니다.(웃음)
시간이 지나면서 자유롭고 편안해지는 김남길만의 분위기가 좋아요.
제가 추구하는 바예요. 개인적으로 저는 류승범이라는 배우를 동경해왔어요. 제 나이 또래 배우 중 가장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해요. 결국 그 표현은 자유로움에서 나온다고 믿어요. 결국 제가 연기를 하는 거라 자신이 어떻게 살고,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연기도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그런 이유로 더 자유롭고 편안해지려고 노력 중입니다.
차기작은 '(정)우성이 형'과 함께 합니다(그는 정우성이 연출을 맡은 영화 <보호자>를 차기작으로 선택했다).
우성이 형이 촉촉한 눈빛으로 "시나리오 봤어?"라고 다정하게 묻더라고요. "네 형, 좋습니다"라고 대답했어요.(웃음)
요즘 김남길의 고민은 뭔가요?
예전에는 생각이 많았어요. 신년 계획도 꼼꼼하게 세우는 편이었고요. 그런데 마흔이 지나니 시간이 빨리 가더라고요. 그래서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그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즐기자는 생각이에요.
결혼에 대한 생각은 없나요?
지금은 결혼보다 일이에요. 생각보다 필모그래피가 별로 없어요. 정통 로맨스, 코미디, 누아르, 액션 등 다양한 장르를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사실 연기의 재미를 느낀 것이 영화 <무뢰한> 이후였어요. 예전에는 작품 사이의 텀도 길었어요. 지금은 그 텀을 최소한으로 줄여가며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외모부터 스타성까지 다 갖춘 배우라는 평가는 어떤가요? 분명 낯간지럽겠죠?
스타성요? 잘 모르겠어요.(웃음) 근데 연기를 못한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아요. 배우라면 당연히 연기를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안 되죠. 외모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사실 그것도 잘 모르겠어요. 감이 없어요. 다른 얼굴로 바꾼다면 우성이 형 얼굴 정도 되면….(웃음)
좋은 일도 오랫동안 하고 있어요(김남길은 비영리 문화 단체 길스토리를 운영 중이다. 100여 명의 예술가와 함께 자원봉사와 공공 예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대기업으로부터 후원 제안도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어요. 공익적 가치에 뜻을 함께 모은 사람들과 다진 처음 마음을 지키고 싶어서요. 다행히 제가 물욕이 없어요. 운영에 돈이 들면 제가 더 벌면 돼요. 물론 힘들 때도 있고, 관두고 싶을 때도 있었죠. 한데 이왕 시작한 거 창피해서라도 관둘 순 없더라고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