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벌한 요즘 학교를 그리다
1 바나나 사건
고3 1학기 중간고사 국어 문제를 둘러싼 사건. '성순이가 바나나와 수박 두 개를 샀다'라는 문장의 구조적 중의성을 설명하는 문제에서 '바나나'가 사람 이름일 수 있다는 이의 제기로 시작됐다. 고려할 가치가 없다던 교사들도 치열한 논의 끝에 복수 정답을 인정했지만, 내신 등급을 좌우하는 시험인 만큼 후폭풍도 거셌다. 2014년 대구의 한 여자 고등학교에서 국어 문제 복수 정답 인정 가처분 신청을 낸 학생이 승리한 일화를 반영했다는 설이 있을 만큼 성적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잘 보여준 에피소드. 이 사건뿐 아니라 한 학부모가 아들의 내신 등급을 올리기 위해 학원과 짜고 시험 문제 오류를 지적해 성적 정정을 받아낸 에피소드도 그려졌다.
2 입시사정관을 잡아라!
학교보다 입시 컨설팅 학원을 더 신뢰하는 시대. 대치고 진학부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관심을 얻기 위해 입시설명회에 명문대 입시사정관을 모셔오는 데 사활을 건다. 심지어 대학 입학처를 직접 찾아가는 '영업'을 뛰기도 한다. 대학에서 생활기록부(이하 '생기부')를 전문적으로 평가하는 입시사정관과의 상담을 통해 학생부종합전형(이하 '학종')의 진학률을 높일 방안을 얻을 수도 있고, 잘만 친목을 다지면 입시설명회에 초청할 수도 있기 때문. 입시설명회를 유명 입시 학원과 동반 주최하고 스타 강사를 모시는 학교도 많은 가운데 명문대 입시사정관의 참석 여부는 설명회의 흥행을 좌우할 키가 된다. 입시만을 목표로 한 교육 서비스 업체 수준으로 전락한 학교 현실을 잘 반영한 에피소드.
3 생기부 스펙 쌓기 전쟁
모든 비교과 활동을 '학종에 써먹기 위한 스펙'으로 생각하는 학생들. 아이들 사이의 치열한 스펙 쌓기 경쟁은 부모의 인맥과 배경으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금수저' 집안 학생들과 그렇지 못한 학생들 사이의 갈등으로 번진다. 이 와중에 집안 형편이 어려운 한 학생은 동아리 부모님들 인맥으로 스펙을 쌓으려 애쓰고, 교사들은 학생이 '인맥 품앗이' 개념을 알고 이용하는 현실에 개탄한다. 생기부 기록 한 줄을 얻기 위해 교사에게 아부하고 심지어 교원 평가를 두고 거래를 시도하는 학생들까지 있다. 사제 관계를 비즈니스 관계로 변질시키는 입시 전쟁의 폐해를 묘사했다.
4 선생님 쟁탈전
성적을 위해 더 잘 가르치는 교사를 선호하는 학생들. '고하늘(서현진 분)'의 교과 파트너인 '김이분(조선주 분)'은 하늘이 열심히 준비한 수업 자료를 자신의 것처럼 가로채고 학생들의 환심을 산다. 정교사이자 선배인 김이분에게 항의조차 하지 못한 고하늘은 자신의 반 아이들이 김이분 선생님 수업을 듣고 싶다고 말하는 걸 듣게 된다. 이익에 따라 선생님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는 아이들의 모습과 기간제 교사의 설움을 잘 표현했다.
드라마를 보면 입시가 보인다
1 학종의 키워드 '성장'에 집중하라
학종은 학생의 성적뿐 아니라 전체 역량과 잠재력을 평가하기 위한 좋은 제도지만, 본래의 취지와 달리 스펙 쌓기 경쟁으로 변질돼 '금수저 전형'으로 불리기도 한다. 결국 정부는 최근 정시를 확대하고 학생부를 축소하는 대입제도 개편안을 내놓았다. 현재 중학교 2학년이 대학에 가는 2024학년도부터 학종의 핵심으로 불린 '자동봉진(자율 활동·동아리 활동·봉사 활동·진로 활동)' 등 비교과 영역 평가가 폐지되고 수업 활용이 중요해진다. 고액의 입시 컨설팅을 받고 인맥 품앗이까지 해야 하는 무분별한 스펙 쌓기 경쟁은 줄어들고, 대신 대치고 진학부 교사들이 짚어낸 학종의 본질인 '성장'에 더 집중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특히 더 중요해진 학생부 교과 영역에서 학생이 학업 성취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잘 반영하도록 해야 한다.
2 학원을 맹신하면 안 된다
<블랙독> 첫 회에서 진학부장 '박성순(라미란 분)'은 입시 컨설팅 학원의 전문성을 더 높이 평가하는 진상 학부모에게 조목조목 반박한다. 서울시 교육청에서 학교에 제공하는 입시 프로그램이 학원보다 정확하고 표본도 더 많으며, 각 대학교 입학처에서 학종을 평가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출신 고등학교의 내부 정보도 결국엔 학교가 가장 잘 알려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대입제도 개편안으로 교과 영역 평가의 중요성이 한층 높아진 점을 감안하면 박성순 부장의 말에 더 힘이 실린다. 수업 시간에 얼마나 성실히 임하는가가 중요하다. 확대된 정시에 대비해 수능도 준비해야 하는 만큼 수능 학습과 내신 공부를 분리하지 말고 수업에 집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촌철살인 명대사 To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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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다 우리 애들이잖아요!"
최상위권 학생을 위한 심화반 개설을 앞두고 모인 전체 교사 회의에서 박성순 부장이 날린 뼈아픈 대사. "심화반이든 뭐든 활동하고 나면 애들 한 명 한 명 관찰하고 생기부에 그 과정까지 써주세요. 혹시 애들한테 다른 사정이 있는 건 아닐까 관심 있게 봐주고…. 다 우리 애들이잖아요!" 어느 한 명 소외되지 않도록 보살펴야 하는 공교육의 본질을 일깨운 최고의 명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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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위 "네가 맞고, 내가 틀리다는 그 한마디가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바나나 사건'을 통해 문제 오류를 인정하고 학생들에게 사과하는 고하늘의 속마음 대사. '선생님이 되고 난 지금에야 깨닫는다. 선생님도 실수할 수 있고 틀릴 수 있다는 것을.' 그 뒤에 이어진 "쪽팔린 거 아닙니다. 틀렸는데도 모른 척 가만있는 거, 그게 진짜 쪽팔린 거잖아요"라는 '도연우(하준 분)'의 대사와 함께 교사들의 반성과 성장을 보여주는 명대사.
3위 "사는 게 놀이터인 사람은 없는 거지."
몇 년 전 대치고에서 기간제 교사로 헌신했다가 버려진 상처가 있는 한국대 입시사정관의 말. 과거의 앙금 때문에 대치고 진학부 교사들을 차갑게 대하지만, 결국 그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던진 말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그 나름의 속사정을 뒤로 감추고 오늘도 웃는 얼굴로 최선을 다해야 하는 모든 직장인을 울린 명대사.
별별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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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하늘(서현진)
1년 기간제 국어 교사. 진학부 막내. 3학년 담임과 최상위 학생을 위한 심화반 담임까지 겸해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 국어과에 한 자리 남은 정교사가 되기 위해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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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순(라미란)
진학부장 10년 차. 대치동 최고의 입시'꾼'. 불합리에는 불같이 저항하며 몇몇 동료에게 '미친개'로 불리지만, 학생들을 위해서라면 몸을 아끼지 않는 진정한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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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연우(하준)
진학부의 얼굴마담이자 인간 컴퓨터. 학부모와 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는 스타 교사다. 대치고 사상 최초로 기간제 1년 만에 정교사가 된 신화적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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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수(이창훈)
진학부 분위기 메이커. 무던한 성격의 평화주의자. 박성순의 꼿꼿한 성품과 열정 탓에 다른 부서와 잦은 마찰을 빚는 진학부의 안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