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김탁구란 이름이 더 친근한 배우 윤시윤. 최근 종영한 tvN <싸이코패스 다이어리>에서 '육동식'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지난 1월 9일 종영한 이번 작품은 어쩌다 목격한 살인 사건 현장에서 도망치던 중 사고로 기억을 잃은 주인공 육동식이 우연히 얻게 된 살인 과정이 기록된 다이어리를 보고 자신이 사이코패스 연쇄 살인마라고 착각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시청률은 방영 내내 1〜2%대를 맴돌아 흥행을 논할 순 없지만, 스릴러와 코미디를 넘나드는 깊이 있는 연기와 몸을 사리지 않은 액션으로 시청자들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윤시윤의 필모그래피 중 눈에 띄는 작품은 단연 KBS2 <제빵왕 김탁구>다. 2009년 MBC <지붕뚫고 하이킥> 이후 도전한 첫 정극에서 시청률 50%의 신화를 기록하며 데뷔 1년 만에 '흥행 보증수표'로 떠오른 것. 그러나 배우 윤시윤은 정상에서 안주하지 않았다. 약 10년간 드라마, 단막극, 사극, 고정 예능 등 다양한 장르와 역할에 도전하며 스스로를 항상 시험대 위에 올렸다. 그 결과 그는 여느 주연배우들과는 확연히 결이 다른 느낌이다. 인터뷰를 하던 기자가 "자평이 너무 날카로운 것 아니냐"고 되물을 정도로 스스로를 냉철하게 꿰뚫었다. 예쁨은 팬들이 줄 테니 스스로는 채찍질을 하겠다는 그의 철학이 '멘탈왕'의 경지에 오른 듯 보였다.
필모그래피만큼이나 견고한 배우
또 한 작품이 끝났어요.
다행히 잘 마무리됐네요.(웃음) tvN <싸이코패스 다이어리>는 제게 특별한 도전이었어요. 장르적으로 딥하고 강한 장면이 많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제가 했던 작품이나 역할들과는 확실히 색깔이 달랐죠. 특히 몸으로 연기해야 하는 장면도 많았어요. 고소고포증이 있는데 7~8층 정도 되는 높이의 건물에서 10회 차 넘게 촬영한다거나 실제 공사장에서 촬영이 이루어지기도 했어요. 자동차 신도 유난히 많았고요. 지금 드는 생각은 별 탈 없이 잘 끝내서 다행이라는 생각뿐이에요.
사이코패스 역할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나요?
사실 사이코패스는 배우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도전해보고 싶은 역할이잖아요. 하지만 육동식이 진짜 사이코패스였다면 저는 도전하기 두려웠을 거예요. 많이 망설였을 거고요. 지금까지 연기파 배우들이 훌륭한 선례를 남기기도 했고, 제 스스로도 아직 그 정도의 실력은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육동식은 사이코패스라고 착각한 '나'에서 시작한 역할이라 좀 더 편한 마음으로 도전할 수 있었어요. 어리바리한 육동식은 마치 실제 제 모습 같기도 했거든요. 실제로 저는 작품을 선택할 때 가장 저와 닮은 인물을 연기할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하는 편이에요. 윤시윤이라는 저 자신으로부터 출발하고 싶어서요. 아직은 많이 부족한 배우이기 때문에 없는 것을 창조해내려면 내공을 더 쌓아야 할 것 같아요.
시청률에 대한 부담도 있었을 것 같아요.
부담감이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시청률은 정말 하늘이 내려주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잘 안 된 작품에 대해 어떤 이유를 대는 것도 다 핑계라고 생각하거든요. 요즘 유튜브 때문에 드라마 시청률이 전체적으로 잘 나오지 않는 것 같다는 의견도 있는데 SBS <낭만닥터 김사부>를 보세요. 첫 회부터 좋은 결과로 나오잖아요.(웃음) 저 역시 최선을 다했지만 많은 시청자분을 만족시켜드리지 못했다는 점. 그냥 그게 사실이고, 결과예요. 아쉽긴 하지만 한 작품을 끌고 나가는 책임자의 입장에서 냉정하게 파악해야죠.
자평이 꽤 날카롭네요.
한두 푼짜리 작품이 아니니까요.(웃음) 한 작품을 하기 위해선 정말 수많은 사람이 함께 고생해야 해요. 하지만 그 작품이 잘됐을 땐 주연배우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박수를 받죠. 아쉬운 결과가 나온다면 그 결과 또한 주연배우가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주인공이라는 게 물러터진 자리가 아니라 철저하게 자기 검증을 하고 통렬하게 반성해야 하는 자리니까요. 본질적으로 회피하려 드는 것, 이유를 찾는 것…
이런 안 좋은 습관은 애초부터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다만 언젠가 다시 이 제작진과 함께 할 수 있는 순간이 온다면, 다시금 기회를 주신다면 그땐 이들에게 좋은 결과와 행복을 가져다주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고요.
자신을 과소평가한다는 느낌도 들어요.
그런가요?(웃음) 전 스스로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 위해 노력해요. 그래야 제 자존감도 건강해지는 기분이더라고요. 연예인은 직업상 그릇된 자존감을 갖는 경우가 많잖아요. 주변에서 다들 '예스'만 하니까 '노'를 마주하면 받아들이지 못하고요. 그럼 점점 사회와 동떨어지고 혼자만의 세계에 갇히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기에 저만큼은 자신에게 누구보다 엄해지려고요. 남들이 박수 쳐줄 때 더욱 냉정해지고, 반대로 남들이 기죽일 땐 누구보다 든든한 제 편이 되어 칭찬해줄 거예요.
데뷔 초 <제빵왕 김탁구>의 흥행으로 얻은 깨달음인가요?
당시 그 드라마를 하면서 느낀 게 참 많아요. 매주 시청률이 경신되고 온통 '탁구' 이야기로 가득했던 시기였는데, 그럴수록 저 자신을 다잡아야겠더라고요.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제가 눈물을 흘려야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눈물이 안 나와 늦게까지 몇 번이나 다시 촬영해야 했던 적이 있어요. 저 하나 때문에 많은 스태프가 잠도 못 자고 고생하고, 여러 배우가 여러 번 같은 연기를 해야 했죠. 그런데도 제가 눈물을 흘리니 다들 잘했다고 박수를 쳐주시더라고요. 저 때문에 다들 안 해도 될 고생을 하며 시간 낭비했는데도, 다들 저에게 고생했다며 절 치켜세우는 거예요. 그게 어떻게 잘한 일인가요? 그건 정말 제가 잘해서 해주시는 칭찬이 아니잖아요. 제가 만약 그 이후로 '제2의 김탁구'를 만들고 계속 그런 상황에만 놓였다면 위험한 착각 속에 빠져 살 수도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때로는 실망스럽게, 때로는 부족하게, 때로는 다행스럽게 작품을 이어오다 보니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을 수 있었어요. <제빵왕 김탁구> 덕분에 오랜 시간 이런 깨달음을 견고히 다질 수 있었고 또 '제2의 김탁구'가 없었기 때문에 제 주제 파악을 잘할 수 있게 된 거죠.
칭찬도 좀 해주시죠.(웃음)
칭찬은 팬과 시청자분들이 말도 안 될 만큼 많이 해주시고 있어요. 그리고 저는 칭찬할 게 없어요. 굳이 하자면, '수고했다'는 정도? 또 머리 쓰고 연기하지 않았다는 점? 작품을 하나하나 해나가면서 요령을 부리거나 잔머리를 쓰고 싶은 장면들이 생겨요. '이렇게 하면 효과적일텐데, 이렇게 하면 경제적일 텐데…' 하고요. 저는 최소한의 뒷모습만 걸리는 장면이어도 최선을 다해 연기하려고 해요. 그건 데뷔 때부터 제가 어기지 않고 지켜오는 신념이에요. 요령 피우는 윤시윤을 누가 써 줄까요? 제 아이덴티티는 잘생긴 외모가 아니라 꼴값 떨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것인데요. 제가 변질된다면 전 모든 가치를 잃는 거라 생각해요.
저는 최소한의 뒷모습만 걸리는 장면이어도 최선을 다해 연기하려고 해요.
그건 데뷔 때부터 제가 어기지 않고 지켜오는 신념이에요. 요령 피우는 윤시윤을 누가 써 줄까요?
제 아이덴티티는 잘생긴 외모가 아니라 꼴값 떨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것인데요.
제가 변질된다면 전 모든 가치를 잃는 거라 생각해요.
이쯤 되면 '멘탈 관리법'이 궁금해지네요.
나에게 줄 수 있는 행복 중 판타스틱한 한 가지보다는 매우 작은 요소들, 대신 성공률이 높은 여러 개를 많이 만들어놓는 편이에요. 그게 더 행복감이 크더라고요. 한마디로, 배우 아닌 인간 윤시윤에게 여러 가지 취미를 만들어놓는 거죠. 전 평소 사진 찍는 것도 좋아하고, 스킨스쿠버를 하거나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아해요. 복싱과 같은 운동도 즐기고요. 배우로서만 살다 보면 한 해를 되돌아볼 때 작품이나 스코어에만 연연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이런 소소한 취미를 즐기다 보면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요소가 많아져요. 그런 부분이 절 우울감에 빠지지 않게 만들어주고요. 그래서 배우의 삶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삶에도 많이 집중하려고요. 그 비율이 점점 늘어났으면 좋겠어요.
그런 건 '연애'가 최고일 텐데요?
맞아요.(웃음) 다들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럴 시간에 연애를 좀 해보라고요. 하지만 외롭다고 해서 아무나 만나고 싶진 않아요. 저도 외로워요. 일 끝나고 잠들기 전에도 외롭고, 출근하기 전 내복을 입을 때도 정말 외로워요. 그런데 그런 외로움은 인간으로서 느끼는 본질적인 외로움이지 당장 누군가가 필요한 외로움은 아니더라고요. 그리고 아직까진 제 생활 루틴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아요. 근데 또 모르죠.(웃음) 이것마저 다 무너뜨리고 싶을 만큼 사랑하는 사람이 생길지도요. 아직 욕심도 너무 많고 일에만 집중하며 살고 있는데, 이런 제가 누군가를 만나면 그 사람이 너무 외롭지 않을까요?
훗날 연애를 하게 된다면 공개할 생각인가요?
상대방이 원한다면요.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자랑하고 싶잖아요. 그래서 전 '공개 연애'에 대해 큰 거부감이 없는데, 상대방은 또 저랑 생각이 다를 수도 있으니까. 상대방을 지켜주는 것이 제 욕심을 채우는 것보다 중요해요.
예능 속 '윤동구(윤시윤의 개명 전 이름이자 '빙구' 같은 모습에 붙여진 별명)'를 기다리는 시청자도 많아요.
<1박 2일>이 인사도 제대로 못 드리고 마무리돼서 늘 아쉬웠어요. 전 불러만 주시면 언제나 열심히 할 생각이 있지만, 재미있는 사람이 아니라 누가 절 불러주실지 모르겠어요.(웃음)
MBN <친한 예능>의 섭외 요청은 없었나요?(전 <1박 2일>의 멤버 김준호, 데프콘 등이 출연 중이다.)
회사로 연락이 왔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동안 드라마 촬영 중이라 연기에 집중하라고 전달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왔을까요? 아닐 것 같은데.(웃음) 불러주시면 감사히 달려가야죠. 함께했던 동료나 스태프가 다시 절 찾아주는 건 정말 황송한 영광이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절 좋게 봐주시고 인정해주신다는 거니까요. 요즘은 (예능을) 보는 게 힘들어요. 그때가 너무 그리워지거든요. 배우는 그룹 활동을 해볼 기회가 잘 없잖아요. 같은 목표를 가지고 동고동락하는 경우도 거의 없고요. 그렇다 보니 형들이랑 즐겁게 게임하고 자고, 생활했던 게 많이 떠올라요. 꿈에도 나올 정도로요.(웃음)
올해 계획이 궁금해요.
개인의 삶에 좀 더 집중해보려고요. 아직도 식당에 가면 아주머니께서 "탁구야! 왜 TV에 안 나와?"라고 물어보세요. 한 해에 두 작품씩 10년 가까이 해왔음에도 전 여전히 '탁구' 이후로 대중의 뇌리에 각인되지 못한 거겠죠. 배우들이 스코어로 보여드려야 한다는 점은 저 역시 공감하고 이해해요. 하지만 그것에 집착하면 너무 우울하고 존재감이 많이 떨어질 것 같아요. 그래서 저 개인의 삶 속에서 빈 공간들을 채워보려고요. 개인적으로 체중을 늘리고 몸을 멋있게 키워보고 싶어요. 다행히 말랐던 <제빵왕 김탁구> 때의 몸무게는 벗어났지만 올해는 75kg급으로 몸을 더 키워 언제든 준비된 배우가 되고 싶어요.
마지막까지 바른 사람이네요.
바른 사람은 정말 아니에요.(웃음) 제가 정말 바른 사람이라면 제 주변 스태프도 저를 바른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하잖아요. 저는 늘 날이 서 있고 불과 같이 일하는 사람이라 제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은 저를 바르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 전 그저 바르고 싶어요. 바른 사람이 멋있어 보이고요.(웃음)
그의 대답과 다르게 모든 것이 바르고 반듯했던 배우 윤시윤. 정갈하고도 견고한 그의 삶의 철학을 보면 '탁구'를 뛰어넘을 그의 인생작을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다. 10년 전보다 오늘이 더, 오늘보다 10년 후가 더 기대되는 배우 윤시윤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