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안이에게 지금껏 살던 집과 작별하는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늘 씩씩하게 긍정적인 답을 하는 아들인데, 이번에는 나의 예상이 빗나갔다. “안 돼! 이렇게 예쁜 강을 매일 보지 못하는 건 너무 아쉬워.” 나는 살던 집을 떠나기 싫은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주안이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초등학생이 된 주안이는 자기 방에서 홀로 보내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는데, 본래 살던 집은 방이 너무 작았다. 아들에게 이사 가면 주안이의 방에 침대와 책상을 같이 놓을 수 있고, 집 앞에는 놀이터와 슈퍼마켓도 있다며 내가 알고 있는 장점을 모두 쏟아내자 마침내 주안이는 “그럼 한번 가보자”라고 했다.
드디어 새집으로 이사하는 날. 아내는 수많은 이삿짐을 제쳐두고 주안이의 방을 제일 먼저 꾸몄다. 뮤지컬 <빅피쉬> 공연을 하느라 현장에 없었던 나는 아내에게 주안이의 이사 소감을 물었다. 아내는 아들이 아주 귀여운 표정으로 가슴이 뿌듯해지는 말을 해줬다고 하면서 무슨 말인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 후 아들에게 묻자, 부끄러워하면서 “어떻게 두 번이나 말해. 그런 말은 마음으로 느껴질 때 한 번만 하는 거야”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러곤 아빠를 놀리는 건지 히죽히죽 웃으며 답을 하지 않고 도망 다녔고, 대신 말해주려는 아내를 가로막기도 했다. 이젠 ‘밀당’까지 하는 아들이 됐다. 결국 나는 “이야기하고 싶을 때 말해줘”라며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그러자 주안이는 배시시 웃으며 “아빠, 열심히 일해서 좋은 방을 갖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방이 아주 마음에 들고 너무 좋아요. 고마워요”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세상에 이보다 달콤한 말이 있을까? 계속 다시 듣고 싶은 말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말을 듣자 갑자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큰 감동이 쏟아지며 온몸을 휘감는 기분이었다. 아들이 크니까 이런 표현도 할 수 있어 좋다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어쩌면 내가 주안이를 너무 어린아이로만 대한 건 아닐까? 아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 점점 더 넓고 깊게 생각하고 표현하는데, 나는 늘 같은 이야기를 하고 같은 표현을 기대하는 건 아닐까?’ 반성하는 계기가 됐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아들에게 다가가야 할까? 내가 받은 감동보다 더 큰 감동으로 아들의 마음에 울림을 주고 싶다. 요즘 내가 출연하는 뮤지컬은 자신의 방식대로만 말하다 아들과 골이 깊어지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혹시 나도 작품 속 아버지처럼 점점 아들과 멀어질까 봐 걱정이 된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아들과 더욱 가까워져야겠다. 새집에서 만들어나갈 아들과의 이야기가 기대되는 요즘이다.
글쓴이 손준호
1983년생으로 연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뮤지컬 배우다. <팬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오페라의 유령> 등 다수의 뮤지컬에 출연했다. 지난 2011년 8살 연상의 뮤지컬 배우 김소현과 결혼해 2012년 아들 손주안 군을 얻었다. 뭘 해도 귀여운 주안이의 행복을 위해 고군분투 중인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