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적인 삶의 기록
시인 나태주
나는 16세부터 시인이 되기를 꿈꿔왔으니까 수없이 많은 문학 서적을 읽었다. 시집을 비롯해 소설집, 동화집, 수필집, 평론집을 읽었고, 그림을 좋아해서 그림 관계 서적이며 화집을 수월찮게 보았다. 그러나 이제금 돌이켜보아 기억에 뚜렷이 남는 책은 그다지 많지 않다. 더구나 나의 인생에 영향을 준 책을 찾으라면 더욱 아슴아슴한 생각이다. 실상 좋은 책이 그렇게 많지 않다. 그저 그만그만해 두 손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다.
일단은 문학 서적을 제외하고 찾아볼 일이다. 그런 중에 내가 손에 꼽고 싶은 책이 몇 권 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읽지 않았으면 다시금 사람으로 태어나서라도 읽어야 한다고 말하곤 하는 책들이다. 그런 책들을 찾으려면 아무래도 고전 쪽으로 눈을 돌려야 할 것이다.
우선은 공자의 가르침인 <논어>를 들고 싶고, 노자의 책 <도덕경>을 들고 싶고, 미국의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과 일본의 사진작가 <인도 방랑>을 들고 싶다. 왜 그런가? <논어>는 사실 인생의 지침서이고 처세를 가르쳐주는 책이다. 평생을 두고 누구나 조금씩 읽으며 가슴에 새길 내용들이다.
하지만 그 밖의 책 세 권은 내가 인생의 고비에서 읽은 책이라서 마음에 남는다. 앞에서 말한 대로 나는 16세 때 시인이 되고 싶어 인생의 방향을 정하고 나서 그로부터 10년 뒤인 26세 때 시인이 됐다. 그런 뒤로 시인으로 나름 정진하며 살았다. 그런 결과 시인으로서는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혔는데 교직 성장이 영판 안 돼 이번에는 그쪽으로 노력해 10년 뒤에는 교육대학원도 졸업하고, 교감도 되고, 교육연수원에서 교사들을 가르치는 전문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시의 밭이 묵정밭이 돼버렸다. 그것은 1990년대 중반쯤. 어찌한다? 생각 끝에 일선 학교로 나가기로 했다. 역시 나의 자리는 아이들이 있는 학교이고, 나의 본분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다. 그곳에 가서 다시금 시작해보자! 그런 생각이 강하게 왔다. 어렵사리 다시 일선 학교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돌아간 학교에서의 날들은 막막했다. 소외감이나 상실감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야말로 터닝 포인트가 있어야 했다. 지금까지 살던 대로 살지 않고 반대로 살리라 마음을 먹었다. 잡지를 읽지 않는다. 신문에 칼럼을 쓰지 않는다. 방송 출연을 하지 않는다. 문인들 모임에 나가지 않는다. 뭐 그런 것들이 삶의 결심이었을 것이다.
그때 나이 50세. 그동안 마음속으로만 읽어야지 하고 다짐했던 몇 권의 책을 생각해내어 읽었다. 그때 밑줄을 그으면서 읽은 책들이 바로 <도덕경>이고, <월든>이고, <인도 방랑>이다. 만약에 그 시절 나에게 이러한 책들이 없었다면 어찌 됐을까? 오늘날의 나는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도덕경>은 인생살이에 깊이와 여유를 선물한다. 돌아서 가더라도 제대로만 가면 된다는 위로와 확신을 준다. <인도 방랑>은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고 접근하는 방법을 주고 밖을 보는 방법과 아울러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눈을 열어준다. 그런 가운데서도 <월든>의 영향은 지대했다. 100년도 훨씬 넘는 옛날 미국의 동부에 살았던 괴짜 사상가인 소로. 돌연변이요, 시대의 반항아요, 생의 실험가였던 소로. 그렇다. 28세부터 30세 사이에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집을 스스로 짓고 거기서 살던 날들의 실험적인 삶의 기록이 바로 <월든>이다.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 수없이 많은 시집을 읽었지만 이처럼 시적인 문장을 만난 일이 없다. 그의 문장을 읽으면서 나의 시가 너무나도 초라해지고 불쌍해짐을 느꼈다. 왜인가? 거기에는 진심이 있고, 신선함이 있고, 탐구가 있고, 나아가 발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월든>을 읽지 않고 그 시절을 넘겼다면 오늘날의 나는 없다. 특히 요즘 나의 시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심히 고맙고 고마운 일이다. 생애를 두고 다시금 읽고 싶은 책을 말하라면 서슴없이 나는 책장에서 <월든>을 뽑아 손에 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