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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추억 그 놈이 나타났다

30여 년 전 대한민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이 특정됐다. 갑작스러웠고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On November 0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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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9월부터 1991년 4월까지 화성 일대에서 10차례에 걸쳐 여성 10명이 희생된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특정됐다. 연인원 205만여 명이라는 막대한 경찰력 동원에도 잡히지 않았던 그다. 13살 중학생부터 71살 할머니까지 연령을 불문하고 짧은 시간 간격을 두고 강간과 살인이 일어난 이 사건은 세계 100대 살인 사건으로 꼽힐 만큼 극악한 범죄였다.

그때의 공포는 3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생생하다. 27세였던 1986년 화성으로 시집온 여성 A씨는 "그땐 비 오는 날 빨간 옷을 입으면 다 죽는다고 했다. 낮에도 장을 보러 혼자 가지 못할 정도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유력 용의자로 밝혀진 이춘재는 뜻밖에도 부산교도소에 수감된 56세 재소자였다. 그는 1994년 1월, 당시 20살이었던 처제를 강간·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25년째 복역 중이었고, 1급 모범수 생활을 하며 가석방을 노리고 있었다고 알려졌다. 취재하면서 만난 화성 토박이들에 따르면 이춘재 남동생은 "형이 곧 가석방을 받을 것 같다"는 말을 하고 다녔다고 한다. 경기남부경찰청 미제 사건 수사팀은 지난 7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관하고 있었던 화성 사건 당시 현장에서 나온 유류품(피해자 속옷, 담배꽁초 등)의 DNA 검사를 의뢰했다. 그 결과 5차, 7차, 9차 사건에서 나온 DNA 주인이 이춘재라는 사실을 밝혀냈고, 최근 3차, 4차 사건 증거물에서도 추가로 그의 DNA를 검출했다. 보도 이후 이춘재를 기억하는 화성 주민들은 대부분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같은 초등학교를 나왔다는 선배 B씨는 "착했다. 숫기는 없어도 인사를 잘했다. 처제를 죽인 건 우발적인 거라고만 생각했다. 춘재 가족은 아직 이 동네에 산다"고 전했다.

그러던 중 이춘재가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는 경찰 발표가 있었다. 이춘재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며 모두 자신이 저지른 범행이라고 인정했다. 화성과 청주에서 각각 2건씩 총 4건의 살인과 30여 건의 성범죄 등 여죄를 털어놓기도 했다. 이춘재의 자백 소식이 들렸지만 화성 토박이들은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반응을 보였다. 이춘재의 중학교 동창 C씨는 "조용한 친구였다. 그렇다고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애도 아니었다. 춘재가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혹시 경찰이 강압 수사로 자백을 강요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웃을 죽인 '착한' 연쇄살인범

화성에서 나고 자란 이춘재는 수원으로 유학가 고등학교를 다닐 만큼 영특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바로 군 복무를 마친 뒤 화성으로 돌아와 전기회사에서 일했다. 급여를 받으면 어머니에게 용돈을 챙겨 드리던 착실한 아들이었다고 한다. 1991년 회사를 다니면서 알게 된 여성과 결혼했고, 1992년 아들을 낳았다.

1990년부터 청주와 화성을 오가며 포클레인(굴삭기) 일을 배우다가 1993년 4월 청주로 이사했다. 그는 밖에선 좋은 사람이었지만 안에선 아내와 아들을 학대하는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가정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아내가 도망가자 "토스트기를 주겠다"는 핑계로 처제를 집으로 불러 아내 행방을 추궁하다 강간·살해했다.

범죄심리학 전문가들에 따르면 연쇄살인범들은 사람들의 평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특징이 있다. 주변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한다는 것. 실제로 유영철, 강호순 등 역대 연쇄살인범들은 대부분 주변 사람들에게 '인사 잘하고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춘재의 양면성은 그의 범행 장소를 살펴보면 잘 드러난다. 10차례 연쇄살인 가운데 8건은 이춘재 집에서 불과 반경 3km 안에서 발생했다. 6차 사건 발생 장소는 직선거리로 50m도 채 안 되는 뒷산이었다. 집 안에서 살해된 8차 사건(모방 범죄로 알려졌지만 이춘재가 자신의 소행이라고 밝힘) 피해자인 중학생 박 아무개(14세) 양은 한동네에 살던 이웃 동생이었다. 실제로 피해자의 아버지가 자신의 학교 선배이고, '생존 피해자'가 중학교 동창의 어머니였다. 이춘재의 가족은 여전히 옛 본가가 있던 진안동에 살고 있다. 이춘재 어머니는 최근까지 거주 중인 아파트의 노인회장을 할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해왔다고 한다.

이춘재가 범행을 자백한 다음 날인 지난 10월 2일 만난 이춘재 어머니는 이웃 주민들에게 미안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신경을 써서 머리가 아프다. 더는 찾아오지 말라"며 선을 그었다. 이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교도소 들어가서 이팔청춘 다 바쳤는데 그거를 진작 못 밝히고 왜 이제 와서 그러느냐"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춘재 본가와 8차 사건 피해자 박 아무개 양의 집이 있던 동네엔 현재 원룸 단지가 들어섰다.

이춘재 본가와 8차 사건 피해자 박 아무개 양의 집이 있던 동네엔 현재 원룸 단지가 들어섰다.

이춘재 본가와 8차 사건 피해자 박 아무개 양의 집이 있던 동네엔 현재 원룸 단지가 들어섰다.

2차 사건 발생 장소. 연쇄살인은 이춘재 집에서 반경 3km 안에서 발생했다.

2차 사건 발생 장소. 연쇄살인은 이춘재 집에서 반경 3km 안에서 발생했다.

2차 사건 발생 장소. 연쇄살인은 이춘재 집에서 반경 3km 안에서 발생했다.

당시 경찰의 부실·강압 수사

가장 큰 논란이 된 것은 8차 사건이다. 1988년 9월 발생한 8차 사건은 이듬해 7월 범인이 검거되면서 화성 사건의 모방 범죄로 판명됐다. 당시 경찰은 사건 장소인 피해자 집 안에서 나온 음모 8가닥에 당시 최신 수사 기법이었던 '방사성 동위원소 감별법'을 적용했다. 그 결과 음모에서 일반인에게 나오기 어려운 티타늄 등 다량의 중금속이 검출됐다. 경찰은 곧바로 농기구·오토바이·자전거 공업사를 뒤져 윤 아무개(22세) 씨를 범인으로 지목됐다.

경찰은 윤 씨가 박 양의 집 담을 넘어 집 안으로 들어가 박 양을 강간·살해했다고 결론지었고, 윤 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옥살이를 하다 2009년 20년 형기를 채우고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만약 이춘재의 자백이 사실이라면 윤 씨는 20년 청춘을 교도소에서 억울하게 버린 셈이다.

화성 토박이들 사이에선 윤 아무개 씨는 '억울하게 옥살이한 다리 X신'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윤 씨가 3살 때 소아마비를 앓은 탓에 오른쪽 다리를 절뚝거렸기 때문이다. 화성 진안동 토박이 E씨는 "다리 X신이 담벼락을 어떻게 넘느냐는 말이야. 우린 다 걔(윤 씨)가 범인이 아니라 그랬어. 근데 경찰 앞에선 찍소리도 못 했지. 그땐 경찰이 돈 없고, 백 없고, 부모 형편없는 애들 잡아다가 '족쳐서' 뒤집어씌웠어. 그땐 그랬지"라고 말했다. 안성이 고향인 윤 씨는 화성에 온 뒤 가족과 왕래가 없었고, 공업사에서 먹고 자며 '식모 생활'을 했다. '만만한 타깃'이 되기엔 충분한 조건이었다.

윤 씨 재심 청구… 이춘재 처벌 가능한가?

윤 씨는 구타와 잠을 재우지 않는 등 경찰의 강압 수사에 허위 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히며 재심 청구의 뜻을 내비쳤다. 윤 씨는 2심 재판부터 자신이 범행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윤 씨가 경찰에 체포될 당시 농기구 공업사를 운영했던 G씨는 "우리 남편이 우리 애(윤 씨)가 밤샘 조사를 받을 때 보호자로 옆에 있었다. 구타는 못 봤지만 밤새 잠을 안 재우고 조사를 했다고 한다. 애가 나중엔 경찰이 1년만 살고 나오면 된다고 했다고, '사나이가 까짓것 1년 채우고 나오겠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고 전했다.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무죄를 받아내며 영화 <재심>의 실제 모델이 되기도 한 박준영 변호사와 2차와 7차 화성 사건 피의자의 무죄를 입증한 김칠준 변호사가 윤 씨의 재심을 담당하기로 했다. 박준영 변호사는 "삼례 나라슈퍼 사건은 진범의 자백이 결정적인 재심 사유였다. 진술 증거를 재심 사유로 받아들이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화성 8차 사건도 진범으로 추정되는 이춘재가 '자기가 범인이다'라고 자백한 상황이고, 범인으로 지목된 윤 씨가 억울함을 주장하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재심 사유가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행법으론 이춘재를 처벌하긴 어렵다. 살인죄의 공소시효인 15년이 지났기 때문이다. 2015년 7월 형사소송법 개정안인 '태완이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살인죄 공소시효는 사라졌지만 소급적용은 되지 않았다. 2001년 8월 이전 살인에 대해 처벌할 수 없는 이유다. 형사소송법 개정 혹은 특별법 시행으로 처벌하는 수밖에 없지만 '법의 안정성'을 추구하는 법조계의 반발이 예상돼 전망이 밝진 않다.

한편 '태완이법'을 발의한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소시효 폐지 소급적용 개정안 발의를 시도해보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서 의원은 지난 9월 26일 통화에서 "살인이나 성폭행, 존속살해 등 반인륜적인 범죄는 문제가 있는 범죄다. 독일 나치 전범도 공소시효 소급적용으로 처벌했다. 범죄가 확실한 사건은 재수사해 사법 정의를 바로 세울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역대 연쇄살인범

  • 유영철

    영화 <추격자>의 모티브.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10개월여 동안 출장 마사지사 등 20명을 살해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사이코패스의 개념이 알려졌다. 유영철은 사이코패스 판정 검사인 PCL-R 검사에서 40점 만점에 28점을 받았다(25점 이상부터 사이코패스로 판단).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단 하나 있는 자신의 아들을 끔찍이 아낀 것으로 전해진다.

  • 강호순

    2004년부터 2009년까지 경기 서남부와 안산, 강원도 정선에서 부녀자 10명을 살해했다. 경찰에 붙잡히고도 "증거 가져오라"며 항변을 했으나 CCTV에 찍힌 얼굴과 희생자에게서 나온 DNA로 덜미가 잡혔다고. 추악한 범죄를 저지른 그는 순박한 외모의 소유자로 심각한 여성 편력을 지녔다고 알려졌다. 보험금을 노리고 넷째 부인과 장모를 희생양으로 삼기도 했다고. 현재 강호순은 사형을 선고받고 미결수로 복역 중이다.

  • 김대두

    대한민국 최초의 연쇄살인마. 1975년 2개월간 전국을 돌며 17명을 살해했다. 범행을 모의하다 자신의 물건을 훔쳐 달아난 청년을 살해하고, 그가 입었던 피 묻은 청바지를 가져간 뒤 세탁소에 세탁을 맡겼다가 이상하게 여긴 세탁소 주인의 신고로 덜미가 잡혀 체포됐다.

  • 정남규

    13명을 살해하고 20명에게 중경상을 입힌 서울 서남부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전문 프로 파일러조차 두려워한 최악의 흉악범. 철저히 쾌락만을 위한 살인을 저질렀다. 체포 후 "범행 후 만족감을 느꼈고 죄책감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고 말하는가 하면, 현장 검증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올라탄 연행 차량에서 카메라를 향해 씩 웃기까지 해 대중을 경악케 했다. 지난 2009년 감옥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 정두영

    유영철의 롤모델. 1999년 6월부터 2000년 4월까지 10개월 동안 둔기를 사용해 9명을 살해하고 10명에게 중경상을 입혔다. 사형을 선고받고 대전교도소에 복역하던 중 납품용 전선 만드는 출역을 갈 때마다 훔친 전선을 이어 붙여 사다리를 만들어 교도소에 설치된 3개의 담 중 2개를 넘었으나 탈옥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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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에디터
김지은, 박현광(<일요신문>)
사진
최준필(<일요신문>), 게티이미지뱅크
2019년 11월호
2019년 11월호
에디터
김지은, 박현광(<일요신문>)
사진
최준필(<일요신문>), 게티이미지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