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카카오 스토리 인스타그램 네이버 포스트 네이버 밴드 유튜브 페이스북

통합 검색

인기검색어

HOME > LIFESTYLE

LIFESTYLE

가을 여자의 책방

On November 06, 2019

3 / 10
/upload/woman/article/201911/thumb/43220-390819-sample.jpg

 

 

여자의 책방
대작을 누리는 시간

그해 여름방학은 땀과 <토지>의 나날이었다. 매일 학교에 가서 지하 무용실에서 탈춤을 배우고, 근육통으로 고통스러워하며 도서관에 올라가 <토지>를 빌렸다. 매일 한 권씩. 그날 저녁에 한 권을 다 읽고, 다음 날 춤을 추고, 땀에 젖은 채 어제 빌린 책을 반납한 뒤 새 책을 빌리고…. '열혈'이라는 단어를 보면 그해 여름이 생각난다. 맹렬히 달렸지만 완결을 보지는 못했다. <토지> 1부는 1969년부터 1972년까지, 2부는 1972년부터 1975년까지, 3부는 1977년부터 연재됐다. 그리고 <토지> 4부는 1983년부터 시작해 1988년까지 연재됐으니,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던 1986년에는 한창 연재가 진행될 때였다. <토지>는 총 5부 16권, 624만 자로 마무리됐다. 그렇게 나는 눈물 콧물 흘리며 흠뻑 빠져 있던 세계에서 흐지부지 나왔다. 얼마 후 개학이었고 '열혈' 독서의 시간은 그렇게 끝났다.

당연히, 작가인 박경리는 훨씬 더 집요하게 <토지>라는 대작에 매달렸다. 1969년부터 쓰기 시작한 작품은 1994년 8월에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집필 26년 만이다. 기간도 기간이지만 그동안 전전한 매체의 숫자도 만만치 않다. <현대문학> <문학사상> <주부생활> <독서생활> <한국문학> <마당> <정경문화> <월간경향> <문화일보> 등이 기꺼이 지면을 내줬다. 토지가 다루는 시기는 더더욱 크다.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에 이르기까지 거의 1세기를 망라한다. 등장인물들이 종횡무진하는 땅의 크기는 또 얼마나 넓은지. 그저 감탄을 금치 못할 뿐이다. 1926년 통영에서 태어난 박경리는 1945년 진주여고를 졸업하고 같은 해에 결혼한다. 딸을 낳은 것은 그 이듬해였다. 이른 결혼은 정신대에 끌려갈 것 같은 공포 속에서 서둘러 치러진 것이었다. 1950년 수도여자사범대학 가정과를 졸업한 그는 황해도 연안여자중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6·25 전쟁 통에 남편 김행도는 좌익으로 몰려 서대문형무소에서 사망했다. 그 와중에 3살 난 아들마저 잃게 된다.

불행에 무릎 꿇지 않은 그가 본격적인 작가로 살기 시작한 것은 1955년부터다. 소설가 김동리의 추천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 장편소설과 단편소설, 시와 에세이까지 많은 작품을 출간했다. 전쟁 와중에 남편을 잃은 여자가 삶을 꾸려가며 겪는 고통과 성장도 작품의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다. <표류도> <파시> <시장과 전장> 등의 작품은 전쟁을 겪고 살아남은 여성의 관점에서 본 세계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또 다른 대표작이라 할 만한 <김약국의 딸들>은 작가의 고향인 통영을 배경으로 한다. 사회와 역사의 격변 속에서 한 가족이 겪는 몰락과 딸들의 운명은 폭넓은 시각을 지닌 작가의 내공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여름만 되면 <토지>를 끝까지 읽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먼저 읽은 사람들이 잘 정리해놓은 가계도를 책갈피에 끼우고 첫 권부터 읽어야 할 것이다. 그때의 감동이 이제껏 남아 있지도 않거니와 그때 읽은 내용도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을 테니까. 그럼에도 자꾸 <토지>에 끌리는 것은 일종의 몸의 기억 같은 것이다. 땀, 근육통, 나무 그늘의 서늘함, 쨍한 해. 그 모든 것을 관통하며 사락사락 넘어가는 페이지의 감촉 같은 감각. 그 세계에 다시 빠지고 싶다.

글 박사(북 칼럼니스트)


  • <혐오를 혐오하다>

    시사평론가 김용민이 목회자로서 써내려간 책이다. 가장 개혁적이어야 할 개신교가 어째서 혐오의 주체가 되었는지를 살펴보고 느낀 점을 적었다. 김용민, 지식의 숲, 1만4천5백원.

  • <상위 0.1% 부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VVIP 마케팅을 하며 가까이에서 부자들의 세계관, 자녀 교육 등에 대해 두루 들여다봤던 저자 박지영. 이 책에서 무엇을 어떻게 바꿔 나가며 살아야 할지 제시한다. 박지영, 리드리드출판, 1만4천8백원.

  • <3부작>

    인간 존재의 본질과 근원적인 고독을 포착해 문학적 언어로 표현하는 작가 욘 포세의 연작 소설. <잠 못 드는 사람들>과 <올라브의 꿈>, <해질 무렵>을 한 권의 연작으로 묶었다. 욘포세, 새움, 1만4천원.

  • <희망 버리기 기술>

    마크 맨슨은 수많은 선택지와 기회비용 앞에서 인생의 목적을 잃어버린 채 방황하는 현대인의 문제를 진단한다. 지속 가능한 희망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들려준다. 마크 맨슨, 갤리온, 1만6천원.

CREDIT INFO
에디터
하은정, 이예지, 김지은
사진
김재경, 서민규
2019년 11월호
2019년 11월호
에디터
하은정, 이예지, 김지은
사진
김재경, 서민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