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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리를 추모하다

고정관념에 굴복하지 않은 당당한 여성으로 경종을 울렸던 설리. 그녀가 지난 10월 14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On November 0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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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스타성으로 이슈를 몰고 다녔던 걸 그룹 '에프엑스f(x)' 출신 배우 설리가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 향년 25세. 지난 10월 14일 성남시 수정구 심곡동 전원주택에서 설리가 숨진 채 발견됐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2016년 손목 부상을 입고 새벽 시간에 응급실을 찾아 치료받은 것이 와전돼 자살 시도를 했다는 논란이 불거졌던 설리다.

갑작스러운 보도에 대중은 "또 오보가 난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지만 얼마 후 설리의 사망 소식이 확인됐다. 숨지기 전날인 13일 오후 6시 30분께 마지막으로 통화를 한 뒤 연락이 되지 않는 설리의 집으로 찾아간 매니저가 그녀를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중은 충격에 빠졌다. 최근 tvN 드라마 <호텔 델루나>에 특별 출연하고, JTBC 예능 <악플의 밤>을 통해 활동에 박차를 가할 조짐을 보였던 그녀였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설리의 심경이 담긴 자필 메모가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일기 형식으로 평소 심경을 적은 메모장이었고 맨 마지막 장에는 유서 형식으로 '괴롭다' '힘들다' 등의 부정적인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유가족과 매니저는 "설리가 평소 우울증 증세를 보여 걱정했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10월 15일 "설리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이지만 타살 등 다른 원인이 있는지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 유족 동의를 받아 부검을 진행했다"고 알린 후, 16일 "외력이나 외압 등 타살 혐의점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구두 소견을 받고 조만간 내사를 종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만 약물 반응 결과 등 정밀 소견이 나올 때까지는 다소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유족은 모든 장례 절차를 비공개로 진행하되 팬들의 조문을 받기로 결정했다. 설리는 그녀를 사랑하고 응원을 보냈던 이들의 따뜻한 배웅을 받으며 세상과 이별했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애도 물결

대중과 연예계는 충격에 빠졌다. 설리를 애도하기 위해 예정된 쇼케이스 및 제작발표회, 포토콜 행사가 취소되거나 일정이 연기됐다. 설리가 지난 6월부터 MC로 출연 중이던 <악플의 밤>은 10월 18일분 방송의 휴방을 결정했고, 일각에서는 폐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유명인이 자신에 관한 악플을 직접 읽고 사회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프로그램의 진행 방식이 가학적이라는 것. 설리는 최근 심경의 변화를 겪고 <악플의 밤>에서 하차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다수의 연예인이 황망한 심정을 전하며 고인을 추모했다. '에프엑스'로 함께 활동했던 크리스탈은 3일 내내 빈소를 지켰다. 빅토리아는 중국 상하이에서 드라마 촬영을 진행하다 중단하고 한국 입국 비자를 신청하기 위해 베이징으로 향한 뒤 빈소를 찾았다. 엠버는 미국에서 머무르다 16일 입국했고, 루나는 뮤지컬 <맘마미아> 일정을 취소했다. 그녀와 돈독한 사이였던 걸 그룹 '카라' 출신의 구하라는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에서 눈물을 흘리며 "설리야, 언니가 일본에 있어서 못 가서 미안해. 이렇게 인사할 수밖에 없어서 미안해. 그곳에서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잘 지내. 네 몫까지 열심히 살게"라며 애통해했고 귀국 후 빈소로 향했다. 또 다른 '절친' 아이유는 다섯 번째 미니 앨범 <러브 포엠>의 발매를 무기한 연기하고 사전 콘텐츠 공개를 중단했다. 설리의 전 연인이자 '다이나믹 듀오'의 멤버인 최자는 "우리는 서로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을 함께했다. 이토록 안타깝게 널 보내지만 추억들은 내가 눈 감는 날까지 고이 간직할게. 무척 보고 싶다"고 설리를 추모했다.

'뜨거운 감자'의 김C는 인스타그램에 "집 현관문에 몇 년 동안 붙어 있던(사진 속) 인물이 망자가 되었다. 무감각하려 노력할 것이다. 일면식 없던 사람이라 무감각하려 더 노력할 것이다. 죽음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산 자에게 알리기 위해 무감각할 것이다. 괴로워도 슬퍼도 조금 더 버텨주기를 바란다. 누구든. 나도 그러할 것이니"라는 글과 함께 설리의 화보를 게재했다. 또 유아인도 장문의 글로 그녀를 애도했다. 그는 "그녀는 아이콘이었다. 어떤 이들은 그녀를 깎아내리고 못마땅해했지만 나는 그녀를 영웅으로 여겼다. 개인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과감하게 표출하는 신, 퀴퀴한 골동품 냄새가 나는 지난날의 윤리 강령을 신나게 걷어차는 승리의 게이머"라고 그녀를 회상했다. 그녀의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는 공식 SNS에 "설리를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한다. 눈부신 미소가 사랑스러웠던 소녀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아티스트로 성장했고, 이제 설리는 사랑해준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언제나 빛나는 별이 됐다"고 추모문을 게시했다.

대중도 설리를 추모했다. 그녀의 SNS에 "너무 감사했고, 많이 보고 싶다" "하늘에서 행복하세요" "하늘에서는 하고 싶은 것을 다 하세요"라는 애도의 글을 남겼다. 또 포털 사이트에 '설리'를 검색하면 등장하는 연관 검색어를 바꾸기 위해 '설리 사랑해' '설리 고블린(솔로 앨범 제목)' '설리 복숭아(설리의 애칭)' 등을 검색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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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에 맞선 아이돌

지난 2005년 SBS 드라마 <서동요>에서 아역 배우로 데뷔한 그녀는 걸 그룹 '에프엑스'를 거쳐, 드라마 <아름다운 그대에게>와 영화 <해적 : 바다로 간 산적> <패션왕> <리얼> 등에 출연하며 연기자로서 활동했다. 2014년엔 악성 댓글과 루머로 연예 활동 중단을 선언하고, 2015년 8월 '에프엑스'에서 탈퇴했다.

그 후 발렌티노, 부쉐론, 에스티로더, 럭키슈에뜨 등 각종 브랜드의 러브콜을 받는 광고계의 스타로 활약했다. SNS에서는 자유분방한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면서 하나의 아이콘으로 거듭났다. 어려서부터 연예계에 발을 들여 스타로 살아온 그녀는 스스로를 정해진 틀에 가두지 않았다.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은 '노브라'로 화제가 되자 "노브라가 어때서 그러냐"고 반박하는가 하면, 지난 4월 헌법재판소가 낙태죄를 위헌이라 결정하자 "영광스러운 날이다. 여성에게 선택권을" 이라고 외치기도 했다. 최자와 열애 당시 데이트하는 모습을 숨김 없이 드러낸 것도 당연했다. 평범함을 거부하는 설리의 모습에 네티즌은 각종 악플을 쏟아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을 가두는 사회적 편견에 맞서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다만 설리의 속내는 어두웠던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 V라이브 예능 <진리상점>에서 "저한테만 유독 색안경을 끼고 보시는 분들이 많아서 속상하긴 하다. 많이 바뀌었다 생각하고 앞으로도 바뀔 거라 생각한다. 기자님들, 시청자님들, 저 좀 예뻐해주세요"라고 호소했다. 또 <악플의 밤>에서는 "실제 내 생활은 구렁텅이인데, 바깥에서는 밝은 척하는 게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는 기분이었다. 주변에 조언을 많이 구했다. '어떤 사람이라도 어두운 부분이 있지만 안 그런 척하고 사는 거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라'라고 하길래 그냥 양면성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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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리는 인스타그램에 '사랑만 하는 삶이길'이라는 글과 함께 해당 글귀를 게시했다.

설리는 인스타그램에 '사랑만 하는 삶이길'이라는 글과 함께 해당 글귀를 게시했다.

악플 금지하는 '설리법' 생기나

이 같은 설리의 속마음이 화제가 되자 인터넷 실명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국민청원이 등장했다. 생전에 무분별한 악플에 시달린 설리였기에, 이 같은 일이 또다시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려면 모욕적이거나 선 넘는 비난이 담긴 댓글을 제지할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 또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는 "악플로 인한 대중문화 예술인의 정신적 고통과 피해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했다. 근거 없는 악플로 인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연매협 회원(사) 소속 아티스트 보호 차원에서 초강경 대응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자유한국당 윤상현·이주영·조경태·주호영·장석춘·이명수·박성중 의원, 바른미래당 이혜훈 의원,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의원은 악플을 금지하는 '설리법' 발의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설리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주는 대로 돌려받는다. 나는 누구에게 사랑을 주고 상처를 줬나. 나는 누구에게 사랑을 받고 상처를 받았나"라는 손글씨가 적힌 사진을 게시한 바 있다. 사진 속 짧은 글은 '악의 없는 장난'이라는 포장 아래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말을 하고 글을 쓰는 이들에게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그녀가 그곳에서 '사랑만 하는 삶'을 살아가길 기도한다.

KEYWORD
CREDIT INFO
에디터
김지은
사진
서울문화사DB, JTBC, 설리·럭키슈에뜨 인스타그램, 영화 <리얼> 스틸 컷
2019년 11월호
2019년 11월호
에디터
김지은
사진
서울문화사DB, JTBC, 설리·럭키슈에뜨 인스타그램, 영화 <리얼> 스틸 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