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중이 스크린으로 컴백했다. 6년 만이다. 그는 추석 시즌에 맞춰 개봉하는 영화 <나쁜 녀석들:더 무비>(감독 손용호)에서 흉악범을 잡기 위해 조직된 특수범죄수사과 반장 '오구탁'을 연기했다. 이 영화는 지난 2014년 OCN에서 방영된 인기 드라마 <나쁜 녀석들>의 극장판이다. 드라마에서도 함께 출연했던 마동석과 다시 호흡을 맞추고, 김아중과 장기용이 합류했다.
김상중은 1990년 연극으로 데뷔했고 이후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탄탄한 연기 내공을 자랑해왔다. 여기에 13년간 시사 보도 프로그램인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이하 <그알>) 진행자 자리를 지키며 대중의 깊은 신뢰를 받아왔다. 오랜만에 관객과 만나는 그는 스크린 속 강렬한 카리스마 대신 재치 있는 입담과 따뜻한 인간미로 '중년의 멋'을 자랑했다.
안 그래도 '아재개그'의 달인이라는 말을 들었어요.
계속 개발하고 있습니다. 남들이 하는 아재개그를 찾아보기도 하고요. 저의 앞으로의 바람은 아재개그와 관련된 책을 출간하고 아카데미를 내는 거예요.(신뢰감 가는 목소리인지라 농담인지 진담인지 분간이 어려워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있자) 농담이고요.(웃음) 기자님도 많이 다녀봐서 알겠지만 제작발표회나 공식 석상의 분위기가 경쾌하고 즐겁지는 않잖아요. 같이 얘기를 나누자고 마련된 자리인데 편안한 분위기면 좋지 않을까 하고 아재개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도 곱잖아요.
목소리 때문인지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이 잘 안 갑니다.(웃음)
제 개그를 진실로 받아들였다가 배신감을 느끼는 분들도 종종 있어요.(웃음) 목소리요? 전공이 연극영화이다 보니 고등학교 때 연극반을 하면서 트레이닝을 받았어요. 애연가임에도 목소리에 지장을 주지 않아 끊지 못하고 피우고 있고요. 선천적인 것과 후천적인 트레이닝에 의해 만들어진 거죠.
영화 <북촌방향>(홍상수 감독) 이후 5년 만에 영화에 출연했어요. 공백을 가진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시나리오가 많이 안 들어옵니다.(웃음) <그알>의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네요. 시사 프로그램 진행을 하다 보니 진행자로서 품위를 손상시키는 캐릭터는 지양했어요. 막장 캐릭터나 진정성이나 개연성이 없는 악역은 가급적이면 피했죠. 그러다 보니 영화보다는 드라마 캐릭터를 표현하는 게 더 편안했던 것 같아요.
<그알>의 오라가 있어 배우와 시사 프로그램의 진행자 사이에서 딜레마도 있을 것 같아요.
30년 연기 생활을 하는 중에 13년을 <그알>과 함께했어요. 베네핏도 많았고 또 뭘 해도 '그알스럽다'는 반응도 있었죠. 개인적인 생각은, <그알>을 통해 하고자 하는, 책임감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저는 저널리스트가 아니라 배우입니다. 배우가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했을 땐 특유의 전달력과 흡인력이 있죠. 배우로서의 모습을 보여줘야 되지 않나 하는 고민도 있습니다만, 이제는 김상중 하면 떠올려지는 게 어떤 작품의 캐릭터가 아니고, <그알>이에요. 그래서 그 의무감과 책임감을 소홀히 할 수가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영화의 '오구탁'이라는 캐릭터는 정의를 구현하는 인물이에요.
'최애' 캐릭터입니다. 사실 <그알>은 탐사 프로그램이다 보니 시원한 한 방을 주지는 못합니다. 사건을 공론화해 법이 바뀌거나 여론 형성으로 재수사가 되고, 범인이 잡힌 적도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시원한 한 방을 주지는 못하죠. 그러나 '오구탁'은 매 사건마다 시원한 한 방을 줍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카타르시스를 느꼈어요.
'오구탁'의 캐릭터 설정은 어떻게 했나요?
경찰서에 가보기도 하고, 수술실에 가보기도 하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이 남자의 일상생활은 어떨까를 고심했죠. 말투, 걸음걸이까지 생각하며 큰 뼈대를 만들어갔어요.
드라마에서보다는 캐릭터가 '약했어요.' 어떻게 생각하나요?
저는 영화 <나쁜 녀석들>은 마동석의 영화라고 말하고 싶어요. (마)동석이의 존재감이 크고, 그가 큰 중심이 돼서 전개되지요. 숲을 놓고 봤을 때 저는 나무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욕심 때문에 튀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오히려 방해가 됐을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더도 덜도 아니고 딱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합니다.
성공한 드라마를 영화화하는 작업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나요?
드라마 촬영 당시 동석이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영화화되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했는데 그게 현실이 됐어요. 드라마는 전반적으로 무거운 무드였죠. 그 부분을 영화에서는 보완했어요. 유머 코드를 넣어 유쾌하게 만들었죠. 액션도 드라마보다 업그레이드됐고요. 드라마 <나쁜 녀석들>의 마니아였던 분들이 본다면 아쉬워할 점도 있지만 불특정 다수가 보기엔 유쾌하고 통쾌한 범죄 오락 영화입니다.
마동석과의 재회는 어땠나요?
함께 드라마에 출연한 이후 사적으로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됐어요. 한데 사석에서 만나거나 전화통화를 하면 <그알> 얘기밖에 안 해요.(웃음) 동석이가 <그알> 광팬이에요. 영화 쇼케이스 때문에 지난주에 만났을 때도 처음 하는 말이 "지난주 그 사건은 어떻게 된 거예요?"였어요. 최근에 카카오톡을 주고받았는데 마지막 인사 멘트도 "<그알> 파이팅!"이었답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그알>은 무궁무진한 뒷이야기가 있을 것 같아요.
최근에 방송을 못 한 '김성재 죽음의 미스터리'에 대해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네요. 저희의 기획 의도는 누군가의 인권을 침해하고 모독하고 몰아가는 게 아니라, 20년 전 고 김성재가 어떤 약물로 어떻게 죽었고, 그것으로 인해 모방 범죄가 어떻게 일어났고, 어떻게 사건들이 진행됐는지를 다시 한 번 알아보고 그것을 예방하자는 취지였어요. 누구의 인권 침해보다는 시청자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주자, 라는 것이었는데 그것을 재판부에서는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현재 국민청원이 20만을 넘었습니다. 방송을 원하는 국민이 많다는 의미죠. 13년간 <그알>을 진행하면서 수많은 가처분 신청을 받았고, 수정 과정을 거쳐 방송을 내보낸 적은 많았지만 방송 자체가 금지된 적은 처음이에요. 다소 당황스러운 결과였죠. 덧붙이자면, <그알>을 통해 수많은 사건을 접하면서 느낀 건, 정황상 200% 범인인 사람이 많았다는 겁니다. 하지만 법적인 심판을 받지 못하는 거죠. 피해자 가족, 유가족들은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법 테두리의 한계를 많이 느꼈습니다.
마치 방송을 보듯 인터뷰도 술술, 리드미컬하게 진행됐다. 그는 한마디 한마디 허투루 답하는 법이 없었고, 집중했고, 집중하게 만들었다. 곳곳에 박혀 있는 아재개그는 윤활유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김상중은 부족함 없는 인터뷰이였다.
김아중, 장기용과의 호흡은 어땠나요?
배우들이 매 신 매 컷, 100% 에너지를 소모할 수 없어요. 때로는 흘려보내고, 때로는 담백하게 가기도 하죠. 한데 김아중 씨는 매 신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어요. 분석적이고 디테일한 친구였죠. 장기용 씨는 영화 작업이 익숙지 않아서 처음엔 낯설어했어요. 그러면 장기용 특유의 매력을 발산하지 못하게 되지요. 그래서 현장 분위기를 편하게 해주려고 마음을 썼습니다. 그게 선배의 할 일이기도 하죠. 신인이라 그런지 스펀지처럼 받아들이는 모습이 참 좋았어요. 더구나 제가 현장에서 아재개그를 할 때면 리액션이 가장 좋았고요. 여러 면에서 참 괜찮은 친구였어요.(웃음)
김상중에게 아재개그란?
아주 재수가 있고, 아주 재치 있고, 아주 재미있는 개그.
공연, 드라마, 영화, 시사 프로그램 등 활동 영역이 광범위해요.
예전엔 누군가가 제게 '연예인'이라고 하면 떨떠름하게 생각했어요. 연예인보다는 배우라는 수식어가 격이 있어 보이는 것 같았거든요. 연예인이라고 하면 왠지 영역이 두루뭉술한 느낌이잖아요.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어요. 배우이기는 하지만 넓게 보면 대중과 소통하는 '대중문화 예술인', 즉 연예인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나이가 들면서는 소통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어렸을 땐 지금 제 나이 또래 선배들을 보면 하늘 같았어요. '선생님'이라고 호칭했지요. 한데 제가 그 나이가 되어보니 후배들이 제게 '선생님'이라고 호칭하면 삐쳐요.(웃음) 저를 친근하게 생각하는 후배도 많은데, 어찌 보면 연극, 드라마, 시사 프로그램을 하면서 팬덤이 넓어진 것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거리를 지나다 보면 많은 분이 편하게 대해주세요. 사진이나 사인을 요청하면 다 응해줍니다. 그들이 있기에 제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말입니다"라는 유행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운이죠. 처음 시작할 때는 "그런데 이 사건의 전개가…" 정도였어요. 좀 더 긴장감을 주면서 호기심도 유발하고 예의를 갖춘 표현은 없을까 고민했죠. 그러다가 군대에서 썼던 '말입니다'가 생각난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 유행어가 될 줄은 몰랐어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나이에 이렇게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그알>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한 일이죠.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연극 무대에 서고 있어요. 김상중에게 연극은 어떤 의미인가요?
저의 (연기 생활의) 시작이 연극이기 때문에 제 마음의 고향은 연극이고, 늘 마음에 연극에 대한 열망이 있어요. 사실 한동안 연극을 외면했다가 <미저리>라는 연극을 통해 다시 한 번 연극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생활 관리가 철저한 편이에요. 시사 프로그램의 영향도 있겠죠?
답답하지 않느냐고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오히려 해택이 크다고 생각해요. 식당에 가면 반찬도 많이 주시고, 어딜 가도 연예인이라고 반가워하시죠. 그만큼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받은 만큼 갚아야 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입니다.
현장에서 어떤 선배인가요?
선배 대접을 바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 기분이나 감정이 현장 분위기에 영향을 주잖아요. 그래서 더 아재개그를 하는 건지도 몰라요.(웃음) 대접을 받기보다는 모범을 보여야 하는 자리가 선배라고 생각합니다.
바이크 마니아로 유명합니다.
아직은 액션 영화를 찍을 만큼 체력 관리를 잘하고 있습니다.(웃음)
'카리스마 있는 꽃중년'이라고 하면 김상중을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은데, 평소 외모 관리를 어떻게 하나요?
시사 프로그램의 영향인지 카리스마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보여지는 직업인데 당연히 관리해야죠. 저뿐만 아니라 다들 관리를 잘하잖아요. 몸매 관리를 위해 '1일 1식' 을 하고 있습니다.
팬들과의 소통은 어떤 식으로 하나요?
댓글을 거의 안 봐요. 이제 그런 것에 연연하는 단계는 아닌 것 같아요. 공연 때마다 찾아오는 오랜 팬들이 있어요. 중학생 때부터 인연이 돼 대학생이 된 친구들이죠. 저를 '아빠'라고 불러요. 인생에 대한 조언이나 자극을 주는 편입니다. 덕분에 성적이 많이 오른 친구도 있고, 장학금을 받은 친구도 있어요. 그런 것이 제 기쁨과 보람이죠. 그 친구들에게 종종 물어요. "혹시 내가 꼰대 같은 구석이 있니?" 하고요. 그런 식으로 팬들과 소통합니다. 친근하게 편안하게 현실적으로 말이죠.
배우 김상중은 요즘 어떤 고민이 있나요?
저는 신인 배우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도 배웁니다. 요즘의 연기는 정답이 없어요. 정확한 딕션이 크게 중요하지도 않아요. 교육을 통한 연기가 아니라 살아 있는 연기를 보고 배웁니다. 정형화된 모습 또한 제가 풀어야 할 숙제로 안주하지 않고 진화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진행자로서 시청자들을 만날 때도 그래요. 그래서 저는 늘 제작진에게 정해진 콘티, 스튜디오 진행에서 벗어나자고 제안해요. 밖으로 나가 촬영해보자고요. 물론 밖으로 나가면 힘들어요. 많은 사람이 저를 볼 것이고, 프롬프터를 보면서 대본을 커닝하면 안 되잖아요. 그럼에도 시청자들이 더 집중할 수 있게 늘 노력하고 있습니다.
평소 즐겨 보는 방송은 어떤 건가요?
드라마가 새로 시작하면 꼭 챙겨 봅니다. '어떻게 만들었지? 어떤 캐릭터들이 있지?' 궁금하니까요. 최근엔 <호텔 델루나>를 잘 봤습니다. <추척 60분>도 자주 봤고요. 예능 프로그램도 좋아해요. 젊은 친구들이 보는 프로그램이다 보니 감도 배울 수 있고, 또 젊은 배우들도 많이 출연하니 그 친구들이 어떤 면에 이끌려 출연한 걸까, 관찰도 하게 되지요. 가요 프로그램을 보면서 신곡도 듣습니다. 시간 날 때마다 TV를 보는데 아무래도 드라마를 가장 많이 보죠.
마치 방송을 보듯 인터뷰도 술술, 리드미컬하게 진행됐다. 그는 한마디 한마디 허투루 답하는 법이 없었고, 집중했고, 집중하게 만들었다. 곳곳에 박혀 있는 아재개그는 윤활유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김상중은 부족함 없는 인터뷰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