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지인 에밀리(42세)는 은행에서 일하다가 아이를 낳게 되면서 직장을 그만두었다. 만 1살도 채 안 된 아이를 베이비시터나 보육원에 맡기고 직장에 갈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때 일을 그만둔 게 후회되지는 않는데, 사람들의 편견을 견디기가 생각보다 힘들어”라고 말한다.
이제 아이들이 제법 커서(만 5살·3살) 다시 일을 구하려고 하는데, 생각보다 사회의 시선이 따갑다. 구직 센터에 이력서를 들고 가서, “출산하면서 직장을 그만뒀는데…”라고 운을 떼면 마주 앉은 센터 직원이 3초 정도 천장을 보면서 한숨을 참는 것이 느껴진다고 한다. “‘요즘 같은 경기 불황에 애 낳았다고 직장을 그만두다니, 이런 답답한 여자를 봤나’ 라고 생각하는 게 눈에 보여.”
그녀의 말마따나 프랑스에서는 출산한다고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는 드물다. 출산 후 1년 정도 휴직을 하고 복귀하거나, 자리를 옮기거나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프랑스에서는 누구나 출산을 앞두고 경력 단절의 위기를 겪는 것은 아니다. 사회학적 통계로 봤을 때, 출산 후 경제활동을 그만두는 여성은 대부분 임금이 낮거나, 사회적으로 인식이 좋지 않은 직업, 비정규직인 경우가 많다. 아이를 낳고 직장 생활을 계속하려면, 보육원이나 베이비시터 고용 등에 들어가는 비용이 발생한다. 그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저임금 노동 여성들은 어쩔 수 없이 일자리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반면 고학력에 전문직으로 일하는 여성이나 직장이 탄탄한 여자들은 출산이 경력에 큰 문제가 안 된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자마자 애를 갖는 것이 일반화되기까지 했다. 방송인들은 임신한 상태로 계속 스크린에 등장하다가 출산한 뒤 바로 복귀하기도 한다. 마를렌 시아파 여성부 장관도 출산하고 바로 당당하게 복직했다. 올해 만 36세의 젊은 여성 장관인 마를렌 시아파는 복직하면서 자신의 선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일하는 엄마는 일상이 전적으로 아이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아이에게 너무 간섭하지 않는다. 게다가 아이들도 다양한 어른들과 일찍부터 만나게 되고, 인성 발달에 도움이 된다. 정작 본인은 직장 생활을 하고 있지 않으면서 딸아이에게 좋은 직업을 가지려면 공부해야 한다고 충고하는 것은 모순적이다.”
물론 프랑스에도 육아에 온전히 전념하기 위해 일을 그만두거나, 풀타임 직업을 파트타임으로 바꾸는 여자들도 있다. 엄마들의 상황이 한국이라고 완전히 지옥인 것만도 아니고, 프랑스라고 완전히 천국인 것만도 아니다. 다만 프랑스에서는 한두 가지로 정의할 수 없는 다양한 케이스의 가족이 존재한다. 가족의 양상, 여성의 가치, 여성의 직업군이 저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인생 커리어가 그려진다. 그런 다양성이 한국 사회에도 좀 더 커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글쓴이 송민주
4년째 파리에 거주 중인 문화 애호가로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사회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다수의 책을 번역했으며, 다큐멘터리와 르포르타주 등을 제작하고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