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알게 된 ‘수도원에서의 휴가(Urlaub in Kloster)’는 호기심을 자극했다. 다소 생소한 수도원 생활을 들여다보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 될 것 같았다. 템플 스테이처럼 종교를 초월해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고, 머무는 동안 무엇을 할지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게 느껴졌다.
지인에게 린츠의 대표 성당인 마리엔돔과 오스트리아 카미노 순례길에 있는 장크트 플로리안 수도원(Stift Sankt. Florian)을 추천받았다. 마리엔돔에서는 탑 꼭대기 방에서 세상과 단절된 채 일주일간 머무를 수 있다. 린츠 시내를 내려다보며 라푼젤이 되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지만 기간이 부담돼 장크트 플로리안 수도원으로 결정했다.
장크트 플로리안 언덕에 자리 잡은 수도원에 들어서자 아치형 입구 사이로 보이는 수도원 건물과 자연의 조화가 눈길을 끌었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들어선 방에는 작은 나무 침대와 책상, 오래된 옷장이 전부였다. 수녀님이 머물렀을 법한 정갈한 방에 있으니 절로 차분해졌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대신 수도원 투어에 참여하기로 했다. 투어 첫 코스는 도서관이다. 5만여 권의 책이 보관된 웅장하고 클래식한 도서관은 시공을 초월한 영화 속 한 장면 같다. 성당 또한 환상적이다. 순백의 우아한 드레스와 수천 송이의 꽃으로 둘러싸인 버진 로드가 떠오르게 하는 성당 내부는 순결하고 경건한 분위기다. 1,000년 전 이 높은 성당에 섬세하고 우아한 문양을 일일이 조각한 것이 그저 놀랍다.
투어는 음악가 안톤 브루크너와 사제들의 관이 안치된 지하 묘지를 보는 것으로 끝난다. 시간 속에 축적된 수도원의 나이테를 확인하며 6,000여 명의 뼈가 차곡차곡 정리돼 있는 카타콤을 보니 인간 본질에 대한 의문으로 숙연해졌다.
저녁에는 콘서트가 열리는 수도원 홀로 향했다. 작은 동네에서 열린 클래식 콘서트임에도 공연장은 한껏 치장한 관객들로 가득 찼다. 하이든, 비발디, 모차르트, 바흐, 헬메스베르거에서 피아졸라에 이르는 클래식 거장의 음악이 3시간 동안 이어졌다. 콘서트 후 방에 돌아와 맞이하는 수도원의 고요한 밤은 그 자체가 휴식이었다.
다음 날 아침 6시, 수도원 종소리에 눈을 떴다. 작은 동네를 깨우는 1분간의 종소리는 꽤 낭만적이다. 7시 미사에 참여하려고 성당으로 향하는데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미사 후 수도원의 아침을 먹고 뜰을 거니는데 성당 근처에서 오르간과 노래 소리가 흘러나왔다. 빈 소년합창단만큼 유명한 장크트 플로리안 소년합창단이 성당에서 CD 녹음을 하고 있었다. 밖에서 들었던 맑고 높은 청명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열살 남짓 장난기 가득한 귀여운 소년들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그들의 노래는 힐링 그 자체였다. 그렇게 1박 2일의 수도원 스테이를 마쳤다. 신부님을 만나 대화를 나누지 못한 점이 아쉬웠지만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템플 스테이에서는 바쁜 삶을 비우면서 휴식을 얻었다면, 수도원 스테이는 다양한 문화 체험을 통한 채움의 시간이었다. 힐링과 동시에 마음의 양식을 채우는 수도원 스테이, 오스트리아에서 신선한 경험을 원하는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글쓴이 임성준
워커홀릭의 생활을 내려놓고 '셀프 선물'로 떠난 스페인 카미노에서 인생의 반쪽을 만나 오스트리아 린츠 외곽에 정착했다. tvN <꽃보다 할배 리턴즈>의 현지 코디를 맡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