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수경과 마주 앉자 맑은 '블루'가 떠올랐다. 투명하고 순수하면서도 강인함이 느껴지는 푸른색이 이수경을 가장 잘 설명하는 컬러 같았다. 2년 만에 KBS2 일일극 <왼손잡이 아내>로 복귀한 그녀는 '오산하' 역을 맡아 사랑하는 한 사람만을 지고지순하게 기다리는 순애보와 동시에 불의와 악행에 무너지지 않는 강인함을 보여줬다. 4개월의 긴 여정을 무사히 마치고 여름을 맞이하는 그녀를 만났다.
<왼손잡이 아내>가 지난 5월 31일 종영했어요.
후련하면서 아쉬워요. 따뜻한 가족애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충분히 보여주지 못한 것 같거든요. 매일 40분씩 방송되는 일일 드라마라 시간에 쫓기며 촬영한 것도 아쉽고요. 그래도 배우들 사이가 굉장히 돈독했어요. 대부분 3~4시간씩밖에 못 자며 촬영하느라 지쳤지만 그럴수록 전우애가 생겼죠. 대기실에 다 같이 모여 모니터링하면서 서로 응원했어요.
이번 드라마가 배우 이수경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많아요.
제가 다른 여배우에 비해 밋밋하게 생겼잖아요. 예전에 감독님들이 "조금만 변화를 주면 많이 달라진다"면서 배우 하기 좋은 얼굴이라고 하셨는데, 그때는 무슨 의미인지 몰랐어요. 그저 이목구비가 선명하고 예쁜 여배우들이 부러웠죠. 그런데 이젠 제 이미지가 좋아요. 변신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이제 꿀 같은 휴가를 보내겠네요. 어떻게 보낼 계획이에요?
제일 먼저 청소를 하고 싶어요. 얼마 전에 이사했는데 아직까지 이삿짐 정리를 하지 못했어요. 사실 청소가 제 취미거든요. 먼지가 쌓여 있는 것을 싫어해 청소를 하면서 하루를 시작하죠. 일어나서 청소기 돌리고 물걸레질을 한 다음 창틀과 선반을 닦아요. 오후에 볼일을 보고 저녁에 바닥 청소를 한 번 더 해요.
청소가 취미라니 놀라워요. 이수경만의 청소 노하우가 있나요?
미루지 않는 것. 설거지 거리가 하나만 생겨도 곧바로 해요. '좀 더 쌓이면 하자'라고 생각하면 귀찮아지고 설거지가 쌓이거든요. 또 물건을 종류별로 분류하면 정리하기 쉽고 어디에 어떤 물건이 있는지 쉽게 알아서 낭비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죠. 유통기한이 짧은 음식을 냉장고 앞쪽으로 빼놓거나 화장품에 유통기한을 적어놓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에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한 습관인 것 같아요.
배우는 3~6개월 동안 바쁘다가 작품이 끝나면 한가하니까 여유 있는 시간을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예전엔 '해야지'라고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고 사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더 많은 것을 경험하자고 다짐했죠. 이번 휴식 기간엔 컬러 테라피와 탄츠를 배우려고 해요. 허리와 고관절 건강이 좋지 않아 근육을 키워야 하거든요.
바캉스 시즌인데 여행 계획은 없나요?
여행을 자주 가진 않아요. 마지막 여행이 2년 전 친구들과 다낭에 간 거예요. 막상 가면 즐겁게 보내는데 여행지를 고르고, 비행기와 호텔을 예약하고, 일정을 짜는 게 귀찮아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TV 화면을 오래 보면 어지럽거든요. 그보다는 책을 읽거나 가만히 앉아 사색하는 것이 더 좋아요. 정리 정돈을 하거나 친구와 만나 수다를 떠는 것도 좋고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진정한 휴식이라고 여겨요.
체계적인 사람 같다가도 자유로운 사람처럼 보여요.(웃음)
자유로운데 보수적인 사람이에요.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보내지만 제 나름대로 규칙이 있어요. 혼자 살지만 통금 시간이 있고(그녀가 스스로 정한 통금 시간은 밤 12시다), 사소한 것일지라도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행동을 하지 말자고 생각하죠.
지금까지 가장 큰 일탈이 뭐예요?
20대 때 엄마에게 한 달 동안 자유롭게 놀아보겠다고 했던 거요. 그렇다고 별다른 일을 하진 않았는데 당시엔 한번 그렇게 해보고 싶더라고요.
어느덧 결혼을 생각할 나이가 됐어요.
어렸을 땐 20살에 결혼하려고 했어요. 20대 땐 30살이 되기 전에, 30살이 돼선 35살이 되기 전에 하려고 했죠. 요즘 선우용여 선생님이 매일 결혼하라고 압박을 주세요. "이제 해야 돼" "더 늦으면 큰일 나" "너와 맞는 사람을 빨리 찾아봐"라고 말씀하시죠. 그런데 요즘엔 '결혼을 꼭 해야 되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스스로 여유가 있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될 것 같고, 하지 않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니니까요. 결혼이나 출산 등에 쏟을 힘을 연기에 쏟으면 다른 것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그 과정에서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면 결혼을 할 거고요.
인생을 함께할 반려자는 어떤 사람이길 바라나요?
편안한 스타일이 좋아요. 억지로 무언가를 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요. 또 일을 열정적으로 하는 사람이 매력적이에요. 그런 사람과 함께 웃음이 넘치는 가정을 꾸리고 싶어요. 살다 보면 슬플 때도 있고 화가 날 때도 있겠지만 작은 일에도 행복하게 웃을 수 있는 가정이 좋은 가정이라고 생각해요.
대화하다 보니 드라마 속 모습처럼 실제로도 밝고 편안한 사람인 것 같아요.
인터뷰를 앞두고 제가 어떤 사람인지 고민했어요. 사람들이 저를 떠올렸을 때 에너제틱하다는 느낌을 받길 바라거든요. 그런데 요즘 체력이 약해져 그런지 무기력해진 것 같아요.
충분히 에너지가 넘치는걸요.
제가 생각하는 저는 더 밝고 에너제틱한 사람이에요. 지금은 체력적으로 지쳐 평소보다 에너지가 부족한 상태죠. 저는 누구든 진심으로 상대를 대할 때 행복함을 느끼거든요. 충분히 휴식한 뒤 마음을 다하는 에너제틱한 이수경으로 돌아올게요.(웃음)
푸른색을 꼭 닮은 이수경은 인터뷰 말미에 "최애 컬러는 붉은색"이라고 고백했다. 연기할 때도, 사람을 대할 때도 온 마음을 쏟는 그녀는 열정적이고 화끈한 레드를 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