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작센주에 위치한 라이프치히. 그곳에 처음 발을 디딘 건 10여 년 전이다. 아니,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라이프치히는 내 마음속 고향이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32년간 재직하며 칸타타를 비롯한 주요 작품을 작곡한 '성 토마스 교회'가 있어서다. 그러니 고전음악을 각별히 좋아하는 나 같은 '클래식덕'들에게 라이프치히는 성지 같은 곳이다. 성 토마스 교회에서는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에 바흐 작품을 연주하는 공연이 열리는데, 유명한 성 토마스 합창단이나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공연임에도 입장료(3유로)는 거의 무료에 가깝다. 또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연장인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도 그곳에 있다.
라이프치히는 일반인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소도시다. 축구팀이 있으니 유럽 축구 팬들이나 나처럼 '클래식덕'이 아니라면 도시 이름이 입에 붙지도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꼭 음악이나 축구가 아니더라도 라이프치히는 정말 머물기 좋은 도시다. 우선 중앙역에서 펼쳐지는 구도심은 시내 중심지까지 도보로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의 크기인데, 그 안에 필요한 모든 것이 다 있다. '대학의 도시'라 젊고 문화적이며 무엇보다 물가도 저렴하다. 게다가 유명한 '카페 바움(Kaffee Baum)'도 있다. 1694년에 문을 열어 괴테, 리스트, 바그너, 슈만, 나폴레옹 등이 토론과 독서, 휴식을 취하던 역사적인 곳이다. 1층에는 그들이 즐겨 앉던 자리를 복원해놓아 '리스트' '괴테' 등의 푯말이 붙어 있다.
슈니첼은 원래 오스트리아 음식이지만 독일에서도 즐겨 먹는다. 우리가 먹는 돈가스와 비슷하다. 구도심에 있는 '슈니첼 컬처(Schnitzel Culture)'에는 함부르크식, 네덜란드식 등 다양한 버전은 물론 채식주의자를 위한 두부 슈니첼도 있어 선택 장애가 올 정도다.
매력적인 카페와 음악의 매력에 빠져 해마다 한 번꼴로 유럽 여행을 할 때마다 아웃(출국)은 매번 다른 도시로 했어도 인(입국)은 늘 라이프치히로 했다(직항은 물론 없다). 라이프치히에 도착해서는 늘 가는 성 토마스 교회 인근, 카페 바움 바로 옆에 있는 숙소에 짐을 풀고 며칠간 머물다 다른 도시로 가곤 했다.
라이프치히에 가장 오래 머물렀던 건, 오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무작정 유럽행 비행기를 탔을 때다. 아침에는 산책을 하고 저녁이면 공연을 봤다. 바흐 박물관을 어슬렁거리기도 했다. 성 토마스 교회에서 조금 걸어가면 오페라하우스와 게반트하우스가 있는데, 특히 오페라하우스에서는 15~30유로만 있어도 좋은 오페라를 볼 수 있었다. 낮에는 베이커리나 슈퍼마켓을 돌아다니거나 서점에서 책을 읽었고 카페에 하염없이 앉아 있기도 했다.
그러다 라이프치히에서 오래 살아온 친구와 구도심(트램이 다니는 구간) 밖으로 벗어난 적이 있다. 트램 철로를 지나 한참 더 걸어갔더니 라이프치히 대학가에 펍들이 즐비했다.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펍은 '아우어바흐 술집(Auerbachs Keller Leipzig)'이다. 정통 독일식 음식을 즐길 수 있는 대형 펍으로 괴테가 학생 시절 자주 식사를 한 곳이다. 식당이기보다는 문화 공간에 가까운 분위기가 썩 마음에 들었다. 그곳에서 거품이 고운 기네스를 마시며 우리는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결과물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만족이 오는 순간이 있으면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할 거라며 웃었다. 독일에 온 후 그렇게 늦게까지 밖에 앉아 시간을 보낸 것은 처음이었다. 우리는 고요한 라이프치히 시내를 거쳐 내 숙소가 있는 커피 바움 인근까지 걸었다. 돌아오는 길은 갈 때보다 훨씬 짧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