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은 출시된 순간부터 가치가 서서히 떨어지는 다른 물건들과 달리 시간이 흐를수록 값어치가 높아진다고 한다. 뉴욕도 마찬가지다. 뉴욕 시의 땅값은 오르기만 할 뿐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인구 유입이 끊이질 않기 때문인데, 젠트리피케이션이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셈이다. 뉴욕의 거주 인구는 맨해튼을 구심점으로 퀸즈와 브루클린에서 브롱스, 심지어 옆 동네 뉴저지주까지 퍼져 나가고 있다. 10년 사이에 한국의 수도권 영역이 서울특별시에서 그 주변 경기도와 인천광역시까지 늘어난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뉴욕에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가장 두드러진 지역은 브루클린이다. 예전에 뉴욕에서도 월세가 싼 편이었던 브루클린에 아티스트들이 정착했다. 그들은 예술가 동료들과 함께 창작 활동을 하고, 작은 술집이나 음식점을 차렸고, 화실을 만들기도 했다. 브루클린에 자신들의 놀이터를 만든 것이다.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그들만의 문화가 쌓이고, 그것이 브루클린의 특색이 되자 색다른 놀이터를 찾는 외부인들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땅값이 올랐다. 월세가 높아지면서 애초에 브루클린에 정착했던 로컬 아티스트들과 주민들은 높아진 월세와 물가를 감당하지 못해 그곳을 떠나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마주했다. 브루클린의 번화가를 중심으로 월세 가격을 비교해보면 지난 세월 예술가들의 이동 경로를 바로 파악할 수 있다.
브루클린을 보고 있으면 한국의 홍대 지역이 떠오른다. 젊은 활기로 가득한 화려함 뒤편에는 나날이 치솟는 땅값과 월세 때문에 아등바등하는 로컬 상점들과 아티스트들이 있다. 이제 홍대 중심지에는 한때 인기를 누리던 로컬 레스토랑이 하나도 없다. 다들 홍대 거리에서 상수동으로, 상수동에서 연희동으로 이주하는 식으로 한때 홍대 상권을 꽃피운 주력이었던 그들은 인근 지역으로 끝없이 밀려나고 있다.
현재 필자는 브루클린의 베드-스타이(Bed-Stuy)라는 지역에 살고 있다. 지난 3년간 이곳에 살면서 지역이 빠르게 변화하는 걸 몸소 느끼고 있다. 이곳에 살게 된 이유는 단 하나, 부시윅에 비해 집값이 싸서였다. 그러나 이사할 당시 부시윅에 살던 지인들이 이젠 월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베드-스타이로 옮겨 오고 있다. 작년만 해도 다른 집으로 이사할까 고민했던 필자도 근방 시세를 알아본 후 더 이상 다른 곳으로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혹자는 이렇게 말했다. 가난한 예술가가 뉴욕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한집에서 오랫동안 머무는 거라고. 현 세입자에게 월세를 올릴 때는 금액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주택이 철거되고, 새 빌라와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고,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형성돼 있던 지역에 백인과 동양인이 진입하는 현상. 다문화가 이뤄지고 지역이 안전해져 좋을 것 같은데 어째서 그 안에 살고 있는 이들은 골머리를 앓고 있을까.
로컬 커피숍에서 10분 떨어진 곳에 스타벅스가 들어왔거나 맛 좋기로 유명한 로컬 피자집 바로 옆에 도미노 피자가 생겼다면 그것이 일종의 신호다. 20세기 중반, 미국은 연방 정책으로 융자를 대고 고속도로를 설계하는 등 국가적인 교외화를 지원사격했다. 그러나 그건 주로 백인을 위함이었고 돈이 없거나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로 교외화 정책(도시 근교의 자연 친화적 환경에서 단독주택에 거주하는 것)에 참여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텅 비어 값싸진 도시로 몰려들 수밖에 없었다.
많은 도시 정책 전문가들은 젠트리피케이션을 늦추기 위해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있다. 한 전문가는 거주 월세 통제 확장과 고급 빌딩 건축의 중단 같은 정책을 제안하고 있지만 아직 뉴욕에선 먼 이야기인 것 같다. 개인의 권리를 가장 소중히 여기는, 뼛속까지 자본주의인 미국 사회에서 부자의 권리와 가난한 자의 권리를 동시에 지키며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을 방법은 과연 있는 걸까? 뉴욕은 현재 그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글쓴이 조아라 (@arachoart)
<뉴욕을 그리는 중입니다>의 저자로 현재 뉴욕 브루클린과 맨해튼을 중심으로 예술가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