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무역 전쟁·경기 둔화 직격탄
올해 CES에 중국 기업은 1,211개 사가 참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역대 최고 참가율을 보였던 지난해 1,551개 사보다 22%가 줄어든 수치다. 최근 4년 내 CES에 참여한 중국 기업 수가 떨어진 건 올해가 처음이다. 외신들은 중국 기업의 감소 이유로 미중 무역 전쟁과 중국 내수 경기 둔화로 타격을 입은 중국 기업들이 비용 절감에 나섰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했다. 지난해 CES를 중국 기업들의 파티장으로 만들었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슈퍼 파워 충돌의 중심에 서 있는 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인 중국 화웨이는 자사의 CFO 멍완저우 부회장이 트럼프 행정부의 수사 대상에 오르면서 한층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작년까지만 해도 화웨이 CEO는 CES 연단에 2년 연속 오르면서 업계 키워드를 제시하고 전 세계 트렌드를 이끄는 대표 격으로 위상을 쌓아왔다. 스마트폰 ‘메이트10’을 소개하며 다가올 스마트 홈 생태계 변화도 공개했었다. 다양한 기업들과의 협업으로 에코 시스템을 구축했으며 웨어러블과 가상현실, 중저가 스마트폰 중심으로 전시 라인업을 꾸렸다. 글로벌 무선통신 기업 퀄컴의 맞은편에 부스를 마련했고, 주변에 인텔과 IBM 왓슨 부스가 운영되고 있었으나 관람객들은 화웨이 부스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었다.
출시 품목을 보더라도 화웨이 위상이 미국 시장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화웨이는 이번 전시에 출시 두 달이나 지난 노트북 ‘메이트북13’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보안 문제로 스마트폰을 미국에 판매하기가 어렵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화웨이는 미국 CES 참가 규모를 줄이는 대신 2월 말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MWC(Mobile World Congress)’에 역량을 집중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화웨이와 더불어 지난해 미국 정부의 제재로 도산 위기까지 내몰렸던 중국 통신장비업체 ZTE(중싱통신)는 올해 정식으로 전시장을 마련하지 않은 채 미국 지사 차원에서만 작은 규모의 부스를 꾸렸다. 앞서 지난해 12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화웨이와 ZTE 등 중국 통신업체들이 생산하는 통신장비를 미국 기업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행정명령을 고려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중국의 대표적인 스마트폰 제조업체 샤오미는 올해 CES 전시장에 아예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전자상거래의 거인인 알리바바도 지난해에 비해 규모를 대폭 축소시켰다.
하지만 중국의 존재감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세계 최초 폴더블(접었다 폈다 하는) 스마트폰을 공개한 로욜의 플렉스파이는 구석진 전시장에도 불구하고 참관객들의 발길을 이끌었다는 소식이다. 이 밖에 몇몇 로봇, TV 업체들도 등판해 눈길을 끌긴 했지만 중소 규모 수준의 기술 인프라만 공개하는 선에 머물렀다는 말이 나온다.
한국, 신산업 ‘AI 로봇’ 타고 위상 부각
CES 2019에서 중국의 존재감이 흐려진 사이 한국은 더 독보적인 모습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올해 CES 2019에 참여한 한국 기업의 숫자는 338개로, 지난해 217개에서 크게 늘었다. 물론 중국과의 직접 비교는 어려운 수준이지만 참가 기업 숫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삼성전자는 인공지능 생태계를 대거 공개하는가 하면 마이크로 LED로 대표되는 새로운 TV 시장을 열어 눈길을 끌었다.
LG전자는 롤러블(둘둘 말 수 있는) OLED TV로 신선한 충격을 선사하는 한편, 다양한 생활가전 라인업으로 호평받았다. 네이버도 올해 처음으로 참여해 로봇 경쟁력을 보여줬다. 통신 3사도 5G 먹거리를 창출하기 위해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했다. 특히 눈길을 끈 점은 국내 대기업들이 자신들의 핵심 사업인 반도체·휴대전화·자동차의 수익성 둔화를 고심하는 상황에서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개발 중인 다양한 로봇들을 앞다퉈 공개했다는 점이다. 이는 로봇 사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려는 의지로 읽힌다.
먼저 삼성전자는 올해 CES에서 차세대 인공지능(AI) 프로젝트로 개발한 ‘삼성봇’과 웨어러블 보행 보조 로봇 ‘GEMS’를 처음 공개했다. 삼성봇 시리즈로는 사용자의 혈압·심박·호흡·수면 상태를 측정하는 등 실버 세대의 건강과 생활 전반을 종합 관리하는 ‘삼성봇 케어’, 집 안 공기를 관리하는 ‘삼성봇 에어’, 쇼핑몰·음식점 등에서 상품 추천이나 결제를 돕는 ‘삼성봇 리테일’을 선보였다. 웨어러블 보행 보조 로봇 ‘GEMS’는 근력 저하·질환·상해로 보행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의 재활과 거동을 돕는 역할을 한다.
LG전자는 삼성전자에 비해 일찌감치 로봇 개발에 뛰어들어 공개된 제품 라인업이 다양했다. 올해 CES에서는 사용자의 허리 근력을 지원하는 ‘LG 클로이 수트봇’ 신제품을 처음 공개했다. 그 밖에도 인천국제공항에 투입된 안내 로봇,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청소 서비스를 제공한 청소 로봇, 가정용·상업용 등으로 활용 가능한 홈 로봇 등 총 9종의 클로이 시리즈를 보유하고 있다. LG전자는 지난해 연말 인사에서 최고경영자 직속 기구로 ‘로봇사업센터’를 신설해 로봇사업 육성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상태다.
그런가 하면 현대차는 CES 2019에서 걸어 다니는 자동차 ‘엘리베이트’ 콘셉트카를 공개했다. 미디어 행사에서는 엘리베이트를 작게 만든 프로토 타입 모델이 공개됐는데, 로봇 다리를 이용해 무대를 걸어 다니고 설치된 계단을 오르내리다가 다리를 접어 일반 자동차로 변신하는 ‘한국판 트랜스포머’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현대차는 엘리베이트가 상용화되면 수색·구조와 교통약자의 이동을 돕는 등 공공 분야에서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올해 처음으로 CES에 출사표를 던진 네이버도 로봇 기술력을 선보였다. 퀄컴과 협력해 네이버가 재작년 처음 선보인 로봇팔 ‘앰비덱스’에 5G 이동통신 기술을 적용, ‘브레인리스 로봇’으로 개량한 제품을 CES 무대 위에 올렸다. 로봇 자체에 고성능 프로세서가 없어도 5G 특유의 빠른 응답성을 활용해 원격으로 정밀한 로봇 제어를 할 수 있다. 또한 대형 쇼핑몰이나 공항 등 위치정보시스템(GPS)이 안 되는 실내에서도 증강현실(AR) 기술로 사용자가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어라운드G’도 선보였다. 중소기업 중에는 한글과 컴퓨터가 B2C(기업-소비자 간 거래) 시장 공략용으로 출시한 ‘홈서비스 로봇’과 ‘안내 로봇’을 전시했다. 홈서비스 로봇은 안면 인식으로 맞춤형 대화가 가능하고, 외국어·코딩 교육과 경비 기능 등이 탑재됐다. 박물관이나 전시품 소개가 가능한 안내 로봇은 국내 주요 박물관에 공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