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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유아인

그는 ‘인간 브랜드’라는 말에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유아인이란 이름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

On January 1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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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별다른 수식어를 붙이지 않아도 이름 하나로 설명되는 사람이 있다. 유아인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배우 유아인’ 외에도 아티스트 그룹 ‘스튜디오 콘크리트’를 이끄는 대표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아트 디렉터, 의상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2019년 올해에는 우리나라 역사를 재조명하는 시사 프로그램 KBS1 <도올아인 오방간다>에서 MC로 활약할 예정이다. 예측할 수 없는 행보지만, 이 모든 것이 유아인이기에 납득이 간다.

“유아인이라는 캐릭터는 저 혼자 만든 게 아니에요. 제 신념이 녹아 있지만 저를 지켜보는 분들의 의지도 반영된 사회적 캐릭터죠. 이 캐릭터를 어떻게 하면 재미있고 유익하게 사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요. 저 자신을 제멋대로 쓰지 않으려고 하죠.”

캐릭터 ‘유아인’의 의미를 고민한다는 그는 2018년 마지막 작품으로 영화 <국가부도의 날>을 택했다. 국가 부도까지 일주일을 남겨두고 위기를 막으려는 사람과 위기에 베팅하는 사람, 회사와 가족을 지키려는 사람의 모습을 그린 영화로, 1997년 IMF 외환위기 속에서 서로 다른 선택을 했던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극 중 유아인은 국가 부도를 예측하고 위기에 베팅해 이득을 보지만 나라가 망해가는 모습을 씁쓸해 하는 ‘금융맨 윤정학’ 역을 맡았다.

“영화 <버닝> 촬영 중에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내용이 재미있고 이야기의 흐름이 좋았어요. 경제 위기는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소재라 매력적이었죠. IMF 위기를 겪은 세대뿐만 아니라 경제력이 많은 것을 좌우하는 요즘을 살아가는 세대도 공감할 수 있는 영화 같았어요. 당시 저는 12살이라 IMF 위기를 직접 경험하지 못했어요. 저처럼 그때가 생소한 분들을 어떻게 공감하게 만들까 하는 호기심도 있었어요.”

‘윤정학’은 복합적인 감정을 지닌 캐릭터다. 위기를 역이용해 부를 얻어놓고 한편에선 감당할 수 없는 부채에 절망하는 사람들을 보고 괴로워한다. 위태롭게 흔들리는 모습으로 극에 활기를 불어넣었지만 비중 있는 캐릭터는 아니다. 그럼에도 유아인이 출연을 결심한 이유는 윤정학이 젊은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직까지 IMF 사태는 누군가에게 상처이자 고통, 충격이에요. 그래서 어떻게 접근하고 표현할지 고민했고 대중에 대한 예의가 녹아 있길 바랐어요. 다양한 인물의 입장이 조화로우면서 담담하게 표현되길 원했고요. 저는 그 속에서 다이내믹하게 후반부를 끌고 가고 싶었어요. 사람들은 기회주의자들을 비난하지만, 막상 누군가가 실리를 추구하는 선택을 하지 않으면 어리석다고 이야기해요. 아이러니하죠. 윤정학의 행동이 이해되지만 혼란스러운 상태를 통해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싶었어요.”

시대의 아픔에 대해 이야기한 유아인에게 IMF 외환위기는 금 모으기 운동을 보여주는 뉴스, IMF 위기에 대해 설명하는 선생님의 모습 등 단편적인 장면으로 머릿속에 남아 있다. 그는 과거를 알기 위해 시각적인 자료를 참고했다.
 

표현하는 사람으로 사는 것

“유튜브를 보면서 당시의 감각을 유추했어요. 욕망이 팽창했던 시기에 젊은 세대는 어떻게 이야기하고 어떤 문화를 향유했는지, 당시 거리의 공기와 느낌, 색채가 어땠는지 봤어요. 패션도 참고했고요. 저는 세상을 내다보고 과감하게 삶을 변화시키는 윤정학이 모노톤 인물들 사이에서 색채감이 있길 바랐어요. 동시에 경제 뉴스를 챙겨 봤어요. 촬영 당시 비트코인이 화제였는데 저보다 어린 친구들이 재테크에 관심이 많더군요. 학자금 대출을 받아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시대잖아요. 성취한 사람보다 결핍된 사람이 많고 빈부격차가 심화된 시대에 사는 젊은이들의 욕망, 그들이 이 세상을 사는 방식에 대해 고민했어요.”

극에서 윤정학은 자신이 헐값에 구매한 집에서 시체가 발견되는데 놀라 도망가긴커녕 격분하며 내 집에서 시체를 치우라고 소리친다. 또 세월이 흘러 모두가 존경하는 자산가가 됐음에도 조언을 구하는 청년에게 대화를 나누고 싶으면 30분간의 식사에 수백만원의 돈을 지불하라고 말한다. 그는 부자가 됐지만 여전히 돈을 더 벌기 위해 아등바등한다.

“윤정학은 욕망의 전차에서 내려올 수 없었을 거예요. 죄책감이 무뎌지면서 결핍을 채우려고 끊임없이 달리는 거죠. 자신이 집을 샀다는 사실에 사로잡혀 시체가 나와도 뛰쳐나가지 않았던 거고, 많은 돈을 가졌음에도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요. 욕망을 이루었지만 행복하지 않았을 거예요. 욕망이란 게 뭘까요? 기회주의자는 나쁜가요? 우리는 윤정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관객들이 윤정학을 보며 자신의 가치관, 신념, 욕망을 돌이켜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극 중 윤정학이 사표를 내자 그의 상사는 윤정학에게 “너 같은 사람 없었을 것 같아?”라고 말한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선택을 했지만 윤정학은 불확실성 때문에 불안감에 휩싸인다. 유아인 역시 윤정학과 비슷하다. 매번 베팅하듯 새로움에 도전한다.

“주변 사람들은 제게 ‘그냥 살아. 평범하게 살아’라고 이야기해요. 그런 충고들과 싸우며 선택하는 게 쉽지 않아요. 후회하거나 화가 나는 순간도 있고요. 하지만 전 가치관에 따른 선택이 좋아요. 곤란한 상황에서 생기는 흥미로움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그런 분들 때문에 계속 도전하는 것 같아요.”

표현하는 사람으로 사는 게 재미있지만 때로는 도전의 불확실성 때문에 괴로운 적도 있다. 청소년기에는 괴로움이 버겁기도 했다. 대구에서 미술을 공부하던 중학생 유아인은 우연히 연예계에 발을 들여 솔로 가수를 준비하다가 연기를 시작했고 배우로 살게 됐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혼란 그 자체였다고 표현했다.

“제가 연기했던 어떤 청춘 캐릭터도 제 삶보다 강렬하진 않은 것 같아요. 예측할 수 없는 삶이 혼란스러웠고 위태로웠거든요. 그러다 보니 학교도 그만뒀고 잠시 배우 활동을 접기도 했어요. 과거의 유아인은 기성세대가 쌓은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해 싸우고 투쟁하는 아웃사이더였어요. 여전히 반항하는 기질은 남아 있지만 이젠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를 오가며 살고 있는 것 같아요. 당연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질서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동시에 영향력에 대한 고민도 하고 있거든요.”

무엇보다 균형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고, 의미를 상실하고 얻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성장하고 있다고. 그 때문에 과거보다 차기작을 선택하는 게 더 어려워졌단다. 이전엔 더 많은 작품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면 지금은 창조적인 결과를 보여주고 싶다. 유아인은 고통스러운 과정을 반복하면서도 연기를 쉬지 않는 것은 “중독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2년 전부터 연기를 하며 만드는 가치나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요. 어릴 땐 기쁨과 희망을 주는 작품들이 좋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거짓된 위로였던 것 같더군요. 달콤한 사탕을 먹느라고 이가 썩는지 몰랐던 거죠. 그러다 보니 배우로서 기준 없이 연기하면 세상을 피폐하게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대에 따라 변하는 의미와 가치에 대한 영감을 줘야 한다는 마음을 품게 됐죠. 그때부터 작품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배우로 성장하고 싶다는 욕심을 갖게 됐어요.”

인터뷰 내내 의미와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 유아인은 ‘의미 있는 가치’는 ‘무’에서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절대적인 것은 없으며 현재 자신을 움직이는 의미와 가치가 중요한데, 그 안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고. 인간은 홀로 살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을 중심으로 가치를 찾아야 한단다.

“간지럽고 오그라드는 이야기지만 마음이 중요한 것 같아요. 마음이 없는 사람이 없고, 마음이 중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잖아요. 결국 미래를 선도하려면 ‘마음’에 집중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더군요. ‘최신’ ‘최고’를 내세워 대결하는 시대는 저문 것 같아요.”

유튜브를 보며 전 세계를 무대로 살아가는 친구들 앞에서 어줍지 않게 멋 부리면 뒤처질 거 같다는 게 유아인의 생각이다. 그들보다 앞서겠다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자신을 이전과 다른 형태로, 재미있고 의미 있게 만들지 고민하고 있다.

“10대, 20대였던 과거엔 꼰대와 싸우고 기성세대에 날을 세우는 게 제 역할이었어요. 그게 결국 저를 위한 거였고요. 그런데 요즘엔 다음 세대가 보이고 전 세대가 이해돼요. 물론 마음을 감추고 잘난 척하는 어른이 되지 않으려고 해요. 가르치려 하지 않고 안전보다 도전, 편안함보다 새로움을 추구하려고 하고요. 기성세대와 다음 세대를 모두 이해하는 사람으로서 그들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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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연기했던 어떤 청춘 캐릭터도 제 삶보다 강렬하진 않은 것 같아요.
예측할 수 없는 삶이 혼란스러웠고 위태로웠거든요.

재미있고 자유롭게 살기

그가 SNS에 거침없이 생각을 드러내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글을 통해 좀 더 의미 있는 가치를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길 바라면서 세상에 대한 관심과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한단다.

“인생에 갈등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갈등을 피하기 위해 생각과 판단을 숨기는 것은 참된 인생이 아닌 것 같아요. 저는 어설픈 정답을 일방적으로 꺼내는 게 아니라 소통하며 정답을 찾으려 해요. 세상에 뛰어들어 사람들과 같이 호흡하고 싶죠. 특별한 이유 때문에 SNS를 하는 게 아니에요. 그저 소통을 위한 창구일 뿐이죠. 소통의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살고 싶어요. 다양한 관점을 나누고 새 그림을 펼친다는 실험적인 태도로 SNS를 하고 있어요.”

유아인은 자신을 보며 누군가 자유롭게 살아가길 바랐다. 세상사에 관심을 갖고 다소 거칠어도 숨김없이 의견을 드러내는 자신을 통해 누군가는 스스로 옭아매는 것에서 벗어나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그 역시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평소 휴대폰의 벨소리, 메신저의 알람음을 무음으로 하고 살고 있단다. 완전한 자유를 느끼기 위한 작은 행동이다.

“저도 완전한 자유를 느껴보지 못했지만, 그것을 증명하는 모델로 저를 보여주고 싶어요. 재미있고 자유롭게 사시라고요. 저 역시 자유를 억압하기도 하지만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해요. 제 안에 여러 성질과 감정, 욕구 중 어느 하나에 치중하지 않고 모든 요소를 균형 있게 인정하는 삶이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감정에 젖거나 순간을 외면하고 때로는 투쟁하면서 아름다운 조화를 찾고 싶어요. 또 누구 편에 서지 않고 생각과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길 꿈꾸고요. 생각과 생각이 모여 더 큰 공론의 장이 열리고, 그곳에서 서로 생각을 맞추는 세상을 꿈꿔요.”

<국가부도의 날>은 유아인의 독백으로 마무리된다. “끊임없이 의심할 것.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생각할 것. 항상 깨어 있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 유아인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CREDIT INFO
에디터
김지은
2019년 01월호
2019년 01월호
에디터
김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