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김정민은 2017년 7월, 전 남자친구였던 손태영 커피스미스 대표와의 논란으로 불명예스러운 딱지가 붙었다. 그녀가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사라지다시피 숨어버린 지 1년 6개월만인 지난 7월, 법원은 손 대표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와 함께 사회봉사 120시간을 명령했다. 김정민이 이별을 통보하자 “내가 준 10억원을 내놓지 않으면 연예계 생활을 못 하게 만들겠다”는 식의 협박성 문자메시지를 보내 1억 6,000만원과 금품 57점을 가로챈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것이다.
김정민이 1년 6개월만에 다시 카메라 앞에 섰다. 그녀는 씩씩했다. 구태여 상처를 숨기지도 않았다. 그러니 마주 앉은 사람도 편안해질 수밖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지난 1년 6개월, 어땠나요?” 그녀는 무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괴롭고, 불안했고, 힘들었던 시간이었어요. 제게서 등 돌리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게 가장 괴로웠죠. 그리고 댓글들…. 가족을 비난하는 악성 댓글은 정말 힘들더군요. 소속사 대표님이 우울증에 걸릴 정도였으니 당사자인 저는 어땠겠어요. 이제는 그 후유증으로 저와 상관없는 연예인의 기사에 달린 악플을 봐도 마음이 아파요. 그 외에는 어땠는지 잘 생각이 안 나요. 저도 모르게 그 시간을 기억에서 지운 것 같아요. 너무 힘든 기억이라 그런가 봐요. 그리고 그 시간에 갇혀 있으면 뭣하겠어요. 하루빨리 털어버리고 다시 시작해야죠.”
그녀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이 기사로 모든 오해가 풀릴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동정은 얻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간절해 보였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어떻게 말하면 오해를 풀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지난 1년 반 동안 ‘기회가 온다면 이렇게 이야기해야지’라고 수시로 연습해왔는데도 막상 이야기하려니 떨리네요.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할지도 신경 쓰이고요.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제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동안 진심이 전해지지 않는 걸 보고 많이 좌절했거든요.”
돌이켜보면 김정민은 여러 번 호소했었다.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장문의 글을 남기기도 했고, 소속사를 통해 공식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기사화되는 건 ‘꽃뱀’과 같은 자극적인 말뿐이었다.
“처음엔 있는 그대로 다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저를 이해해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미 선입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겐 어떤 말도 통하지 않더군요. 내용은 읽지 않고 기사 제목만 보는 사람들을 보며 속상했어요.”
김정민은 전 남자친구를 공갈 및 공갈미수 혐의로 고소했다. 은퇴를 각오한 결정이었다. 데뷔 후 지금까지 쌓아온 것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니 비참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지난 15년 동안 다른 일을 생각한 적이 없을만큼 사랑하는 이 일을 포기할 정도로 힘들었어요. ‘이건 아니다’ 싶어 소속사 대표님에게 말했더니 바로 ‘고소하자’고 하시더군요. 그 사람과 평범한 연애를 한 건 1년 정도? 그 후 1년 반을 시달렸고 다시 1년 반을 재판으로 보냈어요. 관계를 완전히 정리하는 데 꼬박 4년이 걸렸죠. 끝까지 저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법적인 결과가 어찌 됐든 그녀에게는 치욕스러운 꼬리표가 붙었다. 아마도 꽤 오랜 시간 그녀를 따라다닐 것이다.
“사람들이 저더러 ‘꽃뱀녀’래요. 억울하고 답답해요. 저도 많이 벌지는 못 해도 갖고 싶은 건 살 수 있을 만큼은 벌었는데….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저는 진심으로, 마음으로 좋아했었는데 모두 왜곡되고 남자에게 결혼을 빙자해 돈을 뜯어내는 여자가 돼버렸죠.”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재판에서 승소하고 그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이건 제가 진 게임이에요. 반강제적으로 일을 쉬었고, 그 시간 동안 우울한 기분이었고, 친하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저를 믿지 않고 비난했어요. 그런 생각은 해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았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내가 연예인이 아니었다면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하고 말예요.”
대중의 시선이 두려워서, 사생활이 알려지는 게 무서워서, 만약 그때 그를 고소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당차고 밝은 연예인으로 살고 있었을까? 김정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래도 저래도 힘들었을 거예요. 그래도 제 선택을 후회하지 않아요.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겁니다. 물론 그 선택으로 인한 고통도 제가 감수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해요. 한 가지 분명한 건 전 스스로에게 미안하진 않다는 거예요. 적어도 저는 두 발 뻗고 자거든요.”
김정민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그와 평범한 연애를 했다. 사랑받고 있다는 기분이 좋았고,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하는 미래를 꿈꾸면서 행복해하는 여느 여자들과 다름없었다.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는 사랑이었어요. 그는 유머 감각이 있어요. 애정 표현도 적극적으로 하는 스타일이고요. 같이 있으면 스무 살 나이 차이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젊게 사는 사람이었죠. 만난 지 얼마 안 됐을 때 결혼하자고 하더라고요. 그에게 푹 빠져 있던 저는 소속사 대표님께 결혼하겠다고 말씀드렸죠. 반대하는 대표님에게 저는 ‘왜 만나보지도 않고 아니라고 하느냐’고 대들었어요. 워낙 연애를 하면 올인하는 스타일인 데다, 그게 사랑인 줄 알았거든요.”
인생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알게 된 지금은 겁이 많이 나요.
하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 다행이에요. 믿어주는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김정민이 그토록 사랑에 푹 빠졌던 이유는 두 가지였다.
가난하고 불행했던 어린 시절 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갈증과 15년간 연예인으로 살면서 체화된 외로움.
“가정환경의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부모님의 사이가 좋지 않았고, 그래서 아빠와 함께 보낸 시간이 거의 없어요. 아빠의 부재로 인한 갈증이 ‘아빠같이 포근한 남자’가 이상형이 되는 것으로 파생된 것 같아요. 그리고 애정 결핍도 있었죠. 연예인은 외로움을 많이 탈 수밖에 없는 직업이거든요. 겉으론 화려해 보이고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것 같지만 한편으론 공허함이 있죠. 누군가 그런 공허함을 툭 건드리면 푹 빠지게 되는 것 같아요. 그게 그 사람이었고요.”
김정민은 이번 사랑에서 지울수 없는 상처를 받았는데도 여전히 또 다른 사랑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사람들이 ‘앞으로 연애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요. 그렇지만 저는 또 상처 받더라도 사랑하고 싶어요. 음… 정확하게 말하면 남들처럼 평범한 사랑을 하고 싶은 거죠. 싸우고 화해하고, 하루 종일 같이 있었는데 뒤돌아서면 또 보고 싶고, 지지고 볶으면서도 그 사람밖에 없는…. 연애 교과서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처음 만났을 땐 이렇게, 며칠 지나면 이렇게, 그리고 몇 달 후, 몇 년 후엔 이렇게 하라고 가르쳐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을 텐데 말예요.”
그녀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고 연예인이 된 후부터 생계를 책임졌다. 나이 차가 조금 나는 남동생 3명을 모두 공부시켰다. 말 그대로 가장이었다.
“어렸을 땐 제가 가난한 줄 몰랐어요.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죠. 커서 알았어요. ‘아, 매일 간장에 밥을 비벼 먹는 건 가난한 편이구나. 물에 말아 고추장을 찍어 먹는 건 가난한 거구나’ 하고요. 엄마, 아빠에 대한 감정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도 활동하면서 알게 됐어요. 드라마에서 주로 손녀나 딸 캐릭터를 맡았는데, 대본 속 가정의 모습이 제 삶과는 너무 달라서 몰입하기 어려웠죠.”
그녀가 평소 ‘당돌하고 센 언니’ 이미지를 갖게 된 것도 어쩌면 어린 시절 가정환경의 영향이 클 것이다. 그 점에 대해선 김정민도 고개를 끄덕였다.
“생활력이랄까요? 저도 모르게 악바리 근성이 생긴 것 같아요. 처음 예능을 시작할 때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경쟁력이 있어야 하니까 남들 다 하기 싫어하는 센 캐릭터를 자처했죠. ‘톡톡 튄다. 신선하다’는 반응이 좋았고요. 그런데 사실 저, 그렇게 센 언니 아니에요….”
힘든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그녀 곁을 지키는 가족과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울증에 빠졌을 때,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증에 빠졌을 때 그녀를 구한 것도 친구였다.
“주변에 사람이 없었다면 아마 죽었을지도 몰라요. 친구를 통해 명상을 접했는데 명상을 한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지만 그냥 했어요. 멍때리기 정도였죠. 그리고 죽을 것 같이 힘들어 쓰러지고 울며 돌아올지언정 거의 매일 운동을 하러 갔어요. 운동이라도 하고 있어야겠더라고요. ‘버티자’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던 것 같아요.”
지난겨울엔 미얀마 여행을 다녀왔다. 20일 동안 혼자서 지냈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앉아있는 날도 있었고 무작정 걷기도 했다.
“소속사 대표님의 권유로 의미를 부여하고 간 여행이었는데 사실 생각만큼 큰 도움은 되지 않았어요. 깨달음을 그런 데서 얻는 건 아닌 거 같아요. 돌이켜보면 더 바쁘게 움직이고, 배우는 게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녀는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올여름 말레이시아 뷰티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TV조선 예능 프로그램 <연애의 맛>에 패널로 얼굴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간간이 언론사 인터뷰도 진행했다. 최근엔 화장품 모델에 캐스팅됐다.
“복귀 타이밍에 대해 고민이 많았어요. ‘사람들이 이르다고 생각할까?’ ‘근데 좀 더 미루면 너무 늦어지는 건 아닐까?’ ‘잊히면 어떡하지?’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죠. 재판 중엔 섭외 전화가 와도 거절했어요. 이후엔 섭외 전화 한 통 없더라고요. 그렇게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드디어 연락이 왔죠. 그게 <연애의 맛>이었어요”
주변에선 그녀를 말렸다. 드라마나 영화로 컴백하면 더 수월할 텐데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예능으로 컴백하려 하느냐는 우려였다. 그런데 그녀는 정면승부를 선택했다.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에요. 캐릭터로 보여지면 저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나 선입견이 순화될 테니까요. 그런데 그게 비겁하게 느껴졌어요. 예능이 시청자들과 스킨십을 많이 할 수 있기 때문에 솔직한 제 모습을 보여주는 데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죠.”
첫 촬영 전날 밤, 그녀는 한숨도 못 잤다. 소속사 대표에게 계속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저 잘할 수 있겠죠?”라고.
“저는 원래 하던 대로 녹화한다고 했는데 사람들이 왜 자꾸 쭈뼛거리느냐고 하더군요. 저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사람들 눈엔 그렇게 보였나 봐요. 근데 한편으로는 뻔뻔한 것보다는 눈치를 보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해요. 뭐가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할 거예요. 진심은 언젠가 통할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연예계 생활을 포기해야 하나, 했을 때 찾아온 기회였기 때문에 더 소중했다. 자신의 대기실에 ‘이제 꽃길만 걸어요’라고 적어둔 작가들의 메모에 감동했다. 김정민은 지금 작은 것 하나도 허투루 흘려보낼 수 없다.
“인생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알게 된 지금은 겁이 많이 나요. 하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 다행이에요. 단순히 ‘저 이제 활동 시작했어요’라고 알리고 싶은 게 아니에요. 일단 해보는 거예요. 섭외 들어오는 건 무조건 다하려고요. 저를 혹사하는 게 지금은 가장 현명한 방법인 것 같아요.”
김정민은 데뷔 후 지금까지 소속사를 한 번도 옮긴 적이 없다. 사람들은 의리라고 하는데 정작 그녀가 말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좋은 사람이니까.” 사람에 웃고, 사람에 우는 사람. 그게 바로 김정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