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인들은 벼룩시장을 매우 좋아하고 자주 애용한다. 그런 문화가 프랑스어 자체에 녹아 있다. 벼룩시장을 뜻하는 말로 가장 많이 쓰이는 표현은 ‘헐값에 팔아치우는 곳’이란 뜻의 ‘브라드리(braderie)’이며 그 외에 ‘다락방 비우기(vide-grenier)’ ‘골동품 시장(brocante)’도 동의어로 자주 쓰인다. 벼룩시장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뒤져보는 행위를 따로 지칭하는 동사도 있고, 벼룩시장 애호가를 뜻하는 단어도 있을 정도다. 그만큼 벼룩시장은 프랑스인에게는 익숙한 곳이다.
프랑스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종종 벼룩시장이 언제, 어디서 열릴 예정이라고 공지하는 안내판을 볼 수 있다. 거주지에 따라 주민회에서 정기적으로 일 년에 한 번씩 벼룩시장을 주최하는 경우가 많다. 해당 지역 주민이면 5유로 정도의 참가비를 내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이런 벼룩시장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전문 골동품 상인이 아닌, 그 동네에 사는 일반 주민들이다. 프랑스 북부 도시 릴에서는 매년 9월 첫째 주 주말에 유럽에서 가장 큰 벼룩시장이 열린다. 이 기간에는 릴 시가 하나의 커다란 벼룩시장이 되며, 한 해에 200만~300만 명의 방문객이 찾는다.
벼룩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상품의 종류는 무한하다. 작아져 못 입는 아이들 옷이나 싫증 난 장난감, 책, DVD, 음반 등이 주된 상품이고 그 외에도 중고 가구, 전자 기기, 골동품, 장신구 등도 많이 볼 수 있다. 도자기로 만든 오래된 문고리, 램프, 오래된 카메라, 시계, 그릇, 그림, 액자, 거울 등 온갖 잡동사니가 섞여 있어 잘 뒤져보고 구석구석 살펴봐야 좋은 물건을 건질 수 있다. 그 외에도 벼룩시장에서 팔기 위해 직접 상품을 제작해 판매하는 사람들도 있다. 취미로 만든 액세서리도 자주 등장하고 정원에서 딴 무농약 친환경 과일로 만든 잼이나 젤리를 파는 집도 가끔 볼 수 있다.
보통 벼룩시장은 아침 일찍 8시쯤 열려 오후 1시에서 4시쯤이면 마감한다. 그러니 무엇을 팔려면 시장이 열리기 전에 미리 매대를 차려야 한다. 벼룩시장 애호가들은 사람이 없는 아침 일찍 한가할 때 와서 필요한 것만 건져낸 뒤 가버리기 때문에, 제대로 본전을 뽑으려면 가능한 한 일찍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부분 자기 집 앞에 바로 매대를 차려 팔 물건을 들고 멀리까지 이동할 필요가 없으므로 편하다.
가격 흥정은 벼룩시장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보통 원하는 가격에 10%나 20% 정도를 더 붙여서 흥정하면 된다. 프랑스 벼룩시장에 몇 번 참여해보니, 프랑스 사람들도 한국 사람 못지않게 구두쇠에다가 억척스러운 면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벼룩시장은 단순히 중고 물건을 팔아 푼돈을 버는 가격 흥정의 장이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교류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대부분의 프랑스인은 단순히 가격만 따지는 게 아니라 그 물건에 얽힌 사연과 정서적 가치를 알고 싶어 한다. 먼지 쌓인 지저분한 물건도 거기에 얽힌 사연을 듣고 나면 갑자기 빛나 보이기 마련이다. 참고로, 필자가 자주 쓰는 전략은 저 멀리 동양에서 건너온, 집안 대대로 내려온 물건이라고 포장하는 건데, 의외로 속아 넘어가주는 사람이 많다. 그뿐만 아니라 벼룩시장에 참가하는 사람이 모두 옆집, 뒷집 사는 이웃이기 때문에 서로 소식을 주고받고 주말을 함께 보내는 시간이기도 하다.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온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즐거운 활동이 될 수도 있고, 아이가 직접 아이 손님들을 상대로 흥정하므로 아이에게도 좋은 사회 경험이 될 수 있다.
글쓴이 송민주
현재 프랑스에서 사회학을 전공 중이다. <Portraits de Se′oul>의 저자이며,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서로 다른 문화를 소개하는 일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