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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미 성남시장을 만나다

그녀가 인터뷰 내내 가장 많이 한 말은 ‘사랑’이었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누구나 존중받아야 마땅한 사람에 대한 고민이 그녀 정치 인생의 출발점이라고 했다.

On October 0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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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명절을 앞두고 많이 바쁘실 텐데,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취임하고 5주 동안은 50개 동을 돌면서 동별로 인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2만 명의 시민을 직접 만나는 뜻깊은 자리였죠. 요즘은 마을 축제 시즌이라 다양한 행사를 통해 시민들을 다시 만나고 있습니다. 체력 소모가 좀 있지만 즐겁습니다. 오늘은 아침 일찍부터 체육 행사도 하고, 성남문화재단에서 지원한 독립영화도 한 편 봤습니다. 16살 소녀의 성장담에 관한 내용인데 따뜻한 시선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평소에 운동이나 문화생활을 즐길 여유가 없는데, 이럴 때 달리기도 하고 좋은 영화도 보니 일석이조라고 할 수 있죠.(웃음) 취임한 지 3개월째 돼가니 이제 시민들이 제가 좀 익숙해지셨나 봐요. 반갑게 먼저 인사도 해주시고, "우리 시장님 예쁘다"는 말도 하십니다.


시민들을 직접 만나면서 재미있는 일도 많으셨을 거 같아요.
시민들을 만나면 온갖 민원이 다 들어옵니다. 시장이 모든 걸 해결해줄 수 있는 해결사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우리 동네 주차장에 이런 문제가 있는데 어떻게 해결이 안 되겠냐부터 체육공원 내 배드민턴장에 불이 꺼졌는데 불 좀 켜달라는 민원도 있어요. '아, 성남시장이라는 자리는 성남시민의 공공재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번은 일요일 오전에 시간이 나서 영화를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성남에서 보면 시민들이 알아볼 수도 있으니 강남 쪽으로 가려고 선글라스와 모자를 착용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뒤에서 갑자기 "시장님! 어디 가세요!" 하는 겁니다. "걷는 모습만 봐도 딱 시장님인데 뭘" 하시더군요. 국회의원 때나 청와대에서 일할 때는 그래도 개인적인 시간을 조금이나마 낼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짬이 전혀 없어요. 그냥 '나는 성남 시민의 공공재다'라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합니다.


성남시가 생긴 이래 첫 여성 시장이시죠? 그만큼 어깨가 무거울 거 같습니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지금까지는 다행히 평이 좋다고 합니다. 제가 아이들을 참 좋아해요. 은수미는 뭐가 다르냐는 질문에 아동·청소년에 대해서만큼은 다를 거라고 대답했습니다. 모든 아이가 존중받아야 하고,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마을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점에서는 많이 다를 거라고 이야기했죠. 아동수당 100% 지급은 바로 그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교 무상급식도 곧 시작합니다. 아이들은 참 솔직해요. 누가 자기를 좋아하는지 금방 압니다. 이제는 아이들이 먼저 저를 알아보고 "시장님, 시장 아줌마" 하면서 인사하곤 해요.


성남시의 아동수당 100% 지급에 대해 주민들의 관심이 많습니다.
건강한 성장 환경을 만들어 아동의 기본적 권리와 복지 증진에 기여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정책입니다. 국회 합의 과정 중에 부모의 소득 기준 상위 10%를 제외하고 지급하게 됐지만, 성남시에서는 기존 취지를 구현하기 위해 '아동수당 플러스' 제도를 도입해 차별 없이 아동수당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현재 정부에서도 아동수당 100% 지급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고, 국회 차원의 논의 필요성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성남을 시작으로 전국 아이들이 차별 없이 아동수당을 받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또 우리 성남은 아동수당의 지급을 통해 지역경제가 활성화되는 효과를 도모하기 위해 체크카드형 지역 화폐의 지급 방식을 택했습니다. 처음에는 종이상품권으로 지급하려다 불편하다는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체크카드로 11만원을 지급하는 방법을 선택했어요.

처음에는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는데, 어머니들을 직접 만나 대화를 많이 나눴습니다. 반대하는 플래카드를 들었던 분들이 나중에는 애 많이 썼다면서 동의해주셔서 참 고마웠습니다.


요즘 젊은 주부들, 시장님 세대와는 또 다르죠?
용감하고 당차고 똑똑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만만치 않죠. 20대는 취업이 힘드니 결혼하기도 어려워요. 지금 고생하면 30대 이후에는 좀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으면 좌절감을 느끼게 되죠. 30대 여성들은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둬야 하나 고민을 많이 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것도 힘들고 직장을 유지하는 것도 힘들고.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함께 해결해야 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우리 사회가 많이 응원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젊은 시절, 어린 시절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운 좋게도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부족함 없이 자랐습니다. 그런 행운을 누린 덕분에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살았던 신림동은 다양한 계층이 얽혀 살던 곳이에요. 초·중·고등학교를 신림동에서 다녔는데 친구들 중에는 가정형편이 굉장히 어려운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게 제 평생의 화두가 됐다고 볼 수 있어요. 왜 저 친구는 학교를 더 이상 다닐 수 없을까? 왜 저 친구는 도시락을 싸 올 수 없지? 이런 것에 궁금함이 생겼고 간혹 분노도 느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진지한 고민을 하셨던 거네요.
'왜 차별을 받아야 하지?', '왜 나와 다르지?' 이런 고민을 했어요. 지금도 모든 아이는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사실 제가 어렸을 때는 모든 아이가 존중받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저는 존중받고 자란 덕분에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편입니다. 힘든 일이 있어도 사람을 따뜻하게 보는 힘이 생긴 것 같아요. 자신이 존중받고 있으면 왜 타인은 존중을 못 받는지 고민하게 됩니다. 반대로 자신이 학대받으면 타인이 학대받는 것에 대해서도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아이들이 존중받는 행복한 마을을 만드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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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는 사회학을 전공하셨죠? 왜 사회학을 전공으로 선택하셨나요?
프랑스의 유명한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의 저서 중에 <자살론>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사회를 사회통계적으로 들여다본 책인데, 고등학교 1학년 때 이 책을 읽고 정말 매력을 느꼈어요. 뒤르켐 덕분에 사회학자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12년 동안 집중해서 공부를 했으니 대학에 들어가면 자유롭게 제가 하고 싶은 공부도 하고 친구들과 와인 마시면서 학문과 사회에 대해 진지한 토론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현실은 달랐던 거군요.
부모님이나 친오빠가 저를 잘 에워싸고 보호해주었기 때문에 당시 사회가 얼마나 거칠고 폭력적인지를 몰랐죠. 그래서 현실을 마주하자 분기탱천하게 된 겁니다. 대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제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걸 봤어요. 데모를 하던 중 쫓기다가 발을 헛디뎌 떨어지는 것을 눈앞에서 보고도 도망쳤어요. 최루탄이 터지고 전경이 몰려드니까 너무 무서워서 도망쳤는데,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도망치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도망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어요. 모든 사람이 존중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나는 도망치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게 대학생 때였고, 결국 여기까지 온 겁니다.

저는 우리의 미래인 지금 20~30대들이 진심으로 존중받고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들이 나중에 40~50대가 돼서 이 사회를 이끌어갈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존중받았던 경험은 정말 중요해요. 지금 20~30대가 세상을, 그리고 사람들을 따뜻하게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힘든 상황에서도 사람을 따뜻하게 보기 위해서는 엄청난 힘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자기 존중이 없으면 쉽지 않죠. 제가 아이들과 청소년, 청년들의 도전과 삶을 조금이라도 응원하고 싶은 이유입니다. 바로 그들이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굉장히 열심히 하셨다면서요?
학생운동을 하다 감옥에 갔다 오고, 37살에 대학교 4학년부터 다시 시작했어요. 15살 어린 친구들과 함께 공부했죠. 연구실에 침대 하나 가져다 놓고 김밥을 먹어가면서 공부만 했어요. 그래서 어린 학생들이 처음에 비아냥거리면서 붙여준 별명이 '전교 1등'이었어요. 이모라고 불러야 할지 아줌마라고 불러야 할지 고민했다고 하더군요. 교수 중에는 후배도 있고 친구도 있었어요. 저는 빨리 정착하고 생계를 꾸려야 한다는 생각에 공부만 한 거죠. 어린 학생들이 영어도 잘하고 너무 똑똑하니까 그들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어요. 시간이 지나서 토론도 하고 모임도 하고, 대학원 자치회 일을 도와주면서 서로 알게 됐고, 학위를 마칠 때는 굉장히 친해졌죠. 저는 석·박사를 하면서 후배들과 함께 공부한 7년 동안 정말 행복했어요. 감옥에 있는 동안 큰 수술을 두 번 받고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정신적·육체적으로 상처가 있었는데 학교에서 보낸 7년의 시간이 저에게는 치유의 시간이었죠.

정치에 입문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연구소에서 일하면서 업계에서는 꽤 유명 인사가 됐어요. 2011년에 여야 정치인들로부터 경제와 일자리 문제에 대한 특강 요청이 많이 들어와 특강을 했습니다. 그러다 2012년에 민주당 비례대표가 된 거죠. 정치가 뭐 어렵겠냐 생각하고 덜컥 정치에 입문했어요.

조국 수석이 제 친구인데, 그는 정치에 대해 저보다 훨씬 많이 알고 있었죠. 나중에 "정치가 전쟁이라는 걸 알면서도 왜 나에게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냐"고 따졌더니 자기는 못 하지만 "너는 할 수 있는 사람이라서 그랬다"고 하더군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세상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청년 안전망이나 여성 정책 등 일자리 중심으로 뭔가 해보고 싶었죠. 사람이 좀 더 존중받는 일터와 복지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어요. 연구자보다는 정치인이 더 빠른 길이라고 생각해서 덜컥 하게 된 겁니다.

정치를 해보니,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기 위해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꿈을 계속 갖는 거라는 걸 알겠더군요. 꿈을 갖고, 그 꿈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포기하지 않는 건 제 몫입니다. 하지만 그 이상은 하늘의 뜻이에요.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국회의 정치 활동과 기초단체장의 정치 활동은 좀 다른가요?
정치라는 건 같지만 정치의 형식이나 내용이 많이 다릅니다. 기초단체장은 시민의 삶을 살피는 겁니다. 이를 위해서는 첫 번째로 사람을 정말 좋아해야 합니다. 사람에게 관심이 많고 사람을 좋아해야 하죠. 두 번째는 듣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세 번째로는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이해 갈등이 있을 경우, 그 모두를 수용하면서도 나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릇을 비우되, 그릇을 깨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24시간이 모자랄 것 같은데, 휴식 시간이 생기면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저는 영화를 정말 좋아해요. <스타워즈> 시리즈나 <헝거게임> 시리즈, <매트릭스> 같은 SF나 액션 영화를 좋아합니다. 마블 시리즈가 새로 나온다고 하면 가슴이 뛸 정도예요.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새 영화가 나오면 예매를 하기도 합니다. 어릴 적 꿈도 영화감독이나 여행가가 되고 싶었죠. 미술관에 가는 것도 정말 좋아해요. 또 하나는 동물원의 곰 우리 앞에서 하염없이 곰을 보는 걸 좋아합니다. 어릴 적에 곰이 머리와 몸을 흔들면서 춤을 춘다고 생각했어요. 우울하거나 슬플 때 곰이 저를 위로해준다고 생각했죠. 나중에 알고 보니 안타깝게도 스트레스를 받아서 이상행동을 하는 거였는데 말이죠. 그래도 여전히 곰을 좋아합니다.

추석 연휴에 시간이 된다면 용산 국립박물관을 둘러보고, 제가 좋아하는 시립미술관도 가보고, 덕수궁 돌담길도 걷고 싶어요. 하루쯤은 북촌의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면서 여유를 즐기고 싶습니다.


시장님의 피부 나이가 30대로 나왔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정말 피부가 좋아요.
한 행사장에서 인공지능 얼굴 인식 시스템으로 각자의 피부 나이를 알려줬는데, 문재인 대통령은 60대 남성으로 나오고 저는 30대 여성으로 나왔어요. 그래서 다들 빅데이터 분석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농담한 적이 있어요.(웃음) 부모님이 피부가 굉장히 좋으신데 그걸 물려받은 거죠. 자기 전에 기초화장품을 듬뿍 바르고 잡니다. 화장하는 법도 배워보려고 동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정말 어려워요. 사실 운동도 하고 싶은데 시간이 나질 않습니다. 자전거 타는 것과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연구원으로 일할 때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올레길을 걸었어요. 사실 제가 보기와는 다르게 액티비티를 좋아합니다. 수영도 좋아하고 스킨스쿠버 자격증도 있어요. 오래전에는 스킨스쿠버를 하면서 태평양 바다를 누빈 시절도 있죠.


연애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죠?
많은 분이 아시는 것처럼 제가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 이혼을 했어요. 국회에서 일할 때도, 청와대에서 일할 때도 연애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죠. 실제로 소개팅을 하기도 했습니다.(웃음) 잘 안 됐지만 말이죠. 제가 원하는 남자의 조건은 데이트 비용을 나눠서 낼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밥벌이만 하면 되고, 저보다 건강했으면 좋겠고, 대화가 통하는 남자면 좋습니다. 조건이 까다롭지 않은 것 같은데도 사람 만나는 게 어렵더군요. 저는 사랑하고 사랑받는 걸 굉장히 좋아합니다. 시장직을 맡고 있는 동안은 그럴 여유가 없어 힘들지만, 나중에 다시 노력해볼 생각입니다.


다시 공적인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하나 된 성남'을 이야기하시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성남은 불균형이 심한 도시입니다. 12만 명의 강제 이주로 도시가 들어섰고, 원도시와는 무관하게 분당 신도시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격차가 있을 수밖에 없죠. 한 건축가가 성남은 "다름의 어울림"이 콘셉트가 돼야 할 것 같다는 제안을 했는데, 저도 그 의견에 동의합니다. 다름과 격차를 인정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모든 사람이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을지 고민하는 거죠. 아이들이 원도심에 살든 신도심에 살든 상관없이 모두 존중받기를 바라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든 부잣집에서 태어났든 존중받기를 원하는 겁니다.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성남 판교가 4차산업 혁명의 메카라고 합니다. 제가 기업이나 전문가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습니다. "2·3차 산업혁명 덕분에 대한민국이 엄청나게 성장했지만 양극화와 불평등이 커진 것도 맞다. 최소한 4차 산업혁명은 양극화와 불평등을 넘어서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그 대안을 만들자고 제안하죠. 어차피 사람이 하는 일이니 우리가 의도적으로 기획을 하자는 겁니다. 결국 사람이 기계를 만들고 테크놀로지를 사용하고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거라면 모든 사람을 존중하는 그런 설계를 해보자는 거죠. 저는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테크놀로지가 단순히 차가운 금속이 아니라 양극화와 불평등을 넘어서는 정말 따뜻한 인간의 모습일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 시도를 계속해볼 생각입니다.


앞으로 성남시를 위해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요?
아동수당이 한 고비를 넘겼으니, 이제는 '초등 돌봄'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초등학교 아이들을 키우는 여성들의 입장에서는 두 번째 경력 단절의 위기라고 할 정도로 어려움이 큽니다. 아이들도 제대로 케어를 받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정말 0~12세 중요한 시기의 아이들을 제대로 잘 돌보고 싶어요. 부모와 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하고, 제가 앞으로 집중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또 제가 청년명예부시장 제도를 약속했습니다. 청년명예부시장을 뽑고 청년위원회를 제대로 구성해 젊은이들에게 스스로의 삶을 결정하는 기회와 자리를 마련해주고 싶습니다.

저는 시장 임기를 마쳤을 때 정말 따뜻하게 진심으로 시민과 아이들의 삶을 하나하나 살피는 시장이었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이를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할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먼센스>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존중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정말 소중한 사람이고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제가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은수미 경기도 성남시 시장은…

은수미 경기도 성남시 시장은…


서울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 청년 유니온 자문위원 등을 거쳐 제19대 국회의원이 됐다. 더불어민주당 경기도당 여성위원회 위원장과 대통령비서실 여성가족비서관 등을 역임하고 현재 경기도 성남시 시장으로 재직 중이다.

CREDIT INFO
취재
박현구(프리랜서)
사진
김정선
2018년 10월호
2018년 10월호
취재
박현구(프리랜서)
사진
김정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