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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고 차분한, 현빈

손예진은 현빈을 ‘고요하고 차분한 사람’이라 말했다. 현빈은 고요하고 차분한 모습 안에 연기에 대한 뜨거움이 있다고 했다.

On September 2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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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빈은 반듯하다. TV에서 그의 얼굴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뉴 논스톱4>나 ‘삼식이 신드롬’을 일으킨 <내 이름은 김삼순>은 물론, 아직은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시크릿 가든>에서도 현빈은 기본적으로 부유한 집안에서 잘 교육받은 반듯한 청년의 모습을 보여줬다.

영화에서의 현빈은 조금 달랐다. <만추>의 ‘훈’과 특히 군 전역 후 출연한 <역린>과 <공조><꾼> 등의 최근작까지, 그는 드라마에서 보여주던 반듯한 모습과는 다른 다양한 얼굴을 대중에게 보여주고 있다.

<협상>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현빈이 연기한 ‘민태구’는 이유도, 목적도, 조건도 없는 사상 최악의 인질극을 벌이는 악한 인간이다.

“재미있었어요. 평소 쓰지 않던 말투를 쓰고 ‘태구’처럼 제멋대로 행동했어요. 주변에서도 ‘태구가 저런 애니까’라는 시선으로 봐줘서 다른 작품에 비해 현장에서 좀 더 자유로웠던 것 같아요.”

현빈은 <협상>으로 첫 악역에 도전했다. 이종석 감독은 현빈을 캐스팅한 것에 대해 의외성을 염두에 뒀다고 말했다. “처음엔 당연히 거칠고 욕을 잘할 것 같은 배우를 떠올렸어요. 그런데 시나리오를 퇴고하면서 아예 캐스팅부터 반전을 주면 어떨까 싶었죠. 안 어울릴 것 같지만 그래도 왠지 거칠게 욕하는 것을 보고 싶은 배우랄까. 그러자 현빈이 보이더라고요. 실제로는 얼굴도 성격도 매우 반듯한데, 눈빛 속에 묘한 반항기가 있어요.”

<협상>은 한국 영화사상 최초로 ‘협상’이란 소재를 전면에 내세웠다. 용병 시절 이라크, 리비아, 필리핀 등지에서 전투를 휩쓸고 다닌 전설의 인물 민태구는 태국에서 한국 국적의 경찰과 기자를 납치한 후 협상 대상자로 ‘하채윤(손예진 분)’을 지목한다. 이유도, 목적도, 조건도 알 수 없는 사상 최악의 인질극 상황에서 ‘협상가’와 ‘인질범’이 제한된 공간과 시간 속에서 오직 모니터만을 사이에 두고 팽팽하게 맞서는 대치를 그린다.

<협상>에 출연하기로 했을 때 현빈은 이미 <창궐>의 출연을 결정한 상태였다. 짧은 시간 두 작품에 출연하는 건 그만큼 휴식 시간도, 준비 기간도 줄어든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협상>에 출연하기로 결정한 이유에 대해 현빈은 “작품 색이 매우 달라 두 작품 모두 놓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히 <협상>의 경우 소재에 끌렸다고.

“협상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가 아직 국내에는 없었고, 이원 촬영이라는 방식도 마음에 들었어요. 관객들이 영화를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죠.”

<국제시장> 조연출 시절 이원 촬영을 경험한 이종석 감독은 자신의 첫 영화 <협상>에서 영화를 이끄는 주요한 촬영 기법으로 이 방식을 채택했다. 뉴스의 이원 생중계와 비슷한 이 방식은 각각 다른 장소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을 실시간으로 촬영하는 기법이다. 보통 상대 배우가 모니터 너머에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연기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이원 촬영은 배우들이 서로의 모습을 보며 연기해 좀 더 생생한 감정을 담아낸다. 그만큼 연기의 호흡도 길었다고.

“처음엔 컴퓨터 모니터로 상대방을 봐야 하고, 사운드도 인이어로 들어야 해서 이질감도 있었어요. 적응한 후에는 마치 연극인 것처럼 연기했죠. 태구가 있던 컨테이너가 마치 연극 무대 같고 그 위에서 일인극을 하는 기분이었죠. 중간부터 촬영에 들어가는 경우 없이 중간에 혹시 틀리더라도 처음부터 끝가지 촬영을 진행했어요. 그래서 더 연극처럼 느껴지기도 했죠. 연기하기에 좋은 부분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좀 틀린 부분이 있어도 그냥 넘어가야 해서 아쉬움이 남기도 했어요.”

어떤 장면이 가장 아쉬웠느냐는 질문에 현빈은 “모두 아쉽다”고 대답했다.

“촬영장에 가기 전, 그날 할 연기에 대해 몇 가지 버전을 염두에 둬요. 그 중 한 가지를 선택해 연기하는데 끝낸 후엔 ‘이렇게 해볼걸’ 하고 생각되는 거죠. 시간이나 공간의 제약 등이 있으니 제가 해보고 싶다고 다 해볼 순 없는 거잖아요? 제가 한 연기가 정답이 아닐 수도 있는데. 그래서 항상 아쉬운 마음은 있어요. 제 연기는 이 아쉬운 것을 줄여가는 싸움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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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빈은 줄곧 세트에서 진행된 촬영의 고충도 토로했다.

“세트 촬영의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날짜나 시간 제약에서 벗어나긴 하지만 장시간 세트 안에 있으려면 답답하거든요. 더군다나 <협상>은 컨테이너 세트장 안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외롭기도 했어요. 그래서 점심시간이 정말 행복했어요. 야외에서 피크닉처럼 먹었거든요.(웃음)”

평소 차분하기로 인터뷰에서 현빈은 전과 달리 조금 편안한 모습이었다. 유머 감각이 부쩍 는 것 같다고 말하니 편한 사람들과 함께한 작업의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협상>은 촬영할 때도 즐거웠어요. 연기할 때는 보통 다른 공간에 있으니까 현장에서 소통이 많지는 않았지만 영화를 준비하면서 예진 씨와 시간을 자주 가졌어요. 그 시간이 촬영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던 것 같아요.”

줄곧 모니터로만 소통하던 태구와 채윤이 영화의 막바지에 드디어 직접 대면하게 된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그 장면이 마치 내내 기다리던 결말의 하나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예진 씨와 함께 서 있는 장면이 좋았다고 말하는 분이 많아요. 예진 씨와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나중에는 적으로 만나지 말고 로맨틱 코미디나 멜로드라마 같은 다른 장르에서 보자고.”

한 인터뷰에서 손예진은 현빈에 대해 “차분하고 고요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현빈은 그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예진 씨도 어느 부분 똑같은 것 같아요. 겉으로는 고요하고 차분해 보이죠. 그런데 속에는 용광로 같은 게 있어요. 연기에 대한 많은 것이 용광로처럼 끓고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 다른 연기를 하는 모습도 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기더라고요."

실제로 현빈은 손예진을 ‘손 배우’라 부르고 손예진은 현빈을 ‘빈 씨’라고 부른다. 충분히 친해진 사이임에도 서로 말을 놓지 않는다고.

“처음부터 말을 놓는 성격은 아니에요. 서로 공감대가 형성되고 스스럼없을 정도가 되면 그때쯤 자연스럽게 말을 놓게 되는 것 같아요. 기준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빨리 친해지는 편은 아니죠."

차분하고 고요한 사람이라는 현빈이 조용히 말을 이어나가는 모습을 보니 화를 전혀 내지 않는다는 그에 대한 소문이 거짓이 아닌 것 같았다.

“아유. 화 내죠. 알게 모르게. 그런데 제가 생각해도 크게 화를 내는 경우는 극히 드문 것 같아요. 그냥 그럴 수 있지 하며 넘어가려고 노력해요. 속으로 몇 번씩 되뇌어요. ‘그럴 수 있었을 거야. 그럴 수 있지’ 그럼 화가 가라앉은 것 같아요.”

‘보살’인 것 같다는 말에 현빈은 “한번 해보세요. 정말 괜찮아져요. 그런데 정 안 되면 화내야죠.(웃음)”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런 현빈이 극 중에서는 꽃무늬 셔츠에 플립플롭, 일명 ‘조리’를 신고 화가 나면 곧잘 욕도 한다. 쌍욕을 하며 빈정거리는 모습엔 얄미운 기분도 들었다. 그만큼 캐릭터를 잘 소화했기 때문일 것이라 말하니 현빈은 특유의 단정한 말투로 “죄송하다”고 말했다. “고민 많이 했어요. 여자한테 욕하는 장면도 있어서 과연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걱정되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태구 입장에서는 꼭 필요한 장면이라 혹시라도 영화를 보고 기분이 상하실 분들에겐 죄송할 따름입니다.”

깍듯한 모습을 보니 그의 악역 연기가 더욱 놀랍게만 느껴졌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나쁜 행동을 하니 민태구가 악인인 것은 맞아요. 그렇지만 단순히 악역이라는 이유로 <협상>에 출연한 것은 아니에요. 관객에게 제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죠. 지금이랑 다른 모습이라면 뭐든 좋아요. 겹치는 캐릭터도 분명 있을 텐데 어떤 큰 맥락에서는 비슷한 캐릭터라 할지라도 그걸 다른 방식으로 파고들어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싶어요.”

현빈은 민태구가 단순한 악역이 아닌, 연민이 느껴지는 인물로 그려지기를 바랐다고 한다.

“채윤이 태구를 봤을 때 연민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관객들도 그렇고요. 태구가 시종일관 나쁜 모습만 보여주기 때문에 과연 연민이 생길까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정답을 찾아 표현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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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역할에 대한 갈증

현빈은 지난해부터 <공조><꾼> 등 다양한 장르를 선택했다.

“다른 걸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죠. 제가 진짜 하고 싶은 작품인지가 중요해요. 몇 달 동안 한 작품에만 집중하는데, 만약 제가 작품이 아닌 다른 상황이나 여건들 때문에 연기해야 한다면 저는 그 기간을 못 버틸 것 같아요. 제가 끌리는 것을 어떻게 더 끌리게 해서 관객에게 보여줄지 고민하는 순간이 제게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거든요.”

현빈은 최근 상업영화 위주의 작품 선택으로 “대중성만을 노리는 것이 아니냐”는 일부의 평가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안전한 작품에만 출연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저는 반대 의견이에요. 상업영화이기 때문에 만약 그 기준점에 도달하지 못하면 더 안 좋은 결과가 초래되잖아요. 오락적인 요소가 있는 작품을 선택하고 있는 건 맞아요. 관객들이 두 시간 동안 일상을 벗어나 다른 생각 안 하고 즐길 수 있는 것도 영상 매체가 지닌 하나의 목적이 아닐까요? 그걸 잘 만드는 게 연기자로서의 역할인 것 같다는 생각이 어느 순간 들었어요. 예진 씨도 관객이 다른 생각이 안 들고, 스마트폰을 안 볼 수 있는 그런 시간을 만들어드리고 싶었다고 하더라고요. 같은 생각이에요.”

현빈이 가장 좋아하는 질문은 “왜?”라고 한다. 한 장면을 위해 서너 가지 다른 연기를 구상하며 자신이 맡은 캐릭터가 극 중 하는 말이나 행동이 어떠한 인과 속에서 초래된 것인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다. 현빈이 연기한 태구의 행동은 어떠한 작은 것이든 무엇 하나 이유가 없는 것은 없다. 현빈도 그렇다. 현빈의 행보에 이유가 없는 것은 없다. 현빈의 다음 작품이 궁금해지는 이유다.

CREDIT INFO
에디터
김안젤라
사진
CJ엔터테인먼트
2018년 11월호
2018년 11월호
에디터
김안젤라
사진
CJ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