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프라테시(GamFratesi)는 1975년에 태어난 덴마크 출신의 스틴 감(Stine Gam)과 1978년에 태어난 이탈리아 출신의 엔리코 프라테시(Enrico Fratesi)가 만나 2006년에 결성한 디자인 듀오다. 각자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건축 공부를 하던 이들은 이탈리아의 페라라(Ferrara) 대학 건축학부에서 마지막 프로젝트를 통해 만나게 되고, 덴마크의 아후스 건축학교(Aarhus School of Architecture)에서 함께 공부하며 운명 같은 이끌림으로 함께 스튜디오를 해보기로 한다. 그들은 건축을 공부했지만 건물을 설계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공간에 어울리는 물건들을 직접 디자인하는 것도 건축가의 일이라는 생각으로 가구와 조명 디자인을 시작한다. 그리고 12년이 흐른 지금, 그들은 덴마크와 이탈리아라는 서로 다른 나라의 스타일을 믹스한 글로벌한 디자인을 선보이며 구비(Gubi), 리네 로제(Ligne Roset), 라이트이어스(Lightyears), 스웨데세(Swedese), 카펠리니(Cappellini) 등 유명 가구 브랜드와 함께하는 세계적인 디자인 듀오이자 커플이 됐다. 그들의 스튜디오는 현재 덴마크 코펜하겐에 자리하고 있다.
세상에 감프라테시의 이름을 알리다
감프라테시의 디자인 중 가장 처음으로 상업화된 제품은 스웨덴 가구 브랜드인 스웨데세의 ‘카툰(Cartoon)’ 체어다. 그들은 우연히 방문한 한 갤러리에서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고 영감을 얻어 이 의자를 디자인했다고 한다. 카툰 체어는 일반적인 의자의 비율과는 다르게 매우 큰 등받이와 작은 보디를 갖고 있는데, 재미있게도 이것 또한 마치 어린이의 신체 비율처럼 보인다. 등받이에 달린 작고 정형화되지 않은 단추 4개도 만화 캐릭터처럼 생동감이 넘친다. 그들의 이름이 세상에 더욱 알려진 것은 프랑스 브랜드 리네 로제의 일인용 책상 ‘리라이트(Rewrite)’ 덕분이었다. 2011년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에서 공개된 이 제품은 오픈된 공간에서도 작지만 독립된 공간을 만들 수 있는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담긴 책상으로, 자신만의 안식처를 찾는 현대인들에게 큰 위로가 되어주는 감성적인 제품이다. 감프라테시는 최근 유서 깊은 덴마크 조명 브랜드 루이스 폴센(Louis Poulsen)의 신제품 ‘유(Yuh)’ 램프를 디자인했는데, 이 사실에 많은 사람이 놀라워했다. 아르네 야콥센, 폴 헤닝센 같은 거장들의 아이템이 포진한 브랜드인 만큼 신진 디자이너가 이곳의 신제품을 출시하는 것은 여러모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잘 아는 감프라테시는 루이스 폴센의 스테디셀러인 AJ 램프에서 영감을 받아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의 램프를 디자인함으로써 그들의 스타일도 살리고 브랜드의 전체적인 이미지 또한 해치지 않는 명민함을 보여주었다.
북유럽 디자인 브랜드와의 협업
감프라테시는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높은 북유럽 브랜드와 인연이 깊다. 특히 덴마크 브랜드 구비는 그들의 스타일을 잘 이해하는 오랜 파트너인데, 구비의 베스트셀러는 대부분 감프라테시 디자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중 ‘TS’ 테이블은 두툼한 상판과 가느다란 다리의 상반된 느낌이 조화로운 제품이다. 상판은 자연스러운 마블 패턴의 대리석과 매끈한 컬러 유리 등 취향대로 고를 수 있다. ‘비틀(Beetle)’ 체어는 넓은 좌판과 몸을 감싸주는 듯한 디자인 덕분에 다른 의자보다 한층 편안하게 앉을 수 있다. 딥 그린, 라이트 핑크, 블루 그레이의 무디한 컬러들은 어떻게 믹스해도 아름다우며, 소재도 리넨과 벨벳 같은 패브릭, 가죽 등 다양하게 사용했다. 등 전체를 감쌀 만큼 넓은 등받이,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좌판의 ‘마스쿨로(Masculo)’ 라운지 체어도 매력적이다. 덴마크 조명 브랜드인 라이트이어스(Lightyears)의 ‘서스펜스(Suspence)’ 펜던트는 겉모습은 무척 단순해 보이지만 램프와 줄의 물리적인 힘을 생각해 과학적으로 디자인한 조명이다. 비슷한 듯 다른 ‘서스펜스 노마드(Suspence Nomad)’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유목민을 뜻하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조명은 펜던트 위의 작은 손잡이를 사용해 집 안 어디든 자유롭게 옮겨 다닐 수 있다. 1980년대 스테레오 앰프 버튼에서 영감을 얻은 ‘볼륨(Volume)’ 램프는 이름 그대로 손잡이를 돌리는 것만으로 빛의 강도를 쉽게 높이고 낮출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때로는 트렌디하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감프라테시가 디자인한 아이템에는 분명 전통적인 북유럽 디자인만의 분위기가 있지만, 트렌디하면서도 유머러스한 그들만의 느낌도 함께 배어 있다. 이탈리아 브랜드 GTV와 만든 ‘타르가(Targa)’ 소파는 요즘 가장 핫한 케인(Cane, 나무줄기를 가구 재료로 사용하는 것) 가구다. 이 제품은 벤트 우드(Bent Wood, 나무에 증기를 가해 원하는 모양으로 성형하는 것) 가구로 유명한 토넷(Thonet)의 후손들이 운영하는 브랜드답게 벤트 우드로 틀을 만들고 세련된 패브릭과 케인 소재로 포인트를 더했다. 같은 브랜드의 ‘알레고리(Allegory)’ 데스크 역시 거울 대신 거대한 케인 소재 오브제를 전면에 매치한 제품으로, 클래식과 트렌디한 분위기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스웨데세의 ‘바피(Baffi)’ 빗자루는 감프라테시의 유머러스한 코드를 읽을 수 있는 대표적 아이템이다. 일반적인 빗자루와 차원이 다른 이 제품은 일자형의 스틱이 아닌 두 개의 스틱이 하나로 연결돼 고리가 되는 디자인으로, 벽에 기대지 않고 못이나 고리에 걸어 보관할 수 있어 편리하다. 또한 리네 로제의 ‘피크닉(Picnic)’ 테이블은 이름 그대로 클래식한 피크닉 바구니 디자인을 닮은 귀여운 아이템이다. 누군가는 그들의 디자인을 ‘뉴 데니시(New Danish)’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글쎄, 그들은 어떠한 틀도 없는 그저 ‘감프라테시스러운’ 디자인을 오늘도 이어가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