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노인을 싫어하는 이유가 세 가지 있어요. 첫 번째는 자꾸 어디가 아프다고 하거든. 젊은 사람들은 힘이 넘쳐나는데 어디가 쑤시고 잠도 안 오고 어쩌고 하니까 싫은 거지. 두 번째는 한 소리를 또 하고 또 해. '황혼 연설'이라고 하죠. 세 번째는 젊은 사람들한테 '왜 결혼 안 하냐' '왜 취직 안 하냐'고 묻는 거야. 난 이 세 가지를 모두 안 하기로 했어."
이어령. 작정하고 세어보니 직함이 무려 17개다. 문학평론가, 작가, 시인, 학자, 교수, 언론인, 문화기획자, 문학지 주간…. 그만큼 그 어느 하나도 그의 정체성을 명료하게 드러내는 타이틀은 없다. "난 그냥 창작가라고 하면 돼요." 정작 당사자는 간단명료하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늘 그에게 해답을 요구했다. 현안이 있을 때마다 묻고 또 묻는다. 이 인터뷰는 조금 다르게 접근했다. 지식과 명예를 향유하는 삶을 살아온 86세의 거대 지식인에게, '당신의 지난날'을 물었다. 그 삶 속에서 누군가는 답을 찾을 것이다.
올해 회혼을 맞으셨습니다.
"마누라 말고 다 바꿔라"라는 말도 있는데 요즘 사람들은 거꾸로예요. 그래서 이혼율이 높아요. 우리 부부처럼 살면 60년 사는 건 우스워요. 첫째, 각자 일이 있어야 해요. 집사람도 대학 강단에 섰고, 글도 썼지요. 아내가 아이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만 했다면 아이들 크고 남편 실직하면 할 게 없어요. 처음부터 각자 독립적 세계를 가지고 만난 부부는 그럴 일이 없습니다. "따로, 또 서로"라는 말이 있어요. '따로' 자기 할 일을 하면서 '서로' 지내면 돼요. 부부란 서로 다른 곳을 보면서 한길을 가는 사람이에요. 같은 곳을 보면서 다른 길을 가는 게 제일 위험해요. 어쩌다 만난 나그네끼리 싸우는 거 봤어요? 부부가 그래야 돼요. 둘째, 사람은 반드시 언젠가는 헤어지고 죽어요. 그래서 일부러 헤어질 필요가 없어요. 헤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니까 야속해서 헤어지는 거지. 부부는 주식회사 1호예요. 보통 대주주가 주식을 40%도 안 가지는데, 부부 주식회사는 나는 네 것이고, 넌 내 것이라고 생각해 100% 주주 행세를 하는 거예요. 서로 15%만 가지고 있어도 그 회사는 잘 돌아가요.
두 분은 성향이 많이 다르신 것으로 압니다. 교수님은 7대의 컴퓨터를 사용하는 얼리어답터, 사모님은 새것에는 눈도 주지 않는 고가구 컬렉터이십니다.
우리 집사람은 올드 패션이지.(웃음) 사실 난 집사람이 고가구를 가져오면 탐탁지 않아요. 그 고가구 누가 쓰던 건지 모르잖아요. 비운의 부부가 썼는지, 사이좋은 부부가 손잡고 썼는지 알 게 뭐예요. 우리나라 여성들은 그렇잖아요. 가부장 시대에 살면서 고가구에 눈물 한 번 안 뿌린 여자가 어디 있겠어요. 고가구의 미를 모르는 게 아니에요. 나도 고가구를 집사람만큼 좋아하지만 나는 소설을 써서 그런지 상상력이 하늘을 날아가요. 비쌀수록 애환이 더 클 거예요. 시어머니, 재산, 남편…. 가구 안에 개켜 넣은 혼수 꺼내 보면서 얼마나 울었을까 싶어요. 그게 다르게 말하면 '한'이 서린 것일 수도 있다는 거죠. 내가 어려서부터 <전설의 고향>을 많이 봐서 그런가.(웃음)
5년 전 교수님을 인터뷰했을 때 당시 제가 사용했던 무선 키보드에 관심을 보이더니, 그 자리에서 인터넷으로 구입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얼리어답터 성향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요?
우리 아버지가 그 옛날에 새로운 기술의 신상품이 나오면 다 사 오셨는데, 반년도 못 가서 고장 나요. 그게 내 장난감이 되는 거죠. 우리 자녀들도 그 피를 물려받아 어렸을 때부터 매뉴얼 없이 직관적으로 기계를 척척 잘 만져요. 지금은 내가 몸이 온전치 못해 해외로 못 다니지만 예전엔 일본에 가면 아키하바라 전자상가부터 찾아갔어요. 첫 출시하는 신제품은 결함이 많아 프로들은 사지 않아요. 나처럼 호기심 많고 조급한 얼리어답터들만 밥이 되는 거죠. 하지만 이런 얼리어답터 때문에 신상품이 계속 기술을 보완해갈 수 있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나도 IT업계와 그 발전에 일조를 한 셈이지요.
누군가 내게 "행복하십니까?"라고 물으면 "20대 때 만난 한 여성하고 지금껏 같이 살고 있기에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래 함께 살아서 할 이야깃거리가 없을 때 나누는 말, 그게 삶의 알맹이예요.
요즘 새롭게 시작한 일이나 관심사가 있으신가요?
미국 IT(정보기술) 전문지 <와이어드>라는 잡지가 있어요. 새로운 것이 아주 많이 나와요.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더위 속에서 그 책을 보다가 생각했어요. 우리의 '죽부인'과 '사물 인터넷(IoT)'을 결합하면 대단한 물건이 나오겠다는 생각이오. 올 8월에 출시될 제품이라는데, 심장박동처럼 움직이는 물건을 안고 자면 마치 엄마 품에 안긴 아이처럼 불면증 없이 잘 잔다고 합니다. 수면제나 우울증 약을 먹는 것보다 부작용도 없고 효과는 더 좋겠지요. 인터넷과 연결되니까 LED로 발광도 되고 스마트폰처럼 음악도 듣고, 알람도 되죠. 만약 이걸 죽부인과 결합하면 여름엔 또 얼마나 시원하겠습니까. 또 하나. 강신재 선생의 소설 <젊은 느티나무>를 보면, 매혹적인 젊은 남성을 묘사하는 대목에 비누 냄새가 난다는 내용이 있어요. 그걸 홈서비스를 하는 '홈로봇'에 적용하는 거예요. 비누 냄새 풍겨주는 기술은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방향제처럼 일정 시간마다 쏘면 되잖아요. 향기 로봇을 만드는 사람, 들어본 적 있어요? 그런 걸 생각 안 하고 사람 눈빛, 손짓 같을 걸 똑같이 하려고만 해요.
지적 호기심이 여전하십니다.
내가 아무리 참신한 글을 써도 읽는 사람이 참신하지 않다고 하면 끝이에요. 하지만 물건은 안 그래요. 스마트폰을 조금만 새롭게 만들어도 난리가 나요. 글 쓰는 사람이 지적 호기심을 가지고 새로운 걸 시도해도 한계가 있구나, 싶어요. 올드 제너레이션의 지적 호기심과 스마트폰 하는 엄지족의 지적 호기심은 애초부터 다르다는 것도 느낍니다. 한데 엄지족은 호기심은 있어도 지적 호기심이 많은 것 같지는 않아요. 호기심도 아니야, 남이 하니까 하는 거지. 나는 '쪽팔리다'는 말을 제일 싫어해요. 자기가 하고 싶지 않아도 쪽팔리니까 한다는 거잖아요. 나는 남의 눈치, 남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내가 좋은 것이면 목숨을 걸었어요. 새천년준비위원장으로 있을 때 즈문둥이(2000년 1월 1일 처음 태어난 아기)가 태어나는 장면을 전 세계에 생중계했습니다. 빨리 태어나도 늦게 태어나도 방송 사고가 되지만, 나는 0.1초에 건 거예요. 귀신도 못 한다는 그 모험을 성공시켰어요. 생명이 자본임을 세계에 알린 겁니다.
요즘 지식인들은 자기 복제를 많이 하는데, 교수님께서는 끊임없이 공부를 하십니다. 그 에너지는 어디서 나옵니까?
이렇게 말을 하다 보면 열정이 생겨요. 강연할 때도 처음엔 낮은 톤으로 말하기 싫은 사람처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점점 커져요. 마치 자동차 엔진이 열을 받아야 잘 돌아가듯이, 몸에서 에너지가 솟아나야 머리가 돌아가요. 그래서 내 사진을 보면 대부분 손을 내밀고 소리를 지르고 있어요. 그런데 난 에너제틱한 사진을 보면 싫어요. 쿨해야 지성인인데 야성인 같잖아요.(웃음) 그래요, 나에게 에너지가 있다면 그것은 식은 재를 다시 불붙게 하는 에너지 재생술일 겁니다.
어느 신문에서 읽었는데, 요즘 새우잠을 주무신다고요?
젊었을 때부터 글을 쓰면 예민해지니까 잠을 깊게 못 잤어요. 새우잠을 자도 고래 꿈을 꾸라는데, 나는 새우잠 자면서도 계속 원고에 쫓기는 꿈을 꿔요. 아무리 편안해도 넋 놓고 못 자는 거예요. 글 쓰는 사람이 비참해요. 뭘 하나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것에서 해방이 안 돼요. 글 쓰는 데는 1시간, 생각은 10시간 해요. 이제 고백하지만 글 쓰는 게 즐겁다는 건 거짓말이에요. 글 쓰는 사람은 전생에 죄가 많은 사람입니다. 나는 글을 쓰다가 안 써지고 괴로워지면 화장실에 가요. 마감 시간이라도 생리 현상은 어쩔 수 없잖아요. 가고 싶지 않은데도 스스로를 속이고 화장실을 수십 번 들락날락해요. 옛날에는 담배를 계속 태웠고요.
뜬금없는 질문입니다, '방탄소년단'을 아십니까?
이 친구들은 이미 사이버 세계에서 월드 스타였어요. 글로벌 네트워크 시대의 징후이죠. '방탄소년단'이 사이버 세상에서 현실 무대로 나와 공연을 하고 빌보드 차트에서 1위까지 차지하니까 나이 든 사람들까지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거예요. 우리 애가 좋아하는 가수들이 뭐길래 그러나,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증이 생긴 겁니다. 그 점에서 비틀스의 그것과는 달라요. 내 표현대로 하면 '방탄소년단'은 새로운 '디지로그' 문명이 낳은 신영웅이에요. 이 젊은이들은 자기가 생각한 대로 행동합니다. "행동이 곧 생각"이라는 캐나다 출신 미디어 이론가 마셜 매클루언의 말 그대로입니다.
젊은 친구들이 말하는 '혼밥'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원래 동물들은 모두 먹을 것이 있으면 혼자 숨어서 먹어요. 고릴라 같은 영장류만이 함께 식사를 합니다. 인간의 특성은 식구(食口)라는 말이 있듯이 식공동체라는 점에서 다른 동물들과 구별돼 왔습니다. 최초의 인간 집단은 사냥을 통해 자기가 잡은 먹잇감을 누군가와 나눠 먹으려고 동굴로 끌고 왔어요. 열매를 따서 혼자 먹지 않고 자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가지고 와요. 그게 바로 가족의 시작인 것이지요. 예수님을 보세요. 죽음을 앞두고 십자가는 혼자 짊어지고 갔지만 식사만은 제자들과 어울려 함께 했어요. 최후의 만찬이죠. 빵을 내 살, 포도주를 내 피라고 하면서 말이지요. 그런데 요즘은, 남편이 밥을 집에서 세끼를 먹으면 '삼식이'라고 하더군요. 거기다 간식까지 챙겨 먹으면 '간나세끼(새끼)'라고 한다잖아요. 혼밥의 시대는 곧 가족의 붕괴와 퇴화해가는 인류의 쇠락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산업화되면서 우리가 잃은 것이 많습니다.
가장 큰 것을 잃었습니다. 바로 '가족 붕괴'예요. 세계 최고의 저출산 국가가 됐습니다. 우리는 '가족' 때문에 기적을 만들었어요. 피난 가서 자갈치시장에 모여 다시 일어났지 않습니까. 이젠 버틸 지렛대가 없어요. 자식 안 낳지 결혼 안 하지…. 급속도로 사회가 변해 적응하고, 교육받고, 선택할 겨를 없이 헐떡거리면서 여기까지 온 거예요. 이건 옳고 그름이 아닌, 현상이에요. 한 템포만 늦춰 우리를 돌아봐야 합니다. 떠밀리지 말고 내가 어디로 가고 있고, 내가 누구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예전에 지방 도시의 문화 행사를 자문할 때, 여름 전력이 피크 타임인 밤에 10분만이라도 도시 전체에 불을 꺼보자고 제안한 적이 있어요. 우리는 '서울특별시'라고 하는데 특별시에 사는 사람들은 별 볼 일이 없어요. '별'을 볼 수 있는 지방 도시가 특별시라고 농담을 했지요. 불을 끄면 별이 보여요.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 돌아오지요. 도시 전체에 전깃불이 나가 어둠이 깔리면 별을 보는 시민들은 시인이 되고, 어둠이 뭔지 알게 될 거예요. 물론 실현되지 않은 아이디어가 됐지만요.
어렴풋한 생각이 대화를 통해 뚜렷해집니다.
오늘 우리가 나눈 이야기가 녹음되고 글로 쓰이는 건, 어제 없었고 내일도 일어나지 않을,
오늘 내 생각의 유일한 지문입니다.
늘 타인의 멘토 역할을 하셨습니다. 정작 교수님은 누구에게 길을 물은 적이 있나요?
그런 일은 없어요. 물론 어떤 훌륭한 사람에게 내 인생을 묻고 싶겠죠. 하지만 두 가지 이유로 못 해요. 마음의 멘토가 없으면 사람들은 점을 보러 가요. 소크라테스도 무녀들의 신탁을 믿었잖아요. 근데 난 얼굴이 알려져서 못 했어요. 옛날엔 글 쓰는 사람이 대중 스타여서 집사람과 극장에만 가도 난리가 났죠. 이 아무개가 여자랑 극장에 구경 왔다고 집사람에게 제보가 들어가는 거예요. 덧붙이자면 내가 젊어서는 또 제임스 딘처럼 멋있었거든. 내 사진을 보고 가슴 아파하던 소녀가 많았지.(웃음) 그런 이 아무개가 점을 보러 왔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고대 철학자를 통해서도 인생의 조언을 구할 수 있지 않습니까. 존경하는 철학자가 있으신지요?
내가 어려서부터 청개구리였어요. 갈릴레이가 재판장에서 나오며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혼잣말을 했대요. 혼자 한 말을 누가 들었지? 그렇다면 그것은 혼잣말을 한 게 아니잖나 싶었죠. 커서 안 건데 당시 그와 관련된 문헌은 어디에도 없어요.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했어요. 그래서 와트의 직업이 발명가인 줄 알았더니 증기기관 수리공이래요. 그렇다면 이미 증기기관이 있었던 게 아닌가요? 모든 사람이 숭배하는 아이콘에 대해 어려서부터 의문을 가졌으니 멘토가 없었던 거죠. 결국 내 삶은 내 것이고, 외롭거나 고통스럽더라도 남이 내 삶의 모델이 되거나 간섭할 수 없어요. 외로워도 내 세상입니다. 내 인생에서 멘토를 구하지 않은 것은 내가 훌륭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 사람도 또 다른 삶을 산 사람일 뿐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제일 싱거운 사람이, "어찌 하오리까?" 하고 물어보면 상담해주는 이예요. 그 사람도 집에 가면 똑같은 아빠고, 남편이고, 누군가의 친구인데 그 관계도 온전하지 않다는 거죠. 어떻게 남의 삶에 어드바이스를 합니까? 그래서 나는 나를 멘토라고 하는 이들도 부담스러울 때가 있었어요. 다른 이유 없어요, 행여 실망시킬까 봐.
되돌아보면, 존경받는 지성인으로 사는 삶은 어땠나요?
내가 23살에 문단에 나오고 언론에 많이 노출됐어요. 20대니까 길에서 까불고도 싶은데 누가 날 알아보면 어쩌나 하고 스스로를 가뒀죠. 그래서 파리에 갔을 때 기분이 굉장히 좋았어요.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옷도 아무렇게나 입고 자유롭게 다니고, 돌아다니다가 발이 아프면 맨발로 다녔어요. 오래전 유명한 소설가와 차를 타고 가는데, 광화문에 오니 내려서 걷자는 거예요.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는 게 좋대요. 사실 인기라는 게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그거, 별 관심 아닙니다. 거품 같은 인기에 맛을 들이면 스스로 힘들어져요.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예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글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글을 써야 합니다. 그 많은 눈동자를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하면 나중에 인기가 떨어졌을 때 고독함을 느낍니다.
'인터넷 시대'는 극단적입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얼마 전 컴퓨터가 고장 나서 AS 기사를 불렀어요. "와, 책이 왜 이렇게 많아요?" 하기에 "내가 이 아무개야" 하니까 대뜸, "뭐 하시는 분이세요?" 하고 해맑게 묻는 거예요. 글 쓰는 사람이라고 했더니 자기 아버지도 글을 쓴대요. "그래? 무슨 글을 쓰시니?" 했더니, "은행 사보에 글을 쓰세요" 하며 눈을 깜빡깜빡거리더군요. 이 아이는 내가 누군지 모르는 거죠. 그래서인지 대화하는 게 너무 재미있고 참신해 밥 먹고 가라고 했어요. 내가 누군지 모르니까 얼마나 귀엽고 대화가 자연스러워요. 이 시대의 흐름은 절대 유명 인사가 되면 안 돼요. '인터넷 시대'엔 아주 극단적인 일들이 일어날 수 있어요. 조금만 잘못해도 와전이 됩니다. 재심도 없고 일심에서 끝입니다. 숨어서 사는 슬기,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숲속 생활을 하는 도시 속의 은둔자들, 이런 것이 필요해요. 유명해지고 타인의 시선에 너무 신경 쓰면 우울증에 걸려요. 젊어서부터 훈련해야 합니다. 유명인이 된 뒤에 하면 이미 늦어요. 내 주변의 가족, 친구, 동네 주민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이름, 얼굴만 아는 건 타인입니다. 허영을 좇는 거예요.
작가, 학자, 교육인, 정치인으로 많은 지식과 명예를 향유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보람될 때는 언제인가요?
이화여대 출신 내 제자들이 40년이 지난 지금도 때가 되면 나를 찾아와요. '할마시'들이 와서 밥도 사주고, 기쁘게 해준다고 노래도 불러주고 그래요. 그게 보람이지요. 젊은 날 나의 이야기가 가슴에 맺혔고 세월이 지나도 감동이 느껴지니까 찾아오겠죠. 이해관계도 없고 늙고 병들면 누가 오겠어요. 갈매기도 안 와요. 그 친구들의 멘토가 나라면 멘토가 되길 잘한 것 같아요. 나에게 없던 세계예요. 값어치 있는 삶을 살았다 싶어요.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하신가요?
가장 슬픈 건 예전에 쓴 내 글을 보고 스스로 '이걸 글이라고 썼나, 불살라야지' 할 때예요. '내가 이런 글을 썼어? 괜찮은데?' 할 때가 가장 행복하고, 잠이 안 와서 서재에 올라가 사놓고 안 읽은 책을 우연히 보다가, 거기에 기가 막힌 글이 나올 때도 참 행복해요. 내가 잠을 잤다면 영원히 못 봤을 거 아닙니까. 그 생각을 하면 악 소리가 나는 거죠. 그런 걸 보면 나는 집사람하고 이야기하고 싶어져요. 밥 먹을 때 흥분해 얘기하는 거죠. 근데 주부는 바쁘잖아요. 상도 치우고, 밥 먹다가도 전화가 오고 해결해야 할 일이 많아요. 그러면 얘기를 하다가 맥이 확 풀려요. 그래도 들어줄 수 있는 아내가 있어 참 좋습니다. 그래서 <티파니에서 아침을>이 아니고, <아내와 아침을>이라는 책을 쓰고 싶어요.
일상적이지만 식탁에 앉아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부부가 참 행복한 부부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상적인 대화도 좋지만, 자기가 읽은 책 혹은 자기가 한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관계라는 게 얼마나 아름다워요. 한국에선 부부에 대한 시선이 부정적이에요. 특히 늙은 부부는 서로 애정이 없는 것처럼 묘사되는 경우가 많죠. 병원에 가서 암이라고 하면 가장 슬퍼하고 눈물을 흘리는 건 아내라고 해요. 내 옆에 있는 사람도 늙은 아내죠. 이렇게 황폐한 시대에 아내와 함께 아침밥을 먹고 할 이야기가 있다는 게 참 행복이지요.
지금 행복하십니까?
앞으로도 쓰고 싶은 글이 있고, 지금도 읽어야 할 책이 많고, 책을 열었더니 벼락처럼 쳐오는 감동이 있을 때, 그리고 그 감동을 아침밥 먹으면서 공감할 사람이 있다는 게 행복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내게 "행복하십니까?"라고 물으면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더라도 나는 "20대 때 만난 한 여성하고 지금껏 같이 살고 있기에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세월 동안 부부간에 지겨움, 싸울 일이 왜 없었겠어요. 그러니 누구 하나 일찍 죽었다면 원한이 남았을 거예요. 하지만 오래 함께 살아 할 이야깃거리가 없을 때 나눌 수 있는 말, 그게 삶의 알맹이예요.
예전엔 느끼지 못했는데, 로맨티스트이셨네요.
(웃음) 사실 젊었을 땐 결혼 생활 자체를 부정했어요. 결혼을 우습게 알고 '결혼은 사랑의 무덤'이라는 글도 썼어요. 어느 날 너무 외롭고 힘들어 손을 들었더니 지나가던 차 하나가 섰는데, 그게 내 결혼이라고 했다가 집사람한테 엄청 혼났지요. 사실은 결혼을 부정하던 내게 결혼을 하고 싶게 한 여자가 바로 아내인데, 방송에다 대고 아내 자랑하면 팔불출이니까 그렇게 표현한 거죠. 아내는 "내가 택시야?" 하면서 화를 엄청 내더군요. 그 말만 나오면 지금도 고개를 못 들어요.
지금 대한민국은 결혼율과 출산율이 낮습니다.
젊은 사람들, 결혼 두려워하지 마세요. 지겨운 맛도 후회하는 맛도, 결혼한 사람만이 알아요. 장동건·고소영 결혼식 주례사에서 그런 말을 했어요. "어느 날 집에 도둑이 들어와 은수저를 훔쳤는데, 이 도둑이 다른 데서 훔친 금잔을 놓고 갔다." 잃은 거 같지만 한편으로 뜻하지 않게 금잔이 생겼다는 거죠. 예쁜 자식들 낳아 키우면서 얼마나 많은 감동과 환희를 느꼈겠어요. 그게 결혼이라는 거예요. 여성들이 아기를 낳으면 지금껏 몰랐던 기쁨과 즐거움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아기는 꼭 낳으세요. '베이비 스마일' '베이미 스멜'이라고 알아요? 아이들에게 묘한 냄새가 나는데 그게 모성애가 생기게 한다는 겁니다. 모성애가 있어 애를 낳는 게 아니라 아이가 모성애를 부르는 거죠. 갓난아기는 몇 분에 한 번씩 씩~ 하고 웃어요. 그게 베이비 스마일이에요. 근데 이 아기가 왜 웃는지 몰라요. 어쩌면 웃는 게 아니라 입 주변의 근육이 한 번씩 그렇게 움직이는 것일지도 모르죠. 마치 아이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보란 듯이 '이건 몰랐지?' '나를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길걸' 하는 것처럼요. 그게 아이의 웃음이고 냄새예요. 아이를 낳으세요. 엄마가 되세요. 그 즐거움과 신비함은 돈으로 절대 못 삽니다. 쉽게 맛보는 맥주 맛이 아닙니다. 이 맛을 모르고 죽으면 태어난 걸 후회할 겁니다.
내일은 어떤 계획이 있습니까?
나는 하루 치씩 마감하고 살아서 내일을 약속하지 않아요. 누군가하고 5년 뒤에 만나자고 약속하면 속으로 기뻐요. 한데 나는 오늘 하루를 살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보지 못한 것을 봐요. 예를 들면 <우먼센스>가 나에게 인터뷰를 의뢰했지만 내가 수락하지 않았다면 오늘 이 시간에 나는 다른 장소에서 다른 무엇을 했겠죠. 그런 생각을 하면 미칠 것 같아요. 어떤 우연의 선택에 의해 천만 분의 일, 억만 분의 일로 일어나는 일을 지금 겪고 있는 겁니다. 내가 오늘 인터뷰에서 말한 생각도 대화를 하면서 나온 거예요. 어렴풋한 생각이 대화를 통해 뚜렷해지는 거죠. 우리가 나눈 오늘 이야기가 녹음되고 글로 쓰이는 건, 어제 없었고 내일도 일어나지 않을, 오늘 내 생각의 유일한 지문인 거죠.
어느덧 인터뷰 시간은 3시간을 훌쩍 넘겼다. 방대한 학문적 지식에, 멈추지 않는 지적 호기심에, 육체를 지배하는 정신에, 새삼 인간이 이토록 위대한 존재라는 것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