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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의 소확행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맥주를 마실 때, 친구랑 동네에서 고기를 구워 먹을 때. 정해인이 행복한 순간이다.

On July 3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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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사랑에 올인하는 ‘직진남 서준희’를 연기한 정해인은 이 드라마를 통해 김수현, 박보검을 잇는 대세남으로 떠올랐다. 나이를 불문하고 대한민국 여자들은 정해인에게 열광했고, 2018년이 절반가량 남았음에도 많은 이가 ‘올해의 남자’는 정해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정해인은 자신의 인기가 믿기지 않는단다. 아직까지 서준희에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정해인의 얼굴엔 아쉬움이 역력했다.

“솔직히 말해도 될까요? 서준희를 떠나보내지 못했어요. 드라마 촬영 중에도 ‘이 드라마가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작품이 끝나면 후련하기 마련인데 이번엔 슬퍼요. 어떤 단어로도 제 마음이 표현되지 않아요. 이런 적은 처음이에요. 바쁘게 살면 잊을 줄 알았는데 여운이 상당히 오래갈 것 같아요.”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가 배우 정해인의 삶을 바꾸어놨으니 그에게 이 드라마가 특별한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하지만 이를 제쳐두더라도 그에게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소중한 작품이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드라마는 “말도 안 되는 현장”에서 촬영이 진행됐다.

“현장의 모든 것이 기적이었어요. 보통 16부작 미니시리즈가 90일대에 촬영이 끝나는데 저희 드라마는 66일 만에 촬영을 마쳤어요. 12시간 이상 촬영한 적도 드물어요. 오전 11시에 촬영을 시작하면 밤 11시에 촬영을 끝냈죠. 사실 많은 배우들이 드라마는 밤새워 찍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가장 촬영 분량이 많은 손예진(‘윤진아’ 역) 누나와 저도 하루에 7~8시간씩 자면서 촬영했어요. 좋은 환경에서 촬영하다 보니 현장에서 어느 누구도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없었어요.”

작품을 위해 인권이 희생되면 안 된다는 안판석 감독의 철학에 따른 결과다. 안판석 감독은 ‘하루 작업 시간은 12시간을 넘기면 안 되고, 현장에 화장실 등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보통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는 것들이다. 기본적인 것이 지켜지다 보니 얼굴을 찌푸릴 일이 없었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자연스레 배우와 스태프의 관계는 끈끈해졌다. 촬영 마지막 날 스태프들은 배우들에게 롤링페이퍼를 선물했다.

“모두가 마음을 담아 한 글자씩 꾹꾹 눌러쓴 게 느껴졌어요. 글자 하나하나에 진심이 담겨 있어 감동을 받았어요. 저와 손예진 누나는 16부작 대본을 다 보고 시작했지만 스태프들은 촬영할 때마다 대본을 받았어요. 어느 날 안판석 감독님이 막내 스태프가 대본을 읽고 구석에서 울고 있다고 이야기해주시더군요.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작품을 사랑했던 것 같아요. 모든 분이 다 좋은 사람이어서 그런지 촬영장에 가는 게 행복했어요. 보통 촬영장에 갈 때 집에 언제 돌아갈까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래서일까요? 롤링페이퍼를 보고 펑펑 울었어요. 제가 평생 간직할 가보예요.”

정해인은 함께 출연한 손예진에게도 남다른 감정을 갖고 있다. 물론 이제 막 4년차에 접어든 신인 배우인 그가 ‘멜로퀸’이라 불리는 손예진의 상대역으로 낙점된 게 부담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그를 한결 편안하게 만들어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손예진이었다.

“첫 주연이라 부담스러웠어요. 게다가 오랜 기간 쌓아온 커리어가 있는 예진 누나의 상대역이었으니까요. 저의 부족함 때문에 피해를 줄까봐 걱정했죠. ‘피해를 주지 말자’는 게 가장 큰 목표였는데 그래서인지 촬영 초반에 어색함이 느껴졌던 것 같아요. 어느 날 예진 누나가 ‘해인아, 너는 ‘서준희’ 자체야. 어색하면 어색한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느끼는 대로 해. 그게 맞는 것 같아’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주셨는데, 그게 촬영하는 내내 힘이 됐어요. 힘이 들 때마다 그 문자메시지를 봤죠. 예진 누나가 저를 후배라고 챙겨주기보다는 한 사람으로 존중하고 있다는 걸 느꼈거든요. 저 역시 예진 누나를 한 사람으로서 존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생각하니 편해졌고 자연스러운 연기와 재미있는 애드리브가 나오더군요.”
 

손예진과 안판석 감독에 대하여

손예진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가 종영하고 진행한 인터뷰에서 정해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연기 경험이 적을 때는 시나리오를 보고 어떻게 연기할지 생각하고 현장에 가요. 생각대로 연기를 준비하는데 상대 배우, 스태프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른 톤으로 연기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연기를 바꾸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죠. 그런데 해인 씨는 빠르게 변화해요. 감성이 풍부하고 오감이 발달했고 유연해요. 앞으로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기대돼요.”

손예진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정해인은 상대 배우의 말투와 눈빛을 느끼면서 연기했기 때문에 금세 연기 스타일을 바꿀 수 있었다며 손예진에게 공을 돌렸다. 정해인이 마음 편히 연기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손예진은 그에게 어떤 누나였을까? 드라마 제목처럼 밥 잘 사주는 누나였을까?

“밥은 극 중에서도 ‘준희’가 거의 샀어요. 실제로도 제가 많이 샀죠.(웃음) 저는 예진 누나를 사석에서 본 적이 없고 작품에서만 봐왔어요. 예진 누나를 처음 봤을 때, 그러니까 솔직히 어려웠어요. 만나기 전에 ‘까탈스러운 분이지 않을까?’라고 지레짐작했거든요. 그런데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밥을 먹고, 촬영을 하면서 선입견이 산산조각 났어요. 예진 누나는 털털하고 솔직하면서 상대방을 존중해주는 사람이죠. 또 한 가지 더 있어요. 똑똑한 선배예요. 한 장면을 완벽하게 분석하고 준비해오시더군요. 그만큼 노력을 엄청나게 하신다는 것을 느꼈어요. 이런 단어를 선배님께 사용해도 될까요? 지금까지 함께한 배우 중에 열정이 최고였어요.”

감각적인 연출, 정적인 카메라 워킹으로 정의되는 안판석 감독과의 작업 또한 남달랐다. 그래서인지 정해인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안판석 감독에게 예의를 갖추고 존경을 표하곤 했다. 기자는 지난 4월 열린 기자간담회가 끝난 후 정해인이 곧바로 자신의 대기실로 향하는 대신 안판석 감독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다.

“감독님은 정말 대단하신 분이에요. 장면에 대한 철학과 전체적인 그림에 대한 명확한 콘티가 있어요. 촬영해야 할 것만 촬영하고 필요하지 않은 것들은 과감하게 촬영하지 않으시죠. 5분짜리 신이 있으면 촬영 시간도 5분이에요. 촬영도 끊어서 하지 않고 한 번에 찍어요. 처음엔 한 번만 촬영하고 다음 신으로 넘어가니까 어안이 벙벙했어요. ‘왜 안 찍지?’라는 생각이 들어 감독님을 따라다니면서 어떻게 찍으시는지를 지켜봤어요. 딱 한 번만 촬영하니까 배우들이 대본을 완벽하게 숙지하지 않으면 공포의 현장이 되죠.(웃음) 대본 분석을 철저히 해야 해요.”

정해인은 안판석 감독을 따르다 보니 카메라 앵글이 연기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연기는 배우만 하는 것이란 생각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감독님의 카메라 앵글엔 철학이 담겨 있어요. 배우가 연기를 덜 해도 화면이 연기를 하고 있죠. 조명도 자연스럽게 비춰주시는데, 많이 어두우면 호롱불을 하나 주셔서 얼굴만 보이게 해요. 배우의 얼굴은 중요한 때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저한테 ‘준희야 연기를 조금만 덜 해’라고 말씀하시곤 했는데, 연기를 대충 하라는 말이 아니라 카메라 앵글이 연기를 하고 있으니 그만큼만 해도 충분하다는 뜻이었어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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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하루를 행복하게 사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살고, 그런 하루가 모이면 행복한 사람이 되겠죠? 그래서 제게 주어진 사사로운 행복들에 감사하려고 하죠.

사랑 그리고 행복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여운에 빠져 있는 정해인은 시즌2가 제작된다면 무조건 달려갈 생각이다. 시즌2에서 윤진아와 서준희의 사랑을 반대하는 윤진아 어머니와의 갈등이 해결되고, 두 사람이 이별한 동안 느낀 아픔이 치유되길 꿈꾸고 있다. 혹은 두 사람의 신혼생활이 그려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단다. 정해인은 한 남녀의 진한 사랑을 그린 멜로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사랑, 연애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

“개개인이 사랑에 다다르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배웠어요. 사랑하면 눈빛만 봐도 아는 게 아니라 사랑할수록 대화를 해야 된다는 걸 깨달았죠. 더 많이 표현하고 솔직해져야 하고, 때로는 용기도 필요한 것 같아요. 우리 드라마가 진짜 연애를 보여준다고 했었는데, 진짜 연애는 무엇일까요? 저는 서로 존중하고 아껴주고 배려하는 게 진짜 연애,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정해인이 연기한 서준희는 사랑밖에 모르는 남자다. 자신의 이득을 따지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닌, 사랑이 최우선인 그런 남자다. 남자 정해인은 사랑할 때 서준희처럼 올인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정해인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저도 올인하는 타입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준희를 보면서 고민에 빠졌어요.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이 아닌 31살의 남자가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을지 생각하니 물음표가 생기더군요. 결론은, 저는 서준희처럼 사랑에 올인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런 측면에서 서준희는 멋진 사람이죠. 언젠가는 서준희 같은 사랑을 할 수 있겠죠?”

정해인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며 ‘대화’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말하지 않으면 얼마나 사랑하는지, 얼마나 고맙고 미안한지 상대방은 알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이토록 섬세한 그는 매일 일기에 하루 동안 느낀 감정을 기록하고 있다.

“사건보다는 느꼈던 감정을 체크해놓는 용도로 매일 일기를 써요. 요즘엔 스마트폰에 일기를 쓸 수 있으니 어렵지 않아요. 시간이 흐르고 일기를 다시 보면 재미있어요. 요즘엔 행복하다는 이야기만 있더군요.”

정해인에게 ‘행복’은 중요한 가치다. 오늘이 행복해야 내일이 행복하고, 몇 개월 뒤에, 몇 년 후에도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에게 행복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조금만 기준을 낮추면 사소한 것에도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으면 된다.

“제게 어떤 배우가 되고 싶냐고 물으면 저는 ‘하루를 행복하게 사는 배우’라고 대답해요.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살고, 그런 하루가 모이면 행복한 사람이 되겠죠? 그래서 저는 연기를 할 수 있는 환경에 감사하고, 건강하고 밥을 잘 먹는 게 행복해요. 제게 주어진 사사로운 행복들에 감사하려고 하죠. 촬영을 마치고 집에 가서 샤워를 하고 맥주를 마실 때, 친구랑 밥을 먹을 때, 그동안 보지 못한 영화를 볼 때. 그런 순간들이 행복해요. 최근에 부모님에게 식사를 대접했어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음식을 대접할 때 어마어마하게 행복하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정해인은 내일 행복하려고 오늘을 희생하지 않는다. 오늘이 행복하지 않으면 내일도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연기할 수 있고,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는 지금이 행복하다. 정해인스러운 소확행이다.

CREDIT INFO
에디터
김지은
사진제공
FNC 엔터테인먼트
2018년 07월호
2018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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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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