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셨어요?” 빡빡한 영화 홍보 일정에 조금은 지친 기색이 엿보이던 김희애가 먼저 던진 질문은 역시 영화에 대해서였다. “제가 자꾸 확인하고 싶어서요. 저도 언론 시사회 때 처음 영화를 봤는데, 영화관 분위기가 너무 차분했거든요. 오늘도 차분하셔서 혹시 영화를 보신 건가 해서요.”
<허스토리>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일본군 피해자인 10명의 원고단이 시모노세키(下關)와 부산(釜山)을 오가며 일본 재판부를 상대로 사상 처음으로 보상 판결을 받아낸 ‘관부(關釜) 재판’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당시 일본을 발칵 뒤집을 만큼 유의미한 결과를 얻은 재판이지만 이제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가는 역사 속 사건이다.
관부 재판의 시작과 끝을 담아낸 <허스토리>를 보면 자연히 차분해질 수밖에 없다. 여타 신파적 장치를 우겨 넣어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영화들과 달리 <허스토리>는 재판 과정을 그저 담담히 담아냈다. 그럼에도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은 실존했던 인물들의 이야기가 주는 묵직한 감동 때문일 것이다. <허스토리>에서 김희애는 원고단을 진두지휘하는 ‘문정숙’ 역을 맡았다.
“실존 인물인 데다 여사님이 아직 살아 계시기 때문에 무척 조심스러웠어요.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건 배우로서도 꼭 해보고 싶었기에 욕심이 나기도 했죠. 배우는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사는 직업이잖아요? 이번 역할은 배우로서 놓치고 싶지 않은 기회였어요.”
문정숙은 지금껏 김희애가 연기해왔던 배역들과는 결이 다르다. 배우 김희애에게 줄곧 따라붙던 수식어 ‘우아함’을 <허스토리>에선 찾아볼 수 없다. 그야말로 ‘상여자’ 캐릭터. 부산 지역 여행사 대표인 문정숙은 남자보다 더 거친 언사에 드잡이도 서슴지 않는다.
“처음 시나리오가 들어왔을 때, ‘올 것이 왔구나’ 싶었어요. 항상 기존의 제가 가진 이미지와 반대되는 배역을 맡고 싶었거든요.”
배역을 소화하는 데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묻자 “자기 성격대로 하는 게 배우인가요? 그 어떤 것도 할 수 있어야죠”라고 답했다. 담담히 대답하는 말투와는 달리 김희애는 문정숙 역을 위해 3개월간 일본어, 부산 사투리와 사투를 벌였다.
“배우가 된 후 처음으로 제가 한 연기를 모니터링하면서 연기 연습을 했죠. 처음엔 입이 떨어지지도 않았어요. 겨우 연기를 해봐도 스스로도 영 아니라는 생각에 사투리를 쓰는 분들과 지속적으로 통화하면서 차츰 문정숙을 완성해갔어요. 지금까지 써온 억양과 발성까지 전부 바꿨죠.”
일본어 대사 한 줄을 외우는 데 하루가 걸렸다는 김희애는 이제는 툭 치기만 해도 대사가 나올 정도라고. 혹독하게 연습하는 그녀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녀가 바꾼 건 말투와 발성만이 아니었다. 김희애는 문정숙에 가까워지기 위해 외모까지 변신했다. <허스토리>에서 김희애는 지금껏 그녀가 작품 속에서 보여주던 매끈한 피부의 스타일 아이콘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변신이라기보다 기록에 나와 있는 문정숙 선생님을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선생님은 짧은 머리에 안경, 그리고 항상 스카프를 하셨죠. 사실 저는 오히려 좋았어요. 외모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마음껏 늙어도 되고, 어떠한 룩을 창조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없었으니까요.”
베테랑 선배들과의 작업
<허스토리>에서 김희애는 김해숙, 예수정, 문숙, 이용녀, 박정자 등 베테랑 배우들과 함께 연기한다.
“제가 이제 어딜 가든 선생님이라고 불리더라고요.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반항을 해봐도 어쩔 수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선배님들과 작업하게 돼 정말 좋았어요. 선배님들과 함께하니 큰 의지가 되기도 했고요.”
<허스토리>의 캐릭터들은 각기 다른 인생을 살지만 같은 시대의 운명을 지녔다.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을 좇으며 그들 하나하나의 사연을 듣고 있자면 지금껏 모르고 있었던 역사적 사건 앞에서 숙연함이 들기도 한다.
“처음 시나리오가 들어왔을 땐 저도 관부 재판에 대해 몰랐어요. 부끄러웠죠. 연기를 하면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진심을 다해 열심히 하는 것밖에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드라마 작업을 할 때와는 다른 마음가짐이었던 것 같아요. 이 역할만큼은 제가 가장 잘하고 싶었어요. 일등으로 잘하고 싶었달까요. 저뿐만 아니라 선배님들도 모두 같은 마음이셨죠.”
김희애와 김선영 연기의 합은 무거운 영화에 쉼표를 찍어주는 역할을 한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선우엄마’ 역을 맡아 감칠맛 나는 연기를 선보인 김선영은 극 중 문정숙과 함께 부산 경제인협회를 운영하는 ‘신 사장’ 역으로 등장한다. 일명 ‘츤데렐라’로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해 사업은 뒷전인 문정숙을 타박하면서도 어려울 때마다 도움을 주는 조력자 역할이다.
“김선영 씨와 했던 신은 대부분 애드리브였어요. 제가 즉석에서 제안했던 ‘뽀뽀’ 신 말고도 ‘젖이 줄었네’라며 제 가슴을 만지며 훅 들어왔던 신이 있는데, 그것도 어색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잘 녹아들었더라고요."
총 34회의 촬영에 모두 참여한 김희애는 매 촬영이 숙제와도 같았다고 했다. 사투리와 일본어 대사를 외워 자신을 지우고 문정숙 여사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연기한 것이다. 대중의 뇌리에 ‘우아함의 대명사’로 남아 있을지언정 배우 김희애는 데뷔 후 계속해서 새로운 역할에 도전해왔다.
“좋은 역할도 두 번 하면 재미없잖아요. 변화하는 모습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작품의 재미. 제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바로 재미예요. 단순히 웃긴 게 아니라 스릴러든 멜로든 저를 가짜처럼 느끼지 않게 만드는 작품 말이에요. 그런 작품의 소품으로 연기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어요.”
1992년 드라마 <아들과 딸>에서 쌍둥이 오빠로 인해 차별받는 ‘후남’으로, 2003년 <아내>에서는 남편을 다른 여자에게 빼앗긴 ‘나영’으로, 이후 2007년 <내 남자의 여자>에서는 친구의 남편과 불륜에 빠지는 ‘화영’, 그리고 2014년 20살 연하의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밀회>의 ‘혜원’까지. 김희애는 데뷔 이후 35년 동안 줄곧 자신을 지우고 수많은 사람을 연기했다.
“지금은 백수예요. 그러니 이번 영화가 잘돼야 해요.(웃음) 배우가 제 천직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또 감독님들이 찾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오랜 시간 할 만큼 했다고도 생각하죠. 여한은 없어요. 그런데 나문희 선생님이나 이순재 선생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연기를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그래서 선생님들께 감사하죠. 특히 이순재 선생님은 배우 이외의 삶도 무척 존경스러워요.”
문득 김희애의 ‘배우 이외의 삶’이 궁금해졌다.
그녀가 연기한 수많은 역할의 중심엔 언제나 단단한 인간 김희애가 있었다.
그것은 연기에 대한 열정에 의한 것이기도 하고, 자기애 그리고 특유의 여유에서 나오는 ‘쿨함’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김희애의 일상
1996년 사업가 이찬진과 결혼한 김희애는 두 아들을 둔 엄마이기도 하다. 둘째 아들이 올해 고3 수험생이 됐다고. 아이들을 방목하는 편이라는 김희애는 고3 수험생 뒷바라지가 힘들지 않느냐는 물음에 “제가 수험생은 아니라서”라며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그녀가 인터뷰를 통해 밝힌 바 있듯, 일상 속 김희애의 모습은 소탈하다. 하루 종일 운동복을 입고 살며 장을 보고, 집 안 살림을 하는 평범한 주부의 모습이다.
“많은 분이 실망하실지도 모르지만 저 굉장히 평범해요. 저보고 우아하다고 말씀해주시는데, 제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뭔가 거짓말을 한 듯한 기분이에요.”
함께 살지 않는 아들들과 바쁜 남편으로 인해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는 김희애지만 그녀의 하루는 아침부터 분주하다.
“굉장히 바쁘게 많은 일을 하면서 하루를 보내요. 시간이 많으면 오히려 주체를 못 하겠더라고요. 그래서 매일 스스로에게 부여한 숙제가 있어요. 어릴 때부터 연기자 일을 해서인지 제가 못 해본 일이 무척 많더라고요. 더 미루다 보면 나중에 정말 후회할 것 같아 스스로에게 약속을 했어요. 지금 하자고. 그리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요.”
자기 관리에 철저하기로 유명한 김희애는 여전히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운동을 무척 많이 해요. 아침엔 먼저 실내 자전거를 타요. 그 다음엔 스쿼트, 스트레칭 그리고 걷기도 하죠. 정신이 건강해야 몸도 건강한 것 같아요. 정신이 아프면 몸도 아프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엔 공부도 하고 있어요. 굳이 무언가를 배우는 게 아니라도 각자 나름대로 해야 하는 공부가 있다고 생각해요. 자연을 보는 것도 공부죠. 각자 자기가 행복해지는 공부가 있는 것 같아요. 공부를 하면 시간도 잘 가고 우울하지도 않아요.”
김희애가 하는 공부는 다름 아닌 영어. 최근엔 토익까지 시작했다고 한다.
“공부를 시작해보니 제가 모르는 게 엄청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단어 하나를 외울 때마다 내가 이런 것도 모르고 살았나 싶은 마음이에요. 그러면서 토익도 공부하게 됐는데 주로 집에서 동영상으로 공부하고 있어요. 60~70대이신 분들도 외국에 살고 있는 손자와 영어로 대화를 하고 싶다며 영어 공부를 하는 분들이 계세요. 정말 멋있는 것 같아요.”
토익을 공부한다는 엄마에게 아들이 영어 문법을 물어볼 때면 “내가 그렇게 어려운 걸 어떻게 알아”라며 핀잔을 주면서도 아들이 엄마를 믿고 물어봐준다는 생각에 내심 뿌듯해지기도 한다고. 영어 외에도 김희애는 현재 피아노에 매진 중이다. 피아노 역시 멋진 곡을 연주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서 배우는 것이라고.
“연습을 많이 하면 질려요. 그럼 재미없어지잖아요. 저는 ‘똥땅’거리면서 피아노를 치지만 행복해요. 피아노를 칠 때마다 ‘이거 안 했으면 어쩔 뻔 했나’ 싶죠. 그리고 칭찬받으면 엄청 좋아해요. 아이 같죠? 이런 소소한 것들이 중요하더라고요. 소소한 것, 작은 것들이 모여 큰 걸 만드는 것 같아요.”
그녀가 연기한 수많은 역할의 중심엔 언제나 단단한 인간 김희애가 있었다. 그것은 연기에 대한 열정에 의한 것이기도 하고, 자기애 그리고 특유의 여유에서 나오는 ‘쿨함’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제가 초등학교 때 88올림픽이 우리나라에서 열릴 거라는 게 결정됐어요. 1988년이면 제가 20살이 되던 해인데, 왜 하필 할머니가 다 됐을 때 올림픽을 하냐며 투덜거렸죠.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경거망동한 생각이죠.(웃음) 지금은 배우라는 직업이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다는 게 큰 축복인 것 같아요. 저도 이순재 선생님처럼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뭐, 아니면 말고.”
김희애의 스토리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