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낯선 이름 최재형. 러시아 연해주에서 고려인들을 위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항일 영웅 안중근 의사를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인물이다. 그의 이야기를 뮤지컬 <페치카>로 만들며 한국적 소재의 문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주세페김(김동규)과 구미꼬김(김구미) 부부를 만났다.
유명한 안중근 의사에 비해 최재형이라는 이름은 낯선 것이 사실입니다.
주세페김(이하 주)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은 안중근 의사의 거사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인물입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기 전, 최재형 선생의 집에 머물며 사격 연습을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화죠. 거사에 사용한 권총 역시 최재형 선생이 준 것이라고 합니다. 안중근 의사가 붙잡혔을 때 러시아인 변호사를 지원해준 것은 물론, 남아 있는 안중근 의사의 가족들도 보살폈습니다. 제가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에 대한 노래를 만들다가 최재형 선생의 존재를 알게 됐습니다.
구미꼬김(이하 구) 노비의 아들로 태어난 최재형 선생은 어린 나이에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해 자수성가한 인물이에요. 러시아 선장 부부의 도움을 받아 러시아에서 교육을 받고 군수산업 사업가로 성공하죠. 어렵게 번 돈을 독립운동 자금과 고려인들을 위한 학교를 세우는 교육 사업에 사용하는 등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분입니다. 당시 독립운동가들 중에는 양반 가문에서 태어난 이가 많았어요. 그런데 최재형 선생은 나라의 어떤 보호도 받지 못했던 난민 신분으로 자신의 노력만으로 성공해, 그 부를 나눌 줄 알았던 휴머니스트였죠.
두 분이 뮤지컬 <페치카>를 기획했는데 '페치카'는 어떤 의미인가요?
주 페치카는 러시아 말로 난로입니다. 최재형 선생의 닉네임이었어요. 고려인들은 '페치카'란 발음이 잘 안 되니까 '최비치케'라고 불렀죠. 그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난로가 돼줬어요. 페치카를 데우기 위해 본인이 스스로 땔감이 된 것이죠. 우리 사회에도 난로는 있는데 연료가 없어요. 자기 자신이 누군가를 위해 희생할 용의가 있느냐, 이것이 바로 우리 사회에 필요한 페치카 정신입니다.
뮤지컬 한 편을 무대에 올린다는 게 쉽지 않은 작업이죠?
주 제작비가 많이 들죠. 상업적인 목적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어려움이 있지만 공익을 위해 한번 해보자는 마음이에요. 뮤지컬을 통해 최재형이라는 인물과 페치카 정신을 사회적 롤 모델로 제시하고 싶어요. 연출가와 이상백 시인이 대본 작업을 했고, 올해 4월이면 완작이 나올 예정이에요. 그러나 비용 문제 때문에 공연은 내년에 시작할 것 같아요. 성공적으로 뮤지컬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서는 많은 분의 후원이 필요합니다.
쇼케이스의 브로슈어를 우연히 봤어요. 한 편의 시 같은 노래 가사가 인상적입니다.
구 맞아요. 저희가 문학성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아름다운 노랫말로 진심과 감동을 전달하고 싶어요. 러시아 선장 부인이 어린 최재형을 입양해 성당에서 세례식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가 있어요. "우리에게 씨앗으로 날아온 아이/ 오늘 이 땅에 심고 뿌리내리기를 기도합니다. 당신께 기도합니다. 꿈속에서나 고향에 다녀오는 아이/ 조국을 빛내는 큰 별이 될 수 있도록/ 당신께서 이끌어주시길 기도합니다."
쇼케이스 때 어떤 분이 "최근 10년 동안 어떤 공연을 봐도 감동이 없어서 내 감정이 메마른 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 공연을 보고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을 받았다"라고 하셨어요. 그 말에 저희가 감동을 받았어요.(웃음) 아마 이런 부분이 다른 뮤지컬과는 차별화되는 부분이 아닐까 싶어요.
두 분은 이탈리아 유학 중에 만났다고 들었어요. 그때 이야기 좀 해주세요.
주 저는 음악을 취미로 했어요.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성균관대 산업심리학과)하고 대기업에 취직도 했죠. 당시 예술심리학 연구가 시작될 때였는데 제가 좋아하는 음악 심리나 음악학을 공부하고 싶어서 음대로 편입했어요. 그 후 졸업하고 이탈리아로 유학 가서 집사람을 만났습니다. 아내는 아카데미에서 가장 순수한 학생이었어요.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 같아서 좀 걱정스럽더군요.(웃음) 호감은 있었지만 당시 저는 29살의 만학도였고, 음악 공부를 오래 한 것도 아니라 다른 데 정신을 팔 겨를이 없었어요.
구 남편의 첫인상은 사실 별로였어요. 저보고 밀라노나 피렌체에 가서 넓은 세상을 보라는데 '잘난 척하는 사람이구나' 생각했죠. 그러다 로마의 다른 학교에서 다시 만나 함께 공연 준비를 하는데 참 자상했어요. 당시 교수님이 저에게 사랑 노래를 부를 때 감정 표현이 안 된다면서 연애를 하라고 하셨어요. 그때 마침 남편이 사귀자는 말을 해서 곧바로 그러자고 했죠. 나중에 남편이 여자가 한 번 정도는 튕겨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서 이상하게 생각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구미꼬김'란 이름은 일본과 관련이 있겠죠?
구 아버지는 한국 사람, 어머니는 일본 사람이에요. 초등학교 때부터 한국에서 살았어요. 호적 이름은 김구미예요. 어머니가 일본 사람이라는 이유로 따돌림을 받다 보니 그 사실을 숨기며 저도 모르게 위축됐어요. 제가 결정적인 순간에 주저앉는다는 걸 남편이 알고 '구미꼬김'라는 예명을 써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어요. 저는 어떤 일을 너무 잘하거나 못하면 사람들이 제게 집중할까 봐 걱정했던 것 같아요. "누구 집 딸이야?"라는 말이 나오면 어머니 이야기가 나올 테니까요. 구미꼬김라는 예명 덕분에 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어머니가 일본인이지만 저는 누구보다 한국을 사랑하는 대한민국 사람입니다.
두 분이 함께 '랑코리아'라는 예술 단체에서 활동하고 계시죠?
주 '랑코리아'는 K팝페라를 알리고자 만든 전문 예술 단체예요. 아리랑, 사랑 등에 사용되는 '랑'에 코리아를 결합해 만든 이름이죠. '문화 독립'을 통해 '문화 광복'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하는 '문화 독립군'이에요.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소재로 팝페라를 만들어 공유하고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최재형 선생의 스토리와 역사적인 배경, 사회에 미친 영향력 등을 전하는 뮤지컬 <페치카>는 큰 의미가 있죠.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구 제가 일본에서 조마리아 여사의 시에 곡을 붙인 '아들아 아들아'를 불렀을 때 한 일본인 교수가 법학자로서 양심선언을 하며 눈물을 흘렸어요. 저는 양심적인 일본인들에게 감동을 받았죠. 한 이탈리아 친구는 제 노래를 듣고 이탈리아에서도 이런 노래를 불러달라고 하더군요. 우리의 이야기로 만든 우리 노래를 외국에서 더 많이 부르고 싶어요.
주 어느 나라든 디아스포라(본토를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공동체 집단, 혹은 이주 그 자체)가 있기 때문에 최재형 선생의 이야기가 세계인에게도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국의 보호를 받지 못했던 한 민초가 외국에 씨를 뿌려 열매를 맺었다는 건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죠. <레미제라블>은 픽션인 데 반해 최재형 선생의 이야기는 실화이니 더 대단한 것이죠. 해외 공연을 통해 외국 땅에서 사는 교포들에게 우리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습니다.
주세페김·구미꼬김 부부는 창작 뮤지컬 제작으로 경제적 이익을 얻는 대신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것을 택했다. 문화 보존을 위해 스스로가 땔감이 된 것. 주세페김·구미꼬김 부부의 온기가 세상에 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