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지난 1993년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한 이후 24년 만에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방한했다. 당시 트럼프의 옆을 지킨 인물이 김교흥 국회사무총장이다. 그는 트럼프의 의전과 경호를 꼼꼼히 챙겨 트럼프에게 감사 인사까지 받았다.
국민을 대표해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인 그이지만 정치 인생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2004년 17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본격적으로 정치계에 입문한 후 내리 3번을 낙선했다. 하지만 정치가로서 활약을 멈추지 않았다. 민주당 수석사무부총장을 시작으로 인천광역시 정무부시장, 국회의장 비서실장으로 활약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현재는 국회사무총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회사무총장이 무슨 일을 하나요?
김교흥(이하 김) 국회의원들의 의정 활동을 지원하는 국회 사무처의 총장이죠. 국회의원들이 국가 대표 선수라면, 국회사무총장은 그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코치예요. 국회의원들의 입법, 예산, 외교 활동을 전적으로 지원하죠.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의 뒷바라지를 한다니 어깨가 무거워 보여요.
김 그렇죠. 국회가 그동안 국민에게 신뢰를 얻지 못했어요. 앞으로 신뢰를 얻어 국민에게 힘이 되는 국회를 만들고 싶어요. 사무총장으로서 전적으로 국회의원들을 지원할 마음이죠. 지난해 11월에 취임해 2개월이 지났는데, 3년 동안 시도만 거듭했던 미래연구원을 만드는 데 성공했어요. 미래연구원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 중·장기적인 현안을 다루는 곳이에요. 우리나라는 대부분 단기적인 현안만 다루거든요. 국회 미래연구원법이 통과돼 예산을 받았고 올 3월에 정식 출범하니 앞으로 열심히 일해봐야죠. 시작이 좋아요.
제일 주력하는 것이 개헌이에요. 개헌을 하면 무엇이 달라지나요?
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 <1987>을 보셨나요? 1987년에 9차 개헌이 있었어요. 그로부터 30년이 지났죠. 법이 30년 전 옷을 입고 있는 거예요. 개헌은 시대정신을 담는 거예요. 30년 전에는 인공지능, 4차 산업혁명, 미세먼지 같은 것이 없었잖아요. 개헌이 되면 기본권과 건강권 등 현안이 시대적 상황에 맞게 조정돼요.
개헌의 두 번째 핵심은 지방분권화예요. 현재 우리나라는 중앙집권화돼 있어서 세금의 20%만 지방으로 분배돼요. 그뿐만 아니라 시나 도에서 자체적으로 인사 개편을 할 수 없어요. 중앙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가능한데, 지역의 특색을 모르면 발전에 필요한 인사를 뽑기 어렵죠. 그래서 지역의 자치단체장이 인사 개편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지방이 발전할 수 있도록 힘을 줘야죠.
마지막은 정부의 형태를 바꾸는 거예요. 현재 우리나라는 대통령 1인 지배 체제라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돼 있어요. 그래서 부패가 많아 임기를 마치면 안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분이 많았어요. 권력 구조를 분산해 국민에게 권력을 돌려주는 게 이번 개헌의 기본 골자예요. 간단하지 않은 일이죠. 6월에 있는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 진행할 가능성이 큰데, 이때 성공하지 못하면 개헌이 어렵다고 봐야죠. 그래서 국민의 공감을 얻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전국을 돌아다니며 국민의 여론을 듣고, 토론도 하고, 국회에 발언대를 만들어 국민의 의견도 들었어요. 또 개헌 발언대 차량을 만들어 전국을 돌기도 했죠. 이제 광고도 하려고 준비 중이에요.
유력한 인천광역시 시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어요. 출마 계획이 있으신지요?
김 인천 시민에게 한없는 은혜를 받았어요. 인천에서 정치를 시작해 국회의원도 하고, 인천시 부시장도 했죠. 언젠가는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하지만 우선은 국회사무총장으로서 직분에 최선을 다해 "김교흥이 사무총장 잘했다"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요. 그게 보답이라고 생각해요. 인천은 발전할 가능성이 많은 도시예요. 때가 되면 인천을 발전시키는 데 힘을 쓰고 싶어요.
아내 염현주 씨에게 물을게요. 정치인을 남편으로 뒀어요. 정치인 가족의 삶은 어떤가요?
염현주(이하 염) 저희는 평범해요. 서민층이죠. 그래서 편안하게 마음먹으려고 해요. 남편이 17대 국회의원이 됐을 때 제가 캐주얼하게 입고 다니는 것을 보고 주변에서 검소해 보이려고 일부러 그런다는 이야기가 많았어요. 그런데 몇 년이 지나도 그 모습 그대로니까 받아들여 주시더라고요. 그런데 아들하고 딸은 아빠가 국회의원이라서 잘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대요.
김 아이들이 다 자라고 나서 이야기하더라고요. 얘기를 듣고 아이들한테 미안했어요. 저희는 아이들한테 공부를 잘하라는 이야기조차 하지 않았거든요. 아빠의 위신을 세워야 한다는 말도 한 적 없죠. 그런데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아빠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니 미안하죠.
정치인 가족의 삶이 힘들 때도 있었을 텐데요?
염 인사를 하는 게 습관이에요. 남편이 낙선했을 때도 인사를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낙선한 게 잘못한 일도 아닌데 사람들을 만날 때 받는 시선과 듣는 말이 상처가 될 때가 많았어요. 아무리 그래도 저보다 남편이 더 힘들었겠죠. 그런데 매번 다시 일어서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 감사했어요. 아이들도 남편의 모습을 보고 실패를 해도 이겨내는 힘을 배웠을 것 같아요. 제 남편이지만 대단하고 존경스러워요.
이런 아내가 남편에게도 큰 힘이 됐을 것 같아요.
염 제가 하는 일이라곤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해주는 게 다예요. 아침 식사가 남편이 유일하게 집에서 먹는 한 끼이니까 꼭 차려줍니다. 남편은 국이 있어야 밥을 먹거든요. 북엇국이나 콩나물국, 김칫국을 자주 끓여요.
남편을 살뜰하게 챙기는 모습이 보기 좋아요. 두 분은 어떻게 만나셨나요?
염 친구 부부가 소개해줬어요. 그런데 처음부터 좋은 건 아니었어요.(웃음) 소개팅 장소에 사람이 너무 많아 밖에 서 있는데, 웬 남자가 저처럼 서 있더라고요. 속으로 '설마 저 사람은 아니겠지'라고 생각했어요. 왜냐면 남편이 젊었을 때도 지금 모습과 똑같았거든요.(웃음) 그런데 남편도 저는 아닐 줄 알았대요. 제가 당시 감기에 걸려 바지를 입고 나갔는데, 소개팅에 바지를 입고 나올 거란 생각을 못 한 거죠. 그 후 한 번 더 만났는데 그때 호감이 생겼어요. 가치관이 비슷한 것 같았고 이야기도 너무 잘 통했어요. 만난 지 6개월 됐을 때 결혼했어요.
빠르게 결혼을 결정하셨네요. 아내의 어떤 점이 좋았나요?
김 대화가 잘 통했어요. 생각이 거의 비슷한 것 같았죠. 또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올바른 것도 좋았어요. 제가 정치를 하니까 제 일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는데 이해도 잘하는 것 같았어요.
염 아, 일하는 여자를 찾았대요. 남편이 바쁘니까 일하는 여자를 만나고 싶었던 거죠. 같이 바빠야 편하니까요.(웃음) 전 지금도 일하고 있어요. 미술을 전공했는데 우연히 지역 아동센터에서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게 됐어요. 그림에 아이들이 지닌 마음의 상처가 나타나는 것을 보고 미술 심리상담 영역을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집안일과 바깥일을 모두 하느라 남편보다 일찍 일어나서 늦게 잘 때가 많죠. 일하는 여자를 만나고 싶다고 한 남편은 성공한 셈이에요.
남편으로서 김교흥 국회사무총장은 어때요?
염 무뚝뚝하지만 자상한 면도 있어요. 아이들이 어렸을 때 자연이 있는 곳으로 자주 놀러 다녔죠. 연애할 때도 전국 각지를 다녔어요. 당일치기로 속초에 다녀오기도 했죠. 제가 가만히 있지 못하는 스타일인데 남편을 따라다니기가 벅찼을 정도예요.
김 제가 여행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서울에서도 데이트는 많이 했어요. 아내가 합정동에 사는데 저희 회사가 여의도라서 중간에서 잠깐씩 만나곤 했죠. 그럴 때 아내가 커피와 과일을 준비해 왔어요. 그 모습이 예뻤죠. 세심하게 챙기는 모습에 감동했어요.
염 저희가 20년 넘게 살았는데 그 모습에 감동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어요. 남편과 7년쯤 부부로 살았을 때 '부부에게 언제 믿음과 신뢰가 생길까'라는 고민을 한 적이 있어요. 생각해보니 남편은 결혼 전이나 후나 변함이 없더라고요. 항상 똑같은 모습에 너무 감사했어요. 그래서인지 저는 아직도 남편을 보고 설렐 때가 있어요.
정치인에게 한결같은 태도는 꼭 필요한 덕목이죠. 어떤 국회사무총장으로 기억되고 싶나요?
김 국민에게 힘이 되고 신뢰를 주는 국회를 만든 국회사무총장이 되고 싶어요. 아무래도 국민에게 국회가 먼 느낌이잖아요. 국민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국회를 만드는 데 총력을 다할 거예요. 또 국회를 좋은 일터로 만들고 싶어요. 국회사무처에는 소수직렬의 직원도 많아요. 속기사나 경호직, 방호직, 해설사 등이죠. 많은 직원에게 국회가 신명나는 일터가 되도록 더 나은 국회를 만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