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더듬는 것이 콤플렉스였던 청년은 어린 시절 대인기피증이 생길 만큼 남 앞에 나서는 것이 두려웠다. 그런 그가 랩을 하면서 인생이 달라졌다. 래퍼 주노플로(25세) 이야기이다. 그는 Mnet <쇼미더머니6>(이하 <쇼미>)에 출연해 세미파이널까지 진출했다. 단번에 스타가 됐고, 여기저기서 러브콜이 왔다. 주노플로는 현재 공연, 방송, 광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 중이다. 여러 차례 인터뷰를 제안한 끝에 <쇼미> 종영 이후 4개월 만에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쇼미>를 회상하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힘들었죠.(웃음) 참여한 래퍼와 심사위원이 모두 고생을 많이 했어요. 생각해보면 저도 그때 열심히 한 것 같아요. 잘하고 싶었거든요. 방송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었죠. 이전 시즌의 <쇼미> 덕에 제 인생이 바뀌었잖아요. 그때 이미 해봤으니까 이번 시즌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힘들었지만 당시의 열정은 멋졌어요.(웃음)”
주노플로는 우승 후보였지만 세미파이널에서 넉살과 붙자 시청자들은 사실상 결승과 다름없는 무대라며 아쉬워했다. 결국 ‘TOP 6’에 이름을 올렸지만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
“랩 쇼니까 실력이 가장 중요해요. 동시에 아무리 랩을 잘해도 방송에 안 나오면 아무 소용 없기도 하죠. ‘심사위원보다 랩을 잘하자’라는 각오로 임했는데, 모든 것이 좋았어요. 넉살 형과 붙게 된 건 행운이었죠. 떨어진 사람이 주목받는 <쇼미>의 특성도 한몫했어요. 지난해 참가한 <쇼미> 시즌5에서는 3차에서 떨어졌는데, 만약 그때 지금처럼 세미파이널에 올라갔다면 무척 힘들었을 거예요. 왜냐하면 그땐 지금보다 한국말을 더 못했거든요.”
천천히 말을 이어가던 주노플로가 갑자기 “솔직하게 말해도 되나요?”라며 침을 꿀꺽 삼켰다.
“이기고 싶지 않았어요. 이기고 지고는 아무 상관 없었죠. <쇼미> 마니아들은 1회부터 중반까지 집중해서 보지만 후반은 좋아하는 래퍼가 남아 있어야 계속 봐요. 멋진 무대를 보여주고 이후 비즈니스와 음악을 소신껏 잘하면 되는 거잖아요.”
결과적으로 그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스웨그 넘치는 청년이 됐다. 거리에선 사람들이 알아봤고 그의 얼굴을 찍기 위해 스마트폰을 들었다. 그렇게 촬영한 사진은 어김없이 SNS에 올라왔다. 스케줄표도 빈틈없이 꽉 차 있다.
“어디 가면 ‘주노플로다. 주노플로!’ 라고 알아봐주세요. 신기했어요.(웃음) 사람이 많은 곳에 가는 걸 안 좋아하지만 알아봐주는 시선이 싫진 않았어요. 내가 잘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주노플로는 2017년 11월 22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7 한류 힙합 문화대상 시상식에서 생애 첫 신인상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Small strides to bigger dreams.”
주노플로의 소감이다. 번역하면 “더 큰 꿈이 더 큰 걸음”이라는 뜻. 뒤늦게 축하 인사를 건네자 주노플로는 치아가 보이게 활짝 웃었다.
“음악을 하면서 상을 받을 수 있다니 의미가 깊어요. Do it something right that(잘하고 있다고 느끼게 됐다)! 인정받은 느낌이랄까. 상을 받으니 더 열심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이 많이 좋아해주시는구나, 싶어 뿌듯했죠.”
긍정적인 에너지가 몰려왔다. 대부분의 래퍼가 사회를 비판하고 자신에 대한 조소와 한을 랩으로 읊조린다. 그렇기에 밝음과 해맑음은 래퍼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주노플로는 자신만의 에너지를 내뿜었다.
“부정적인 에너지는 싫어요. 누군가 처음 만나서 인사하는 순간, 이 사람의 에너지가 나와 맞지 않는다고 느끼면 피하게 돼요. 제가 유명인이니까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다가오는 분들. 불편하죠. ‘단지 나를 상품으로 쓰고 싶은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면 미안하지만 전화도 안 받고 피하는 편이에요. 저 사람이 내 삶에 들어오면 나는 힘들어지겠구나 싶은 거죠. 저는 긍정적이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느리지만 자신의 생각을 또박또박 말했다. 그사이 한국어 실력이 몰라보게 늘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어요.(웃음) 음악, 영화, 드라마를 보며 익혀요. 영상 중간에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일시 정지해 찾아보고 새로운 단어는 메모하는 식이죠. 어려워요.”
한국어로도 랩을 쓸 수 있을까? 좋아하는 단어를 물었다.
“존나?(하하) 어디든 쓸 수 있는 말이라서 좋아요. ‘존나 배고파’, ‘존나 랩이 좋아’, ‘존나 행복해’.(웃음)”
LA에서 태어난 주노플로는 한국에서 음악 활동을 하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고 영상 매체를 통해 한국 문화를 공부하며 성장하고 있다. 주노플로가 한국 문화와 친해지는 과정에 있다면, 타이거JK는 그가 거부감 없이 한국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중간자 역할을 한다. 소속사인 필굿뮤직의 수장이자 한국 힙합 1세대인 타이거JK는 주노플로에게 가족 같은 존재이자 소울메이트다.
“제 상황과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하는 아티스트이자 스승이에요. 우리는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알아요. 누군가 제 무대를 보고 ‘네 또래 중 음악 스타일이나 플로가 타이거JK와 가장 비슷하다’고 말해줘서 ‘와우!’ 했죠. 미디어가 아티스트를 이상하게 비추면 대중은 그 아티스트를 싫어할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죠. 제가 먼저 타이거JK 형한테 필굿뮤직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했어요. 그때 형이 ‘더 큰 회사에 갈 수 있는데 왜 우리를 고르냐’고 했었죠. 그 말을 듣는 순간 필굿뮤직에 가기로 결심했어요.”
타이거JK의 이름이 나오자 주노플로는 “모든 걸 다 줄 수 있는 형”이라며 눈을 반짝였다.
“형을 만나기 전에 제겐 멘토가 없었어요. 그런데 타이거JK 형을 만난 후 제 인생에 기분 좋은 변화가 생겼어요. 전 형을 믿어요. 첫 만남이 생각나네요. LA 공항으로 입국하는 형을 마중 나갔죠. 만나기 전에 고민이 많았어요. 형을 만나면 한국말을 해야 하나 영어를 해야 하나. 많은 사람이 타이거JK 형이 무섭다고 말했거든요. 어쩌나 싶었는데 형이 만나자마자 ‘What’s Up!’ 하며 껴안으셨죠. 순간 편해졌어요. 아티스트로 나를 원하는 건지 상품으로 원하는 건지 느껴졌죠. 형은 비즈니스가 아니라 주노플로라는 사람이 누군지 알고 싶으셨던 거 아닐까요?”
타이거JK는 의정부가 지금처럼 번화해지기 전부터 집, 녹음실, 사무실 등의 터를 닦은 주인공이다. 그가 설립한 필굿뮤직 식구들은 의정부에 작은 마을을 형성했다. 주노플로 역시 의정부에서 지내는 중이다. 그는 미국 문화가 자리 잡은 이태원이나 강남이 편하지 않을까?
“의정부는 제 두 번째 고향이에요. 새로운 삶을 만들고 있고 타이거JK 형과 비지 형, 윤미래 누나로부터 새로운 걸 배우고 한국 음식을 먹으며 시작하고 있어요. 이제 의정부는 제 집이죠. 아, 맞다! 요즘 한국 음식에 빠져 있어요. 한국에서 제일 많이 먹은 게 순댓국이에요. 녹음실에서 음악 작업을 하고 나오면 해가 떠요. 그 시간에 문을 연 식당이 순댓국집, 감자탕집이거든요. 최근에 청국장을 한국에서 처음 먹어봤는데 우와, 엄청 맛있더라고요. 또 뭐 먹어봤더라. 아, 추어탕!”
스물여섯 해외파 청년의 입에서 청국장, 감자탕, 순댓국이란 단어가 나오다니. 웃음이 터졌다. 듣고 보니 소주가 생각나는 음식들이 아닌가. 혹시 소주를 사랑하는 주당이 아닐까?
“친구들과 술 마시는 게 좋아요. LA에 살 때에는 한인타운에 술 마시러 가고는 했죠. 콘서트장에서 위스키를 마시면서 음악을 듣거나, 입장 직전에 술을 마시고 들어가면 더 행복했어요. 음악도 좋고, 술도 좋고. 그렇게 종종 즐겼어요.”
대학 시절 주노플로는 래퍼의 꿈을 키웠다. 힙합과 재즈, 록, R&B 등 다양한 장르에 심취한 주노플로는 사운드 클라우드와 페이스북 등에 랩 음원을 만들어 올리며 음악을 시작했다.
“중·고교 시절 록과 힙합을 즐겨 들었어요. 음악에는 모든 것들이 쏟아져 나오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있어요.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음악을 들으며 느꼈던 ‘Feeling(감정)’을 다른 사람한테도 전하고 싶어요. 내 음악이 누군가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 아티스트가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고 삶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음악을 하는 이유죠.”
왜 음악을 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누군가 주노플로의 뇌 구조를 그린다면 음악, 패션, 타이거JK, 의정부, 순대국, <쇼미> 등 다양한 키워드가 등장할 터다. 주노플로는 깔끔한 외모와 랩 실력만큼 화려한 이력으로 주목받았다. 부친이 운영하는 패션 회사에서 일한 것은 물론 힙합을 사랑해 사진작가로도 일했다. 또 의대 공부를 했다는 게 알려지며 화려한 경력으로 화제가 됐다.
“데뷔 전, 2년 동안 패션 쪽에서 일하며 패션을 좋아하게 됐어요. 여자 옷을 팔고, 온라인 스토어 매니저로 일하고, 패션쇼에 가서 부스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옷을 팔기도 했죠. 대학교 때 아빠한테 7백 달러를 빌려 조던 신발을 4켤레 사서 되팔아 2천 달러를 벌었어요. 수익으로 아빠 돈을 갚고 또 다른 것을 사고팔았죠. 사진 찍는 게 좋았어요. 남는 건 사진뿐이니까요. 재밌거나 놀라운 일이 생기면 꼭 사진으로 추억을 기록했어요. 블로그도 열심히 했고요. 제가 찍은 사진을 친구들 모두가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으로 해둔 적이 있어요. 그때 ‘와, 나 잘 찍나?’ 했어요.(웃음) 그렇게 사진을 시작했고 이후 랩을 하면서 힙합 회사를 만나게 된 거예요. 유명 힙합 아티스트들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었죠. 수많은 공연을 통해 아티스트의 자세와 여러 가지를 배웠어요. 그때부터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내 노래를 몰라도 같이 놀자’는 마인드가 생겼고요.”
주노플로는 의사의 꿈을 접고 가수가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의대에 들어가야 의사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의대는 입학과 동시에 의사가 될 수 있는 프리패스다. 미국은 어떨까?
“한국과 미국은 시스템이 달라요. 일정 기간 의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고, 마치면 전문 시험을 치르고 합격해야 의사가 될 수 있죠. ‘프리메드(Pre-Med)’라고 해요. 2년간 했는데 하기 싫어서 그만뒀어요. 포기했다는 말은 안 하고 싶네요. 단지 안 맞았죠. 그땐 제가 음악을 하게 될지 몰랐어요. 그저 엔터테인먼트 쪽에서 일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아빠한테 ‘의사 안 한다’고 말씀드렸을 때 ‘그럼 뭐 할 거냐’고 물으셨어요. 그땐 몰라서 그냥 찾아보겠다고 했더니 ‘네가 하고 싶은 거 하라’고 말씀해주셨어요.”
금수저. 날 때부터 금으로 만든 수저를 잡고 태어난다는 뜻에서 나온 말, ‘금수저’는 유복한 가정에서 금전적인 어려움이 없이 자란 사람들을 일컫는 신조어다. 주노플로 역시 금수저로 알려졌다.
“아니에요. 부모님은 아르헨티나에서 살다 미국으로 넘어왔는데 돈이 없었죠. 그때 제가 생겼대요. 행복한 실수?(웃음) 어렸을 때는 살림이 별로 없어서 집이 휑했어요. 부모님께서 늦게까지 일하셨기에 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죠. 중학교 때쯤 부모님이 하시던 비즈니스가 잘되기 시작했고 우리 가족은 살고 싶은 집으로 이사했죠.”
문득 주노플로의 학창 시절이 궁금했다. 주노플로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디에이고 캠퍼스에서 공부했다고 한다.
“행복했어요. 학교 근처가 좋은 환경이었고 사람들도 다 행복하고 즐거웠어요. 바다 근처에 학교가 있어서 친구들과 항상 바다에 갔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러 다녔어요. 그때 제 성격이 긍정적으로 변한 것 같아요. 그래서 ‘샌디에이고’는 제게 특별해요. 제 음악이 거기서 시작됐죠. 사실 전 내성적인 사람이었는데, 샌디에이고에서 지내면서 교내 파티 동아리에 들어가서 백인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죠. 성격이 완전히 변했어요.”
내성적이었다는 주노플로의 말이 무색할 만큼 그는 살가웠다. 친절했고, 유머도 잃지 않았다.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주노플로는 하우스 음악에 맞춰 온몸을 흔들었고 스태프들과 농담도 주고받으며 거리낌 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주노플로는 가족이 있는 미국을 떠나 한국에서 홀로 생활하고 있지만 씩씩했다.
“한국 생활은 쉽지 않지만 할 게 많아서 심심하지 않아요. 음악 작업도 계속하고 있고 한국어도 공부해야 하죠. 저는 한국에 놀러 온 게 아니에요. 그래서 할 일이 많아요. 미국에 모든 걸 다 놓고 왔죠. 미국을 향해 ‘피스(Peace)!’라고 외치고 떠났어요.(웃음) 물론 잃은 관계도 있어요.”
‘잃은 관계’라는 말이 어쩐지 쓸쓸하게 다가와 물었다.
“인간관계를 말하나요? 연애?”
“(전 여자친구와) 한국 들어오기 전에 (이별에 대해) 서로 ‘OK’ 했어요. 장거리 연애의 의미를 못 찾겠더라고요. 옆에서 교감하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연애는 바빠서 안 하고 있어요. 바쁘다고 핑계 대기는 좀 그렇지만. 저와 잘 맞는 여자친구를 만나면 또 바빠지겠죠?(웃음)”
주노플로는 현재 새 앨범 작업 중이다. 곡 작업과 공연, 광고, 인터뷰 등의 스케줄을 소화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는 그에게 연말과 신년 계획을 물었다.
“내년 초에는 앨범이 나올 거예요. 하지만 그간 너무 바빠서 차에서 자고 일어나서 공연하고, 끝나고 스튜디오에 들어가는 식인데 피곤해서 작업을 하지 못했죠. 하지만 최근 두 달간 스케줄이 그나마 덜해서 집중할 수 있었어요. 연말에는 예정된 스케줄을 소화하며 계속 곡 작업을 할 계획이에요. 무엇보다 기쁜 건 가족들과 함께한다는 거! 엄마와 이모, 동생들이 한국으로 오기로 했어요. 크리스마스에도 공연을 하지만 행복하게 한 해를 마무리하고 기쁘게 1월을 맞이할 거예요.”
주노플로의 2018년은 어떤 색일까? 분명한 건 지금보다 더 스웨그 넘칠 거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