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 <낭만닥터 김사부> <듀얼>, 그리고 <사랑의 온도>까지. 양세종은 단 4편의 드라마로 자신의 자리를 굳혔다. 순식간에 누구나 알아보는 인기 스타가 됐고, 섭외 1순위 리스트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그의 선택을 기다리는 대본이 쌓여가고 있다. 양세종을 대하는 주변의 온도는 이렇게나 뜨거운데 정작 본인은 딴 세상을 보는 듯하다. 대중의 사랑엔 관심도, 흥미도, 재미도 없다는 식이다. <사랑의 온도>로 연기력과 화제성을 동시에 입증한 지금도 되레 “정말 제 이야기가 맞아요?”라고 반문한다. 아침에 눈 뜨면 가장 먼저 포털 사이트에 자기 이름을 검색해본다거나,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상처받곤 하는 여느 배우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양세종의 초침은 늘 ‘연기’를 가리키고 있었다.
“<사랑의 온도>가 끝난 후 어느 분이 알아봐주시곤 사진 촬영을 요청하셨어요. 사진을 찍어드릴 수 없는 상황이라 정중히 거절하며 인사드렸는데 그런 반응이 얼떨떨했어요. 앞으론 더 많은 분이 알아봐주시겠지만 동요하지 않을 거예요.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일도 없을 겁니다. 저는 연기하는 사람이지 인기에 연연하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단호하다. 불과 몇 년 사이에 폭풍 같은 성장을 이뤄냈는데도 흔들림이 없다. 인기에 대한 부담이라든지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라든지, 혹은 빠른 시간에 인기를 얻은 반짝 스타들에게서 볼 수 있는 자만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앞으로의 길이 걱정되지는 않아요. 스스로 잘해왔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스스로 자신을 평가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다만 늘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자’는 마인드로 하루하루를 살려고 해요. 연기도, 인터뷰도, 사람도, 인연도요. 그러다 보니 ‘어떻게 하면 내가 이걸 잘 소화할 수 있을까’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어느 날 매니저 실장님이 ‘실시간 검색어에 네 이름이 올랐다’고 하는 거예요. ‘아 그래요?’ 하고 말았어요. 연기하는 동안은 연기에만, 쉬는 동안엔 쉼에만 집중하려고 해요. 연기엔 정답이 없고 후회를 남기면 안 되니까요. 그러니까 주변 반응을 의식할 여유가 없죠. ”
<사랑의 온도>를 마치고 생긴 나흘의 여유. 그 시간에 양세종은 새벽길을 걸었다. 패딩 하나 툭 걸쳐 입고, 이어폰을 꽂고, 목적지 없이 정처 없이 걸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누구일까?’
“데뷔 후 지금까지, 그러니까 지난 3년 동안 양세종만의 오롯한 시간이 없었어요. 다음 작품을 시작하기 전에 ‘나는 누구일까?’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겠더라고요. 얼마나 걸었는지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는 정리된 것 같아요. 물론 모든 생각을 정리하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하겠지만요.”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사는 배우에게 팬들의 반응은 식량과도 같다. “일부러 동요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냐”고 물었다. 주변 반응에 무덤덤해지는 게 그만의 마인트 컨트롤 방법일 수도 있을 테니까.
“제가 원래 좀 둔한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얼마 전까지 통장을 들고 다닐 정도로 새로운 걸 받아들이는 데 오래 걸리는 성격이에요. 갑자기 바뀐 지금의 환경도 적응이 안 되네요. 물론 저도 언젠간 바뀌겠죠. 환경이 성격을,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니까요. 그렇지만 최대한 오래, 길게 무덤덤해지려고 노력할 거예요.”
양세종은 말끝마다 ‘골방 작업’이라는 말을 했다. 그는 자신이 먹고, 자고, 연기 연습을 하는 작은 공간을 ‘골방’이라고 한다. 작품에 캐스팅된 직후 취향에 맞는 ‘골방’을 렌트해 그곳에서 연기에만 몰두한다. 주변 지인들과의 연락은 사치다. 첫 작품인 <사임당, 빛의 일기> 출연 때부터 지금까지 그가 고집해온 그만의 작업 방식이다.
“작품이 시작되면 그때부터 제 휴대폰은 알람 시계가 돼요. 주변 사람들과의 연락을 다 끊고 오로지 캐릭터 분석, 대본 연습에만 몰두하죠. 인기가 높아질수록 더 연기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에요. 그래서 골방에 틀어박혀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다양한 연기를 준비해요. 부모님과도 연락을 안 하고 심지어 애인과 헤어지기도 했네요.”
양세종표 골방은 어떤 모습일까? 군더더기 없는 그의 성격을 닮아 텔레비전, 촛불, 전신 거울, 침대가 전부다.
“집이 너무 커도 안 돼요. 그리고 통로가 한눈에 보여야 하죠. 지금 사용하는 골방도 입구 왼쪽에 샤워실이 있는 것 빼고는 방과 거실이 한눈에 들어와요. 어차피 연기 연습만 할 공간인데 짐이 많은 게 싫어서 꼭 필요한 것만 들였어요. 모니터용 텔레비전, 연기 연습 분위기 메이커용 촛불…. 외롭지 않느냐고요? 다행인 건 제가 외로움을 잘 견디는 성격이라는 거예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물론 좋아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을 더 즐기는 편이거든요.”
더 다행인 건 양세종의 가족과 지인들이 그의 이런 작업 방식을 존중해주기 시작했다는 거다. 작품 시작과 동시에 연락이 두절되는 그의 라이프 패턴을 지인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마음의 짐도 한결 가벼워졌다고.
“처음엔 제가 텔레비전에 나오니까 가족들, 친구들로부터 연락을 많이 받았어요. <낭만닥터 김사부> 때까지만 해도 연락이 잦았죠. 지금은 아무도 연락이 없어요. 촬영을 시작하면 ‘골방 작업’을 한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서운하진 않아요. 제가 선택한 방법인걸요. 솔직히 이런 성격을 누가 받아주겠어요. 그래도 이해해주고 받아주니 고마워요.”
저는 연기하는 사람이지 인기에 연연하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양세종이 골방 작업을 시작한 데는 이유가 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5학년까지 유년기를 미국에서 보내고 돌아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태권도를 시작했다. 체대 입시 준비에 한창이던 고등학교 2학년 때 단체로 보러 갔던 연극을 보고 심장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느꼈다. 그 후 연기자를 꿈꾸며 그는 연습 벌레가 됐다. 남들보다 늦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고3 때 연기 학원에 등록하고 첫 수업이었을 거예요. 8명이 정원인 소규모 수업이었죠. 저는 연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까 다른 7명의 친구들이 하는 연기를 지켜보며 ‘아 저렇게 하는 거구나’ 하며 깨닫고 있었죠. 그런데 마지막 친구가 연기하는 걸 보고 뒷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어요. 너무 잘해서 놀랐던 거죠. 그 친구한테 물어봤어요. ‘연기 연습은 어떻게 하는 거야?’ 라고요.”
그 친구가 알려준 연기 연습 방법이 좁은 방에 촛불 하나 켜놓고 집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감정의 흐름대로 움직여보는 것, 그게 양세종이 처음 접한 연기였다.
“당시 기와집에 살았었어요. 방 가운데 거울로 둘러싸인 육각형 기둥이 있고 밤이 되면 유리 천장으로 별이 보였죠. 혼자 있는 방에 촛불을 켜면 순간적으로 집중이 됐죠.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독립된 공간에서 촛불 하나 켜두고 연기에 몰입하는 게요.”
‘골방 작업’은 그에게 ‘배우’라는 타이틀을 안겨주었지만, 그 이면엔 말 못할 상처도 있었다. 사랑했던 연인과의 이별이었다. 양세종은 자신의 지나간 연애에 대해 솔직하게 말했다.
“<사임당, 빛의 일기> 출연 당시 내로라하는 선배님들과 연기하는데 연습을 소홀히 할 수 없었어요. 첫 골방 작업이었죠. 당시 만나던 여자친구는 연기 연습한답시고 연락이 두절되는 저를 이해해주지 못했어요. 그 정도로 쉽게 깨질 관계가 아닌, 진심으로 사랑하던 여자친구였는데 놓치고 말았죠. 돌아보면 ‘내가 왜 그랬을까’ 싶어 자신이 원망스럽고 후회가 돼요. 그렇지만 어쩌겠어요. 제가 선택한 직업이 배우고, 그걸 잘하려면 ‘골방 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걸요. 아마 당분간도 연애를 못 하지 않을까요? 이런 저를 이해하고 받아줄 여자가 없을 테니까요.”
사랑하는 연인을 붙잡지 못할 만큼 작품과 연기를 대하는 양세종의 자세는 진지하다. 언제쯤이면 그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을까?
“노력해보지 않았던 건 아니에요.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을 때만이라도 자연인 양세종이 되어보자고 했죠. 집에 돌아와서 몇 시간만이라도 편하게 있어 보자고도 했고요. 그런데 그다음 날 촬영할 때 집중이 하나도 안 되더라고요. 그때 알았죠. ‘아 나는 연습해야 하는 배우구나’ 하고. 일상과 연기를 잘 분리하는 선배님들이 부러워요.”
쉼 없이 달려왔다. 학창 시절 수줍음 많던 태권 소년이 어엿한 성인이 되어 이제는 누구나 인정하는 배우가 됐다.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진로를 바꾸려면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막연하게 꿈꾸던 ‘배우’라는 타이틀을 얻었고, 불가능해 보이던 주연 자리도 꿰찼다. 이쯤이면 잠시 쉬었다 가도 될 법하지 않나. 양세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실 저도 사람인지라 조금 지치기도 했어요. <듀얼> 촬영 중엔 ‘나 양세종이 누구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회사 대표님께 ‘조금 쉬고 싶다’고 말씀드릴 정도로 힐링이 필요했죠. 하지만 배우가 누군가에게 선택당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엄청나게 감사한 일이더군요. 책임감을 느끼면서부턴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더라고요. 대본이 들어왔는데 보지도 않고 쉰다고요? 말도 안 돼요. 차라리 다 읽어보고 정중히 고사하는 편을 택하겠어요. 그렇게 선택한 게 <사랑의 온도>였죠. 쉬는 건 언제든 쉴 수 있잖아요.”
결론은 달리겠다는 거였다. 끝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선택당하지 않는 그 순간까지 달리고 달리겠다는 각오다. 당차다.
“주위에서 건강 관리를 하라는 조언을 많이 해요. 근데 저는 건강을 생각할 겨를이 없어요. 솔직히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오늘 하루, 또 내일 하루를 집중해서 사는 게 더 중요하죠. 물론 건강 관리를 전혀 안 하는 건 아니에요. <낭만닥터 김사부> 이후 헬스장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몸을 만든다기보단 수양을 하러 다녀요. 땀을 쭉 빼면서 몸과 마음을 정화한다고 할까요.(웃음)”
대화를 하면 할수록 진가가 드러나 양세종은 맑고 건강한 사람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는데, 그 배경엔 분명 좋은 부모님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양세종도 그 점에 크게 동의했다.
“저는 사춘기가 없었어요. 반항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시기가 사춘기인가요? 사춘기를 겪어보지 않아서 사춘기가 어떤 건지 몰라요. 초등학교 때부터 집안에 안 좋은 일들이 이어졌어요. 부모님에게 반항하기엔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죠. 어머니가 많이 고생하셨어요. 지금도 어머니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날 것 같아요. 감사한 건 지금까지 만난 모든 스승님이 정말 좋은 분이었다는 거예요. 태권도 스승님에게는 근성과 지구력, 단체 생활에서의 예의와 질서를 배웠고, 연기 선생님에게는 진짜 배우가 되는 법을 배웠죠.”
궁금해졌다. 세상 모든 어머니가 그러하겠지만 양세종의 어머니는 좀 더 특별한 것 같았다.
“아버지는 굉장히 호탕한 분이에요. 반면에 어머니는 말수가 적으시죠. 제가 배우가 되겠다고 했을 때도 어머니는 딱 한 마디만 하셨어요. ‘할 거면 이를 악물고 해라’라고요. 그 후로 몇 년을 채근하지 않고 기다려주셨어요. 제 어머니는 그런 분이에요. 자식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곁에서 지켜봐주시는 그런 분요.”
양세종이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곤 눈물을 훔쳤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어머니를 향한 아들의 효심이 느껴졌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죽기 전 소원이 있다면 첫째, 어머니가 진심으로 행복하길 바라요. 그동안 저를 위해 희생만 하신 어머니가 앞으로는 많이 웃으셨으면 좋겠어요. 두 번째는 좋은 배우자를 만나서, 세 번째는 예쁜 자식을 낳아 어머니와 아내와 한 공간에서 행복하게 웃고 싶어요. 그럴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아요. 돈 같은 물질적인 건 제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어머니와 가족의 행복이 가장 큰 가치죠.”
양세종은 그리 길지 않을 휴식 기간 동안 외장 하드디스크에 쌓여 있는 ‘버킷 영화’ 중 하나인 <타이타닉>을 볼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롤 모델로 여겨온 할리우드 배우 브래들리 쿠퍼 외에 또 다른 롤 모델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더 깊어져 돌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