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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여자들

2017년을 뒤흔든 여자들

‘진짜 소통’을 보여준 김정숙 여사, ‘헤어롤’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 논란의 여주인공 김민희, 그리고 힐링의 아이콘이 된 이효리와 아이유까지. <우먼센스>가 올해를 빛낸 여성 13명을 꼽아봤다.

On December 14, 2017

파격 소통 김정숙 여사

'쑤기와 이니'. 추억의 70~80년대 가요집에서나 만날 수 있는 혼성 듀오의 팀명 같기도 하다. 하지만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 부부의 애칭이라는 게 귀여운 반전이다. '이니'는 문재인 대통령, '쑤기'는 퍼스트레이디 김정숙 여사다. 이같은 별명은 현 대통령 부부가 얼마나 탈권위적이고 소통 지향적인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이전 정부의 비선 실세였던 최순실이 '최 회장님' '최 원장님' '최 선생님' 등으로 불리며 절대 권력을 과시한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흥미로운 건 김정숙 여사에 대한 호칭의 변화다. 김 여사는 '쑤기' 이전에 '유쾌한 정숙 씨'로 불렸다. 이미 친소통 캐릭터였다는 의미다. 문 대통령이 대선 후보였던 시절부터 김 여사는 바닥 민심을 세세하게 살피는 스타일로 통했다. 총선 이후 싸늘해진 호남의 민심을 달래기 위해 호남 특보를 자처하며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고, 당내 경선 당시 치열한 경쟁으로 소원해진 후보들의 부인을 한자리에서 만나 '통합 행보'를 선보이기도 했다.

김정숙 여사의 소통의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특유의 쾌활한 성격과 친화력 덕이겠지만 성악 전공자답게 자연스럽게 체화된 예술적 감수성도 큰 몫을 한다고 본다. 가령 문 대통령과의 연애 시절 일화 가운데 군 복무 중인 그에게 치킨 같은 먹거리가 아니라 안개꽃을 들고 면회를 갔다는 유명한 일화는 그녀의 남다른 감성을 잘 보여준다. 2012년 발간한 저서 <정숙씨, 세상과 바람나다>에서도 풍부한 감성을 바탕으로 한 소통 능력을 확인할 수 있다. 연극, 영화, 방송, 만화, 대중음악, 패션 디자인, 사진, 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직접 대화를 나눈 이 인터뷰집은 문화 예술 전반에 대한 그의 관심과 소통의 넓은 폭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능력은 영부인이 된 뒤 외교에서도 빛을 발했다. 올해 8월 한중 수교 25주년을 맞아 추궈홍 주한 중국 대사 부부와 '중국의 피카소'라 불리는 작가 치바이스의 특별전을 관람하며 친분을 쌓은 것이 대표적이다. 한 달 뒤 추 대사 부부는 김 여사에게 치바이스 작품 전집 도록을 선물하며 화답했다. 이 훈훈한 풍경은 얼어붙은 한중 관계가 최근 전환점을 맞은 데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평가다. 트럼프 대통령 방한 당시에는 멜라니아 여사와의 문화 외교가 호평을 얻었다. 김 여사는 건축과 디자인을 전공한 멜라니아 여사에게 한옥을 소개하며 전통 건축 미학에 대한 대화를 나눠 "김정숙 여사와의 대화가 즐거웠다"는 인사를 받았다.

또 다른 소통의 비결은 탁월한 스토리텔링 능력이다. 대표적 사례로 지난 7월 수석보좌관회의에 제공한 수해 지역 낙과 화채를 들 수 있다. 홍수 피해 지역에 직접 방문해 복구 지원을 도왔던 김 여사의 일화와 피해 주민들에 대한 공감과 배려가 담겨 있는 화채 스토리는 감동과 함께 수해 지역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냈다. 독일 방문 시 작곡가 윤이상 선생의 묘소를 방문한 일화도 유명하다. 김 여사는 윤이상의 고향인 통영에서 공수해온 동백나무를 묘소에 식수하며 영혼을 위로하고 한독 간의 문화적 교차점에 애틋함의 정서를 더했다. 청와대 곶감 일화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11월 초 청와대 인스타그램에 대통령 관저 사진이 올라왔다. 사진 속에는 청와대 경내에서 수확한 감을 주렁주렁 매달아 말리는 풍경과 그 아래 앉아 신문을 보는 김 여사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처럼 감성적이면서 인간미 넘치는 이미지는 청와대와 대중의 거리를 한층 좁혔다. 더 놀라운 건 이 사진이 며칠 뒤 방한한 트럼프 대통령 부부에 대한 환대의 예고였다는 점이다. 김 여사가 멜라니아 여사와의 차담에 제공한 호두곶감쌈이 바로 이 곶감이다. 단순한 스토리가 아니라 경험담을 바탕으로 한 스토리는 더 강한 공감을 이끌어낼 수밖에 없다.

김정숙 여사의 특별한 소통 능력은 근엄한 영부인 이미지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다. 이전의 영부인들이 친서민적이고 소탈한 이미지를 강조하면서도 '튀는 행동'에 대한 암묵적 금기가 존재했다면, 김 여사는 그 선을 넘나드는 파격으로 신선한 충격을 준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동남아시아 순방 중 필리핀 동포 간담회에서 평창올림픽 홍보대사로 위촉된 한인 출신 방송인과 함께 싸이의 말춤을 춘 모습이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또 다른 입장도 존재한다. 그들은 김 여사의 남다른 추진력과 여장부 스타일도 조명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가령 지난 11월 초에 열린 '2017 아시아여성리더스포럼'에서 강연한 도시 건축가 김진애 박사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양성적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문 대통령 부부를 모델로 꼽았다.

문 대통령은 남성 지도자들이 결여하기 쉬운 공감과 배려, 연민, 세심함을 갖췄으며, 김 여사는 통솔과 지휘의 리더십을 지녔다는 것이다. 김 여사의 소통 전략과 리더십에는 분명 여성층도 매력을 느낄 요소가 많다. 현재 젊은 여성층에서 문제 제기하고 있는 21세기적 젠더 의식을 좀 더 보완한다면, 우린 정말 가장 이상적인 퍼스트레이디의 모델을 김정숙 여사에게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모든 김지영들에게 조남주 작가

한국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 여성을 가장 잘 대변하는 단어가 돼버린 '김지영'. 이는 지난해 출간된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 이름이다. 책은 평범한 여성이 취업, 결혼, 출산 등 삶의 과정에서 마주하는 일상적인 여성 차별과 구조적 불평등을 완벽하게 재현했다는 평을 받으며 현재까지 화제의 도서로 손꼽히고 있다. 온·오프라인 서점 소설 부문 1위, 15주 연속 베스트셀러 TOP 10, 출간 7개월 만에 10만 부 돌파 등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며 침체된 출판 시장에 기현상을 만들어냈다. 최근에는 영화화도 결정됐다.

조남주 작가는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불만제로> <생방송 오늘아침> 등 10년간 시사 교양 프로그램 작가로 일해왔다. 2011년 장편소설 <귀를 기울이면>으로 문학동네소설상을, 2016년 장편소설 <고마네치를 위하여>로 황산벌청년문학상을 수상했다.

조 작가는 "최근 '여성 혐오'와 관련한 이슈가 많았어요. 미디어에서도 여성 혐오 발언이 많이 나왔고요. 이러한 여러 가지 현상을 접하다가 현재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여성들의 삶이 어떠한지 정리해보고 싶었죠. 이제는 '페미니스트'라고 당당히 드러낼 수 있는 때가 됐다는 판단이 섰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에 대해 설명하자면 이렇다. 평범한 집안의 둘째딸로 태어나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내고 직장 생활을 했으며 결혼, 출산, 육아를 겪으면서 전업주부가 된 그야말로 평범한 여성이다.

"보통의 누구나가 겪는 흔한 일들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많은 이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의 평범한 여성들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기록물로 남기고자 했죠."

주인공을 1982년생으로 설정한 이유도 비슷하다. 태아의 성별을 감별할 수 있게 된 1980년대는 암암리에 여아 낙태 수술이 이뤄졌고, 이 때문에 성비가 가장 불균형했던 때다. 그 당시 태어난 아이들이 자라 성인이 됐을 때는 보육 시설이 발달해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긴 젊은 엄마'라는 비난을 받기 일쑤였다.

<82년생 김지영>에 독자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 작가는 딸로 태어나 겪는 차별과 소외감은 누구나 비슷했을 것이라며 독자들의 주인공에 대한 공감이 소설이 인기 있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조 작가는 "시대별로 고민하는 이슈들이 있었을 것이다. <82년생 김지영>을 집필하면서 공을 들인 것 중 하나는 현재의 이슈를 담으려고 애썼다는 것"이라며 "스스로를 '페미니스트 작가'라고 정체화하지 않을 거지만, 앞으로 페미니즘과 관련한 소재를 다룬다면 좀 더 예민하고 깊이 있게 쓰고 싶다"라고 말했다.

책 <82년생 김지영>이 '2017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데 이어 조 작가는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로 꼽혔다. 아울러 여성 인권과 관련한 다양한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조 작가에게 '페미니스트'로 비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는지 묻자 "없다"라고 대답했다. 이어 "'저 사람은 페미니스트야. 페미니즘적인 발언을 해'라는 말을 듣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다"면서 "다만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다 보니 강연을 제외하고 전면에 나서지는 않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소신도 밝혔다.

"어떠한 사회운동도 한 가지 모습만 갖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공격적으로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죠. 다양한 표현 방식이 존재하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우리나라 여성들이 하고 있는 페미니즘 운동의 방식이 공격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검은 옷을 입고 '몰카 찍지 말아라, 때리지 말아라'라고 주장하는 게 전부인데 이 정도면 굉장히 온건한 편 아닌가요?(웃음)"

조 작가는 <82년생 김지영>에서 어떤 결론을 짓지는 않았다. '이후에 김지영은 어떻게 됐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다. "가상의 인물이지만 김지영에게 애정이 생기더라고요. 주인공이 현실을 극복하고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결말을 당연히 생각해봤죠. 하지만 그렇게 끝을 맺으면 실제로 현실을 이겨내지 못하고 고민하는 여성들에게 좌절감을 안겨드릴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열린 결말로 소설의 문을 닫았죠. 소설은 끝났지만 제가 책을 쓰며 김지영 씨에게 느낀 죄책감은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여자를 대변하는 조남주 작가. 그녀는 내년에도 여성 앞에 설 것이다.
 

빛나는 연대 윤여정×정유미

한국 대중문화의 흥행 공식은 수년 동안 '브로맨스'가 독점해왔다. 영화계는 최초의 천만 영화 <실미도> 이후 남배우들의 소위 '떼주물(여러 명의 주연배우가 등장하는 영화)'이 대세를 이루었고, 예능계 역시 MBC <무한도전> 이후 남성 집단 MC 체제가 주류를 형성했다. 비교적 여성 파워가 강했던 드라마계마저 '남남 케미'를 전면에 내세우는 작품이 늘어갔다. 여배우가 설 자리가 줄어들었다는 말이다. 올해 윤여정과 정유미의 '여여 케미'에 쏟아진 환호는 그래서 유독 사이다처럼 느껴졌다. tvN <윤식당>을 통해 떠오른 이들의 우정은 원래 '브로맨스'처럼 기획 단계부터 전략적으로 내세운 것은 아니었다. tvN <꽃보다 누나>의 예외를 빼면, 나영석 PD야말로 출세작인 KBS <1박2일>부터 최근작인 tvN <삼시세끼-바다목장 편>까지 줄곧 남성 중심 예능에 집중해온 감독이다. 그런 그가 <윤식당>에서 '케미'를 강조하고자 했다면, 늘 그랬듯 이서진을 중심으로 여성 출연자와의 러브 라인을 정유미로 변주하거나 이미 <꽃보다 할배>와 <삼시세끼>로 호흡을 맞춘 바 있는 신구와의 '신구 세대' 교감에 초점을 맞췄을 것이다. 실제로 <윤식당>에서 이서진과 정유미는 자전거 출근길을 함께하고 물놀이를 즐기는 등 다정한 모습을 자주 선보였다.

그러나 막상 뚜껑이 열리고 보니 시청자들의 가장 열렬한 반응은 윤여정과 정유미 커플에게로 향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방영 전까지는 예능을 불편해하는 윤여정이 자신의 이름을 아예 간판으로 내건 프로그램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지 짐작하기 어려웠고, 예능 고정 출연이 처음인 정유미는 내내 긴장하지 않을까라는 추측이 많았다. 재밌는 사실은 둘의 케미스트리가 바로 이 우려한 지점에서 빛을 발했다는 것이다. 사장 겸 셰프 역할을 맡은 윤여정은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정유미에게 많은 것을 의지했고, 주방 보조이자 '윤바라기' 정유미는 윤여정에게 집중함으로써 예능의 어색함을 이겨냈다. 발랄한 커플 바지를 입고 이인삼각 게임을 하듯 한 몸처럼 호흡을 맞춰 요리 미션을 뚝딱 해내는 이 커플을 이전에는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더 큰 의미는 이들의 관계가 여러모로 고정관념을 깨뜨렸다는 데 있다. 우선 남초 현상이 가장 심각한 예능계에서 여성끼리의 진한 유대로 성공을 일궈냈다는 것. 특히 <1박2일> <무한도전> <런닝맨> 등 장수 예능 속에서 서열 문화와 경쟁이 두드러지는 남성 집단과 달리 그녀들은 공동의 목표를 위해 상호 의존을 통한 안정적 호흡에 초점을 맞추며 힐링을 선사했다. 윤여정이 아니었다면 출연하지 않았을 거라며 세심한 곳까지 마음 쓰는 정유미와 나이 든 어른 특유의 잔소리나 간섭 없이 고마움과 애정을 숨기지 않는 윤여정의 관계는, 지난해 강남역 살인 사건의 충격을 계기로 "우리는 서로의 용기다"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라는 슬로건을 통해 서로를 지지하게 된 여성들의 동시대적 정서와 맞물리며 같은 여성 시청자들의 강한 호응을 이끌어냈다.

이전까지 좀처럼 보기 어려웠던 여성들의 세대 초월 우정을 그려냈다는 점도 큰 호평을 받았다. 윤여정의 나이는 올해 71세, 정유미는 35세로 무려 26살 차이다. 그동안 대중문화에서 이 정도의 나이 격차를 지닌 여성들은 대부분 모녀지간이나 고부지간이기 일쑤였다. 남성에 비하면 여성들의 관계 묘사에 얼마나 다양성이 부족한지를 알려주는 사례다. 윤여정과 정유미는 이러한 고정관념을 벗어나 메인 셰프와 주방보조, 선후배 연기자,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친구 등 다채로운 관계를 보여줬다. 서로를 존중하고 예의를 지키면서도 동시에 격의 없는 친분을 나누는 노년 여성과 젊은 여성의 관계는 모든 면에서 신선했다.

돌이켜보면 윤여정과 정유미는 의외로 많은 공통점을 지녔다. 영화계에 데뷔하자마자 신인상을 휩쓸며 주목받았고, 나이에 따라 누구의 엄마나 연인으로 쉽게 호명되는 '여배우'의 전형적 역할에 머무르지 않은 채 개성 있는 캐릭터를 구축했다는 점이 유사하다. 윤여정은 신인상과 여우주연상을 동시에 독식하게 해준 1971년 영화계 데뷔작 <하녀>에서부터 70대에 접어들어서도 원톱 주연으로 나서며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까지 수상한 <죽여주는 여자>까지, 끊임없는 파격과 도전을 선보였다. 2005년 <사랑니>의 꾸밈없는 연기로 영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던 정유미는 독립영화와 트렌디 드라마를 넘나드는 폭넓은 스펙트럼 안에서 다양하게 변신해왔다.

<윤식당>은 그렇게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고유한 오라를 지켜온 그들에게 자연스럽게 주어진 선물과도 같다. 그들은 이전에도 최고의 배우였지만 <윤식당>에서의 여성 연대를 통해 더 강렬한 존재감을 발휘하게 됐다. 윤여정은 일반 여성들에게까지 인생의 롤 모델로 자리 잡으며 새로운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최근에는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에서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고, 미드 <하이랜드>에 주연으로 캐스팅되며 배우로서도 정점을 맞았다. 지난해 천만 영화 <부산행>을 남겼으나 여전히 대중적 인지도가 다소 약하다는 약점이 있던 정유미는 트렌디하고 스타일리시한 이미지를 얻으며 광고를 섭렵 중이다. 차기작인 영화 <염력>은 넷플릭스 공개가 결정되며 윤여정처럼 세계 진출을 앞두고 있고, 윤여정과 절친한 노희경 작가의 신작 <라이브>에 출연도 확정 지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윤식당> 시즌2에서도 다시 한 번 연대의 힘을 발휘할 예정이다. 둘의 행보는 '연결될수록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유리천장 깬 여전사 임일순 사장

'유리천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암묵적인 차별과 편견을 말한다. 능력과 자격이 있음에도 승진에서 여성이거나 소수민족 출신이라는 이유로 가로막히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뜻한다. 여성에 대한 처우가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유교 사상과 남아 선호 사상이 팽배했던 우리나라에서 유리천장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두꺼웠다. 그런 유리천장을 깬 여성이 등장했다. 지난 10월 홈플러스가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 임명한 임일순 당시 경영지원부문장(COO, 부사장)이 그 주인공. 홈플러스는 재무부문장(CFO), 경영지원부문장(COO)을 맡아 흑자 전환과 체질 개선 성과를 낸 그녀의 공로를 인정해 최고 대우를 하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임일순 사장은 국내 대형 마트업계 최초의 여성 최고경영자(CEO) 타이틀을 갖게 됐다.

임 사장의 승진은 많은 의미를 지닌다. 국내 대형 마트업계를 포함한 유통업계 최초의 여성 CEO가 됐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지만 현 정부가 공직 요직에 과감히 여성을 발탁하는 기조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홈플러스의 과감한 선택이 눈길을 끈다. 여성들이 소비의 주체이기 때문에 이들을 잘 이해하는 여성 임원이 다른 업종보다 필요하다는 주장을 적극 수용, 여성 인력 채용 비율을 늘리고 관련 복지도 강화하고 있다. 시대의 변화에 앞장서고 있는 셈이다.

연세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임 사장은 모토롤라와 컴팩코리아 등 IT업계를 거쳐 1998년부터 코스트코, 바이더웨이, 호주의 엑스고 그룹(Exego Group) 등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역임했다. 2015년 말 홈플러스에 합류해 재무부문장과 COO를 역임하는 등 20년 가까이 유통업계에서 활동한 '재무통'이다. 이를 바탕으로 향후 홈플러스의 수익성 향상에 힘을 쏟을 전망이다.

홈플러스는 "그동안 경영지원부문장(COO)과 CFO, 인사부문장 등 주요 요직에 여성 임원을 배치하는 등 임원 선임에 성별을 가리지 않고 평등한 인사를 했다"며 "이번 신임 사장 취임도 이런 홈플러스의 인사 방침이 이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인사를 통해 홈플러스는 탄력적인 사업 운영을 꾀하게 된다. 1천만 워킹맘 시대에 유리천장을 깨부순 임일순 사장의 활약을 기대해본다.
 

힐링의 아이콘 이효리×아이유

"10분 안에 이성을 유혹할 수 있다"고 노래하던 가수 이효리가 '소길댁'으로 돌아왔다. 스물다섯 살이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갈망한다"고 노래하는 가수 아이유는 수줍음 많은 또래의 '이지은'(아이유의 본명)으로 돌아왔다. 가요계 선후배인 두 사람은 11살의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친구가 됐다.

JTBC <효리네 민박>은 제작 단계부터 시청자들의 관심이 뜨거웠다. 많은 이의 관심 속에 이효리와 이상순 부부는 민박집을 개업해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과 만났다. 첫 민박집 운영으로 진땀을 빼는 부부 앞에 지원군이 나타났다. 바로 아이유. 아이유는 '아르바이트생 이지은'으로 참여했는데, 이 콘셉트는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지난 6월 처음 방송된 <효리네 민박>은 제주도를 배경으로 다양한 이야기와 풍경을 담아 시청자들로부터 "보기만 해도 힐링이 된다"라는 호평을 이끌어냈다. 역대 JTBC 예능 프로그램 사상 가장 높은 10%대 시청률을 기록하며 사랑받은 것이다.

결혼 후 베일에 싸여 있던 이효리가 남편 이상순과의 소탈한 일상을 공개했고,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고 앨범을 발표하는 방식으로만 대중과 소통해온 아이유가 민낯을 드러냈다. 이효리는 아이유를 통해, 아이유는 이효리를 통해 서로의 과거와 미래를 봤다. 1998년 걸 그룹 멤버 핑클로 가요계에 데뷔한 이효리는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시기를 추억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인기의 정상에서 잘 내려올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은퇴라는 극단적 방법이 아닌 천천히 내려오는 과정에서 성숙한 인간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꺼냈다. 이런 이효리의 고민을 아이유도 공감했다. 세대를 뛰어넘는 공감이었다. 아이유는 2008년 16세의 나이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데뷔 당시 중학생이었던 아이유는 또래 친구들이 누리는 일상을 함께할 수 없었다. 선배 이효리는 그 고충을 알기에 아이유가 평범한 일상을 경험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들은 가수 선후배를 뛰어넘어 자매, 친구처럼 우정을 쌓으며 교감하고 서로를 이해했다. 끊임없는 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겐 동종업계 선후배가 진심으로 고민을 나누는 것이 다소 생소할 법하다. 그러나 이효리와 아이유는 서로를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질투와 경쟁심이라는 감정에서 벗어났다. 시청자들은 그런 두 사람을 보며 함께 힐링의 순간을 즐겼다.

특히 이효리와 아이유가 민박객과 허물없이 어울리는 모습 또한 따뜻하게 다가왔다. 일부 스타들처럼 얼굴에 난 잡티가 싫어 공 들인 화장을 하고도 민낯인 척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깨끗이 세수하고 나온 건강한 얼굴은 그 어떤 시상식 레드 카펫 위의 스타보다 빛났다. 이효리와 아이유는 '여성은 예뻐야 한다. 그러므로 꾸며야 한다'는 남성들이 만들어놓은 폭력적인 시선에서 자유로웠다.

또한 <효리네 민박>에는 보기만 해도 힐링이 되는 제주도의 한적한 바다와 들이 담겼다. 각박한 도시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제주도의 멋진 풍광을 보며 대리 만족했고 그 중심에는 이효리와 아이유가 있었다. 이들은 제주도의 자연 속에서 요가를 하거나 시시콜콜한 대화를 주고받았고, 때로는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겨 자유롭게 춤을 췄다.

힐링 포인트는 또 있다. 바로 동물이다. 이효리는 동물을 보호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모피를 비롯해 가죽 제품을 사용하지 않으며 페스코 베지테리언임을 선언한 바 있다. 육류는 먹지 않지만 유제품과 해산물은 먹는 채식주의자를 말한다. 동물 애호가답게 이효리는 강아지 5마리(모카, 순심이, 구아나, 석삼이, 고실이)와 고양이 3마리(미미, 순이, 삼식이)를 구조 또는 입양해 키우고 있다. 이들은 이효리의 '애완동물'이 아닌 가족과 같은 존재였다. 8마리의 동물 친구들은 카메라 앞에서 매력을 발산하며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효리와 아이유 못지않은 인기 스타가 된 것이다. 자연스럽게 아이유 역시 이효리의 동물 친구들에 동화됐고, 그녀가 그들과 어울리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위안이 됐다.

연예인은 직업 특성상 일반인들과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화려한 그들의 삶은 위화감을 조성하고 보통 사람에게 '난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는 박탈감을 안기곤 한다. 그러나 <효리네 민박>은 달랐다. 이효리는 개별적인 협찬을 일절 거절했고, 아이유 역시 뜻을 함께했다. 불필요한 협찬을 노출하는 대신 소소한 일상과 동물 친구들, 제주도의 풍경으로 채웠다. 개념 있는 이효리와 아이유가 선사한 힐링 그 이상의 힐링이었다.
 

올해의 청춘 볼빨간사춘기

볼빨간사춘기는 이 시대 청춘을 위로하며 큰 공감을 얻고 있다. 올 한 해 가요계를 강타하며 등장한 이들의 인기는 단순히 공감을 넘어 '믿고 듣는 음악'이라는 신뢰를 형성했다. 스물둘 청춘의 반란이었다. 그리고 당당히 '올해의 신인'에 등극했다.

볼빨간사춘기는 1995년생 동갑내기 친구 안지영과 우지윤으로 구성된 여성 듀오 가수다. 경북 영주여고 같은 반 친구 사이였던 안지영과 우지윤은 사춘기처럼 솔직하고 순수한 음악을 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뭉쳤다. 팀에서 우지윤은 부끄러움이 많다는 이유로 '볼빨간', 안지영은 사춘기 소녀처럼 행동한다는 이유로 '사춘기'를 맡고 있다.

데뷔 전 이들은 유명 대형 기획사의 오디션을 비롯해 다수의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여했지만 줄줄이 낙방했다. 이후 2014년 Mnet의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 6>에 출연했으나 10위 결정전에서 탈락했다.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번번이 고배를 마셔온 볼빨간사춘기였지만 바닐라 어쿠스틱, 스웨덴세탁소, 김지수 등 실력파 가수들이 소속된 쇼파르뮤직은 이들의 보석 같은 재능을 알아봤다. 볼빨간사춘기가 쇼파르뮤직에 들어간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소속사는 볼빨간사춘기가 노래를 직접 만들게 했다. 놀랍게도 두 멤버는 일주일에 2곡씩 만들며 데뷔를 앞두고 칼을 갈았다.

볼빨간사춘기가 등장하자 가요계에서는 "어디서 이런 신인이 나왔냐"는 반응이었다. 싱어송라이터의 기근에 시달리던 가요계였기에 더욱 반가웠다. 볼빨간사춘기가 음원을 발표하면 음원 순위 1위는 늘 따놓은 당상이었다. 발표할 때마다 음원 순위 상위권을 휩쓸며 음원 강자로 떠오른 것이다. 볼빨간사춘기는 올해 제31회 골든디스크 어워드, 제14회 한국대중음악상, 가온차트 케이팝 어워드를 비롯해 각종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거머쥐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재밌는 점은 볼빨간사춘기가 기존 가수들과 다른 길을 걸어왔다는 것이다. 볼빨간사춘기는 오로지 음악으로 승부했다. 예능에 거의 출연하지 않은 채 음반을 발표하고 대중과 소통했다. 오히려 방송 활동이 많지 않아 아쉬워하는 팬들이 있을 정도다. 자신의 이야기를 툭 던지듯 노래하는 두 소녀가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일 리 없지 않나. 한 소녀는 앉아 기타를 튕기며 노래하고, 다른 소녀는 그 옆에서 가만히 노래한다. 가끔 율동에 가까운 앙증맞은 손동작이 표현을 도울 뿐이다. 그렇게 볼빨간사춘기는 '우주를 줄게'를 비롯해 '나만 안 되는 연애' '심술' '유(YOU)' 등 많은 히트곡을 내놓았다. 공감과 위로를 전하는 가사와 특유의 매력적인 음색이 흥행 요인이 됐다. 짝사랑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어 10대와 20대의 공감을 얻은 것이다. 특히 볼빨간사춘기 특유의 음색이 풋풋한 가사와 만나 시너지를 발했다. 두 소녀는 자신들의 감성을 발랄하고 풋풋하게 노래했고 대중은 열광했다. 볼빨간사춘기는 올 연말 국내·외를 넘나들며 공연을 열고 팬들과 만날 예정이다.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볼빨간사춘기를 만나고 싶다는 두 소녀의 꿈처럼 아이돌 일색인 한류 시장에 볼빨간사춘기가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월드 챔피언 김연경

대중이 김연경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예능 프로그램에 얼굴을 내밀면서부터다.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나 혼자 산다> 등에서 그녀가 시크하지만 허당미 넘치는 모습을 보여준 덕에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한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대중적인 인기가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사실 김연경은 꽤 오래전부터 유명했다. 큰언니를 따라 배구를 시작한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줄곧 '기대주' '꿈나무'라 불리다가 2005년 프로 데뷔 첫해에 신인상, 득점상, 공격상, 서브상, 트리플 크라운까지 모두 휩쓸면서 '배구 여제'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리고 지금은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세계랭킹 1위' 선수다.

그 활약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중국 여자 프로배구 리그의 클럽인 상하이 구호우아라이프 소속 선수인 그녀는 2017~2018 시즌 중국 여자 배구 프로리그 조별 예선 B조 6차전에서 자기 팀을 6연승으로 이끌었다. 이 기세라면 앞으로 남은 경기 역시 문제없어 보인다. 중국으로 떠나기 전 만난 김연경은 자신이 세계 1위 선수라는 것에 우쭐하지 않았다. 오히려 앞으로 한국 배구를 어떻게 이끌어가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모든 경기가 중요해요. 중국 경기도 중요하지만 세계여자선수권 아시아 예선전도 중요하죠. 처음부터 가장 중요한 대회라고 생각했고 그만큼 모든 선수가 열심히 할 거예요. 아직 도전은 끝나지 않았어요. 2020 도쿄올림픽이라는 큰 무대가 기다리고 있죠. 도쿄에 가기 위해, 꿈을 이루기위해 선수들을 잘 이끌겠습니다."

세계가 왜 김연경을 주목하는지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이번엔 그녀의 면면을 들여다보자. 포지션은 레프트 포워드. 중학교 3학년 때까지 170cm도 안 될 정도로 키가 자라지 않아 중학교 3년 내내 교체 멤버로 전전하다가 고등학교 진학 이후 키가 20cm 이상 자라며 1학년 겨울부터 레프트 공격수로 포지션을 바꿨다. 큰 문제 없이 승승장구해온 것처럼 보이지만 힘든 기억이 없었던 건 아니다.

"2012년에 FA 자격 취득 조건을 놓고 흥국생명과 갈등이 있었어요. SK로 옮기려고 했지만 의견이 달라 여의치 않았죠. 각종 논란과 의혹이 불거졌어요. 선수 생활 중 가장 힘든 시기였던 것 같아요. 정신적으로 힘든 게 체력적으로 힘든 것보다 더 힘들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그 기억 때문일까? 약 20년을 배구 선수로 살아온 그녀가 이제는 한국 배구 발전에 앞장서려고 한다. 그 첫 번째 행보는 지난 8월 대한배구협회의 부실한 대표팀 운영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터뜨리면서 시작됐다. 아시아선수권대회 출전을 위해 필리핀으로 출국하면서 "흥국생명 이재영 선수가 이번에 대표팀에 합류했어야 했다. 고생하는 선수만 고생한다"라고 쓴소리를 남겨 논란이 불거진 것. 김연경의 의도는 이재영 선수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대표 선수의 관리와 인재 발굴 및 육성 시스템의 필요성에 대한 지적이었다. 원정 경기 시 통역의 부재, 대표팀 선수 중 절반만 비즈니스석에 타고 나머지는 이코노미석에 앉아서 가는 '반비즈니스 논란' 등 그동안 한국 배구의 환경은 열악했다.

"제가 대한배구협회를 지적하면서 엔트리에서 제외됐고 해당 경기의 성적이 좋지 않았죠. 저는 이재영 선수를 비난한 게 아니었어요. 엔트리도 제대로 구성하지 못해 경기 후 쉬지도 못하고 다음 경기에 연속해서 출전해야 하는 현 배구 시스템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던 거였죠.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우리나라 배구… 답이 안 보여요. 아주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만큼은 확실해요."

한국 배구의 시스템이 개선돼야 한다는 것을 통감한 김연경은 즉각 행동으로 옮겼다. 어린 선수들에게 재미있게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자 지난 10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유소년 배구대회(김연경컵 유소년 배구대회)를 개최했다. 꿈나무를 지켜보는 그녀의 표정은 어느때보다 밝았다.
"꿈나무 육성이 가장 중요해요. 새 얼굴이 없으니 기존 선수들만 출전하고, 그러다 보면 개인 역량도 떨어지게 마련이죠. 근데 그건 너무 큰 바람인 것 같고 당장 대표팀만이라도 잘 운영됐으면 해요. 엔트리를 꽉 채워서 함께 훈련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요. 그 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 영향력을 키워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닐까요?"

그녀가 방송 활동을 꾸준히 하는 이유도 대중적인 영향력을 키우기 위한 일환이다. '내가 유명해져야 배구도 알릴 수 있다'는 어떤 사명감 같은 거였다.
"처음엔 팬들과 소통하기 위해 방송에 출연했는데, 어느 순간 유명해진 저 때문에 배구도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더라고요. 비인기 종목이던 배구에 관심을 가져주는 분이 많아지면서 '방송 활동을 더 열심히 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더라고요. 수원에서 열린 그랑프리대회는 평일이었는데도 전석이 매진됐어요. 물론 저 하나 때문은 아니겠지만 그만큼 배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게 아닐까요?"

그녀가 코트 위에서 뛸 날은 얼마 남지 않았다. 잦은 부상 탓에 건강도 악화됐거니와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김연경은 한국 배구를 이끌었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코트 안에서는 파이팅 넘치는 열정적인 선수이고 싶고, 코트 밖에서는 한국 배구를 위해 열심히 뛰는 본받을 만한 선수가 되고 싶어요. 먼 훗날에는 지도자로 활동하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아직은 코트 위에서 뛰고 싶어요."

최고가 되려 하기보단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자. 최선을 다하는 자에게 최고의 자리가 주어지는 법이니까.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했던 김연경이 최고라 불리는 이유다.
 

엄마의 헤어롤 이정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2017년 3월 10일. 세상의 눈과 귀는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의 입으로 향했다. 이 전 재판관은 최순실과 그 추종 세력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 지위와 권한을 남용한 박근혜를 탄핵했다. 그렇게 이 전 재판관은 국정 농단 세력과 대통령을 향해 타오르는 국민의 촛불에 상식적 판결로 응답했다. 자신의 잘못을 끝까지 뉘우치지 못한 박근혜 대통령의 이름 앞에 '전(前)'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통렬한 순간이었다.

1962년 울산광역시에서 태어난 이정미 전 재판관은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 1984년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법복을 입었다. 1987년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임관, 2010년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지냈다. 이후 여러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에서 판사로 몸담은 이 전 재판관은 2011년 이용훈 당시 대법원장의 지명으로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됐다. 전효숙 전 재판관에 이은 두 번째 여성 재판관이란 기록을 세운 것이다. 신혁승 숙명여대 교수와 결혼해 한 남자의 부인이자 슬하에 1남 1녀를 둔 엄마가 된 후에도 의사봉(법봉)을 놓지 않았다. 일하는 엄마, 일명 '워킹맘'이 된 것이다. 여성 법조인이자 엄마로 살아가기란 쉽지 않았지만 남들보다 두 배로 노력했다. 그리고 사회적 약자의 권리 보호를 중요시하는 판결을 내려왔다는 평가를 받으며 지난 3월 13일 소박하게 퇴임했다.

여성으로 바라본 이 전 재판관은 더욱 남다르다. '이정미'라는 이름을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하면 '헤어롤'이 연관 검색어로 따라온다. 이 전 재판관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선고 당일인 3월 10일 오전, 뒷머리에 분홍색 헤어롤 2개를 말고 출근하는 모습이 포착되며 화제를 모았다. 이 전 재판관의 헤어롤 사진은 일하는 여성에 대한 일부 사회의 편견을 바로잡는 계기가 됐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슈퍼 우먼'의 애환과 고충을 대변하며 일하는 여성에 대한 편견을 날려버렸으며, 특히 중년 여성도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는 데 크게 공헌했다. 이 전 재판관의 헤어롤을 본 이 나라의 아들딸들은 '일하는 엄마'에 대해 새삼 존경심을 가졌을지도 모르겠다.

이 전 재판관은 퇴임 이후에도 타인에 모범이 되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3월 헌법재판소에서 퇴임한 그녀는 4월부터 모교인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공익적으로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이 전 재판관은 청소년 문제와 관련된 활동을 하고자 하는 바람을 밝히기도 했다. 그녀를 빼놓고 '올해의 여성'을 어찌 논할까? 이 전 재판관은 예순을 바라보는 현재에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우리 사회에 이바지하고 있다.
 

우아한 백조 최인아 대표

요즘 핫하다는 '최인아책방'의 주인 최인아 대표.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 등의 카피를 만든 내로라하는 카피라이터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제일기획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했다. 감각적이고 스타일리시한 광고업계에서 우직하게 최인아 스타일을 고집하며 지냈다. 광고란 사람 마음을 얻고 설득해야 하는 것이란 생각에 스타일보다 공감 가고, 설득되며, 믿을 만한 자신만의 방식을 찾았다. 삼성그룹 내 최초의 여성 상무, 전무, 부사장 타이틀을 독식한 그녀는 돌연 사표를 낸다. 그러고는 2년이 지난 지난해 여름 책방을 차렸다. '최인아책방'의 숨은 이야기는 뭘까? 가을바람이 살랑 부는 9월의 끝자락에 '최인아책방'의 마님, 최인아 대표를 만났다.

"책과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해요. 내가 좋아하지만 나 혼자 재미있어하며 끝나지 않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싶었죠. 서점이 단순히 책을 사고파는 가게라면 책방은 노래방, 찜질방처럼 헤어지기 아쉬울 때, 더 있고 싶을 때 가는 곳 같아요. 책만 사는 게 아니라 같이 생각을 나누고, 사람이 이어지게끔 하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1999년 시카고에 출장갔을 때 카페, 지하철역 등 잘 보이는 곳에 도서 <앵무새 죽이기>를 진열해놓고 온 도시가 좋은 책을 같이 읽자는 '원 시티 원 북' 캠페인을 하는 것이 강렬하게 남았다. 돌이켜보니 그녀 인생 점점이 책방을 향해 있었고, 어느 순간 선으로 이어지며 책방이 됐다고.

"우아한 백조예요. 남들이 보기엔 근사해 보이지만, 물 밑에선 끊임없이 물질을 하고 있죠. '좋다'고 하기까지 안쪽에서 해야 하는 수고가 굉장히 많아요. 내 뜻을 지키면서 사는 데 필요한 수고죠."

늘 그래왔다. 자아가 굉장히 강하다는 그는 언제나 남들이 다 하는 방식 말고, 나만의 방식으로, 내 안에 무언가가 차올라 터져 나올 때 혹은 대번에 꽂혔을 때 실행에 나섰다.

'최인아책방'을 연 지 1년여. 월급은 못 가져가지만 적자는 안 보고 그럭저럭 운영 중이라고 했다. 그런데 또 일을 벌였다. 매달 후배들에게 좋은 책 한 권을 골라 소개하는 것을 확장해 아예 '최인아책방' 북클럽을 만든다고 했다. 멤버십으로 6개월, 1년 신청을 받아 매달 책을 골라 긴 레터를 쓰고 배송하는 형식이다. 그저 책방 마님 최인아의 안목을 믿고 맡기는 셈이다. 두 번째는 공사 중인 3층에 멤버십 서재를 만들 계획이다. 월차를 낸 어느 날 멀리 갈 기운은 없고, 집에 있긴 싫고, 동네 스타벅스는 너무 시끄러울 때, 찾으면 좋은 곳이다. 편안하게 호젓하게 멍 때리다가 책을 읽기도 하고 사 갈 수도 있다. 음료와 라이트밀도 제공한다.

'생각의 숲을 이루다'가 모토의 '최인아책방'. 책 분류도 여느 서점과 달리 최인아 대표가 직접 분류한 12가지 세션에 다양한 책이 자리한다. 책방 한편엔 지인들이 선정한 '내 인생의 책'이 가나다순으로 진열돼 있다. 그녀는 마흔 중반쯤 만난 <나는 걷는다>(베르나르 올리비에)를 '인생 책'으로 꼽았다.

"프랑스 언론인인 필자가 은퇴하고 나서 실크로드 서쪽에서 동쪽까지 12,000km를 4년여에 걸쳐 걷고 또 걸은 얘기예요. 400~500페이지의 3권짜리 책인데, 은퇴가 그냥 찌그러지는 게 아니구나 싶었죠. 보통 은퇴하면 돈 걱정만 해요. 그러나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도 중요하죠. 통찰력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지금껏 인생 최고의 장면을 묻자 1초도 안 돼 "2012년 12월 6일"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제일기획을 그만둔 날이다. 보통 임원들은 "내일부터 나오지 마" 하면 죄인인 양 사라졌다. 그게 싫었다. 누군가에겐 임원이 꿈일 수 있는데, 회사를 그만두는 순간에도 근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해 여름쯤 회사를 관두겠다고 얘기했다. 환송회가 열리는 직원식당에 모인 몇 백명 직원들은 동영상도 준비했다. 좋은 일이 있을 때 허그를 하는 서양 문화가 부러웠다는 그녀를 수백 명의 직원이 장미꽃을 하나하나 건네며 안아줬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고. 그녀는 말했다. "오늘이 내 인생에 '화양연화(꽃처럼 아름다운 시절)'다."

내향적이지만 강한 에너지의 최인아 대표. 일과 삶의 밸런스를 찾기보다 일과 나, 세상과 자신의 밸런스를 찾으려 했고, 자신의 주도권을 놓지 않았다고. 지름길을 찾기보다 이 길이 제대로 맞는 길인지 묻고 또 물으며 애써왔다. "요새는 반(反)시대인 것 같아요. 희망이 좌절되고, 삐딱하게 보고, 부정하고…. 그래도 열심히 하자고 하면 꼰대가 되는 것 같고. 그러나 노력해도 안 된다고 부정할 게 아니라 일이 무엇인지,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게 필요해요. 찬찬히 나를 지키며 일하는 거죠. 또 하나는 부러우면 감당해야 해요. 그저 부러워하면 지는 거죠. 수고를 안 하고 취하고 싶겠지만, 세상에 그런 일은 절대 없어요."

다 알겠지만 '나를 지키며' 일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런 최인아 대표가 1994년 이후 인생 두 번째 책을 집필하고 있다.
 

김민희의 욕망

김민희의 2017년은 배우로서는 최고의 정점, 여성으로서는 최악의 논란의 해로 정리할 수 있다. 이 상반된 두 지점이 교차한 것은 지난 2월 개최된 제67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였다. 김민희는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배우 반열에 올랐다. 한국 배우가 3대 국제영화제로 불리는 베를린·칸·베니스영화제에서 연기상을 수상한 건 2007년 전도연이 칸영화제에서 <밀양>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이후 10년 만이다.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는 최초의 수상이다. 문제는 <밤의 해변에서 혼자>가 그녀와 불륜설이 불거진 홍상수 감독 작품이라는 데 있었다. 두 사람의 관계를 반영한 듯한 영화 내용도 구설에 올랐다. 김민희는 유부남 영화감독과의 불륜으로 고민에 빠진 배우 '영희'를 연기했다. 사생활과 연기의 경계가 모호한 이 작품으로 명배우 대열에 합류한 그녀를 두고 예술과 윤리의 관계에 대한 논쟁과 비난이 쏟아져 나왔다. 김민희는 그렇게 2017년 최고의 배우인 동시에 최악의 논란 유발자가 됐다.

사실 김민희는 오래전부터 양면적 평가와 논란에 익숙해진 배우다. 데뷔작인 1999년 KBS 청소년 드라마 <학교2>에서 반항적인 여학생 '신혜원' 역으로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으나, '발연기'라는 꼬리표도 함께 따라붙었다. 신비롭고 독특한 마스크와 패션 감각으로 CF 모델로 승승장구하는 동안에도, 첫 주연작인 2002년 SBS 드라마 <순수의 시대>를 비롯해 여러 작품에서 연기 논란을 일으켰다. 김민희가 2006년 KBS 드라마 <굿바이 솔로> 제작발표회 당시 눈물을 흘린 일화는 그녀의 맘고생을 짐작케 한다. 캐스팅 단계에서 연기력 부족으로 제작진에게 다섯 번이나 퇴짜를 맞으면서도 출연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는 후일담 역시 발연기 낙인을 떼고자 하는 의지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말해준다. 그 노력의 결과, <굿바이 솔로>는 김민희에게 '연기자로서의 재발견'이라는 찬사와 배우로서의 전환점을 안겨주었다.

김민희는 30대에 들어서면서 영화에 매진하며 본격적인 전성기를 펼쳐나갔다. 남자 배우들이 장악한 대작 상업 영화에서 홍일점이거나 주인공의 연인 역할을 맡기보다는 규모가 작더라도 자신만의 개성과 스타일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선택했다. 변영주 감독의 <화차>와 노덕 감독의 <연애의 온도>가 대표적이고, 후자로는 권칠인 감독의 <뜨거운 것이 좋아>, 이재용 감독의 <여배우들>의 사례가 있다. 그 화룡점정은 뭐니 뭐니 해도 2016년 박찬욱 감독의 레즈비언 페미니즘 영화 <아가씨>였다. 김민희는 신예 김태리와의 파격적인 멜로 연기와 반전의 '쎈캐(성격이 센 캐리터)'를 선보이며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의 영예와 엄청난 여성 팬덤을 동시에 얻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배우로서의 최대 위기가 찾아왔다. 2015년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로 연을 맺은 홍상수 감독과의 불륜설이 터져 나온 것이다. 스캔들은 여배우인 김민희에게 더 치명적이었다. 당장 광고업계에서 퇴출됐다는 기사가 쏟아져 나왔고, 실제로 한 화장품 업체는 김민희를 상대로 "자사 모델로서 제품 이미지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수억원의 위약금을 받아내기도 했다. 김민희는 그해의 여우주연상을 독식하다시피 했지만 다수의 시상식에 불참한 것을 비롯해 모든 공식 석상에서 모습을 감췄다.

영화가 정식 상영되자 해외에서 연일 호평이 날아들었다. 김민희는 결국 한국 배우 최초로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존재감을 증명했다. 물론 논란도 지속됐다. '영화의 예술성'을 언급하며 홍상수 감독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당당하게 드러낸 수상 소감은 논란을 더욱 부추겼다. 여론은 '예술가이자 개인의 자유에 대한 존중'과 '비윤리적 행위를 예술로 포장하는 기만'이라는 비판으로 크게 갈렸다.

견해는 다 다르겠지만, 스캔들의 힘이 더 강하게 작용하는 '여배우의 숙명'은 김민희에게 전적으로 비난만 할 수 없게 만든다. 홍상수 감독이 불륜으로 비난은 받아도 사회적 경력에는 전혀 구애받지 않는 반면, 김민희는 그 이후 업계 블랙리스트에 오르며 홍상수 감독 작품에만 출연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김민희는 세계 3대 영화제 수상 배우에게 정부가 관례적으로 수여하는 문화훈장에서도 제외됐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 국내 개봉 당시 언론 시사회에서 "다가올 상황, 현재 놓인 상황, 모든 것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한 말은 김민희 역시 이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여배우에게 더 가혹한 연예계에서 그녀는 언제나 욕망에 충실하고 주관이 뚜렷한 배우였다는 점이다. 데뷔 초반의 연기력 논란도, 이정재, 이수혁, 조인성 등과의 공개 연애에 따른 이미지 손상도 그녀의 성장을 막지 못했다. 분명히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비난은 감수해야 하나, '여배우'라는 이유로 유독 엄격한 윤리를 요구하는 억압적 태도에는 구애받지 않아야 한다. 2017년의 김민희는 여성이자 배우의 욕망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CREDIT INFO
에디터
이예지
취재
김선영·이이슬(프리랜서), 김재은(<이데일리> 기자), 신원선(<메트로신문> 기자)
사진
서울문화사 DB, 민음사 제공
일러스트
이현정
2017년 12월호
201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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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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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이이슬(프리랜서), 김재은(<이데일리> 기자), 신원선(<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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