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면 노래, 악기면 악기, 연기면 연기, 멤버 모두가 다양한 재능과 끼를 갖고 있다고 평가받는 아이돌 그룹 ‘씨엔블루’의 멤버인 강민혁은 데뷔 연도인 2010년 조연으로 연기를 시작해 8년 만에 MBC 드라마 <병원선>에서 ‘곽현’ 역으로 주연 자리를 차지했다. 첫 주연에 상대역은 믿고 보는 30대 여배우로 꼽히는 하지원. 강민혁은 4개월 동안 주연배우란 왕관을 쓰고 거제도에서 지내며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사실 제가 집에 있는 걸 되게 좋아하는 ‘집돌이’예요.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 고생일 줄 알았어요. 그런데 좋은 사람들과 함께 따뜻한 작품을 만들며 지내다 보니 집이 그립지 않더라고요. 따뜻한 시간이었어요.”
강민혁이 맡은 ‘곽현’은 꾸밈없이 따뜻하면서 공감 능력이 탁월한 인물로, 부상자나 해난을 당한 사람들의 구호를 목적으로 의료 시설과 의료에 종사할 인원을 배치한 선박인 병원선에서 군 복무를 대체하는 공보의(공중보건의사)이다.
“의사로 보이려고 노력했어요. 실제로 병원선에서 근무하는 환경을 꼼꼼하게 살펴봤죠. 병원선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도 봤어요. 정박한 배에서 작은 배로 옮겨 타고 섬으로 이동해 환자를 진료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병원선 의사들이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꼼꼼하게 챙기면서 진료하는 모습을 보고 따뜻함이 느껴졌어요. 저 역시 <병원선>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죠.”
강민혁은 ‘곽현’을 통해 의사가 지닌 따뜻함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지만 동시에 자신도 위로받았다. 19살 때 연예계에 입문해 바쁘게 달려왔다. 어느덧 27살 청년이 된 강민혁은 자신이 살아온 삶의 방식에 대해, 미래에 대해 고민하며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는 진실되고 꾸밈없는 사람이고 항상 그런 태도로 살려고 노력해요. 성공 하느냐 마느냐를 떠나서 저 자신이 바라는 모습으로 만족하면서 살고 싶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이게 맞나? 내가 너무 바보같이 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 순간에 ‘곽현’을 만났어요. 저도 사람인지라 실수를 하고 잘못된 선택을 할 때도 있잖아요. 그런데 ‘곽현’은 힘들고 억울한 상황에서도 따뜻하고 현명하게 대처하죠. 제가 살고 싶던 삶의 모습이었어요. ‘곽현’은 갖가지 고민을 하며 흔들리고 있던 27살 저에게 기둥이 된 캐릭터예요.”
드라마에서 강민혁은 13살 차이가 나는 선배 배우 하지원과 로맨스도 보여줬다. 두 사람의 나이 차이 탓에 몰입할 수 없다는 반응도 잇따랐지만 그는 현장에서 하지원과 나이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고 거듭 강조했다.
“나이 차이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어요. 선배님이 워낙 밝으신 분이에요. 벽이라는 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친근하게 대해주셔서 현장 분위기가 좋았어요. 모두 다 같이 하나가 돼 촬영할 수 있었죠.”
하지원 특유의 밝은 기운은 강민혁이 첫 주연을 맡아 연기하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무겁게만 느껴졌던 주연배우로서의 책임감을 덜어준 것은 물론이고 강민혁이 어떤 배우로,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만들었다.
“하지원 선배님이 좋은 길로 이끌어주셨어요. 이번 작품에 책임감을 많이 느껴서 연기가 너무 힘들었는데 선배님이 큰 힘이 됐죠. 힘들 수 있는 상황에서 단 한 번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고 좋은 기운과 에너지를 주셨거든요. 연기를 구체적으로 지도해주시진 않았지만 항상 좋았던 순간을 이야기해주셨어요. 어느 장면에서 어떤 눈빛이나 분위기가 좋았다는 식으로요. ‘곽현’이란 캐릭터에게서 인내심과 따뜻함을 배웠다면 하지원 선배님을 보고 좋은 기운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연기뿐만 아니라 인생에서도요. 많은 사람이 선배님을 칭찬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죠.”
이쯤 되니 ‘씨엔블루’ 강민혁, 연기자 강민혁 말고 인간 강민혁이 궁금해졌다. 인터뷰 내내 27살 청년의 흔들림을 겪고 있다고 밝힌 그는 고민이 많아 보였고 버거워 보였기 때문이다. 무엇이 고민이냐고 묻자 그는 마음에 담아두는 스타일이 아니라며 큰 고민이 없다고 부정했다.
“특정한 감정을 오래 담아두는 성격이 아니에요. 제 기사에 달린 댓글을 살펴보지만 그것에 좌지우지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크게 상처가 된 악성 댓글은 없었어요.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포용하면서 전체적인 상황을 인지하려고 해요. 한 분 한 분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그분들을 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예요. 저와 함께 SBS 드라마 <상속자들>에 출연했던 동료들이 저보다 먼저 주연배우를 맡았을 때도 크게 부럽거나 조바심 나지 않았어요. 저는 저만의 인생을 살고 있잖아요. 천천히 왔기 때문에 여러 경험도 하고, 하지원 선배님도 만날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 좋은 기회가 왔을 때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면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해요.”
강민혁은 겸손한 태도로 이야기를 이어갔지만 자신에 대한 믿음이 느껴졌다. 그와 이야기를 나눌수록 자신감이 넘치는 것인지, 신념이 있는 사람인지 아리송해졌다.
“자신감이 많은 성격은 아니에요. 오히려 자신감이 없는 편이죠. 저는 자신감보다 신념이 있는 것 같아요. 선택을 하고 후회하지 않는 편이에요. 선택한 후에 일어난 일은 모두 감당해야 된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선택하기 전에 신중하게 고민을 많이 해요. 이런 태도가 자신감처럼 보일 수도 있겠죠. 학창 시절 연예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단순히 음악이 하고 싶어 오디션을 보러 다녔어요. SM엔터테인먼트 오디션을 보고 나오다 FNC엔터테인먼트에 캐스팅돼 ‘씨엔블루’로 데뷔했죠.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선택이었어요. 연예인이 되겠다는 선택을 한 후에는 뒤돌아보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왔죠. 앞으로도 마찬가지예요. 혹시라도 잘못된 선택을 해도 후회하지 않으며 살고 싶어요. 나이가 더 들었을 때 웃으면서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생각하며 죽고 싶어요.(웃음)”
감정의 싹을 잘라버리고 표현을 참는 경우가 많아요.
이제 20대 후반이니까 사랑도 하고 싶어요. 사랑을 하려고 노력하는데 쉽지 않아요.
사랑이 노력한다고 이루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사랑은 노력한다고 이루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주어진 상황에 만족하며 최선을 다한다는 강민혁은 자신에 대한 평가도 명확했다. 스스로 드럼을 정말 잘 치는 드러머도 아니고, 배역에 빙의한 듯 메소드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도 아니며, 카메라 앞에서 미쳐 날뛰는 스타일도 아니지만 ‘꿋꿋이 자기 할 일을 하는 연예인’이라고 솔직하고 진중하게 평가했다.
하지만 보통의 20대 청년이 고민할 법한 이야기를 건네자 곧바로 생동감 넘치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연애에 관한 질문엔 몹시 당황했다. 집중할 수밖에 없는 작은 목소리가 커졌고, 부드러운 눈빛이 담겼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여자친구가 몇 명 있었냐고요? 이런 질문은 처음이에요. (그는 고개를 푹 숙였다.) 아… 그냥… 많이 해보지 않았어요. 그렇게만 알아주세요. 그래서 연애 스타일도 몰라요. 제 연애 스타일이 어떻다고 말할 만큼 연애를 많이 해보지 않았어요. 안 해본 게 아니라 많이 안 해봤어요.(웃음) 저는 대화할 때도 저보다 형이나 누나, 선배들이 편해요. 그래서인지 사귀던 사람 중에 연하는 없었어요.”
또한 사내 연애와 공개 연애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자주 보면 정든다는 말처럼 같은 회사에 소속된 연예인과 자주 마주치다 커플이 된 연예인이 많고, 연애를 꽁꽁 숨기던 과거와 달리 시원하게 털어놓고 만나는 이들도 상당수 있기에 사내 연애나 공개 연애를 할 의향은 없냐고 물었다.
“사내 연애는 전혀 하고 싶지 않아요. 절대! 만약 회사에서 누군가를 만난다면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모습을 많이 볼 텐데 화날 것 같아요. 제가 질투가 조금 있는 편이거든요. 공개 연애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아마 공개 연애를 할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결혼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강민혁이 공개 연애를 할 날이 가까워 보이진 않았다. 아직 경험해보고 싶은 게 많은 청년인 그는 자신의 감정을 자제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를 엄청나게 좋아해본 기억이 없단다.
“좋은 감정을 느껴본 지 오래됐어요. 좋아하더라도 감정을 꾹꾹 누르는 스타일이에요. 감정의 싹을 잘라버리고 표현을 참는 경우가 많아요. 이런 면 때문인지 멜로 연기를 할 때 표현이 부족한 것 같아요. 사랑을 하려고 노력하는데 쉽지 않네요. 사랑이 노력한다고 이루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순리에 맡기려고요.”
한창 혈기왕성한 나이답게 여행을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게 많았다. 일단 바쁘게 촬영하느라 둘러보지 못한 거제도에 가서 자연 경관을 즐기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 그에게 마지막 여행을 한 게 언제냐고 묻자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작년이에요. 데뷔 초에 쉴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이제는 자기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노력하는데 올해엔 시간이 안 돼 여행을 못 했어요. 작년에 친구들과 서해금빛열차를 타고 전라도 군산에 다녀왔어요. 굉장히 좋았어요. 온돌 열차 타보셨어요? 바닥이 따뜻해서 너무 신기했어요.”
강민혁은 4개월 동안 거제도에서 지내면서 하지 못했던 일을 차근차근 해나가고 있다.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가족과 친구, 형, 선배를 만나는 시간을 가졌고, 키우는 고양이의 털을 정성스럽게 빗질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이제 취미로 하는 꽃꽂이를 다시 할 계획이고 시 쓰기 역시 계속할 생각이다.
“시를 쓰는 건 어떻게 아셨어요? 대부분 잘 모르거든요. 그동안 시를 아주 많이 써뒀어요.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타날지 몰라요. 시집요? (웃음)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계속 쓰면서 모아둘 거예요. 패러글라이딩 자격증도 따고 싶어요. 패러글라이딩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지금은 전문가와 함께 타지만 꼭 혼자 날아보려고요. 하늘에서 날고 있으면 치유를 받는 기분이에요. 땅에 있는 사람이나 차가 되게 작은데, 그 모습을 보면 ‘아, 내가 이렇게 작은 존재인데 별것도 아닌 일로 스트레스를 받았구나’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또 욕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크게 소리를 지르기도 해요.(웃음) 언제 어느 곳에 갈지 모르는 직업을 가졌으니 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언제든지 혼자 날고 싶어요.”
27살 청년 강민혁은 비즈니스가 아닌 사적인 이야기를 나눌수록 활기찼고 반짝반짝 빛났다. 그런 강민혁을 보고 있자니 그가 좀 더 노련해지고 무르익어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눌 날이 기다려졌다. 청춘 강민혁, 자유롭게 훨훨 날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