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 씨는 자타 공인 스마트 컨슈머다. 작은 제품 하나 고를 때도 제조사뿐 아니라 원재료, 인증 마크, 판매 순위 등을 꼼꼼히 살피고 구입한다. 지역 카페에 가입해 각종 물품에 대한 실사용자들의 리뷰도 챙겨 본다. 세일 소식을 접하더라도 확실히 믿을 물건이 아니라면 지갑을 열지 않는다.
그런데 요즘 김 씨는 모든 것이 혼란스럽다. '국내 생리대 최초 코튼 USA 획득' '형광 물질·염소 표백제·색소·화학 향료·포름알데히드 5無'라는 문구를 믿고 사용해온 생리대에서 총휘발성유기화합물(TVOC)이 검출됐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이후다.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매일 사용해온 요가 매트에서 암이나 불임 등을 유발할 수 있는 유해 물질이 다량 검출됐다는 보도도 접했다. 분명 '친환경'이라는 설명을 믿고 다른 제품보다 웃돈을 주고 구입한 제품이었다. 돌이켜보니 김 씨에게 이 같은 상황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올해 초 치약에서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검출됐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 있는 치약을 모조리 마트에 가져가 환불한 적이 있다. 언젠가는 어린이 감기약에서 타르 색소가 나와서, 또 물티슈에서 유해 물질이 검출돼 놀라기도 했다. 김 씨는 그때마다 문득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떠올랐다. 사망자 수가 1천2백 명을 넘어섰다는 소식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이는 비단 김 씨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화학 성분에 대한 공포증을 뜻하는 '케미포비아(Chemiphobia)'가 확산되고 있다. 이미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통해 생활 화학 물질이 인간을 어떻게 공격하는지 뼈아프게 겪었는데도 나아진 게 없다. 식약처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인체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라고 발표했다가도 무책임하게 번복하기 일쑤고, 수십, 수백 개의 인증 마크도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됐다. '케미포비아'의 공포의 실체는 화학 물질이 아니라 '어떤 것도, 누구의 말도 믿을 수 없다'는 불신과 두려움일 것이다.
PART 01 / 일회용 생리대의 배신
생리대 문제는 2014년 미국에서 시작됐다. 미국 여성환경단체 '지구를 위한 여성의 목소리(WVE)'가 P&G 생리대 제품에서 독성 물질이 검출됐다고 발표한 것이다.
2014년 미국 여성환경단체 '지구를 위한 여성의 목소리(WVE)'는 당시 미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P&G 생리대 '올웨이즈(위스퍼 코스모)' 제품 4종에 든 유해 물질 검출량을 조사해 염화에틸, 클로로포름, 스티렌 등 휘발성 유기 화합물이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생리대 문제가 수면으로 처음 드러난 것이다. 이후 P&G사는 자체 안전성 평가를 실시한 후 "피부 자극, 세포 독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일회용 생리대에 대한 연구가 진행됐다. 2016년 10월 여성환경연대는 강원대 김만구 환경융합부 교수팀에게 일회용 생리대에 대한 실험을 맡겼다. 그 결과는 지난 3월 여성환경연대 주최 '여성 건강을 위한 안전한 월경용품 토론회'에서 공개됐다. 이 토론회에서 깨끗한나라에서 판매하는 생리대 릴리안에서 총휘발성유기화합물(TVOC)이 검출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름마저 생소한 이 물질은 페인트, 접착제, 세척제 등에 사용되는 것으로 포름알데히드, 벤젠, 톨루엔이 대표적인 물질이다. 이 생리대는 앞서 김 씨가 사용한 것으로 미국 유기농 인증 마크를 받았고 유해 물질이 없다며 소비자를 안심시킨 제품이다.
식약처가 생리대에 적용한 기준은 형광증백제, 포름알데히드, 산도(pH), 색소 등에 불과하다. 생리대에 대한 안전 기준 자체가 미비했고, 기준 이외의 유해 물질이 들어간다고 해도 이를 규제할 근거가 없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생리대에서 검출된 톨루엔은 곰팡이 제거용 세제에서조차 금지된 성분으로, 만일 소량이라도 들어 있을 경우 '독성 있음'이라는 문구 등을 표기해야 하는 독성 물질이다.
전문가는 논쟁 중
유해 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대한의사협회는 "생리대에서 검출된 TVOC로 인한 인체 유해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자료 등이 충분치 않다"며 "현재로서는 검출된 유기 화합 물질이 생리불순 등 장기적으로 여성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분명하게 파악할 수 없고 자료가 불충분하기 때문에 앞으로 연구, 조사가 더 필요하다"라고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실제로 이 같은 물질이 인체에 어떤 해를 미치는지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동물 실험 등을 통해 좀 더 구체적인 결과가 필요하다고 한다.
또한 일부 전문가들은 유해 물질이 검출된 부분은 생리대의 접착제로, 피부에 직접 닿는 부분이 아니며 피부에 닿아도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일정량 이상의 TVOC를 흡입하거나 섭취해야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한다.
김 교수의 실험 자체가 잘못됐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 교수는 생리대를 밀폐된 투명 박스에 넣어 체온과 같은 따뜻한 환경을 만든 후 방출되는 물질을 파악하는 방식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이렇게 방출된 성분은 농도가 정상적인 수준보다 높을 수밖에 없지만 이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고 지적한다. 이 실험을 의뢰한 여성환경연대도 "생리대에서 검출된 TVOC에 인체에 해로운 독성 물질이 포함된 것은 맞지만 해당 성분이 생리불순, 생리량 감소, 생리통 등의 부작용에 직접 영향을 주는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라고 입장을 정리했다.
식약처는 여성환경연대가 의뢰해 김 교수 측이 연구한 결과에 과학적 신뢰를 갖기 어렵다고 결론을 내리고, 독성 전문가, 역학조사 전문가, 소비자단체(여성환경연대 포함), 분석·위해 평가·산부인과·생명윤리 전문가 등을 포함한 18명으로 검증위원회를 꾸렸다.
이 위원회는 "김만구 교수의 시험이 구체적인 시험 내용이 없고 연구자 간 상호 객관적인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는 등의 한계가 있다"라는 이유로 제품명 공개를 꺼렸으나 제품명과 TVOC에 대한 검출량, 유해성 등의 논란이 지속되고 있어 해당 제조사의 동의를 얻어 제품명을 공개했다. 김 교수의 실험 결과에는 깨끗한나라뿐 아니라 P&G, 엘지유니참, 유한킴벌리 등에서 제조한 중형 생리대 5종, 팬티라이너 5종에서 17개의 TVOC 등이 검출됐다. 이들 물질은 발암 물질이거나 생식독성, 발달독성 등을 지니고 있다. 발암 물질 생리대로 지탄을 받았던 깨끗한나라의 릴리안뿐 아니라 실험군이었던 대부분의 생리대에서도 같은 물질이 나온 것이다.
식약처는 "휘발성 유기화합물에 대한 전수조사 결과가 마무리되는 즉시 업체명, 품목명, TVOC 검출량, 위해 평가 결과를 모두 공개할 예정"이라며 "소비자가 안심하고 생리대를 사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기저귀도 위험하다?
일회용 생리대와 비슷한 구조인 아기 기저귀는 어떨까? 전문가들은 두 제품의 원료는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현재 제조업체는 몇 가지 규제가 더 있을 뿐 기저귀와 생리대의 내부 관리 기준을 같은 수준으로 하고 있다. '여성 건강을 위한 월경용품 토론회'에 참석한 서울대 보건대학원 최경호 교수는 "같은 방식으로 독성 물질 등에 노출될 경우 어른보다 아이가 더 위험하다. 아기 기저귀에 대한 안전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올해 초 일회용 기저귀에 대한 리콜 조치가 있었다. 프랑스 잡지 <6000만 소비자들>에서 프랑스에 유통 중인 12종의 기저귀를 조사한 결과 '팸퍼스 베이비 드라이' 등 10종의 기저귀에서 살충제, 다이옥신이 검출됐다는 내용이 국내에 알려지면서, 대형 마트들은 온·오프라인 매장에서 일부 제품을 회수했다.
당시 한국 P&G 측은 "프랑스 잡지에서 주장한 해당 화학 물질은 극미량으로 안전성에 우려가 없다"라며 "이 수준은 유럽 및 프랑스의 안전 기준치를 훨씬 밑도는 수치다. 해당 물질의 시험 결과 또한 유럽연합 허용 기준치보다 훨씬 낮은 수치로, 안전하고 인체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라고 해명한 바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 역시 "국내 P&G사의 유아용 기저귀 유통 제품 4종에 대해 다이옥신과 헥사클로로벤젠(HCB), 펜타클로로나이트로벤젠(PCNB) 등 살충제 성분 검출 여부 조사를 실시한 결과, 다이옥신과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발표하면서 논란을 잠재웠다.
스마트폰 케이스의 두 얼굴
일상적으로, 장시간 접촉하는 물건 중 하나가 바로 스마트폰이다. 그런데 바로 이 스마트폰을 더욱더 안전하고 예쁘게 사용하기 위한 케이스에서도 기준치를 초과하는 중금속 물질이 검출돼 충격을 줬다. 한국소비자원은 시판 중인 스마트폰 케이스 30종 가운데 6개 제품에서 유럽연합 기준을 초과하는 카드뮴과 납 등이 다량 검출됐다고 밝혔다. 주로 큐빅, 금속 등의 장식품에서 납, 카드뮴, 프탈레이트계 가소제가 검출됐고, 가죽 소재 1개 제품에서 납이 검출됐다. 프탈레이트계 가소제는 내분비계 장애를 일으키는 물질로, 불임과 조산 등 생식 기능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 중 3개 제품에서는 유럽연합 기준(100㎎/㎏ 이하)의 최대 9,200배를 넘는 카드뮴이, 4개 제품에서는 유럽연합 기준(500㎎/㎏ 이하) 최대 180배를 넘는 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기준치를 초과한 카드뮴과 납이 검출된 제품은 모두 중국에서 생산됐거나 중국산 재료로 만든 것들이다.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길어지면서 휴대폰 케이스는 피부와 장시간 접촉되고, 만 13세 이하의 어린이도 스마트폰을 자주 접하기 때문에 휴대폰 케이스의 유해 물질에 대한 관리 감독은 엄격해야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중금속 안전 기준과 규격 표기 등 별도의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아 관리 감독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유해 물질 최대 245배 검출된 요가 매트
건강을 위해 사용하는 요가 매트도 오히려 건강을 해칠 위험이 있다. 한국소비자원은 지난 8월 29일, 시중에 유통·판매 중인 요가 매트 30개 제품을 대상으로 유해 물질 안전성과 표시 실태를 조사한 결과, 23.3%인 7개 제품에서 기준치를 초과하는 유해 물질이 나왔다고 발표했다. 요가 매트는 피부와 접촉면이 넓고, 운동 중 땀 등으로 인해 유해 물질에 노출될 우려가 높다. 이 중에는 '친환경' 문구가 표시된 2개 제품에서 각각 불임과 조산 등 생식 기능 이상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프탈레이트계 가소제가 기준치의 220배, 발암 물질인 단쇄염화파라핀이 기준치의 31배나 검출됐다. 이번 조사 제품 중 4개 제품에서 프탈레이트계 가소제가 검출됐는데 기준치보다 최대 245배나 됐다.
2개 제품에서는 단쇄염화파라핀이 기준치의 30배를 초과했다. 1개 제품은 프탈레이트계 가소제 기준치도 초과했고 나프탈렌과 벤조페릴렌을 3배가량 초과한 제품도 확인됐다. 한국소비자원은 유해 물질이 검출된 요가 매트 사업자에게 자발적 시정 조치를 권고했다. 또 국가기술표준원에는 요가 매트에 대한 안전 기준 마련 검토를, 환경부에는 시중에 유통·판매 중인 요가 매트의 포괄적 친환경 표시,광고 관리, 감독 강화를 요청할 예정이다.
해외 직구 급증, 외국 제품 문제없나
국내 제품에 대한 불신이 커진 소비자들은 해외 직구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해외 배송 서비스 '몰테일'은 지난 8월 해외 배송 신청 건수를 분석한 결과, 여성 생리용품을 비롯한 치약, 샴푸, 비누 등의 생필품 해외 직구가 전월 대비 약 190%(9월 10일 기준) 증가했다고 밝혔다. 특히 여성 생리용품은 전월 대비 약 1,200%나 급증했다. 생리컵, 생리 팬티 등 대안 생리용품의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
생필품이 해외 직구에서 차지하는 점유율도 높아졌다. '비타트라'의 해외 직구 건수를 살펴보면, 8월 생활용품 판매 점유율은 전체 62%로, 전월 생활용품 19%보다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 밖에도 생리컵 전용 클렌저, 유기농 생리대 등이 많이 판매됐다. 몰테일 관계자는 "화학 성분에 대한 불안감으로 해외 직구도 유기농 천연 제품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라며 "여성 생리용품을 포함한 생활용품 해외 직구는 당분간 계속 늘어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해외 제품 역시 국내 제품보다 안전하다는 보장은 없다. 고금숙 여성환경연대 환경건강팀장은 한 인터뷰에서 "유럽이든 미국이든 소위 '선진국'의 생리대 기준이 한국보다 엄격하지 않으며 비슷비슷한 수준"이라면서 "미국의 여성환경단체인 '지구를 위한 여성의 목소리(WVE)' 보고서를 보면 '올웨이즈'의 휘발성 유기화합물 검출 수준은 오히려 일부 국내 생리대보다 높고, 유럽에서도 지난해 2월 11개 생리용품을 검사했는데 5개 제품에서 다이옥신과 살충제 등의 유해 물질이 검출됐다"라고 경고한다.
생리컵·면 생리대도 잘못 사용하면 독
대안으로 면 생리대나 생리컵 등이 떠오르고 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생리컵의 경우 신체 안에 넣어 사용하는 것으로 위생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하고, 신체 구조에 맞지 않는 제품을 구매할 경우 이물감이 느껴진다는 반응도 나온다. 게다가 해외 직구를 할 경우, 검증되지 않은 제품을 구입할 우려도 있다.
시판되고 있는 면 생리대에서도 일회용 생리대와 마찬가지로 유해 물질이 검출돼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실험은 세탁하지 않은 제품을 사용했고, 물세탁과 삶는 과정을 거치면 유해 물질의 수준이 미미했다. 하지만 면 생리대라고 100% 순면으로만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면 생리대는 순면과 방수 천으로 구성되는데, 방수 천의 코팅에 화학 성분이 포함될 수 있다. 따라서 면 생리대를 구입할 때는 형광증백제, 화학 염색제 등을 사용한 천이 아닌지를 잘 따져보아야 한다. 또 면 생리대도 여러 번 사용하는 것인 만큼 세탁과 건조, 살균에 신경 써야 한다. 이때 세제 선택도 신중히 해야 한다.
주부 채혜영 씨는 5년째 면 생리대를 사용하고 있다. 내 몸과 환경을 살리는 생리대를 직접 만들어 쓰고 있는 것.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할 때는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마찰로 인해 보풀이 생겨 껄끄러운 느낌이 있었어요. 또 냄새가 나서 그 냄새를 덮기 위해 한방 성분이 든 생리대를 쓸 정도였어요. 냄새 때문에 두세 시간에 한 번씩 교체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면 생리대는 맨살에 닿는 느낌이 편안했고, 통풍이 잘돼 그런지 냄새가 안 나더군요. 정말 신기했어요."
채혜영 씨는 한 달에 약 40~70개의 일회용 생리대를 써왔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매달 생리대 구입을 위해 들어가는 돈이나 쓰레기도 만만치 않았다. "면 생리대를 써보니 돈도 절약되고 쓰레기의 양도 확 줄어들더군요. 몸에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 환경을 위한 일이더라고요. 면 생리대를 쓰면서부터 일회용품에 대한 경각심을 느끼게 됐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때도 머그잔이나 텀블러를 이용하려고 합니다."
면 생리대를 사용하면서 느끼는 불편함도 많다. 대표적으로 꼽는 어려움은 보관과 세탁이다. 그녀도 처음에는 애를 먹었지만 수차례 시행착오를 거치며 노하우를 터득했다. "보관은 파우치가 있으면 편해요. 두 개의 파우치에, 사용한 것과 아직 사용하지 않은 것을 분리해서 넣으세요.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사용한 면 생리대를 흐르는 물에 빨아 혈액을 제거해요. 그러고 나서 흐르는 물에 담가 놓으면 속까지 풀리면서 혈액이 완전히 빠지게 되죠. 이때 용기는 뚜껑이 있는 냄비를 사용하면 편해요. 생리대를 담가놓았을 때 보이지 않고, 삶을 때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으니까요."
세탁할 때 쓰는 세제도 고민의 대상이다. 채혜영 씨는 미생물 발효로 만든 친환경 세제 EM 용액을 이용한다. "EM 용액은 가까운 주민센터에서 무료로 얻을 수 있어요. EM 용액을 넣고 애벌빨래를 해서 담가놓으면, 본 빨래를 할 때 정말 깨끗해져요. 얼룩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시판 표백제 대신 과탄산소다를 사용해요. 생리 얼룩뿐 아니라 아이가 과일 먹다 흘린 얼룩도 말끔하게 지워져 애용하는 성분이에요."
이 밖에도 면 생리대를 선택할 때 주저하게 하는 요인이 더 있다. '면 생리대는 두꺼워서 티가 날 것이다' '면 생리대는 양이 많은 날에는 샐 수 있다' 등의 선입견이다. "맨 처음 면 생리대를 쓸 때 저도 이런 오해가 있었어요. 그런데 사용해보니 얇은 여름옷이 아니라면 티가 많이 안 나요. 면 생리대를 만들 때 속 패드 쪽만 여러 번 겹치기 때문에 가장자리는 그리 두껍지 않죠. 5년 동안 사용하면서 한 번도 생리혈이 샌 적은 없어요. 사용하다 보면 교체 시기를 스스로 파악하게 되고 그걸 감안해 교체하면 생리혈이 새는 경우는 없더라고요."
면 생리대를 사용하는 것과 만드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일 수 있다. 채혜영 씨는 오랫동안 시판 제품을 사용하다가 지난해부터 서울시 지원 사업인 '저소득층 소녀 지원을 위한 대안 생리대 제작 체험 & 기부 프로젝트, 어떤 사치품'에 참여하면서 면 생리대 만드는 법을 지도하고 자신도 만들어 쓰게 됐다. 이 프로젝트는 대안 생리대 제작에 참여하면 참여한 수만큼 저소득층 소녀들에게 대안 생리대 패키지가 지원되는 활동이다. 채혜영 씨도 처음에는 '내가 이걸 만들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다고 한다. 본을 대고 천을 재단하고, 그 천을 가지고 바느질이나 미싱을 사용해 만들어야 하는 과정이 고되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하루에 한 개 만들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만들다 보니 나만의 생리대를 만들어보는 경험이 좋았어요. 일단 사이즈를 제게 맞게 만들 수 있어요. 기본적인 도안은 인터넷을 통해 구할 수 있지만, '엉덩이 쪽이 좀 더 길었으면 좋겠다' 싶으면 그렇게 만들 수 있거든요. 융통성 있게 만들 수 있는 게 직접 만드는 생리대의 장점이죠."
"손재주가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그녀는 "절대 그렇지 않다"며 손사래를 친다. "생리대는 속옷 속으로 들어가는 거고, 자신만 보는 물건이기 때문에 예쁘게 만들 필요는 없어요. 삐뚤빼뚤 해도 내가 만든 생리대를 사용한다는 기쁨이 있을 거예요. 지난번 수업에는 초경을 시작하기 전인 초등학교 5~6학년 학생들이 와서 참여했어요. 놀랍도록 열심히 만들어보더군요. 결과물이 훌륭하지 않더라도 면 생리대에 대해 생각해보고 만드는 과정을 체험했다는 데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일회용 생리대 사건으로 인해 이 프로젝트는 더욱 큰 관심을 받게 됐다. 엄마와 딸이 함께 참여하는 경우도 늘었다. 딸의 건강을 걱정해 생리를 시작하는 아이에게 처음부터 면 생리대를 사용하도록 하고 싶은 엄마의 바람이 담긴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는 채혜영 씨가 다소 걱정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생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초등학생이라면 자신의 생리혈 양을 가늠하기 어려워 당혹스러운 상황에 처할 수 있어요. 또한 보관이나 뒤처리가 아이들에게는 어려울 수 있죠. 적어도 중·고등학생 정도 돼야 가능하지 않을까요? 초등학생의 경우에는 집에 있을 때만 면 생리대를 쓰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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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성 정보제공 시스템
포름알데히드, 사염화에틸렌, 톨루엔 등 이름만으로는 그 위험성이 가늠되지 않은 화학 물질들. 그 유해성을 정확히 알고 싶다면 식약처에서 운영하는 독성 정보제공 시스템(www.nifds.go.kr/toxinfo/Index)에 접속해 알아보자. 해당 화학 물질의 발암성 등 독성 정보와 함께 중독 증상, 전문 치료 방법과 상품 정보를 함께 제공하고 있어 이해하기 쉽다.
PART 02 / 면 생리대, 직접 만들어 써요
"생리통이 심했고, 매달 생리의 양이 달랐어요. 그러다 지인의 추천으로 면 생리대를 쓰게 됐죠. 이후 생리통도 완화되고 생리량도 일정하게 됐습니다." 면 생리대를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주부 채혜영 씨의 말이다.
면 생리대를 직접 만들어보자!
준비물
생리대 도안(사이즈별로), 순면(융면), 방수 천, 똑딱이 단추, 실, 바늘, 가위, 연필
1 인터넷에서 도안을 다운로드 한 다음, 천 위에 도안을 대고 연필로 그린 뒤 모양을 따라 가위질한다.
2 순면을 여러 겹 겹친 뒤 박음질해 속 패드를 만든다.
3 면으로 본을 뜬 겉면에 ②을 부착한다.
4 ③에 방수 천을 안쪽이 보이게 나란히 겹쳐 창구멍을 남기고 박는다.
5 창구멍으로 뒤집은 뒤, 창구멍을 박음질로 막는다.
6 날개 부분에 똑딱이 단추를 달아서 완성한다.
PART 03 / '케미포비아' 탈출구는 있을까?
환경운동연합은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한 단체다. 이뿐 아니라 최근에는 스프레이형 제품의 유해성 문제를 제기하면서 안전을 위해 힘쓰고 있다. 환경운동연합 정미란 활동가에게 듣는 '케미포비아' 탈출구.
Q 화학 물질에 대한 공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시나요?
전 세계적으로 12만 종이 넘는 화학 물질이 개발돼 사용 중이며 매년 수천 개의 새로운 화학 물질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국내 유통 중인 화학 물질도 44,000종이 넘고 신규 화학 물질도 매년 300종씩 증가합니다. 하지만 국내에 유통되는 화학 물질 중 유해성 정보가 확인된 물질은 약 15%에 불과합니다. 상당수의 화학 물질이 독성 정보가 채 파악되지 않은 채 사용되고 있습니다. 더욱이 현재의 규제는 사용 금지와 함량 제한 표시 대상 물질 이외에 제품에 사용된 화학 물질과 제품의 안전성을 입증할 책임이 기업에 있는지, 정부에 있는지도 분명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원칙적으로 화학 물질의 안전성과 안전 관리 책임을 기업에게 부과할 필요가 있으며, 이에 따른 책임을 강화하는 제도적 뒷받침이 마련돼야 합니다.
Q 생리대, 요가 매트, 휴대폰 케이스 등에서 끊임없이 독성 물질이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독성 물질을 최대한 피할 수 있을까요?
'독성학'의 아버지 파라셀수스는 "독성 없는 물질은 존재하지 않는다. 약과 독은 단지 용량 차이일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독성이 없는 화학 물질은 없습니다. 우리 생명에 필요한 산소와 물, 소금도 독성을 가진 화학 물질입니다. 다만 이 물질을 어디에, 어떻게, 얼마나 사용하느냐에 따라 유해와 유용이 구분될 뿐입니다. 즉 생활화학제품에 함유된 화학 물질의 용량과 용도 그리고 어떠한 제품의 형태로 인체에 노출되는지에 따라 유해도는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각 국가는 유해 화학 물질의 과도한 노출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기준치'를 설정해 관리하고 있습니다.
Q 가습기 살균제와 마찬가지로 스프레이형 제품의 유해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어떤 제품을 주의해야 할까요?
방향제, 탈취제, 섬유유연제, 생리대 등 각종 생활화학제품마다 다양한 향을 내세워 광고하고 있지만, 성분 표시를 보면 구체적인 향 성분 대신 '향료'로만 표기돼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일부 향 성분에 피부나 호흡기에 노출될 경우 알레르기가 발생할 수 있어 신중한 사용이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 특히 아토피나 천식, 비염 등 알레르기 질환 환자의 경우나 어린이, 노약자 등 화학 물질 취약 계층의 경우 일부 향 성분이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이 때문에 유럽연합(EU)의 경우 '리모넨' '시트로' 등 26종의 향 성분에 대해 향 알러젠(알레르기 유발 물질)으로 분류해 제품의 성분 표기를 하도록 규제하고 있으며, 일부 향에 대해서는 사용 금지나 함량 제한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향 성분을 표시하거나 관리할 수 있는 규제할 만한 수단이 없어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Q 환경운동연합의 꾸준한 활동으로 생활화학제품 회사들이 제품의 전 성분을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이로 인해 앞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환경운동연합은 전 성분 공개 캠페인을 통해 코스트코를 제외한 옥시레킷벤키저, 애경산업, 다이소아성산업, 롯데마트, 이마트, 홈플러스 등 12개 기업의 '전 성분 공개'를 이끌어냈습니다. 이에 정부도 국내 17개 생활화학제품 제조사·수입사·유통사와 협약을 맺어 전 성분 공개를 강화해 나가겠다는 방침입니다. 현재는 일부 업체에 불과하지만, 전 성분을 제공한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에 대해 소비자들은 평가할 것이고, 그에 맞춰 기업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점차 많은 기업이 참여하다 보면, 정부는 전 성분 공개나 표시에 대해 법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Q 소비자들이 안전하게 화학 생활용품을 고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시중에 많은 제품이 안전성에 대한 근거 없이 인체에 무해하다는 허위 표시, 광고를 통해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무방비 상태로 제품을 사용하도록 조장하고 있습니다. 천연, 자연, 친환경, 그린, 무해 등의 표현만 믿고 제품을 구입하지 말고, 뒤에 표시된 제품의 성분과 사용법 등을 꼼꼼히 따져야 합니다. 환경부에서 운영 중인 '초록 누리 생활환경 안전 정보 홈페이지(ecolife.me.go.kr)'를 통해 제품에 포함된 성분, 유해 정보 등의 정보를 참고해 제품을 구입하시길 당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