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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울어도 되나요?

‘배우’라는 가면을 벗은 김선아는 어딘지 모르게 위태로워 보였다. 여러 번 울었고, 여러 번 한숨을 뱉었다. TV 속 씩씩한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녀가 배우여야만 하는 이유다.

On October 1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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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품위있는 그녀> 종영 직후 만난 김선아는 여러 번 울컥했다. 밝게 이야기하다가도 금세 감정에 취했고,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연신 손부채질로 식혔다. 세 번째 눈물을 터뜨리던 순간, 김선아는 이렇게 말했다. "아, 돌아버리겠다."

김선아가 인터뷰 내내 흘린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또 울었다. 아마도 그 눈물엔 다시 만나지 못할 '박복자'에 대한 그리움과 철저하게 외로웠던 '박복자'에 대한 연민, 그리고 '박복자'와 함께했던 지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아쉬움이 담겨 있을 것이다.

짐작컨대 김선아에게 드라마 <품위있는 그녀>는 복귀작 그 이상의 의미일 것이다. '김삼순'을 뛰어넘는 캐릭터를 만나지 못했던 그녀에게 새로운 이름표를 만들어준 작품이자 '제2의 전성기'라는 평가를 얻게 해준 작품이니까. 김선아는 이번 작품에서 전과자 신분에서 재벌 기업 회장 간병인이었다가 회장의 아내 자리까지 꿰차는 '박복자' 역할을 맡았다.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오랫동안 김선아의 수식어였던 '김삼순'에게서 드디어 벗어났어요. 기분이 어때요? '김삼순'을 잇는 인생 캐릭터를 다시 만났다는 것 자체만으로 행복하고 감사해요. 무엇보다 그런 칭찬을 받게 해준 '박복자'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요. 지난겨울 약 5개월 동안 그녀로 살면서 배운 게 참 많거든요. 제가 경험하지 못할 것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해주었고, 진짜 품위가 뭔지를 고민하게 해준 여자잖아요. 방송이 끝나고 나면 훌훌 털어버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직도 그녀의 감정이 남아 있네요.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삼순이'처럼 '복자'도 시청자들의 기억에 오랫동안 남았으면 좋겠어요.


<내 이름은 김삼순>을 뛰어넘는 인생작이라는 평가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사실 그 표현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아요. <품위있는 그녀>가 고마운 작품인 건 맞지만 인생작이라는 표현보다 "김선아 잘하네" 정도의 칭찬이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앞으로 해야 할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거든요. 누군가의 삶을 잠깐씩 살아보는 게 직업이니까 다른 작품에서 또 다른 캐릭터를 연기할 텐데 그때도 '복자'가 떠오르면 안 되잖아요.


그동안 '김삼순' 캐릭터에서 벗어나려고도 했었죠? 쉽지 않았겠지만…. 지난 시간, 제 삶은 '삼순이'의 영향이 컸어요. 다른 작품에서 다른 캐릭터를 연기할 때도 '삼순이'가 늘 신경 쓰였죠. 시청자들이 제게 원하는 것도 분명했어요. 감독님들도 "삼순이스러웠으면 좋겠다"고 했으니까요. 처음엔 빨리 벗어나고 싶었는데, 언젠가부턴 어쩌면 '삼순이'의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냥 '삼순이'를 받아들였죠.


'김삼순'과 '박복자'는 어떻게 다른가요? '삼순이'는 사랑도 많이 받고 자랐고, 뜨거운 사랑도 했어요. 반면에 '복자'는 철저하게 외로운 사람이었죠. 속내를 털어놓을 사람도,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눌 사람도 없었어요. 둘은 성격도 정반대예요. '삼순이'는 화가 나면 바로 지르는 직설적인 성격이었다면, '복자'는 앞뒤 상황을 다 생각한 후에 행동하는 스타일이에요. 감독님께서도 "'복자'는 진심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는, 다른 사람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는 사람"이라고 하셨죠. 그런 면에서 '복자'가 더 무서운 사람이긴 하네요.


결국 '삼순이' 덕분에 '복자'도 만나게 됐어요. <내 이름은 김삼순>을 연출한 김윤철 감독과 또 한 번 작업하게 됐으니까요. 감독님은 제게 좋은 가르침을 주시는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예요. 제가 아직 배우로 다듬어지지 않았을 때도 저를 믿어주신 분이죠. 늘 "잘한다"고 다독여주시고 용기를 주셨어요. <내 이름은 김삼순>을 하게 된 것도, <품위있는 그녀>를 주저 없이 선택한 것도 감독님 때문이에요. '잘해야지, 아버지한테 짐이 되지 말아야지' 이런 생각뿐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스스로를 외롭게 만드는 성격이에요. 작품에 들어가면 캐릭터에 집중하기 위해 친구들과도 연락을 다 끊어요.
그런 저만의 연기 소신이 저를 많이 외롭게 했죠. 저를 잘 아는 지인들은 "이제는 자신을 압박하지 말라"고 조언하는데, 쉽지 않네요."




김윤철 감독에게 특별히 고마운 점은 뭔가요? '박복자'를 연기하는 과정에서 힘들었던 지점이 있었어요. 그녀의 감정이 혼란스러웠거든요. 대체 뭘 말하고 싶어 하는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죠. 그때 "본능과 직관을 믿으라"고 하신 감독님의 디렉팅이 큰 도움이 됐어요. 덕분에 복잡했던 마음을 잡을 수 있었고, 끝까지 그 감정선을 잃지 않을 수 있었죠. 작품을 마치고 나니 아쉬운 점이 보이기 시작하지만, 그래도 한 가지 자신할 수 있는 건 끝까지 '복자'의 감정을 놓지 않았다는 거예요. 모두 감독님이 도와주신 덕분이죠.


그런 감독님과 함께한 시간을 잊지 못하겠군요? <품위있는 그녀> 촬영장은 저에게 안전한 놀이터 같은 곳이었어요. 뛰어놀아도 되는 곳이요. 그러다 넘어져도 되고 다쳐도 일어날 수 있는. 감독님을 믿었기 때문이지요. 다른 스태프도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만났던 분들이에요. 한 감독님이 제게 "또 만날 수 있어 영광이다"라고 하시는데 울컥했죠. 좋은 사람들과 좋은 작품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무엇보다 좋았던 건 높은 시청률이었겠죠? 사실 첫 방송 후 지인들에게 전화를 많이 받았어요.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고 지내던 친구도 "야, 드라마 대박인데?"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시청률이 2%였죠. 좌절했지만 연연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얼마 전 김희선 씨가 시청률 때문에 속이 많이 상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실 조금 놀랐어요. 저는 작품이 좋으면 반응은 오기 마련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결국 잘됐잖아요. 첫 회 이후 계속해서 시청률이 뛰고 마지막 회는 가장 높은 시청률이 나와 만족스럽고 기쁘긴 했지만 앞으로도 숫자에는 연연하지 않으려고 해요.


이번 작품, 다시 하라고 하면 할 수 있겠어요? 당연히 못 하죠.(웃음) 첫사랑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뭐든지 처음이기 때문이듯, <품위있는 그녀>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건 '박복자'라는 캐릭터를 처음으로 연기했기 때문일 거예요. 그 독한 연기를 또 하라고요? 전 못 해요. 못 해.


쿨하게 그녀를 보내주는 것 같은데 눈시울은 붉어졌네요. (김선아는 잠시 말을 멈추고 눈물을 훔쳤다.) 참 이상해요. 길을 가다가 어떤 노래를 듣고 괜히 눈물이 나오는 것처럼, 이 드라마는 OST만 들어도 그때의 감정이 떠올라요. 아무렇지 않게 덤덤하게 이야기하고 싶은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촬영할 때 생각이 나면서 눈물이 나네요. 방송 모니터링을 하다가도 울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들어도 울었어요. 며칠을 울었는지 모르겠어요.


이유가 뭘까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삶 자체가 철저하게 혼자였던 그녀가 불쌍해서일까요? 어린 시절에 인형이 갖고 싶은데 그걸 가지지 못하고 파양당하는 '복자'의 인생을 보면서 너무 슬펐거든요. '복자'에게 연민이 들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박복자'의 외로움을 공감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그녀의 심리를 전부 공감하기는 힘들겠지만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대해선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요. 여자 김선아로, 배우 김선아로 살면서 문득문득 외로워지거든요.


무엇이 김선아를 그토록 외롭게 했을까요? 연기를 잘하고 싶은 욕심이죠. 작품에 들어가면 캐릭터에 집중하지 못하는 게 싫어서 친구들과도 연락을 다 끊어요. 그런 저만의 연기 소신이 저를 많이 외롭게 했죠. 어쩌면 바보 같겠지만 저는 열심히 연기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고쳐지지 않아요. 저를 잘 아는 지인들은 "이제는 자신을 압박하지 말라"고 조언하는데, 쉽지 않네요.


캐릭터 특성상 이번 작품은 더 외로웠을 것 같아요. 김선아와는 완전히 이별한 채 지낸 시간이었어요. 오롯이 '박복자'가 되려고 했죠. 그래야 그녀가 살아온 인생을 더 잘 이해하고, 연기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촬영장에서도 일부러 외롭게 지냈어요. 배우로선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지만 인간 김선아에겐 힘든 시간이었죠.


김선아가 다작하지 않는 이유일 수도 있겠네요. 맞아요. 완전히 캐릭터에 몰입하게 되니까 작품이 끝나도 캐릭터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어요. 시간이 필요하죠. 그러다 보니 다른 캐릭터를 새로 입을 엄두가 나지 않아요. 캐릭터에서 빨리 벗어나는 배우들을 보면 부럽기도 해요. 성격이죠 뭐. 당분간 다른 작품은 못 할 것 같아요. '복자'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놀 계획이거든요. 못 만났던 친구들을 만나고, 여행도 다녀올 거예요. 연기 수업도 받고요.


아직도 연기 수업을 받는다는 게 놀라워요. 2006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받고 있어요.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아직 해보지 못한 캐릭터가 많고, 다음에 어떤 캐릭터를 만나게 될지 모르니까 미리 연습하면서 준비하는 거죠. 연기를 하면 할수록 쉽지 않다는 걸 느껴요. 내가 한 연기를 다시 보면 한숨밖에 안 나올 정도로 모자란 부분만 보이죠. 앞으로 좋은 작품을 만나 좋은 연기를 보여주려면 쉬지 않고 연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배우로 살면서 잊지 못할 순간은 언제인가요? <여인의 향기>를 찍을 때였어요. 당시 암 환자 역이라 굶는 게 일상이었는데 내리 햇볕을 쬐는 터라 정신이 없었죠. 덥고 힘들고 배는 고프고…. 까딱했다가는 정말 쓰러졌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스태프 한 분이 걱정된다면서 손에 초콜릿 세 개를 쥐여주더라고요. 별거 아닐 수 있는 그 행동이 평생 기억에 남아요. 스쳐 지나가는 일인데도 평생 내 마음에 남았던 거죠.


그 스태프가 건넨 배려가 진정한 '품위'인 것 같아요. 남들에게 품위 있어 보이고 싶어 노력하는 건 오히려 품위가 아니죠. 진심이 있고, 사랑이 넘치는 따뜻한 사람이 품위 있는 사람이에요. 값싼 음식도 맛있게 먹을 수 있고, 저렴한 옷도 예쁘게 입을 수 있는 사람이요. 무엇보다 자기 삶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가장 품위 있는 것 같아요.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고요.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계획이나 목표 같은 건 없어요. 언제 어떻게 인연이 닿을지 모르는 게 우리 인생이잖아요. 작품도 PD와 배우가 만나 "합시다!" 해서 되는 게 아니거든요. 이런저런 상황이 맞아야 하죠. 결국 인연이 돼야 할 수 있다는 말이에요. 아까도 말했지만 당분간은 신나게 놀 거예요.


데뷔 21년 차. 아직도 부족하다고 말하는 그녀에게 그만하면 됐다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에겐 김선아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니까.

CREDIT INFO
에디터
이예지
사진제공
씨제스엔터테인먼트
2017년 10월호
2017년 10월호
에디터
이예지
사진제공
씨제스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