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년간 LA에 비가 내린 날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바람은 선선하고 태양은 따사로웠지만 저수지에 물이 말라 바닥을 보이고 농장에는 물이 없어 그냥 버려두는 밭도 있었다. 지난 봄 유례가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의 비가 내려 앞으로 일 년간 캘리포니아에서 필요한 물의 양이 충족되고도 남았지만, 5년 동안 가뭄으로 말라붙은 저수지를 채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캘리포니아 정부가 팔을 걷어붙였다. 귀여운 물방울 캐릭터를 내세운 대대적인 절수 캠페인을 비롯해 세금 감면 혜택을 주며 각종 시스템을 도입해 주민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중 하나는 다름 아닌 조경, 정확히 말하자면 마당에 깔린 잔디를 걷어내거나 가뭄에도 잘 자라는 초목으로 바꿀 경우 주정부에서 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였다. 이 때문에 잔디를 걷은 뒤 황량하게 남은 마당에 무엇을 심어야 할지 고민하던 주민들은 일본식 정원(큰 돌로 섬을 꾸미고 모래로 바다를 표현하는 방식)을 꾸미기 시작했다. 미국식 일본 정원이었다. 이렇듯 LA의 조경은 가뭄을 통해 발전을 이루고 여러 방식으로 진화한 셈이다.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두 가지 방식은 다육 식물인 선인장을 위주로 한 사막식 정원과 아열대식 정원이다. 최근에는 캘리포니아 자생 식물로 꾸민 정원이 주목받고 있지만, 전문적으로 자생 식물을 판매하는 곳이 드물어 아직은 널리 보급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정원은 원형의 선인장이 앞에 오고 그 뒤를 조금 키가 큰 다육 식물이 들어간 뒤 곧게 자라는 선인장으로 배경을 세워주는 식으로 꾸며진다. 조경사의 취향에 따라 자갈이나 화산재를 깔아 멋스러운 분위기를 내기도 하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고집하며 마른 땅을 그대로 내보이기도 한다. 조금 굵은 모래를 까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그 외에도 호주 사막 지대에서 온 수종이 종종 정원을 구성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는 '캥거루발'이라고 현지에서 부르는 식물이 있다. 길고 뾰족한 난초 같은 잎에 정말 캥거루 발처럼 생긴 뭉툭하고 보슬보슬한 꽃이 피는 다년생 초목이다. 마당이 넓고 채울 땅이 많다면 스패니시 대거나 알로에 등 대형 다육 식물로 채우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특히 스패니시 대거는 로제타(원형으로 높지 않게 빙 둘러 자라는 잎)를 기점으로 꽤나 크게 자라므로 4~5년을 넘어 10~20년 뒤까지 기대해볼 수 있게 한다.
LA에서 차로 채 10분도 걸리지 않는 도시 버뱅크에는 좀 더 특별하게 정원을 가꿀 수 있도록 돕는 가게도 있다. '티오도르 페인 파운데이션'은 자생 식물의 보편화와 번식을 위해 일하는 단체인데, 저렴하게 원하는 종류의 자생 식물로 정원을 채울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한 자생 식물이기에 무리해서 마당을 뒤엎을 필요가 없다는 것도 장점이다.
필자가 사는 곳의 발코니에도 식물이 빼곡히 자라고 있다. 다육 식물부터 개양귀비, 글라디올러스, 라벤더 등 물 빠짐이 좋은 흙에서 잘 자라고 물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식물들이라 손도 많이 가지 않는다. 스트레스가 잔뜩 쌓인 날 살며시 발코니에 나가 꼬물꼬물 자라는 식물을 보는 것도 여간 재미있는 일이 아니다.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랴, 가뭄이 심각하다지만 멋대로 자라도록 씨만 뿌린 아가들도 이렇게 잘 자라는 것을. LA의 날씨는 오늘도 맑음이다.
글쓴이 척홍
미국에서 나고 한국에서 자란 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갤러리에서 큐레이터로, 또한 예술 작가로 일하고 있다. 음식을 좋아해 취미는 요리하기이며, 이것저것 특이한 물품을 모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