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행복한 삶을 그리다
탤런트 이의정 하면 떠오르는 ‘번개머리’ 이미지(1996년 MBC <남자 셋 여자 셋>에 삐죽삐죽 뻗친 짧은 커트 스타일로 출연해 큰 인기를 얻었다) 하나로 그녀를 설명하기엔 한없이 부족하고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2006년 뇌종양 수술 이후 몸 한쪽이 마비되고 그 후유증으로 고관절 괴사까지 찾아오면서 겪었을 극한의 아픔과 공포는 감히 가늠조차 할 수 없다. 고관절 괴사로 몇 차례 인공 관절을 끼우는 뼈 수술을 받아야 했는데, 그녀의 말대로 표현하자면 “톱으로 뼈를 잘라내는 듯한 느낌”이었다니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하다. 그렇게 10년 가까이 이어진 긴 투병 생활을 마치고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대중 앞에 선 그녀는 자신의 곁을 지켜준 이들에 대한 고마움을 영원히 잊지 않을 거라고 힘주어 말했다.
“예전에 아팠을 때 스타일리스트 미숙이와 매니저 성춘이는 너무나도 큰 힘이됐어요. 지금 제 인생의 1순위,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에요. 남은 인생을 이 친구들을 위해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이 집으로 이사한 것도 나중에 미숙이가 결혼하면 선물로 주고 싶어 계획하고 옮긴 거예요. 그래서 저보다는 미숙이의 취향과 스타일을 담아내려고 노력했어요.”
매니저에게 생일 선물로 자동차를 사준 미담이 회자된 적 있는 ‘통 큰’ 이의정이 이번엔 스타일리스트 고미숙 씨를 위해 집을 결혼 선물로 준비한 셈이다(물론 고미숙 씨의 결혼 계획은 미정이다). 고미숙 씨와는 14년 전부터 쭉 함께 살면서 가족 못지않은 ‘동거인’ 관계가 됐다. 삶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이해하는 관계로 이번 한남동 빌라의 레노베이션에도 서로에 대한 진심을 집 구석구석에 담았다.
단순하게, 모노크롬 스타일
이 집의 시공을 맡은 달앤스타일 박지현 디자이너는 “집주인의 취향이 확고했기 때문에 시작부터 일사천리로 진행됐다”며 “모로가도 심플한 스타일”을 원했다고 말한다. 들어오는 입구부터 주방, 거실, 침실 어느 곳 하나 빠지지 않고 모두 블랙·그레이·화이트 톤인, 말 그대로 ‘심플하고 모던한’ 집이 완성됐다. “원래는 문과 새시, 몰딩이 체리색이었어요. 바닥재도 마루 원목이었고요. 전체적인 집 컬러를 모노톤으로 맞추는 것부터 시작했죠.
인테리어 필름지로 문과 새시를 감싸고 바닥은 모두 거둬낸 뒤 데코 타일을 깔았어요. 아무래도 반려견이 함께 사는 집은 원목 소재보다 타일이 청소하기도 쉽고 관리하기 좋거든요.” 박지현 디자이너가 바닥에 타일을 깐 건 스타일도 스타일이지만 이의정의 특별 주문이 있었기 때문. “헌트는 지금 폐가 하나밖에 없어 호흡기 질환이 심해요. 주변 환경이 굉장히 중요한데, 차가운 바닥에 앉으면 안 돼서 열전도율이 높은 타일을 바닥에 시공해달라고 했어요.” 반려견을 위한 이의정의 진심 어린 배려 덕분에 더욱 멋스러운 공간이 탄생했다.
전체적으로 구조를 크게 바꾼 건 없지만 주방은 효율적인 동선을 위해 가벽을 세우고 냉장고와 전자레인지를 수납할 수 있는 붙박이장을 만들어 정돈했다. 반려견들의 간식을 직접 만들어줄 정도로 요리 솜씨가 좋은 이의정은 주방도 심플하길 원했다. ‘ㄷ자’ 큐브형 주방에 가벽을 세우되 거실에서 주방을 봤을 때 개수대나 조리대가 바로 보이지 않도록 파티션 역할을 하는 낮은 단을 세워 주방과 다이닝 룸을 구분했다.
책임감을 갖고 하는 일
반려견과 함께한다는 것, 특히 아픈 동물을 키운다는 건 무거운 책임감이 뒤따르는 일이다. 이의정의 집에는 4마리의 ‘아픈 강아지’들이 살고 있다. “13살 오종이와 11살 꽁이, 9살 헌트, 5살 와와가 우리 집 식구예요. 그런데 네 마리 다 많이 아파요. 첫째 오종이는 심장판막증 3기, 둘째 꽁이는 심장판막증에 쿠싱 증후군(부신피질에서 분비되는 코르티솔의 과잉 분비로 전신에 영향을 미치는 질환)도 있고, 셋째 헌트는 호흡기 질환이 심하죠.
와와는 지난해 SBS
이사하면서 이의정이 경험한 가장 큰 변화는 ‘불면증이 사라졌다’는 것.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의, 가족들이 모두 좋아하는 공간에 머문다는 것이 이렇게 심리적 안정감을 줄지 몰랐단다. 잠을 푹 자니 컨디션도 좋고 매일이 행복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