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드라마 <화랑>이 끝난 다음 날 분위기 좋은 카페 한구석에서 고아라와 마주 앉았다. ‘인형인가’ 싶을 정도로 작은 얼굴, 손바닥만 한 얼굴에 오밀조밀 예쁘게 자리한 눈,코,입은 솔직히 현실성이 없어 보였다. 어깨를 앞으로 숙이고 기자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그녀 모습은 어떤 질문을 하는지 들어나 보자 하는 심산처럼 보였는데, 무언가에 집중하는 그녀만의 방식이라는 걸 알고는 오해가 금세 풀렸다. 고아라는 기자의 질문 하나하나를 곱씹어 생각했고, 조곤조곤 말했다. 어떤 순간에는 속사포처럼 이야기하기도 했다. 하고 싶은 말이 많다고 했다. 숨 가쁠 정도로 생각과 말을 쏟아낸 데는 이유가 있었다. 최근 그녀에게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최근 정우성·이정재가 운영하는 아티스트컴퍼니로 옮겼어요.
소속사를 옮긴 이유를 궁금해하는 분이 많더라고요. 결론부터 말하면 어떤 의도나 전략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2003년 SM 베스트 청소년 선발대회에서 1위로 입상하고 난 후 지금까지 한 회사 소속 배우로 있었는데 최근 전속 계약이 만료되면서 자연스럽게 이적했죠.
15년 동안 몸담고 있던 SM엔터테인먼트에서 나온다는 게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아요.
당연히 쉬운 결정은 아니었어요. 혼자서도 오래 고민했고 이수만 대표님과도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고아라 인생의 전환점이다’”라고 말하는 분이 많은데, 저는 전환점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흘러가는 중이죠.
결심의 결정적 이유가 뭔가요?
저는 어쩌다가 배우가 됐고, 어쩌다가 연기를 하게 된 사람이에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여기까지 걸어왔는데 ‘초심’이 뭐였는지 곱씹어 생각하다 보니 결심이 쉬워졌죠. 다양한 역할을 경험해보는 게 배우로서 저의 목표였기 때문에 또 다른 곳에서 그동안 해보지 못한 일을 해보자는 생각이었어요. 또 하나는 20대 초반, 그러니까 대학생 때부터 해온 고민, ‘나는 누구인가, 여긴 어디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또 어떤 배우가 되어야 하는가’의 끝을 생각해봤어요. 결국 고민은 ‘어떻게 하면 연기를 잘할 수 있을까’에 다다랐고, 변화를 주는 쪽으로 결정했죠. 그때 마침 계약이 만료된 거예요.
청춘이라 할 수 있는 고민이었네요. 그런 갈증이 SM에서는 해소되지 못했나요?
때에 따라 상황에 따라 해소되기도 하고 해소되지 못한 채 쌓이기도 했죠. 무슨 일이든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해요. SM과 함께한 시간은 감사한 시간들이었어요. 다만 정우성 선배님과 이정재 선배님이 지향하는 바와 제가 꿈꾸는 바가 잘 맞았기 때문에 용기를 냈죠. 좋은 배우가 되는 게 SM 식구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정우성 씨나 이정재 씨가 어떤 조언을 해주던가요?
굉장히 포괄적이에요. 작품을 할 때, 혹은 쉴 때 배우라면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해주시죠. 현장에서 직접 체득한 노하우를 전수해주시려고 해요. 그것들을 모두 제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심히 들 정도죠. 두 선배님뿐만 아니라 소속사 식구들과도 소통이 자유로워요. 이 바닥(?)에서 오래 일한 매니저분들에게도 많은 걸 배우고 있어요. 아! 이번에 하정우 선배님, 염정아 선배님과 식구가 됐어요. 두 분의 작품을 재미있게 본 게 많아서 두 분과의 호흡도 기대되고 설레요.
선배 연기자 외에도 90년생 동료들과 한솥밥을 먹게 됐어요.
남지현, 이솜, 이시아, 그리고 막내 연습생까지 다섯인데 연기관이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소소하게 여자들끼리 할 수 있는 얘기도 하고 좋아요. 언젠가 이 친구들과 배낭여행도 가고 싶어요.
데뷔 스토리가 재미있어요.
어렸을 때 꿈은 아나운서였어요. 가수가 꿈이던 친구의 오디션을 도와주러 갔다가 우연히 SM 베스트 청소년 선발대회 무대에 섰는데 ‘외모짱’ 부문 1위를 했죠. 대상도 탔어요. 1등 하고, 상도 받으니까 일단은 좋았어요.(웃음) 그러다가 드라마 <반올림>이라는 작품을 만났고 그때부터 배우라는 직업에 호기심을 느꼈던 것 같아요.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 계기가 있나요?
첫 작품이 <반올림>이 아니라 다른 작품이었다면 그만두었을지도 몰라요. <반올림>은 유난히 많은 역을 해볼 수 있는 작품이었거든요. 할머니 분장도 해보고, 정신분열증 연기, 아나운서 역할도 해봤죠. ‘배우가 되면 이런 걸 다 해볼 수 있구나!’ 싶었어요. 그러면서 배우에 대한 꿈을 키웠죠.
얼마 전 끝난<화랑>은 고아라 씨에게 어떤 의미의 작품인가요?
일 년 전에 촬영을 마쳤지만 방송을 보면서 그날의 냄새, 분위기가 새록새록 떠오르더라고요. 배우로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었던 작품이에요. 청춘들의 에너지를 담는 작품에 저도 함께 참여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었죠. 사전 제작 드라마를 처음 해봤고, 남자 배우들 사이에서 홀로 여자이기도 해봤고…. 아쉬운 점도 있지만 배운 점이 더 많아요. 무엇보다 사랑, 가족의 죽음에서 오는 아픔, 그리고 성장하는 청춘의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어서 만족스러워요.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어요?
15년 전과 지금이 똑같아요. 다양한 걸 표현하고 싶어요. 작품도 다양하게, 캐릭터도 다양하게, 장르도 다양하게요. 악역도 좋고 정통 사극도 좋아요. 표독스러운 역할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할 수만 있다면 예능도 하고 싶어요. 뮤지컬은 박형식 씨가 출연하는 <삼총사>를 보러 간 적이 있는데 흥미로워 보였어요. 재밌게 작업할 수 있다면 도전하고 싶어요. 너무 욕심이 많나요?(웃음)
그중에서도 가장 해보고 싶은 장르는요?
제가 로맨틱 코미디를 정말 좋아해요. 재밌는 장면은 저도 해보고 싶어요. 꽁냥꽁냥하는 남녀를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었으면 좋겠어요. 제 나이가 지금 딱 로맨틱 코미디를 하기에 좋을 때 잖아요?(웃음) 상대 배우는 누구든 준비돼 있습니다. 현실 로맨스, 정말 해보고 싶어요.
다작 배우가 아니라서 그렇게 많은 걸 하고 싶어 하는 줄 몰랐어요.
시간과 타이밍의 문제였던 것 같아요. 의도하지 않은 휴식기도 있었죠. 촬영하고도 방송되지 않은 작품이 있었고, 일본에서 2년 정도 활동하기도 했고요. 다작하고 싶은 욕구는 변함없는데, 그게 제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주변의 환경과 상황이 중요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조바심 나거나 초조하지는 않아요.
체력 관리는 어떻게 해요?
운동이요. 꾸준히 요가를 해왔고 헬스랑 필라테스도 하고 있죠. 운동으로 살을 찌우기도 하고 빼기도 해요. 영화 <페이스 메이커> 촬영 때는 운동을 엄청 했어요. 단기간에 5kg을 불렸죠. 당연히 과부하가 왔고 그때 아킬레스건에 부상을 입기도 했어요. 먹는 건 할머니와 엄마의 집밥, 아빠가 직접 내려주시는 홍삼도 챙겨 먹어요.
수시로 관리해야 하는 여배우의 삶이 힘들지는 않나요?
관리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물론 대중에게 보여주는 직업이다 보니 조심해야 하긴 하지만 그게 부담스러운 적은 없어요. 직업이니까요. 대부분 다른 사람도 직장 생활이 스트레스를 주긴 하지만 자기만의 직업관을 갖고 열심히 하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스트레스 받으면서 일하는 건 싫어요.
쉬는 시간에는 주로 뭘 하나요?
차기작 준비도 하고, 여행도 가고, 무언가를 시도해보기도 해요. 운동도 끊임없이 하고요. 특히 독서를 좋아해요. 최근엔 드라마 <도깨비>에 소개된 책을 읽었어요. 드라마와 책을 동시에 보니까 더 와 닿더라고요.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김은숙 작가님, 존경합니다. 언젠가 한 번은 함께 작업해보고 싶어요.(웃음)
예전에 책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푼다고 한 인터뷰를 봤어요.
활자 중독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어요. 그동안 맡은 역할에서 보여준 통통 튀는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 문학 소녀를 자처하는 게 아니냐는 말도 있고요. 모두 오해입니다.(웃음) 어려서부터 대본 읽는 게 습관이 돼서 그런지 책을 읽으면 마음이 편해져요. 한 문장 한 문장 읽으면서 장면을 상상하는 것도 재미있고, 감수성을 풍부하게 해주는 시도 좋아해요.
좋아하는 시인이나 작가는 누구예요?
류시화 시인을 좋아해요.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는 시집은 늘 곁에 두고 읽죠.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접했는데 문화 충격을 받았어요. 어쩜 그렇게 감수성이 뛰어날 수가 있죠? 그 외에는 제 또래와 비슷하게 사랑을 주제로 한 시나 소설을 좋아해요. 귀요미 작가의 소설도 좋아하고요. 그림이 많은 책도 좋아해요.
책을 써볼 생각은 없어요?
쓰고 있어요! 소소하게 써온 글이 있는데, 아직 부족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책을 내보고 싶기도 해요. 대학교 때 과제 삼아 시나리오를 써본 적이 있는데 그건 어렵더라고요.
로맨스 소설을 좋아한다는 말이 연애할 때가 됐다는 의미로 들려요.
강렬한 사랑을 원해요. 올해 목표가 연애일 정도죠. 일 년에 한 번씩은 놀이동산에 가는데, 남자친구와 손잡고 놀이동산 데이트를 하는 게 꿈이에요. 언젠가는 운명의 상대가 나타나겠죠?
이상형은요?
특별한 이성상을 만들어놓지 않았어요. 매일 일기를 쓰면서 ‘나와 어울리는 남자는 누구일까’를 상상하면서 이상형을 만드는 중이에요.
대시를 많이 받았을 것 같은데요.
방송에서 옥택연 씨가 호감을 표현한 적이 있어요. 근데 방송이라서 그랬던 것뿐이에요. 재미를 위해서 그랬을 것 같기도 하고요. 오다 가다 만난 인연은 분명히 있지만 ‘운명이다’ 하고 확 꽂힌 사람은 아직까지 없었어요. 공개 연애를 할지 말지에 대해 고민하는 시기가 왔으면 좋겠어요. 썸이라도 있으면 그런 고민을 해볼 텐데 썸남조차 없으니 상상의 기회도 없네요.(웃음)
곧 서른이죠?
서른 살이 되면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느 정도는 바뀌지 않을까요? 모든 사람이 서른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만, 주위 친구들을 보면 서른은 확실히 고민이 많은 시기인 것 같아요. 결혼, 취업, 직업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시기죠. 저도 마찬가지예요. 작품을 보는 눈, 캐릭터를 대하는 방식, 행복한 삶을 고민하죠. 과거나 미래에 집착하지 않고 현재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편인데도 그러네요. 최대한 현재에 충실하고, 현실을 직시하며 살고 싶어요. 그런 하루하루가 모여 의미 있는 미래가 만들어진다고 믿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올해는 연애도, 연예도 활발히 하고 싶습니다. 아주 활발히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