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의료보험(이하 ‘실손보험’)은 의료비로 실제 부담한 금액을 보장해주는 건강보험으로, ‘실제 손실’을 보장한다고 해서 ‘실손’의료보험이라고 합니다. 필자의 경우, 30대까지만 해도 병원 갈 일이 많지 않아 매달 꼬박꼬박 보험료를 납입하면서도 이렇다 할 혜택은 거의 받은 게 없어 본전 생각이 나곤 했습니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40대 들어서면서 몸 여기저기 병원 신세 질 일이 생겨도 덕분에 비용 걱정 없이 꾸준히 치료를 받을 수 있으니 고맙다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이때 병원에서 종종 듣는 말이 바로 “실비 있으시죠?”입니다. 불필요한 과잉 진료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만일 실손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면 굳이 돈 들여 하지 않았을 검사도 받은 적이 분명 있을 겁니다. 최근 한 지인이 눈에 이상이 생겨 안과 시술을 받게 됐는데, 병원에서 역시 실손보험 운운하며 최고가의 시술을 권했다고 하더군요. 환자 입장에선 자기 부담금은 큰 차이 없이 훨씬 좋은 시술을 받을 수 있다고 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겠죠.
이런 상황을 악용하면 실손보험의 문제점으로 제기되는 의료 쇼핑이나 과잉 진료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결국 그 비용이 보험료 인상이라는 부메랑이 돼 돌아온다는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당장 눈앞의 이익을 거부할 수 없는 거죠. 그러다 보니 선의의 피해자도 생깁니다. 실제로 현재 실손보험금 청구자의 10%가 전체 실손보험금의 50~60%를 받으면서 전체 보험료 인상을 주도하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꼬박꼬박 돈을 내면서도 혜택 한 번 못 받고 때 되면 갱신된 보험료를 내며 손해 보는 기분이 들던 사람들을 위해, 또 남용되는 의료 쇼핑 등을 막기 위한 방책으로 오는 4월 개선된 실손보험이 선보입니다. 현행 실손보험을 기본형과 특약형으로 구분하고, 기본형 외에 소비자가 꼭 필요한 건 특약으로 골라 가입할 수 있게 한 것이 핵심입니다. 먼저 기본형은 대다수의 질병과 상해를 보장하면서 보험료는 현행보다 25%가량 낮아진다고 합니다. 만일을 대비해 보험에 가입했으면서도 평소 병원에 자주 가지 않아 보험금 청구를 거의 할 일이 없었다면 보험료를 낮출 수 있는 기본형으로 갈아타는 게 유리하겠죠. 또 개선안에 따르면 직전 2년간 비급여 의료비 보험료를 청구한 적이 없으면 다음 1년간 보험료를 10% 할인받을 수 있습니다. 자기 부담률도 종전과 같은 20%입니다.
특약은 3가지 형태로 나뉘는데요, ‘도수 치료(손으로 근육이나 뼈 등을 마사지하는 의료 행위)와 체외 충격파 치료, 증식 치료’ ‘마늘 주사, 신데렐라 주사 등 비급여 주사제’ ‘비급여 자기공명영상(MRI)’ 등으로 분류됩니다. 특약은 가입자의 자기 부담률이 종전 20%에서 30%로 상향되고 보장 한도와 횟수도 제한됩니다. 도수 치료가 보장되는 특약은 연 3백50만원 한도에서 50회까지 허용되며, 비급여 주사제 특약은 연 2백50만원 한도에서 50회로 제한됩니다. 마지막으로 비급여 MRI를 보장하는 특약은 횟수 제한은 따로 없지만 연 3백만원 한도까지만 가능합니다.
기본형에 위의 3가지 특약을 모두 든다고 해도 현행보다 7%가량 보험료가 낮아질 전망이라는데요, 안 그래도 새해 들어 보험사들의 지나친 보험료 인상이 문제가 되고 있어, 오는 4월 새 상품 출시와 함께 기존 가입자들의 보험 갈아타기가 봇물을 이루지 않을까 예상됩니다. 금융 당국이 4월부터 실손보험 갈아타기가 가능하도록 보험사들을 유도하고 있지만 회사마다 시스템을 갖추는 데 드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만일 보험 갈아타기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보험사별로 계약 전환 가능 시기를 확인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다만 보험 갈아타기는 같은 보험사 상품으로만 가능하다는 것도 알아두시고요. 타 보험사로 갈 경우 신규로 취급됩니다.
단순히 보험료가 싸진다고 해서 갈아타기를 해서는 안 된다는 점 또한 명심해야 합니다. 자신의 보험료 청구 패턴이 어떤지, 또 기존 계약의 보장 비율이 어떻게 되는지 등을 따져본 후 더 유리한 선택을 해야 하는 거죠. 가장 단순하게 따져볼 것은 가입 시점입니다. 2009년 10월부터 실손보험 보장 비율이 손해보험사와 생명보험사 모두 90%로 통일됐는데요, 만일 자신이 가입한 실손보험이 그 이전 보장률(100%)인 상품이라면 굳이 갈아탈 이유가 없죠. 반대로, 현재 보장 비율이 80% 이하라면 갈아타기를 하는 게 유리합니다. 보험료가 저렴하다고 해서 기존 계약에 추가로 가입할 필요도 없습니다. 실손보험은 중복 가입하더라도 두 배로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라 실제 부담한 의료비 내에서만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다른 금융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보험은 알면 알수록 어렵고 까다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디선가 새는 비용이 있을 것 같은 불안감을 늘 갖게 되죠. 보통 보장성 보험은 수입의 10% 이내를 적정선으로 보는데, 필자도 세 식구가 적지 않은 보험료를 납입하고 있어 일단 새 상품이 나오면 따져본 후 갈아타거나 조정하는 방안을 생각 중입니다. 새는 돈을 막는 것부터가 재테크의 시작이라는 사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니까요.
글쓴이 박진영 기자는…
KBS 예능국 방송작가로 시작, 3년간의 작가 생활을 뒤로하고, 10년 동안 여성종합지 기자 타이틀을 달고 살았다. 경제의 ‘경’ 자도 제대로 모르고 경제주간지 <한경비즈니스> 기자로 턴한 뒤 5년간 경제 매거진을 만들며 경제 감각도, 통장 속 ‘숫자’도 불어나는 걸 경험했다. 현재는 경제 및 컬처 기사를 기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