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대선을 앞둔 부부를 만난 적이 있다. 당시 안철수(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는 비정치인이었지만 신드롬을 일으키며 박근혜를 위협하는 돌풍의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정치 경험이 없던 안철수는 사퇴를 선택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5년이 지났고, 그를 다시 만났다. 안철수는 특유의 ‘아이 콘택트’와 함께 악수를 청했다. 자신감에 차 있었다. 정치인으로 완전히 탈바꿈한 모습이었다. 스스로 준비된 후보라고 강조한 그는 황교안 권한대행은 선거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며, 결국 본격적인 대선 국면이 되면 문재인 후보와 양강 구도를 형성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아내 김미경(55세,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교수) 씨도 인터뷰에 동행했다.
5년 만에 다시 뵙네요.
안철수 그사이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해졌죠? 저희 부모님은 팔순이 넘으셨는데 여전히 머리카락이 까만색이세요. 집안 내력인데, 저는 급속도로 하얗게 되고 있습니다. 오바마 전 대통령도 대통령이 되고 나서 백발이 됐잖아요? 하얀 머리카락이 열심히 산 훈장이라고 생각하고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웃음)
김미경 당시 어렵게 인터뷰에 응했는데, 얼마 못 가서 남편이 사퇴했지요. 그래서 당시 <우먼센스>와의 인터뷰가 생생하게 기억에 남습니다. 그 후 인터뷰 때 입었던 옷을 한 번도 입지 않았어요. 마음이 아파서요.
교수님은 당시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무척 조심스러워했는데, 오늘 보니 사진 포즈가 능수능란한 것 같아요.
김미경 자기를 다 내보이면 별로 두려울 것도 없어지고, 다 내보이더라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으면 되는 것 같아요.
요즘 시간을 초 단위로 쓸 텐데, 휴식할 땐 뭘 하나요?
안철수 영화 좋아하죠. 영화를 보는 순간엔 현실을 잊고 그 세계에서 살다 오는 건데, 그 과정을 거치면서 제 무의식 속에서 고민스러웠던 현실이 정리되는 것 같아요. 최근에 <나, 다니엘 블레이크>라는 영국 영화를 인상 깊게 봤습니다. 국가나 제도가 한 사람을 얼마나 비인간적으로 다룰 수 있는지를 느끼게 해준 영화예요.
요즘 읽고 있는 책이 있나요?
안철수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고 있어요. 인류학, 사회학, 정치학, 생물학 모든 분야를 다 아울러서 인류의 역사를 쓴 책입니다. 깊이 있는 학문들을 융합해서 쉽게 쓴 책이라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결국 4차 산업혁명이 융합혁명이거든요. ‘결과적으로 이런 모습으로 미래가 우리에게 다가오는구나’라고 느낍니다.
건강 비결이 달리기라고 들었습니다.
안철수 저희 집이 중랑천 옆인데, 종종 중랑천 변을 30분 정도 뜁니다.
김미경 제가 내조를 잘하는 편이 아닐 거예요. 남편의 퇴근에 맞춰 먹을 걸 준비하는 게 고작인데, 특별한 보양식도 아니고, 한 가지 요리를 하는 정도예요. 남편이 아이스크림을 지금도 좋아하는데, 간혹 퇴근길에 빙수를 포장해 가면 아주 맛있게 잘 드세요. 앞서 말했듯 남편과 조깅을 함께 합니다. 대부분의 일정을 소화할 때는 일을 도와주는 분들과 함께 하는데, 새벽이라 그럴 수 없는 노릇이기에 경호 차원에서 같이 뛰기 시작했어요.
어떤 남편입니까?
안철수 30년 정도 맞벌이 부부로 살아왔어요. 서로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돕는 소울 메이트 관계죠. 부부관계의 가장 큰 덕목이 같은 가치관이라고 생각해요. 성격과 인생 역정이 서로 달라도 가치관이 같으면 시간이 갈수록 더 좋은 관계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15년 전에도 인터뷰한 적이 있어요. 그때 ‘아이 콘택트’를 하는 모습이 강하게 기억에 남았는데, 여전하네요.
안철수 안연구소를 운영할 때네요. 아이 콘택트는 미국에서 생활할 때 몸에 밴 습관이에요. 미국에서는 눈을 안 마주치면 뭔가 속이고 숨기려 한다고 오해해요. 그게 습관이 돼 전 익숙한데, 간혹 당황스러워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별명이 많아요. 어떤 별명이 가장 좋나요?
안철수 ‘강철수(강한 안철수)’. 국민들이 붙여주신 별명이니까요.
김 교수님은 평소 거의 메이크업을 하지 않던데,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미용 시술’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어요. 그런 쪽엔 관심이 없나요?
김미경 저는 관심이 없지만 그 자체가 나쁜 것이라곤 절대 생각하지 않아요. 개성이라고 생각해요. 병원에서 일했기 때문에 수술용 장갑을 많이 꼈어요. 반지 같은 걸 끼면 장갑이 찢어져요. 그뿐만 아니라 수술을 집도할 때는 세안도 깔끔하게 해야 합니다. 액세서리나 미용이 제게는 전혀 실용적인 부분이 아니었던 거죠. 게다가 아침에 일어나 대충 세수만 하고 출근하는 경우도 허다하죠.(웃음) 병원 일이라는 게 수술이 있으면 아침 7시 반까지 출근하고, 밤에 예고 없이 ‘콜’도 많이 오죠. 그러다 보니 잠을 자는 게 우선이지 화장할 시간이 없었어요. 자연히 화장은 저에게 가장 마지막 순위가 된 거예요.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큰 일탈은 무엇인가요?
안철수 많죠. 의사 그만두고 벤처기업을 창업했고, 잘나가던 회사를 넘기고 교수 생활을 시작했어요. 다섯 번이나 직업을 바꿨는데 덕분에 의학, 생명공학, 정보기술 등의 현장에서 다양한 경험을 했습니다. 제 인생은 일탈의 연속이었죠. 그 경험들이 축적돼 지금의 정치인 안철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미경 남편이 처음 정치를 하겠다고 했을 때 충격을 받았어요. 반대했죠. 여러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우리 딸이 살아갈 세상이다”라는 말이 와 닿아 여기까지 왔네요.
정치에 입문한 지 5년이 됐는데요, 소회를 들려주시죠.
안철수 정치는 우리 삶을 바꾸는 일입니다. 그런데 막상 정치를 해보니 세상이 바뀌는 것을 막으려는 정치인들도 있었습니다. 이대로가 좋은 사람들, 고상한 표현으로 ‘기득권 세력’이라고 하죠. 세상 바뀌는 것을 막고 개인 욕심을 채우려고 정치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세상을 바꾸겠다는 열망이 더 커졌습니다. 초심이 더욱 굳건해졌어요. 정치를 시작하기 전 <안철수의 생각>이라는 책을 썼는데, 지금 읽어봐도 그때와 생각이 바뀐 게 없어요.
그럼에도 정치 입문을 후회한 적이 없나요?
안철수 세상을 바꾸는 일이지 않습니까. 바꿔야죠. 저는 스스로 정치하겠다고 손 든 사람이 아닙니다. 많은 분이 원했고, 저 역시 국민의 뜻이 그렇다면 힘은 부족하지만 세상 바꾸는 일에 힘을 보태겠다고 시작한 정치인입니다. 후회하지 않습니다.
김미경 지난 5년간 남편은 큰 결단들을 내려야 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고생도 많이 했어요. 밖에서 많이 힘들 텐데 집에 오면 전혀 내색을 안 해요. 일부러 내색을 안 하는 게 아니라 원래 정서적으로 안정적인 사람입니다. 밖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집에 와서는 책 보고 신문도 보고 DVD도 보죠. 그렇게 잘 견디나 생각했는데 간혹 몰라보게 희끗해진 머리카락을 보면 마음이 짠해집니다.
5년 전 ‘안철수 현상’ 혹은 ‘안철수 신드롬’이라는 말이 있었어요. 당시의 선택에 대해 후회하진 않나요?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할 때는 정치에 뜻이 없었어요. 그래서 정치에 대한 의지가 있는 분을 지지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죠. 대선 때는, 후보 단일화를 이루겠다고 국민들께 약속했어요. 그 약속을 지킨 겁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87년 단일화를 이루지 못했고, 결국 군부 정권 연장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실수에서 배우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김미경 남편의 결정이고, 약속이니 받아들였지만 쉽지는 않았습니다. 아직도 저는 마음이 조금 아픕니다.
남자에게 권력이란 무엇일까요?
안철수 권력은 세상을 바꾸는 수단이지 목적은 아니에요. 그게 목적이 되면서 정치의 폐해들이 나타납니다. 뭐든 중독이 위험합니다. 권력도 그중 하나죠. 안철수 안연구소를 시작했을 때 회사가 힘들어서 은행에 돈을 많이 꾸러 다녔어요. 그런데 4년 뒤 회사가 정상 궤도에 올라 수십억원을 벌었어요. 그렇게 몇 달 지났는데도 제 삶에는 큰 변화가 없더라고요. 물질이 제 삶을 변화시키지 못했어요. 카이스트 교수가 된 이후 우연히 <무릎팍도사>에 출연했는데, 너무 유명해진 거예요. 하지만 유명해진 것이 제 마음을 들뜨게 하지도 못했어요. 유명해지고 나니 강사료를 엄청나게 주겠다는 대기업이 많았지만 모두 거절했어요. 그 정도 돈이면 저보다 좋은 강사를 부를 수 있겠다 싶었거든요. 그러면서 ‘명예라는 게 나를 들뜨게 하지 못하는구나’ 라는 것을 알았어요.
그리고 권력의 상징, 정치인이 됐어요. 변하던가요?
안철수 예전에 저는 사람들이 왜 국회의원이 되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됐어요. 지역구에 가면 주민들에게 공손해야 하고, 꾸중 듣는 ‘을’의 삶이 정치인 아닙니까? 근데 왜 정치인이 되려고 할까? 그걸 알게 된 계기가 있었어요. 대학에서 강연 요청이 와서 하기로 했는데 하루 전날 강당이 폐쇄돼 강연을 못 하게 됐대요. 이유를 물어보니 지역구 국회의원이 제가 자기 지역구에서 강연을 하는 게 싫어서 그 대학 강당을 폐쇄하라고 명령한 거예요. 국회의원의 힘이 그렇게 막강한지 처음 알았어요. 마음대로 사립대학교 강당을 폐쇄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이라니. ‘아, 저 짓을 하고 살면 또 하고 싶을 만하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한데 자존심 상하는 일 아닙니까? 조그마한 권력이지만 그런 것 때문에 사람이 변하는 게 말이죠.
정치 경력이 짧다는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안철수 5년 동안 큰 선거를 다섯 번 치렀어요. 분명한 정치적 성과가 있었죠. 국회의원 선거 2번, 당 대표로 지휘한 전국 선거가 총선, 지방 선거,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까지 총 3번이 있었어요. 정치인으로서 치러볼 수 있는 모든 선거를 다 치렀죠.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한 석 빼앗긴 거 외엔 모든 선거에서 이겼어요. 정치인은 선거 결과로 판단을 받습니다.
이미지가 부드러워서일까요. 우유부단하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안철수 서울대 출신의 잘나가던 사람이 주변에서 만류하는 벤처기업을 창업했어요. 그리고 일취월장하던 회사를 전문 경영인한테 물려주고 또 다른 일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5년 전 정치에 뛰어든 것도 그렇고요. 제 평생은,결단의 연속이었습니다. 오히려 정치권에 와보니까 비겁한 사람이 많았어요. 간이 작은 사람들요. 우유부단하다는 얘기들도 결국 그 사람들의 흑색선전인데, ‘할 수 없지 뭐’ 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말 나온 김에, ‘철새’라는 이미지도 있습니다.
안철수 저는 책임지는 정치를 합니다. 박근혜 게이트라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터졌음에도 대통령을 비롯해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어요. 저는 리베이트 조작 사건이 터졌을 때 무죄를 확신했지만 당의 미래를 위해 당대표직을 내려놨어요. 결국 최근 사건에 연루된 7명 전원이 무죄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어요. 정권 차원의 ‘안철수 죽이기’였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죠.
안희정 후보의 지지율이 계속 높아지고 있습니다.
안철수 결국은 그 속에서 문 전 대표로 정리될 겁니다. 두고 보세요.
이번 대선 공약의 핵심이 교육입니다.
안철수 지금 4차 산업혁명을 목전에 두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도 일제강점기의 교육제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죠. 지금의 획일적 교육으로는 미래의 불확실성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없습니다. 미래를 대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미래를 살아갈 수 있는 창의적인 인재를 키우는 것이기 때문에 교육부 해체와 교육제도 개편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습니다.교육부를 폐지하고 국가교육위원회로 대체한다고 했는데, 결국 이름만 바꾸는 거 아닌가요? 안철수 지금의 교육부 체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 정책도 바뀝니다. 학교의 자율성을 빼앗아 창의 교육을 막고 있는 거죠. 국가교육위원회에서는 교사, 학부모, 여야 정치인 등 모든 이해 관계자들이 참여해 매년 향후 10년 계획을 합의할 거예요. 이것을 ‘롤링 플랜’이라고 하는데 이런 과정을 거쳐 정권이 바뀌더라도 교육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거죠.
5+5+2(초등 5년-중학 5년-진로탐색학교 또는 직업학교 2년)로 학제를 개편하겠다는 파격적인 교육정책 공약을 내세웠습니다. 대통령 임기 동안 결과를 알 수 없는 공약인데요?
안철수 당장 바꾸자는 말이 아니고 국가교육위원회를 만들어 향후 10년 계획을 세워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교육 현장에 혼란이 없도록 학부모, 교사, 정치인, 교육 전문가 등 이해 관계자가 참여하는 국가교육위원회를 통해 모두가 만족하는 제도로 점진적으로 추진해나갈 계획입니다.
김 교수님은 워킹맘으로서, 또 바쁜 남편의 아내로서 균형을 잘 잡은 경우인데 비결이 있나요?
김미경 자기에게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결국 해내는 것 같아요.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성취는 엄마가 된 겁니다. 딸과 있으면 모든 게 꽉 차는 충만한 기분이 들어요. 어머니로서의 그 충만감을 다른 것을 위해 놓치지 마세요.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장치도 뒷받침돼야 하겠죠. 출산과 육아를 거치면서 우리나라는 여성 인력이 노동시장에 충분히 들어와 있지 못한 것도 사실이고요. 제가 남편에게 좋은 방법을 강구하라고 했습니다.(웃음)
이번 선거, 어떻게 예상하나요?
안철수 결국 저와 문재인 후보의 대결이 될 겁니다. 여론조사 결과가 오르락내리락하지만 결국 민주당은 한 사람으로 정리가 될 테고, 결국 양강 구도로 갈 수밖에 없어요. 반 총장님이 설 지나면 사퇴할 것이라고 제가 예전부터 여러 번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아무도 안 믿었지만 결국 그렇게 됐어요.
영부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김미경 첫 번째는, 소명감을 가지고 공공성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스스로를 도구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동시에 저의 경우는 지금까지 의사나 교수를 하며 배운 경험을 바탕으로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에 더 관심을 가져볼 수 있겠죠.
인터뷰 내내 세상을 바꾸려고 정치를 한다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바꿀 수 있습니까?
안철수 벌써 바꿨다고 생각합니다. 작년 총선 때 국민의당을 창당해 삼당 체제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여소야대가 됐고 그결과 지금 박근혜,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이 세상에 빨리 드러나게 됐어요. 이미 바뀐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안 후보님께 한마디해주세요.
김미경 남편을 믿습니다.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새벽에 조깅할 때 항상 남편 뒤에서 함께 뛰었던 것처럼, 저는 늘 그 자리에 있을 것이고 저 말고도 많은 사람이 함께 달리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힘내서 끝까지 갑시다.
안철수(56세, 국민의당)
1962 부산 출생
1980 서울대학교 대학원 의학박사
1991 해군 군의관
1995 안랩 대표이사
2008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정문술석좌교수
2011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
2013~현재 노원구병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