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만화 <미스터 초밥왕>의 한 장면. 최고의 초밥을 만들기 위해 최상의 와사비(고추냉이)를 찾아 헤매던 주인공 쇼타는 깊은 계곡 맑은 물 속에서 자라는 와사비를 발견한다. 싱싱한 와사비를 강판에 갈아 맛을 보니 톡 쏘는 매운맛 뒤로 상큼한 단맛이 감돌아 그냥 먹어도 혀에 착 감길 정도. 결국 이 와사비로 초밥 대결에서 승리를 거둔다는 이야기다.
이때 쇼타가 최상의 와사비를 찾아낸 곳이 바로 일본 시즈오카 현이다. 실제로 이곳에서는 수백 년 동안 독특한 수경 재배 방식으로 최상의 와사비를 키우고 있다. 시즈오카 현에 자리 잡은 후지산에서 시작한 맑은 물이 사시사철 일정한 온도로 와사비를 키운다. 덕분에 시즈오카 현은 질과 양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와사비 산지가 되었다. 2kg 한 박스에 3만5천 엔(무려 38만원!)이나 하는 최고급 와사비가 생산될 뿐만 아니라 일본 전체 와사비 매출량의 대략 60%를 시즈오카가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상어껍질강판에 갈아 먹는 생와사비의 맛
그래서일까? 시즈오카의 음식점 중에는 생와사비를 강판과 함께 내오는 곳이 많다. 손님이 직접 갈아서 가장 싱싱한 와사비를 맛보란 뜻이다. 어떤 집에서는 와사비를 가장 맛있게 갈 수 있다는 상어껍질강판을 쓰기도 한다. 우둘투둘한 상어껍질에 갈아 먹는 생와사비의 맛은? 지금까지 먹어왔던 튜브 속 분말 와사비의 기억이 억울하게 느껴질 것이다.
후지산의 맑은 물이 키운 것은 와사비만이 아니다. 전국 생산량의 약 40%를 차지한다는 녹차 또한 후지산의 선물이다(당연히 전국 생산량 1위다). ‘차의 수도’ 시즈오카에서는 텃밭으로 작은 녹차밭을 가꾸는 집들을 흔히 볼 수 있다. 한겨울에도 푸른 녹차밭이 눈 쌓인 후지산과 어우러진 모습은 시즈오카를 상징하는 풍광이 되었다.
시즈오카에서 9대째 이어지고 있는 차 농장의 안주인이 내온 녹차는 향기롭고 투명했다. 손님에게 처음 대접하는 ‘웰컴티’는 특유의 떫은맛 대신 향을 즐길 수 있는 차로 준비한단다. 다음으로 깊은 차 맛이 느껴지는 전차(잎차)가 이어졌다. 지은 지 150년이 넘었다는 나무집은 차 덖은 연기가 스며들어 온통 검은데, 오늘 딴 녹찻잎으로 모양을 낸 찻잔 속의 차는 싱그러운 향을 냈다. 후지산 모양의 양갱과 잘 어울리는 맛이다. 요즈음은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 쉽게 우릴 수 있는 티백으로 다양한 차들을 선보이고 있다고 한다.
옛길 도카이도와 조선 통신사
후지산의 맑은 물이 준 또 하나의 선물은 술이다. 하긴, 술처럼 물이 중요한 음식도 드물다. 물과 함께 술맛을 결정하는 쌀 또한 햇살과 바람 그리고 물이 키우는 것이니. 문을 연 지 200년이 넘었다는 시즈오카의 한 양조장에는 에도 시대의 장부가 남아 있었다. 후지산의 눈 녹은 물로 술을 만드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란다. 여기에 30여 년 전 개발된 ‘시즈오카 효모’가 더해지면서 시즈오카의 술은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고. 시즈오카 효모로 담근 사케(일본 술)는 부드러운 과일 향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효모와 함께 시즈오카의 술맛을 더욱 높인 것은 ‘호마레 후지’라는 ‘술쌀’의 개발이었다. 시즈오카 연구소에서 7년에 걸쳐 연구 개발한 호마레 후지는 단백질 함유량이 낮아 잡미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이렇게 완성된 시즈오카 사케는 그냥 마셔도 한없이 들어가지만 깔끔한 맛과 향이 반주로 제격이다.
와사비와 녹차, 사케까지 즐겼으니 어디 한번 시즈오카를 걸어볼까? 어디에서나 후지산이 보이는 시즈오카는 도쿄와 교토를 잇는 옛길 도카이도(東海道)의 길목이었다. 이 길을 따라 여행자들의 숙소인 슈쿠바(역참)가 53개나 들어섰고, 그 길을 따라 조선의 통신사 행렬이 도쿄를 향해 지나갔다. 지금도 여행자들을 맞이하는 역참 ‘초지아’에서는 감동적인 참마(토로로) 요리를 맛볼 수 있고, 조선 통신사들이 묵었던 세이켄지에는 그들이 남긴 글씨가 선명하다. 여행에서 쌓인 피로는 해변의 이타미 온천이나 산간의 슈젠지 온천에서 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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