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가 일으킨 태풍이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다. 지난 11월 19일 100만 명의 국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대통령의 퇴진과 하야를 촉구하는 집회가 서울 도심 곳곳에서 벌어졌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부부부터 머리 희끗한 중년,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중고생들에 이르기까지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은 분노한 민심을 대변했다.
최순실은 박근혜 대통령이 혈육보다 더 가까이 여겼던 심복이자 측근으로 전해진다. 정치권 한 인사는 청와대 ‘비선 실세’ 최순실을 가리켜 “박근혜 대통령의 오장육부”라고도 했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청와대 입성 후 최순실을 ‘선생님’이라고 불렀으며, 그와 여러 국정 현안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뿐만 아니라 최순실은 자녀(정유라, 개명 전 이름은 정유연) 대학 입시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고, 공직자 인사에 개입하는가 하면 대기업들로부터 수백억원의 강제 모금을 했다는 혐의 등으로 구속돼 현재 검찰이 수사 중이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이 이처럼 국정에 개입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고 나아가 각종 전횡을 눈감았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복수의 정치권 관계자에 따르면 최순실은 일반 시민은 접근조차 하기 어려운 청와대에 수시로 드나들었고, 대통령 연설문을 빼내 수정하는 등 ‘국정 농단’을 자행했다.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입건됐다.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다. 검찰은 최순실 게이트의 배후에 박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고 밝히며 공모 관계를 분명히 했다. 사실상 주범으로 보고 있다는 말이다.
박 대통령이 정계에 입문한 뒤 늘 그림자처럼 수행해온 ‘문고리 3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도 최순실의 천거로 발탁됐다. 이들 가운데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은 청와대 문건을 최순실에게 유출한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검찰은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 안봉근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도 소환 조사했다. 안 전 비서관은 2012~2014년 ‘수행·민원’을 담당하는 제2부속비서관으로 재직 중 최순실을 차량에 태우고 청와대에 수시로 출입한 의혹도 받고 있다. 청와대 ‘예산·인사’를 총괄한 이 전 비서관은 최씨가 청와대와 정부 부처 인사에 관여하는 것을 알고도 묵인한 의혹이 있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 정권 핵심 수뇌부는 최순실과 관련한 비리 의혹을 사전에 인지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들은 관련 의혹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 2014년 ‘정윤회 문건’ 사건 당시에도 “정윤회가 비선 실세라는 증거가 없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이때부터 최순실과 관련한 여러 추문이 정가에 떠돌았고, 이 중 일부는 이번 수사 결과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당시 추문이 기사화되지 못한 것은 언론이 권력의 눈치를 본 탓도 있지만 핵심적인 물증을 확보하지 못한 이유가 더 크다. 최순실은 평소 대포폰을 사용하고 차명으로 재산을 관리하는 등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딸과 관련한 일에 대해선 여러 흔적을 남겼다. 입시 비리, 승마 특혜 등이 대표적이다. 대기업을 압박해 수백억원을 모금하는 과정에선 유흥업소 출신인 고영태 씨와 협력하는 등 상식 밖의 일 처리로 허점을 드러냈다. 이들은 각각 재단이 설립된 직후 모금한 돈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를 놓고 갈등을 빚었다고 전해진다. 결과적으로 고 씨 등은 최순실을 배반하면서 ‘최순실 게이트’가 세상에 드러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박 대통령과 최순실의 인연은 4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최순실의 아버지인 영세교 교주 고(故) 최태민은 1975년 박근혜 큰 영애에게 만남을 요구하는 편지를 보낸다. 이 무렵 박 대통령은 육영수 여사가 피살된 후 커다란 실의에 빠져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태민은 이런 상태의 큰 영애에게 자신이 설립한 종교단체인 대한구국선교단의 명예총재직을 제안한다.
박 대통령은 최태민의 제안을 승낙하는 한편 최태민의 딸인 최순실과도 전국새마음대학생총연합회 등에서 교류했다. 이때 최태민은 ‘큰 영애’를 등에 업고 재벌들로부터 활동에 필요한 찬조금을 갹출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번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 과정에서도 과거와 유사한 방식의 모금이 이뤄졌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하고 전두환 군사정권이 들어서자 박 대통령은 청와대를 떠나 사실상 유폐된다. 이때에도 최태민은 자신의 딸인 최순실과 함께 박 대통령 곁을 지켰다. 박 대통령과 최태민의 관계에 대해선 여러 말이 있지만 ‘제자’와 ‘스승’ 관계로 보는 견해가 정설이다. 박 대통령의 동생인 박근령 씨는 박 대통령이 이사장으로 있던 육영재단의 여러 이권에 최태민과 최순실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일찍이 제기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최태민 일가에 대한 믿음을 끝내 거두지 않았다. 지난 2007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 최태민과 관련한 스캔들이 불거지자 박 대통령은 “나라가 어려울 적에 많이 도와주었다. 나에게는 고마운 분”이라고 옹호했다.
양친을 잃고 20년 가까이 두문불출했던 박 대통령에게 최순실은 유일한 말동무이자 버팀목이었다. 지난 2006년 박 대통령이 괴한에게 피습됐을 당시 그를 간호한 인물 또한 최순실로 전해진다. 박 대통령은 지난 10월 25일 대국민 사과에서 “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이 있다”라며 최순실과의 친분을 인정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의 정치적 후견인으로 암약하며 경제, 문화계까지 손을 뻗친 최순실 일가. 일각에서는 그들이 법조계와 군대까지도 장악했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최순실과 그의 언니, 자녀까지 모두 수백억원대의 자산가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대한민국은 한 번 더 충격에 빠졌다.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계속 쏟아져 나오는 최순실 게이트의 전말. 영화 속 이야기가 실제로 펼쳐지고 있다.
TIME LINE
7월 26일 ‘미르 재단 설립 후 대기업 자금 모금에 안종범 대통령 정책수석이 개입했다’는 의혹 제기.
7월 27일 미르 재단 막후 실세로 차은택 지목.
9월 3일 최순실, 딸 정유라와 함께 독일로 출국.
9월 20일 미르 재단과 K스포츠 재단의 숨은 실세가 ‘최순실’이라고 폭로.
10월 13일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 입학 의혹.
10월 19일 이화여대 최경희 총장 전격 사퇴.
10월 20일 박근혜 대통령 “재단과 관련한 불법 행위 엄정 처벌” 지시.
10월 24일 JTBC 청와대 문건 유출 정황 담긴 태블릿 PC 보도.
10월 25일 박근혜 대통령 대국민 사과.
10월 27일 최순실 <세계일보>와 인터뷰.
10월 30일 최순실 귀국.
10월 31일 귀국 31시간만에 최순실 구속.
11월 4일 박근혜 대통령 2차 사과.
11월 12일 대통령 퇴진 촉구 광화문 100만 촛불시위.
11월 15일 박근혜 대통령 차움 병원 ‘길라임’ 예약 파문.
11월 18일 박근혜 대통령 입건.
11월 19일 4차 대국민 촛불집회.
핵심 인물
최순실 구속 횡령·배임 등 10여 가지 혐의로 구속.
정유라 최순실의 딸. 이화여대 입학 취소 및 청담고 졸업 최소 논의.
최순득 최순실의 언니. 진짜 비선 실세라는 의혹.
장시호 구속 최순실의 조카.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자금 횡령 혐의로 구속.
차은택 구속 고영태 소개로 최순실과 친분.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구속.
고영태 최순실과 친분. 최순실 게이트의 최초 증언자.
우병우 민정수석실 비서관, 횡령, 직권남용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 황제 수사 논란의 주인공.
안봉근 문고리 3인방 중 1인.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 조사.
이재만 문고리 3인방 중 맏형.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 조사.
정호성 구속 문고리 3인방 중 1인.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청와대 문건 유출 혐의로 구속.
핵심 논란들
잊어서도, 잊혀서도 안 되는 핵심 논란 6가지를 짚어봤다.
1 최순실 검은손, 연예계도 파장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한 최순실. 그녀의 검은손은 연예계와 스포츠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최순실은 최측근인 펜싱 금메달리스트 고영태를 통해 몇몇 가수, 연예인과 친분을 맺었다. YG엔터테인먼트는 최순실의 조카 장시호가 과거 직원으로 일했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논란의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양민석 이사는 해외 한류 사업에 늘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했다고. 스포츠계도 피해 갈 수 없었다. 김연아는 차은택의 지인 정아름이 만든 늘품체조 시연회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2015년 대한체육회에서 선정하는 ‘스포츠 영웅’에서 제외됐고, 장시호의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설립 제안을 수락한 이규혁은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연예계에서는 ‘최순실 게이트의 초점이 연예인 물타기로 흐려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반응을 내놓고 있다.
2 대통령의 거짓말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박 대통의 거짓말이 드러났다. 먼저 박 대통령이 스스로 밝힌 청와대 문건의 유출 기간(박 대통령은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되기 전인 임기 초반에만 국한된 비위였다고 해명했다)과 검찰이 국정 문건 유출이 이뤄졌다고 명시한 기간(2013년 1월부터 지난 4월)이 극명히 대비된다. 10월 25일 대국민 담화에서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의 표현 등에서 도움 받은 적이 있다”고 했던 박 대통령. 하지만 검찰 수사 결과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 고위직 인사안, 국무회의와 수석비서관회의 대통령 말씀 자료 등 그 범위가 방대하다.
국정 농단 사태의 시발점이자 핵심인 미르·K스포츠 재단의 설립과 운영을 둘러싼 부분도 거짓말로 드러났다. 11월 4일 대국민 담화에서 “국가경제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된 일”이라고 했지만 검찰 판단은 기업인들이 불이익을 두려워해 돈을 뜯겼다는 결론이다. 이처럼 박 대통령의 공모 관계가 드러나며 그가 지난 4일 “특정 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여러 위법행위까지 저질렀다고 하니 너무나 안타깝다”고 한 발언은 그저 꼬리 자르기 시도였음이 명확해졌다.
3 금수저 끝판왕, 정유라와 장시호
최순실의 딸인 정유라는 이화여자대학교 체육과학부 입학 서류 심사부터 특혜를 받았다. 지원 기일이 지난 뒤 받은 금메달이 성적에 반영되면서 자신보다 월등했던 다른 학생을 제치고 입학한 것. 모자란 출석 일수, 비속어나 인터넷 용어를 쓴 성의 없는 과제를 제출했음에도 높은 학점을 받았다는 사실은 전국 대학생들의 분노를 샀다. 특히 삼성그룹이 정유라를 위해 10억원대의 명마와 독일 소재의 승마장을 구입했다는 주장은 그녀가 금수저로 삶을 살았음을 방증한다. 장시호도 마찬가지다. 53명 중 52등을 하고도 대한승마협회에서 주최한 마장마술 대회 수상 경력을 통해 연세대에 체육 특기생으로 입학했다.
단체 종목 특기생만 받아오던 연세대는 장시호가 입학한 해인 1998년에 개인 종목을 추가했다. 장시호는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를 통해 평창동계올림픽 예산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자기 명의로 된 스포츠 마케팅 업체인 더스포츠M에 용역을 맡기는 등 횡령도 일삼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보도된 김종 전 문체부 차관과 장 씨가 긴밀하게 협의했다는 사실은 국민에게 큰 상실감을 안겼다.
4 최순실의 남자들
펜싱 금메달리스트 고영태는 최순실이 자주 출입하던 강남의 한 유흥업소에서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일명 ‘호스트바’ 출신으로 알려진 고영태는 최순실을 등에 없고 더블루K 재단의 이사가 됐다. 더블루K는 K스포츠재단의 돈을 빼돌린 창구로 지목받고 있다. 2008년 론칭한 가방 브랜드 빌로밀로는 2013년 당시 박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으로 자주 들고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최순실에게 차은택을 소개해준 사람은 고영태였다. ‘문화계 황태자’로 불리는 차은택은 최순실을 통해 박 대통령과 친분을 쌓았다. 그리고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영상감독, 밀라노 엑스포 전시관 영상감독, 창조경제추진단장 등 굵직한 국가행사를 싹쓸이했다. 국가행사뿐만 아니라 현대자동차 광고 등 대기업 광고도 따냈다. 반말을 할 정도로 막역했던 최순실과 고영태의 사이가 최근 소원해지면서 ‘최순실 게이트’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는 주장도 있다.
5 세월호 7시간의 의혹
최순실 게이트는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 묘연했던 박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논란으로 번졌다. 참사 당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약 7시간 동안 박 대통령이 아무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는 의혹이다. 일각에서는 참사 당일 ‘차움’에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차움은 병원과 헬스클럽을 이용할 수 있는 VVIP를 위한 공간이다. 박 대통령이 진료 당시 사용했던 가명이 인기 드라마 <시크릿가든>의 여주인공 이름인 ‘길라임’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논란은 증폭됐다. 청와대는 “길라임은 차움병원 측에서 간호사가 임의로 지은 이름이며, 참사 당일에는 유선 보고, 서면 보고를 지속적으로 받았다”고 해명했고 11월 19일에는 청와대 홈페이지를 통해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스케줄을 상세히 공개했다.
6 최순실 게이트
‘문고리 3인방’이 청와대를 떠나게 됐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는 문고리 3인방은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 정호성 전 1부속실 비서관, 안봉근 전 2부속실 비서관이다. 문고리 3인방은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부터 보좌해왔고. 최순실의 전남편 정윤회 씨를 ‘사수’라고 부를 만큼 친밀했다. 최순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정호성 전 비서관은 대통령 연설문 등 청와대 내부 문서를 최순실에게 넘겨주었다는 혐의로 체포돼 결국 구속됐다. 무엇보다 최순실이 문고리 3인방을 통해 각종 국가 사업에도 관여하거나 비리를 저질렀다는 의혹은 그들이 과연 누구를 보좌하기 위한 ‘문고리’였는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