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파주 헤이리 마을의 한 카페에서 만난 윤이수 작가는 유난히 밝아 보였다. 분신과도 같은 소설 <구르미 그린 달빛>이 드라마로 만들어져 전 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인기를 제대로 실감하진 못해요. 제 일과는 이전과 동일하게 돌아가고 있거든요. 7살 난 우리 아들은 TV를 보다가 박보검 씨가 나오면, ‘<구르미>에 나오는 아저씨다!’ 라고 외쳐요.(웃음) 생전 처음 인터뷰 요청도 쏟아졌죠. 어안이 벙벙해요.”
대중에게 낯선 이름일 수도 있겠지만, 인터넷상에 올라오는 ‘웹 소설’을 즐겨 읽는 이들 중 ‘윤이수’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이 처음 등장할 무렵부터 지금까지 활동해온 대표적인 1세대 작가이기 때문. 자칫 진부할 수 있는 로맨스물도 그녀가 쓰면 남다르다. 역사에도 관심이 많은 윤 작가는 조선시대의 실존 인물인 효명세자를 중심으로 해 독특한 연애 소설을 인터넷상에 올렸고, 이 작품은 뜨거운 반응을 얻으며 드라마로 제작되기에 이른다. 바로 <구르미 그린 달빛>이다.
“드라마 제작 제의가 들어왔을 때도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지상파 방송사에 편성되고 게다가 가장 핫한 배우들이 주연을 맡는다는 걸 전해 들었을 때는 ‘이게 꿈이야, 생시야’ 했어요. 원작자로서 드라마에 백점 만점에 백이십 점을 드리고 싶어요.(웃음) 특히 배우들의 연기는 놀라워요. 극 중 (박)보검 군의 손이 클로즈업된 장면이 있었는데, 표정을 비추지 않았는데도 배우의 감정선이 전해지더라고요. (김)유정 양이 독무를 추는 장면은 또 어떻고요. 두 달 동안 연습했다고 하더니 제 상상보다도 완벽하게 재현해냈더라고요. 개인적으로 가장 안쓰럽게 생각하는 캐릭터 ‘윤성’을 연기하는 진영 씨에게도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김병연’에게 선 굵은 사내의 향기를 부여해준 곽동연 배우의 연기도 감동적이었어요.”
처음엔 걱정도 많이 했다. 미우나 고우나 내 자식 같은 작품인데, 대중에게 비판받으면 마음이 쓰릴 것 같아서였다. 타 방송사에서 같은 시간대에 대작 드라마를 편성한다는 뉴스에도 신경이 쓰였다. 3회 만에 시청률이 반등했을 때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이제는 모든 걱정을 내려놓고 시청자로서 편하게 드라마를 볼 수 있어 행복하다고, 윤 작가가 말했다.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는 게 가장 행복해요.
글 쓴다는 딸 걱정을 많이 하셨거든요. 안정된 직업을 선택하라고 하셨지만 저는 끝까지 고집을 피웠어요. 부모님께서는 못 이기는 척 지켜보셨지만 속으로는 불안하셨겠지요. 요즘엔 ‘우리 딸 믿어주길 잘했어’라고 하신다니까요.(웃음)”
구상하는 데만 1년, 집필하는 데 8개월이 꼬박 걸린 작품이었다. 집필하는 동안 윤이수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겪어내야 했다. 모든 캐릭터가 내 자식 같았다. 이야기의 흐름상 캐릭터에게 비극을 겪게 할 순간이 오면 마음이 아렸다.
“카페에서 글을 쓰다가 펑펑 운 적도 있어요. 여주인공이 사랑하는 왕세자에게 ‘다른 사람과 국혼을 올리셔도 됩니다. 저는 괜찮습니다’라고 하면서, 마음으로는 ‘가지 말아요. 나 아파요’라고 하는 장면이었죠. 글을 쓰면서 도저히 감정을 억제할 수 없어 큰 소리를 내며 울었고, 놀란 종업원이 물을 들고 달려와 저를 위로했어요. 그 이후로 3일간 끙끙 앓았어요. ‘앞으로 슬픈 장면을 쓸 때는 집에서 작업해야지’라고 다짐한 사건이었죠.”
윤 작가가 글을 쓰기 시작한 건 2001년부터다. 학창 시절 도서관의 모든 책에 자신의 이름을 적겠다는 목표를 세울 정도로 글 읽는 것을 사랑했던 그녀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10년 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녔어요. 마음에 드는 곳에서는 몇 달이고 살기도 하고요. 글 써서 번 돈을 여행에 쏟아 부었어요. 돈 떨어지면 현지에서 일하기도 하고요. 2006년에 정식으로 책을 출판하게 됐죠. 그때 스스로에게 5년이라는 시간을 주기로 마음먹었어요. 그 시간 동안 글로써 어떤 성과를 더 이뤄내지 못한다면 글 쓰는 일을 접겠다고 생각했지요.”
그야말로 사활을 걸었다. 글 쓰는 시간 외에는 지나다니는 사람을 관찰하며 캐릭터를 연구했고, 독자들의 반응을 분석하며 어떻게 해야 함께 호흡할 수 있을까 연구했다.
“인터넷상에 소설을 연재할 때는 하루에 4시간밖에 못 자요. 감기약도 못 먹어요. 졸리면 마감을 제대로 못 하니까. 병원 가서도 ‘약에 잠 오는 성분은 빼주세요’라고 말하면 의사 선생님이 어이없어 하세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픈 몸을 이끌고도 어찌어찌 글은 쓰더라고요. 남이 시키는 거면 백만금을 준대도 그렇게 못 할 거예요.(웃음)”
윤이수 작가의 남편 역시 글을 쓴다. 깊이 사랑하기에 더욱 서로의 글에 냉철하게 비판을 가하는 사이다.
“남편은 제가 가장 신뢰하면서도 무서워하는 독자죠. ‘재미있다’는 말 한마디에 피로가 싹 가시고, ‘이해가 안 가는데’라는 한 마디에 의기소침해져요. 화가 나서 며칠 동안 말 안 하는 것도 다반사예요. 그런데요, 결국 그이 말이 맞더라고요.(웃음)”
같은 길을 가기에 서로의 고충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아내가 마감 기간일 때는 남편은 조용히 아이를 돌본다. 남편이 글쓰기에 몰두할 때 아내는 그를 방해하지 않는다.
“홀로 떠나는 삶이 좋아 오랫동안 여행을 다녔어요. 그런데 어느 날 몸살이 심하게 걸려 3일 동안 꼬박 앓아눕게 됐죠. 몸 뒤집을 힘조차 없어서 ‘누가 나 좀 굴려줘. 살려줘’ 하며 울었어요. 그때 알았어요. ‘나 외롭구나. 더는 혼자 못 살겠다. 결혼할래.’ 그래서 한국에 들어왔어요.”
때마침 한 출판사에서 윤 작가에게 출판 제의를 해왔다. 미팅 자리에서 그녀는 “남자를 소개해주면 계약하겠다”고 했다. 그 때 지금의 남편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꾀죄죄한’ 모습으로.
“그 모습이 제 눈엔 순수하게 보였어요. 계속 쫓아다녔는데 안 만나주는 거예요. ‘들이대는’ 여자 안 좋아한다면서요. 오기가 생겨서 계속 따라다녔고 ‘나랑 결혼하면 매일 횟집에서 밥 사줄 수 있어’라고 꼬드겼어요. 남편은 늘 제게 ‘그 말만 믿고 결혼했는데 속았다’고 성화죠.(웃음)”
윤이수 작가가 로맨스를 잘 쓰는 덴 이유가 있었다. 그녀의 삶이 로맨스 그 자체 아닌가.
“사랑은 제 인생의 화두예요. 비단 남녀 간의 사랑만이 아니라 여러 형태의 사랑을 다루고 싶어요.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친구 사이의 사랑 모두요. 아이를 낳은 후에는 더욱 그런 소망을 갖게 됐죠.”
윤 작가는 자신의 삶이 아이를 낳기 전과 후로 나뉜다고 했다. 허공에 부유하던 삶이었는데 엄마가 되며 비로소 땅에 발을 딛고 살게 됐다.
“저는 저밖에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아이를 낳으면서 세계 평화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내 아이가 살게 될 이 나라의 정치와 경제와 복지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더라고요.”
출산 이후 윤이수 작가의 세상은 넓어졌다. 또래 엄마들과 만나며 이전에 몰랐던 ‘선행학습의 세계’를 알게 됐고, 끊임없이 ‘경쟁’을 외치는 현대 사회에서 신념대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도 알았다.
“아이의 상상력을 제한할까 봐 한글을 너무 일찍 가르치지 말자고 남편과 합의했어요. 그런데 유치원에서 다른 아이들은 ‘가족’이라는 글자를 쓰는데 우리 아이만 ‘ㅂ’을 썼다고 엄마들이 위로를 해주더라고요. 정작 저는 ‘세상에, 가르쳐준 적도 없는데 ㅂ을 썼다고요?’라고 말했죠. 한글을 떼지 않으면 유치원 수업을 따라갈 수 없다고 해서 다른 곳으로 옮겼어요.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이런 경험 못 해봤을 거예요.(웃음)”
작가로도 승승장구하고 가정도 평화롭다. 쉬어 갈 법도 한데 그녀는 또 새 책을 냈다. 조선시대 문종에 대해 다룬 소설 <해시의 신루>다.
“문종은 역사적으로 가장 저평가된 왕이에요. 위대한 왕이자 아버지인 세종의 그늘에 가려진 면이 있지만, 세종의 많은 업적 중 절반은 문종의 공이었어요. 역사물은 ‘결말은 바꿀 수 없다’는 제약이 있지만 기록과 기록 사이의 빈 공간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메우는 재미가 있어요.”
물론 플롯을 고민하고, 인물의 과거를 구성하고, 에피소드를 풀어내는 건 재밌기만 한 일은 아니다. 글이 풀리지 않아 잠 못 이루는 적도 여러 번이다.
“글이 풀리지 않는다고 눈앞에서 치워버리면, 나중에는 거대한 산이 되어 있어 넘기 더 힘들어져요. 한 문장이 풀리지 않는다고 열흘 혹은 몇 달을 붙잡고 있는 후배에게 딱 한마디했어요. ‘지금 조각하니?’라고요. 소소한 것에 연연하다 보면, 나중에는 그 문장이 불필요하다는 것을 알아도 들인 시간이 아까워 빼지 못해요. 글의 완성도는 오히려 떨어지는 거죠. 밀도 높게 완성하고 그다음에 수없이 다듬어야 해요.”
이렇듯 치열하게 작업하기에, 윤 작가는 “취미로 글 쓴다”는 말이 가장 싫다. 인터넷에 소설을 올린다고 하면 ‘설렁설렁 쓰겠거니’라고 오해하는 이들이 종종 있어 답답할 때도 있다. 웹 소설 혹은 인터넷 소설이 ‘하위문화’로 분류됐던 기간이 길었던 탓일 것이다. 인식이 많이 바뀌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순수문학은 상위, 나머지 문학은 하위’라고 보는 시각에 대해 윤이수 작가는 아쉬워했다.
“웹 소설 중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 많은 것도 인정해요. 그런데 ‘가볍다’와 ‘유치하다’를 동일시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요즘 독자들은 똑똑해요. 시간을 할애할 가치가 없는 글은 보지 않아요. 조금 넓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인터넷에 글을 올려 돈을 번다’는 개념이 생소하던 시기, 윤이수 작가는 과감하게 도전했고 큰 성과를 냈다. 웹 소설 작가 1세대이자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작가 중 한 명이기에 그녀는 일종의 책임감을 느낀다.
“이제 더 이상 작가가 종이책만 써서는 밥을 먹고 살 수 없는 구조예요. 작품 활동 사이에 공백이 생기면 쪼들리는 작가가 너무 많아요. 그래서 ‘웹 소설’이라는 구조가 반가웠어요. 이젠 누구나 글을 인터넷에 올릴 수 있죠. 잘 써서 독자들의 호응을 얻으면 돈을 벌 수 있고요. 저 역시 드라마가 성공하기 훨씬 전부터 인터넷에 글을 올리며 먹고살 만한 수익을 얻었어요. 사람이 배고프면 창작할 수 없어요. 적어도 밥 걱정을 하지 않는 안정적인 구조가 돼야 창작 활동에 매진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윤이수 작가는 글을 써서 먹고살 수 있는 지금이 감사하고 행복하다. ‘잘될수록 겸손해야지’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되새기며 새벽 3시에 일어나 글을 쓴다.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무녀를 보며 글 쓰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작가도 이야기와 현실이라는 두 가지 세계를 연결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니까요. 독자들에게 공감과 긴 여운을 남길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