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처럼 시작된 협소 주택 짓기
내발산동의 한 골목, 빌라와 빌라 사이에 빨간 벽돌로 외벽의 중심을 감싼 독특한 외관의 집이 멀리서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크고 작은 창문 디자인까지 유머러스한 감각이 느껴지는 이 집에는 동갑내기 이영락(43세)·김현주 부부와 첫째 딸 다희(15세)·둘째 딸 여강(13세)·막내 아들 건(12세) 3남매가 살고 있다.
“집짓기 열풍이라지만 사실 저희 부부는 크게 관심은 없었어요. 다만, 지금은 아파트를 매매할 시기가 아닌 것 같아서 전세로 살며 다른 재테크를 준비 중이었죠. 어느 날, 콧바람 좀 쐴 겸 아내랑 동네 산책을 나왔는데 그때 이 집을 발견한 거예요. 오래된 1층 주택이었는데 여기에 집을 새로 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저를 찾아왔다고 해야 할까요?(웃음). 바로 초인종을 눌러 집주인에게 집을 팔 의향이 있느냐고 다짜고짜 물었죠. 바로 그 주 주말에 계약을 했어요.”
주택살이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있던 이도 아니고 갑작스럽게 집짓기를 결심했다는 것에 조금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제가 원래부터 부동산에 관심이 많아요. 이 동네에서 살면서 주변 아파트나 주택 시세는 알고 있던 터였죠. 귀동냥으로 내발산동에 집을 지으려면 최소 165㎡(50평) 면적의 땅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근데 이 집은 협소한 면적이지만 우리 다섯 가족이 알차게 살 수 있는 공간은 되겠다 싶었죠.” 이영락 씨는 땅에 투자하는 목적을 넘어 층간 소음으로 스트레스가 많았던 아이들과 아내에게 하루빨리 맘 편한 공간을 만들어 줘야겠다는 마음으로 집짓기를 시작했다.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는 건축가와의 합이 중요하죠. 지인의 추천을 통해 여러 전문가를 만났어요. 하지만 제가 집짓기에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 취향도 잘 모르던 때라 어떻게 선택해야 할지 막막했죠. 그래서 매번 백지를 주고 어떤 집을 만들고 싶은지 그려달라고 했어요.” 하얀 도화지에 그려진 집은 목조 주택부터 다양했다. 그중 이영락·김현주 부부의 선택은 튼튼하면서 멋스러운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집. 군더더기 없이 단순하면 단순할수록 가족들의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고 더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미로 같은 재밌는 구조
빨간 벽돌로 감싼 독특한 외관만큼이나 내부 구조도 재밌는 집이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로로 긴 직사각 모양의 주방이 자리하고, 그 안으로 계단 모양을 그대로 살린 노출 콘크리트 벽면이 싱크대를 감싸고 있다. 바로 그 아래로 선큰 구조의 지하 공간이 연결되는데 계단 쪽에 유리 통창을 만든 덕에 조도를 확보해 개방감도 느껴진다. 구불구불 연결된 계단을 거쳐 2층과 3층으로 올라가면 정사각형 모양의 공간을 시작으로 베란다와 화장실 사이로 긴 복도를 지나 부부 침실과 자매의 방이 나오는 구조다.
“미로 같은 독특한 구조가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아이들 방이 있는 3층을 복층으로 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고요.” 본래 낡을 대로 낡은 집이었다. 대충 어림잡아 가로 6m, 세로 17m 면적에 집을 짓는다니 주변에서도 걱정이 많았다. 설계 기간만 한 달 반. 부부는 당시 SBS <좋은아침-하우스> 프로그램과 건축일지가 적힌 블로그 등을 보며 독학으로 공부하고 배워가며 콘셉트부터 시공사 (주)디자인더개인과 함께 집을 완성했다. 지난 3월 입주한 후에도 끊임없이 집을 고치고 크고 작은 가구와 소품을 만들어 채워 넣길 1년여.
“여전히 진행 중이에요. 에어컨 공사를 해야 하는데 때마침 무더위가 지나가서 천천히 하려고요.(웃음)” 이영락 씨는 맞춤한 옷장에 기대서 천천히 집을 둘러보며 그렇게 말했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공간이기에 불필요한 장식을 최대한 배제했어요. 아이를 키우는 집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아이들 살림인데, 이 집에서 가장 강조한 부분도 수납이에요.” 이런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해 거실 소파 뒤, 침실 침대 맞은편, 아이 방 등 공간의 한쪽 벽은 모두 전면 수납장을 짜 넣었다.
온전히 아이들을 위한!
‘아이들이 맘껏 뛰놀 수 있는 집’이라는 명제가 확실히 드러나는 집. 층간 소음 걱정 없이 맘껏 뛰어놀라는 이영락·김현주 부부와 집을 놀이터보다 더 좋아하는 다희·여강·건이 3남매는 주택살이가 마냥 좋기만 하다.
“아파트에 살 때는 애들이 크니까 조금만 움직여도 시끄럽게 들리는 거예요. 심하게 쿵쾅거린 건 아니었는데도 아파트 자체가 오래되다 보니 층간 소음이 정말 심했어요. 심지어 아랫집이 이사를 갔으니까요. 그런 이유에서 주택살이는 아이들에게 자유를 선물했죠. 맘껏 소리 지르고 뛰어도 아빠 엄마만 잘 참으면(?) 되니까요.(웃음)”
공간이 협소하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어린 시절 집에 대한 추억도 남겨주고 싶어 각자의 방에 재미를 더했다. 장난감이나 큐브 같은 잔살림이 많은 아들 건이는 책상과 수납장만 둔 방 옆으로 사다리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침실로 사용하는 다락방을 만들었다. 박공지붕 모양을 살려 만든 덕에 답답한 느낌이 전혀 없다. 다희와 여강이 자매 방은 각자의 공간을 이층 침대처럼 공부방과 침실을 위아래로 나눠 데칼코마니 구조로 꾸몄다. 각각의 공간에 두꺼운 가벽을 세워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확보해주었다.
어느 날 둘째 딸 여강이의 친구가 집에 놀러 와서는 이영락 씨에게 “아버님, 참 집을 멋지게 지으셨네요”라고 말해 모두에게 웃음을 선사한 적이 있다. 주택으로 이사 온 뒤 세 남매가 집으로 친구를 초대하는 일이 많아지니 괜히 뿌듯한 마음이 든다는 이영락·김현주 부부. 아이들이 성인이 되기 전까지 오롯이 다섯 가족의 추억을 그려나갈 집이다.
1996년 첫 방송을 시작해 매일 주중 아침 시간을 책임지고 있는 SBS 간판 정보 방송 <좋은아침>의 목요일 섹션 프로그램. 2015년 1월, 시즌 1을 시작으로 매주 목요일 아침 9시 10분에 방영된다. ‘하.우.스’는 ‘하나뿐인 우리 집 스토리’의 줄임말로 천편일률적인 아파트를 벗어나 나만의 특별한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을 찾아 소개하고 있다. 도심 속 자투리땅을 찾는 노하우부터 노후한 집을 개조하는 방법, 집짓기, 최신 인테리어 스타일 등 요즘 주거 트렌드와 정보를 알차게 담고 있다는 평을 들으며 인기를 얻고 있다.